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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STYLE

vegan

비건 패션 ‘낫아워스’ 박진영 & 신하나 대표

동물과 공존하는 지속 가능한 삶을 꿈꾸다

글 강현숙 기자

2021. 03. 01

동물과 인간이 더불어 살아가는 미래를 위한 비거니즘이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비건 패션 아이템을 통해 지속 가능한 삶에 대한 답을 찾고 있는 두 사람을 만났다.

‘낫아워스’의 후디와 니트 베스트를 입고 있는 박진영·신하나 대표(왼쪽부터).

‘낫아워스’의 후디와 니트 베스트를 입고 있는 박진영·신하나 대표(왼쪽부터).

소수의 취향으로 여겨졌던 비건(Vegan, 완전 채식주의)이 이제는 생활 전반에서 동물 착취에 반대하는 비거니즘으로 개념이 확장되면서 사회를 이끄는 중요한 키워드가 됐다. 2018년 말 영국의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2019년을 ‘비건의 해’라고 전망했고, 이제 비건 분야는 식품은 물론 화장품, 의류, 자동차까지 폭넓게 확산되면서 핫한 글로벌 소비 트렌드로 자리 잡는 분위기다. 

비건 패션 브랜드인 ‘낫아워스(NOT OURS)’를 이끄는 박진영(40)·신하나(39) 대표는 비건이다. 2015년 한 패션 브랜드에서 직장 동료로 만난 두 사람은 회사를 관두고 다음을 고민하던 시기인 2017년 의기투합해 페이크 퍼로 만든 코트를 제작하게 됐고, 그게 낫아워스의 시작이다. 당시 둘이 함께 만든 페이크 퍼 코트는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텀블벅’에서 화제를 모으며 완판됐다. 

박 대표는 패션스쿨 SADI(Samsung Art and Design Institute) 출신으로 그동안 패션 브랜드에서 꾸준히 디자이너로 일했고, 신 대표는 프랑스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뒤 여러 회사에서 마케팅과 커뮤니케이션 업무를 해왔다. 낫아워스에서 박 대표는 디자인, 신 대표는 마케팅과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하며 비건 패션을 알리는 일에 열심이다.


‘지속 가능한 삶에 대한 고민을 담은 비건 패션 브랜드’라는 설명이 인상적이에요. 

박진영(이하 박) 저희는 둘 다 비건으로 단순히 육식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라이프스타일 전반에서 동물 착취에 반대하는 비거니즘을 추구합니다. 옷은 물론 화장품과 세제, 깃털로 만든 고양이 장난감, 돼지털로 된 돈모 브러시 등 동물 착취로 얻어진 모든 물건을 금하고 동물원이나 아쿠아리움에도 가지 않아요. 낫아워스가 지향하는 비건 패션이란 동물성 소재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제작한 의류나 액세서리를 비롯한 패션 아이템, 이를 활용해 스타일링한 패션을 말해요. 패션 업계에서는 아직도 가죽이나 실크, 오리털, 울 등 동물성 소재가 고급이라는 인식이 강해요. 저희는 그런 소재뿐 아니라 소뿔단추, 자개단추, 진주도 배제하고 있어요. 플라스틱의 해악에 관해서는 널리 알려져 있지만, 가죽과 모피가 환경과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악영향을 미치는지는 잘 모르는 듯해요. 낫아워스를 통해 동물성 소재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물론 환경적으로도 더 나은 방향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있어요. 세상에는 더 이상 만들지 않아도 될 정도로 이미 물건이 넘쳐나고 있잖아요. 물건을 한 가지 더 생산하는 일은 환경적인 책임이 따른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물건을 내놓는 게 끝이 아니라 어떻게 해야 환경에 해를 덜 끼칠 수 있을지, 어떤 게 더 지속 가능한 방향일지 늘 생각합니다. 

‘낫아워스’는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요. 

신하나(이하 신) 낫아워스(NOT OURS)는 영문 그대로 ‘우리의 것이 아닌’이라는 뜻으로, 저희가 지향하는 ‘지속 가능성’에 대한 가치를 담았어요. ‘우리의 가죽이 아닌 동물의 가죽’ ‘우리의 털이 아닌 동물의 털’ ‘우리의 자원이 아닌 미래 세대의 자원’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지요. 또한 ‘OURS’는 프랑스어로 ‘욱스’라고 읽는데, 곰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어요. ‘곰이 아닌, 동물의 털이 아닌’이라는 언어유희를 더해 브랜드 캐릭터를 곰으로 정했어요. 



티셔츠와 외투, 가방 등 다양한 아이템을 선보이는데 가장 인기 있는 제품은요. 

심플하면서 편하게 입고 착용할 수 있는 후드 티셔츠와 니트, 가방, 지갑 등을 선보이고 있어요. 가장 인기 있는 아이템은 지갑과 가방류예요. 가죽 소재를 완벽하게 대체할 수 있으면서 퀄리티 높은 소재로 만들고 있거든요. 특히 최근에 출시된 선인장 가죽으로 만든 ‘리얼 칵투스 카드 홀더’가 가장 인기가 많아요. 제품들은 온라인 쇼핑몰에서 판매하며,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자리한 쇼룸에서 직접 체험해볼 수도 있어요. 

선인장으로 어떻게 가죽을 만드는지 궁금하네요. 제품의 소재를 선택하는 기준도요. 

섬유질이 풍부한 선인장은 물도 거의 필요 없고 잎을 잘라내면 재생되는 지속 가능한 자원이에요. 유기농 선인장을 잘 세척해 3일간 햇빛에 말리고 가루로 만든 뒤 섬유화하는 데 필요한 성분을 섞어 압축하면 선인장 가죽이 됩니다. 통기성과 내구성이 뛰어나고 관리가 편해 동물 가죽을 대체할 수 있는 훌륭한 비건 소재예요. 또 최대 50%까지 생분해되며, 인조 가죽과 달리 만드는 과정에서 중금속이나 프탈레이트, PVC 등의 독성 물질도 들어가지 않아요. 

저희는 동물성 소재가 아니면 다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품질이 뛰어나고 친환경적인 소재면 더 좋고요. 작년에 코트로 만들었던 폐페트병을 재활용한 플리스 원단은 원단 제조업체를 통해 직접 제작했어요. 니트 베스트는 울 대신 프리미엄 소재인 피마 코튼 원사를 사용하고요. 요즘에는 합성 화학 소재의 인조 가죽 대신 선인장 가죽과 버섯 가죽, 사과 껍질 가죽, 파인애플 가죽 등 식물성 소재로 만든 친환경 가죽들이 계속 개발되고 있는 추세예요. 이런 소재들을 항상 눈여겨보고 저희 제품에 시도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다만 가죽의 대체물로 흔히 사용되는 PVC 소재는 생산 과정에서부터 수많은 오염 물질을 방출하는 등 유해성이 심각하고 재활용도 불가능하므로 절대 사용하지 않아요. 


캐주얼하면서 편안한 
느낌을 주는 의류들.

캐주얼하면서 편안한 느낌을 주는 의류들.

사실 가방이나 옷의 작은 부분까지 가죽이 들어가잖아요. 비건 패션 아이템을 제작하는 데 어려움이 많을 것 같아요. 

그래서 일반적인 패션 브랜드보다 소재 선택의 폭이 훨씬 제한적이에요. 한국에 아직 없는 것들을 구하거나 직접 제작해야 하는 경우도 많고요. 그런데 제작보다는 인식을 바꾸는 게 더 어려운 일 같아요. 시중에 판매되는 비건 제품들이 퀄리티가 낮은 게 많다보니 보통 비건 소재라고 하면 가격이 저렴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실 진짜 가죽 제품은 질이 아주 좋지 않아도 가죽이라는 이유로 소비자에게 가격을 쉽게 납득시킬 수 있잖아요. 결국 좋은 비건 제품에 대한 소비자의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 아닐까요. 우리가 왜 동물성 소재를 배제하고 제품을 만드는지와 더불어 가격에 대해 이해시키려는 노력도 함께 하고 있어요. 

재고를 만들지 않고 주문받은 수량을 기준으로 제품을 제작한다고 알고 있어요. 

패스트패션(Fast Fashion, 최신 유행을 즉각 반영한 디자인으로 제작돼 저렴한 가격에 빠르게 유통되는 패션) 브랜드들이 성행하면서 환경 문제가 심각해졌어요. 오래 입을 수 없는 디자인과 대충 만든 질 낮은 옷들이 대량으로 쏟아졌고, 저렴한 가격은 잦은 빈도의 소비를 불러왔지요. 흔히 안 입는 옷은 기부해서 재사용하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퀄리티가 낮은 제품들은 결국 직물 쓰레기가 되고, 저개발 국가로 보내져 그 나라의 의류 산업을 망치기도 해요. 재고는 많은 공간을 차지하고, 재고도 자산이므로 세금을 줄이기 위해 멀쩡한 새 제품이 태워지는 경우도 있고요. 저희는 모든 브랜드가 재고를 줄이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봐요. 그래서 제품을 많이 만들지 않고, 주문받은 수량을 기준으로 제품을 제작합니다. 제품을 포장할 때 역시 환경을 고려해요. 플라스틱 포장을 지양하고 옥수수를 원료로 만든 생분해 비닐이나 종이 완충재, 종이테이프로 플라스틱을 대체하고 있어요. 다만 환경 친화적인 포장이라도 불필요한 요소는 최대한 줄여 쓰레기를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하고요. 

비건 활동과 관련해 롤 모델이 있나요. 

지속 가능한 패션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브랜드 ‘스텔라 매카트니’가 롤 모델이에요. 울과 실크를 사용하고 있어 비건 브랜드는 아니지만, 럭셔리 브랜드 가운데 가장 먼저 가죽 사용을 중단했지요. 가장 멋진 점은 스텔라 매카트니의 아이템을 보고 아무도 그 제품이 진짜 가죽인지, 인조인지 따지지 않는다는 거예요. 제품이 아름답고 품질이 뛰어나기 때문이죠. 운영 방식에 있어서는 프랑스의 스니커즈 브랜드 ‘베자(VEJA)’를 눈여겨보고 있어요. 비건 브랜드는 아니지만 환경에 해를 끼치지 않는 원료와 공정 무역을 통해 제품을 만들고 있거든요. 

궁극적으로 어떤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고 싶나요. 

사람들에게 대안이 아닌, 더 나은 선택이 되는 브랜드가 되고 싶어요. 동물 가죽과 인조 가죽으로 만든 제품이 각각 있는데, 인조 가죽 제품이 훨씬 더 예쁘고 질도 좋고 친환경적이라면 굳이 진짜 가죽을 선택하는 사람들은 없을 듯해요. 이제는 어떤 물건을 만들고 소비해야 하는지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 깊게 고민해야 할 시기라고 생각해요. 당장 완벽하지 않더라도 더 지속 가능한 방식에 대해 함께 고민하며 나아가고 싶어요.

단 하루라도 고기 없이 지내보길

비건이 된 계기가 궁금해요. 

2009년부터 비건을 시작했어요. 축산업에서 벌어지는 동물 학대와 착취 문제, 이런 것들이 자연환경과도 밀접하게 엮여 있다는 사실을 책과 다큐멘터리 등을 통해 알게 됐거든요. 우유와 달걀을 일부러 챙겨 먹지 않고 과자나 빵은 허용하는 식으로 아주 가볍게 시작했고, 비건까지 오게 됐어요. 

2017년 봄 당시 다니던 회사에서 서울 마장동 정육점 거리로 회식을 갔어요. 그날 한 가게에서 고기를 질리도록 먹고 나왔는데 순간 거리 풍경이 너무 생소하고 충격적으로 다가오더라고요. 빨간 조명과 동물들의 사체 덩어리, 피비린내와 살냄새까지. 과식을 하고 난 뒤라 속이 더 불편했고 기분 역시 별로였어요. 그때쯤 우연히 유튜브에서 미국의 동물 권리 활동가인 게리 유로프스키의 강연을 봤고, 축산업에 대해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됐어요. 가볍게 채식을 시작했고 금방 비건까지 오게 됐습니다. 

두 분처럼 요즘 비거니즘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사회 분위기도 달라지고 있어요. 

바뀌고 있는 분위기를 깊이 체감하고 있어요. 예전에는 밖에 나가면 식당에서 사 먹을 게 아예 없고, 유럽이나 미국이 아닌 한국 슈퍼마켓에서 대체육이나 대체유처럼 비건 가공식품을 구경한다는 건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거든요. 그리고 “왜 채식을 하느냐” 혹은 “태어나서 비건은 실제로 처음 본다”는 소리도 자주 들었죠. 하지만 이제는 제게 왜 비건을 하는지 묻는 사람이 거의 없어요. 묻지 않아도 자연스레 아는 거죠. 

고객들 중 20대가 많다 보니 각 대학마다 비건 동아리가 생기고 있고, 대학교 주변 식당가를 중심으로 비건 메뉴를 선보이는 곳이 늘고 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어요. 중고등학생들에게 가끔 비건 패션에 대한 궁금증이 담긴 메일을 받는데, 이런 것만 봐도 젊은 세대들에게 환경이 굉장히 중요한 이슈라는 걸 느끼고 있습니다. 정말 미안한 건 환경을 이렇게 만든 건 윗세대지만, 이런 환경에서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많이 남은 건 젊은 세대라는 점이죠. 이런 점으로 인해 Z세대(1990년대 중반~2000년 초반 출생)나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 출생)들이 환경 위기를 심각하게, 자신의 일로 느끼는 게 아닐까 싶어요. 

비건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고기는 더 이상 옛날처럼 귀한 음식이 아니에요. 공장식 축산업을 통해 고기가 대량으로 생산되면서 가격이 싸졌고, 이제 고기가 전혀 들어가지 않은 음식을 찾는 일이 훨씬 어려운 상황이지요. 이 정도의 생산량과 소비량을 따라가려면 가축을 기르기 위한 넓은 토지가 필요하고, 그 토지를 위해 숲을 없애고, 동물들은 비위생적이고 좁은 환경에서 고통 받고 있어요. 또한 가축 사육 시 발생하는 메탄가스로 인해 오존층은 파괴되고, 토양과 수질 역시 오염되고 있고요. 환경오염으로 인한 심각한 기후 변화가 대부분 고기를 먹기 위해서 발생하고 있는 것이죠. 또한 지구는 다양한 종들과 함께 살고 있는 별인데, 사람들이 단순히 재미를 위해 수많은 동물들을 착취하고 있는 것 같아요. 물고기 축제를 위해 물고기가 별로 살지도 않는 강에 양식 물고기를 푼 뒤 놀이하듯 잡고, 나비 축제를 위해 양식 나비를 풀어 그걸 구경하고요. 또 바다에 사는 고래를 잡아 좁은 수족관에 넣고, 개와 고양이를 교배해 팔고사고요. 비거니즘은 결국 각각의 동물도 하나의 개체로 존중받아야 하는 생명임을 인식하고 함께 살고자 하는 실천 철학이라고 생각합니다. 

1차원적인 질문일 수 있겠지만 채식만 하면 건강상 균형이 깨지진 않을까요. 

“기운 나려면 고기를 먹어야 해”라는 말도 많이 하지만, 의사가 아픈 사람에게 “고기 먹지 마세요”라는 말도 많이 해요. 채식을 하고 안 하고보다는, 건강을 위한다면 어떻게 먹는지가 더 중요한 듯해요. 감자튀김과 콜라를 주식으로 하거나, 매일 흰쌀밥에 김만 싸 먹는다면 건강할 수 없잖아요. 

비건으로서의 일상은 어떤가요. 

비건이라고 해서 특별한 건 없어요. 소비활동을 할 때 남보다 좀 더 꼼꼼하게 확인하는 것뿐이에요. 우선 밖에서 사 먹을 게 많지 않아 평소 도시락을 싸는 편이에요. 식료품을 살 때는 꼭 성분표를 확인하고, 의류를 살 때도 케어 라벨을 세심하게 체크합니다. 음료는 우유 대신 두유를 마시고요. 밖에서 모임을 가질 때 동물 카페 같은 곳은 가지 않아요. SNS와 브런치를 통해 비건 패션과 관련된 정보도 종종 공유하고 있고요. 

비건 선배로서 비거니즘에 관심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비건이 되는 일은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모든 것을 100% 엄격하게 지켜야만 비건이 되는 건 아니에요. 비거니즘은 그야말로 삶의 철학으로, 추상적인 개념이잖아요. 부담감에서 벗어나 의식적으로 한 끼라도 고기를 덜 먹으려고 노력하고, 동물성 소재 대신 비동물성 소재로 만든 제품을 구입하세요. 이렇게 하나라도 줄여나가고자 하는 모든 노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보통 사람들은 식습관과 관련된 일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크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단순히 먹는 일이라 생각하지 말고 무분별한 축산업과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수많은 부분들에 대해 생각해봤으면 해요. 한 사람, 한 사람이 조금만 고기를 줄여도 더 건강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요.

사진 홍태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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