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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바꾼 여성의 삶 4가지

글 김명희 기자, 윤혜진

2020. 10. 28

지난 10월 25일 별세한 故 이건희(1942~2020) 삼성전자 회장은 삼성을 21세기 초일류 글로벌 기업으로 키운 주인공이다.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우리도 1등이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키워주었으며, 여성이 유리천장을 깨고 더 높이 올라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고 혁신적인 가전제품을 통해 라이프스타일 변화에도 영향을 미쳤다. 여성의 관점에서 故 이건희 회장의 업적을 돌아보았다.

1. 여성 인재 양성에 힘쓴 ‘딸 바보’
2010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에서 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의 손을 잡고 부스를 돌아보고 있는 이건희 회장. 이 회장은 이날 “우리 딸들 광고 좀 해야겠다”고 말하며 딸들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2010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에서 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의 손을 잡고 부스를 돌아보고 있는 이건희 회장. 이 회장은 이날 “우리 딸들 광고 좀 해야겠다”고 말하며 딸들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다른 나라는 남자 여자가 합쳐서 뛰고 있는데 우리는 남자 홀로 분투하고 있다. 마치 바퀴 하나는 바람이 빠진 채로 자전거 경주를 하는 셈이다. 이는 실로 인적 자원의 국가적 낭비라고 아니할 수 없다.” 

이건희 회장이 1997년 출간한 자서전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동아일보사)에 담긴 말이다. 평생을 인재 양성에 힘쓴 이건희 회장은 인재를 선발할 때 성별, 학벌, 학력을 따지지 않았다. 특히 1987년 삼성그룹 회장 취임 초기부터 여성 인재의 중요성을 강조했으며 사내 남녀차별 관행을 없애는 데 힘썼다. 삼성은 1992년 여성 전문직제를 도입하고 1993년에는 업계 최초로 대졸자 여성 공채를 시작하면서 여성 전문 인력 5백 명을 선발했다. 

될 성 부른 인재를 발견하면 과감하게 지원했다. 삼성전자 최초의 고졸 여성 임원 출신으로 올해 국회에 입성한 양향자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이 대표적이다. IMF 위기 당시 한국 여성 골퍼로는 처음으로 US여자오픈을 제패, 국민들에게 희망을 선사한 박세리 선수도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삼성그룹의 파격적인 후원을 받았다. 10월 26일 이건희 회장 빈소를 찾은 양 의원은 “보잘 것 없고 배움이 짧은 저에게 ‘거지근성으로 살지 말고 주인으로 살라’고 말씀하셨다”고 회고했다. 

여성 인재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은 두 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딸 사랑’과 관련해선 2010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전시회인 ‘CES 2010’에 두 딸들의 손을 잡고 나타난 이 회장이 “이번에 우리 딸들 광고 좀 하겠다”며 애정을 드러낸 일화가 유명하다. 이 회장은 2011년 8월 두 딸을 비롯한 여성 임원들과 가진 오찬 자리에서 “여성 임원은 사장까지 되어야 한다. 사장이 되면 본인의 뜻과 역량을 다 펼칠 수 있다”고 격려한 적도 있다.

2. 친가족 기업 문화, 워킹맘 일하기 좋은 회사로
부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 관장과 싱가포르에서 열린 2010유스올림픽을 참관하고 있는 이건희 회장. 이 회장은 주요 행사마다 홍라희 여사를 비롯한 가족과 함께하는 모습을 보였다.

부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 관장과 싱가포르에서 열린 2010유스올림픽을 참관하고 있는 이건희 회장. 이 회장은 주요 행사마다 홍라희 여사를 비롯한 가족과 함께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건희 회장은 주요 행사마다 부인 홍라희(75) 전 리움미술관 관장과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등과 함께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잔정 많기로 소문난 이 회장은 부친 이병철 창업주 생전에는 매일 경기도 용인으로 가 아버지 이병철 회장의 잠자리를 챙기고, 그 어느 사교육보다 가정에서 이뤄지는 인성 교육을 중요히 여겼다고 한다. 



이 같은 이건희 회장의 친가족적 성향은 삼성그룹의 기업 문화에도 잘 녹아있다. 대표적인 것이 1993년 실시한 7·4제다. 오전 7시 출근하고 오후 4시에 퇴근해 자기 계발을 하거나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늘리라는 의도였다. 이건희 회장은 7·4제가 어느 정도 자리 잡자 2009년 자율출근제(오전 6시부터 오후 1시 사이 원하는 시간에 출근해 8시간을 근무하는 제도), 2011년 재택·원격근무제, 2012년 자율출퇴근제(오전 6시부터 오후 6시 사이 원하는 시간에 출근해 1일 4시간 이상, 주 40시간을 근무하는 제도) 등으로 발전시켜 나갔다. 

친가족 기업 문화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여성친화적 기업 문화로 이어졌다. 2012년 여성 직원에 한해 육아휴직이 가능한 자녀 연령을 만12세 이하로 상향 조정하고(현재는 남자 직원도 동일), 2013년에는 민간 기업 최초로 자녀를 갖는 데 어려움을 겪는 여성 직원을 위해 최대 1년간 휴직이 가능한 ‘난임휴직제’를 도입했다. 이건희 회장은 기혼 여성이 편히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야 업무 능률도 오른다고 믿었다. 워킹맘들에게 실질적으로 큰 도움이 되는 보육 사업을 직접 챙긴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1987년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오찬을 하던 중 호텔 뒤쪽 낙후된 집들을 보고 그곳에 어린이집을 지어야겠다고 결심한 이 회장은 1989년 사재를 출연해 삼성복지재단을 설립했다. 어린이집 교실에 들어갈 가구 하나까지도 꼼꼼히 체크한 이 회장은 1호 어린이집이 개관했을 때 크게 기뻐했다고 한다. 삼성복지재단은 1990년대 초반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면서 대한민국의 양극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던 시기 저소득 밀집 지역에 어린이집을 지어 지방단체에 기증했으며 저출산 문제가 심각해진 1990년대 후반부터는 보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식적으로 삼성어린이집을 설립, 운영하고 있다.


3. 라이프스타일을 바꾼 혁신적인 가전제품
1993년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이른 바 ‘신경영 선언’을 하고 있는 이건희 회장.

1993년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이른 바 ‘신경영 선언’을 하고 있는 이건희 회장.

이 회장은 2011년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을 찾아 선진국의 제품과 삼성 제품의 기술력 차이를 살피며 ‘신경영 선언’의 성과를 점검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 회장은 2011년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을 찾아 선진국의 제품과 삼성 제품의 기술력 차이를 살피며 ‘신경영 선언’의 성과를 점검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올 초 삼성전자에서 출시한 인공지능이 탑재된 ‘그랑데 AI’ 세탁기와 건조기가 출시 한 달 만에 판매량 1만대를 돌파하며 대표적인 ‘삼신 가전’으로 자리 잡았다. 여기서 삼신 가전이란 식기세척기, 로봇청소기, 건조기를 말하며 3가지 새로운 필수 가전이란 의미의 ‘삼신(三新)’ 혹은 가사노동의 부담을 줄여주는 신의 선물이란 뜻에 ‘삼신(三神)’이라는 의미도 지닌다. 가사노동에 들이는 시간을 줄인 여성들은 이제 그 시간을 자기 계발과 관리에 투자할 수 있게 됐다. ‘그랑데 AI’ 제품은 셔츠 한 장을 세탁에서 건조까지 하는데 36분이 걸린다. 규격이 맞지 않는 세탁기 덮개를 칼로 깎아내고 억지로 조립했던 1990년대 초 삼성으로선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1993년 세탁기 생산라인 직원들이 규격에 맞지 않는 뚜껑을 칼로 잘라내는 사내 고발 영상을 보고 충격을 받은 이 회장은 이후 삼성이 뛰어난 제품력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근본적인 혁신을 꾀한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신경영 선언’도 이때 나온 것이다. “불량은 암”이라는 신조로 15만대의 불량 무선 전화기를 불태우고 냉장고 21만대를 리콜하는 초강수를 두기도 했다. 양보다 질을 택한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특히 2012년 선보인 ‘지펠 T9000’은 냉장고의 패러다임을 바꿨다는 극찬을 받았다. 냉장실 사용 횟수가 냉동실의 4배라는 점에 주목해 손이 닿기 쉬운 위쪽에 냉장실을, 아래쪽에 냉동실을 배치한 점이 소비자를 사로잡았다. 

1993년 이미 “얇은 TV가 벽에 붙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내다본 이건희 회장은 디자인도 놓치지 않았다. 2005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디자인경영 전략회의에서 “삼성의 디자인은 아직 1.5류”라며 “짧은 순간 고객의 마음을 붙잡지 못하면 승리할 수 없다”고 디자인 혁신을 주문했다. 일명 ‘밀라노 선언’이다. 그 이듬해 출시한 ‘보르도 TV’는 스피커를 외관에서 보이지 않도록 하고 와인잔을 연상하게 만드는 프리미엄 디자인으로 2006년에만 3백만대가 판매되며 글로벌 TV 시장에서 1위를 꿰찼다.


4. 제품 포장지에 담긴 친환경 DNA
2020 대한민국 올해의 녹색상품에 선정된 비스포크 냉장고(왼쪽). 2020 대한민국 올해의 녹색상품에 선정된 그랑데 AI 세탁기.

2020 대한민국 올해의 녹색상품에 선정된 비스포크 냉장고(왼쪽). 2020 대한민국 올해의 녹색상품에 선정된 그랑데 AI 세탁기.

포장재에 업사이클링 개념을 적용해 재미있게 조립할 수 있도록 만든 더 세리프 TV 에코 패키지.

포장재에 업사이클링 개념을 적용해 재미있게 조립할 수 있도록 만든 더 세리프 TV 에코 패키지.

요즘 친환경 마인드는 기업인이 갖춰야 할 필수 덕목 중 하나다. 이건희 회장은 1990년대부터 “21세기에는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기업, 공해 없는 기업, 해가 되지 않는 기업이 되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며 일찌감치 친환경 경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를 토대로 삼성전자는 지난 1992년 전자제품으로 인한 환경 피해를 막기 위해 ‘삼성 환경선언’을 선포한 이래 2008년 녹색경영 가치체계 정립, 2014년 중장기 로드맵 ‘에코매니지먼트2020’ 제시 등 적극적인 친환경 정책을 펼쳐왔다. 실제로 삼성전자의 ‘지속가능경영보고서 2020’에 따르면 2009~2019년 삼성전자가 전 세계에서 거둬들인 폐제품은 403만톤에 달한다.
 
부친의 뜻을 이어 이재용 부회장도 친환경 제품을 잇달아 선보이고 있다. 지난 9월에는 비영리 시민단체인 ‘녹색구매네트워크’가 주관하는 ‘2020 대한민국 올해의 녹색상품’에서 최다 수상 기업에 오르기도 했다. 선정된 제품은 갤럭시 S20 시리즈, 갤럭시 북 플렉스, 라이프스타일TV 49형 더 세리프, 그랑데 세탁기 AI, 그랑데 건조기 AI, 비스포크 냉장고, 비스포크 식기세척기 등 총 12개 제품이다. 특히 TV의 포장지를 가구처럼 조립해 재활용할 수 있도록 한 에코 패키지는 소비자가 직접 참여할 수 있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사진 동아DB 삼성전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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