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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interview

아름다운 강동원의 소신과 여유

글 정혜연 기자

2020. 08. 01

저렇게 잘생긴 남자는 머릿속으로 어떤 생각을 할까. 어느새 영화계를 이끄는 배우로 자리 잡은 강동원의 외모만큼이나 시크한 세계관.

강동원(39)은 확실히 다른 느낌을 가진 배우다. 선 굵은 외모에 남성미 넘치는 일반적인 30~40대 남자 배우들이 가지지 못한 무언가가 있다. 날렵한 콧날과 턱선, 속을 알 수 없는 깊은 눈매는 볼수록 묘한 분위기를 풍긴다. 패션 잡지 모델로 활동하다가 2003년 드라마 ‘위풍당당 그녀’로 데뷔한 강동원은 당시 독보적인 외모로 눈길을 끌며 뭇 여성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하지만 그는 단순히 외모로 주목받는 데 그치지 않았다. 2004년 로맨틱 코미디 ‘그녀를 믿지 마세요’로 영화계 진출한 뒤 ‘늑대의 유혹’(2004),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2006), ‘전우치’(2009), ‘의형제’(2010), ‘군도:민란의 시대’(2014), ‘검은 사제들’(2015), ‘검사외전’(2015), ‘골든슬럼버’(2017) 등 장르를 넘나들며 자신만의 필모그래피를 만들어왔다.

좀비물 첫 출연 “비중 작아도 작품 잘 나와서 만족”

올해 한국 나이로 마흔을 맞이한 강동원은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좀비를 소재로 한 블록버스터 영화 ‘반도’의 주인공을 맡은 것. 이 작품은 4년 전 1천만 관객을 불러모은 연상호 감독 영화 ‘부산행’의 후속작이어서 더욱 주목을 받았다. 강동원은 ‘반도’에서 전직 군인 ‘정석’으로 출연해 극을 이끌어 간다. 

영화는 ‘부산행’에서의 재난 4년 뒤 세계관을 그린다. 가까스로 홍콩으로 향하는 배에 탑승해 목숨을 건진 정석은 배 안에서 뜻하지 않게 가족을 잃고 폐인처럼 살아간다. 어느 날 그는 홍콩의 폭력 조직으로부터 폐허가 된 반도에 가서 돈다발이 든 트럭을 가져오면 돈의 절반을 주겠다는 제안을 받는다. 우여곡절 끝에 반도에 도착한 정석은 가까스로 트럭을 발견하지만 좀비 떼에 습격당하고 민정(이정현)과 그녀의 딸 준이(이레), 유진(이예원)의 도움을 받아 겨우 목숨을 구한다. 반도를 탈출하기 위해선 트럭이 필요한 상황. 이들은 631부대(인간성을 상실한 반도의 군대 조직)가 가져간 트럭을 되찾기 위해 부대 안으로 들어가 혈투를 벌인다. 

반도는 총제작비 1백90억원, 1980㎡ 규모의 세트장, 2백50여 명의 국내 최정상 특수효과 전문가들 투입, 1년에 걸친 CG 작업 등으로 일찌감치 화제가 됐다. 영화 제작 전 이미 1백85개국에 선판매됐고 일부 국가에선 동시 개봉됐다. 또 2020년 칸영화제 공식 초청작에 선정되기도 했다. 7월 중순 개봉일을 하루 앞두고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강동원과 마주 앉았다.



‘부산행’에서 공유 씨가 주연을 맡아 절절한 부성애를 그려 호평을 받았는데, 후속작을 맡아 부담을 느끼진 않았나요. 

속편 성격의 영화를 맡는 건 배우로서 쉽지 않은 결정이에요. 하지만 감독님이 그려준 비전과 생각들이 굉장히 좋았고, 시나리오를 봤을 때 ‘부산행’과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그려져 마음에 들었어요. 물론 영화 촬영에 들어가면 어떤 작품이든 압박을 받고, 어깨가 무거워져요. 하지만 ‘반도’는 시나리오를 보고 오히려 든든한 느낌이 들었어요. ‘부산행’을 좋아하셨던 분들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에 많은 분들이 응원해주리라 생각해요. 

연상호 감독님과는 원래 알고 지낸 사이인가요. 

다른 영화 쫑파티에서 처음 뵀어요. 나홍진 감독님이 갑자기 연락하셔서 쫑파티 중이라기에 갔는데 거기 연상호 감독님도 계셨어요. 그때가 첫 만남이었죠. 취해 계셔서 대화는 많이 못 했고 이후 양진모 편집감독님이 “연상호 감독이 한번 보고 싶대”라고 해서 다시 만났어요. ‘부산행’ 속편을 준비 중이라는 정보를 미리 듣고 갔는데, 작품에 대한 호기심보다는 연상호 감독님에 대해 궁금했어요. 항상 촬영을 빨리 끝낸다는 소문을 들어서 그게 제일 궁금했어요. 그런 현장을 경험해본 적이 없거든요. 이야기를 나눠보니 “스태프를 힘들게 하면서 영화를 찍고 싶지는 않다”고 하셔서 신선했어요. 제가 가진 가치관과 비슷한 지점이었거든요. 물론 시나리오도 굉장히 좋았어요. 감독님이 공유해주신 ‘반도’의 비주얼적 요소도 확고했고, ‘부산행’과 차별화된 속편이 나오겠다는 확신이 들었죠. 

실제로 ‘반도’ 출연 배우들이 입을 모아 “촬영이 빨리 끝나서 좋았다”고 하던데 오히려 배우 입장에서는 ‘한 번에 끝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들진 않던가요. 

압박감은 전혀 없었어요. 다만 그런 건 있었죠. ‘여기서 조금 더 찍어놓으면 나중에 편집할 때 좋을 텐데’ 하는 거요. 감독님은 그런 게 전혀 없더라고요. 현장 촬영분이 114분이었는데 본편이 115분 나왔어요. 촬영분보다 본편이 길게 나온 건 처음이었어요(웃음). 그만큼 딱 찍을 것만 찍어서 더할 게 없었죠. 한번은 촬영을 오후 4시쯤 끝낼 계획이었는데 그날따라 진행이 좀 빨랐어요. 감독님이 “조금 더 찍고 점심 먹기 전에 끝내자”고 했는데 진짜 점심 먹기 전에 끝나서 놀랐어요. 스태프들이 정말 행복해했죠. 학교도 빨리 끝나면 기분 좋잖아요. 

원래 좀비물을 좋아하는 편인가요. 

호러 영화 마니아인데 좀비물보다는 오컬트(과학적으로 해명할 수 없는 신비적, 초자연적 현상) 영화를 좋아해요. 좀비물은 외국에선 B급 영화에 속하는데 한국에선 제작비를 쏟아부어 상업 영화로 만들어요. 매우 이례적이죠. 상업적인 플롯에 좀비물의 B급 정서를 올려놓으니 외국에서도 주목하는 것 같아요. 또 좀비들은 무빙이 많은데, 사실 호러 영화 속 출연자들의 무빙이 많으면 감정이 깨져요. 실제로 촬영해보니 좀비물은 호러 영화를 가장한 액션 영화라는 걸 깨달았어요(웃음). 제 취향은 아니지만 관객들이 왜 좋아하는지 알겠더라고요. 

영화에 사격 신, 좀비와의 격투 신이 많았어요.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어땠나요. 

총기 다루는 데는 익숙해요. 전작들에서 여러 총기를 가지고 훈련했기 때문에 큰 어려움은 없었어요. 무술팀과도 원래 친했던 터라 열심히 합을 맞추는 데 집중했어요. 촬영 당시 운동량이 많았던 때라 좀 튼튼했는데 상대 배우가 자칫 다칠까 봐 연습을 많이 했고요. 오히려 좀비와의 격투 신이 힘들었어요. 그분들이 손을 쓰는 게 아니라 머리로 들이밀면서 접근하니 다치게 할까 봐 걱정됐거든요. 또 다들 입을 벌린 채 소리 지르면서 다가오니 침이 너무 튀어서 난감했어요(웃음). 위생적인 작업 환경은 아니었죠. 코로나 시국에 촬영하지 않은 게 다행이에요. 

올해 칸영화제가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취소되긴 했지만 ‘반도’가 공식 초청작으로 선정됐어요. 기분이 어땠나요. 

앞서 ‘부산행’도 초청을 받았기 때문에 좀비물이고 또 상업 영화라 이번에는 어렵지 않을까 싶었어요. ‘부산행’과 같은 세계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신선하게 보기는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초청받았으니 그 자체가 영광이에요. 연상호 감독님 작품이 전에 초청받았으니까 이번에 또 초청받은 거 아니냐 생각할 수 있는데 칸영화제가 그렇게 만만한 곳이 아니에요. 기존에 초청받았던 감독의 작품이라고 해도 혹평받는 경우가 많거든요. 

주인공 정석은 생각보다 비중이 적었어요. 오히려 여성 캐릭터가 더 부각되는 영화인데 아쉬움은 없었나요. 

처음부터 주인공이 임팩트가 없다는 건 알고 있었어요. 주인공 정석은 극을 이끌어가는 역할만 할 뿐이었죠. 욕심을 갖자면 감독님께 “이 신을 더 넣자, 저 신을 넣어보자” 요구했을 텐데 그런 성격은 아니에요. 관객들이 정석이라는 캐릭터에 이입해 잘 따라와야지만 극 전체에 몰입할 수 있으니까 그런 부분에만 집중했죠. 비중은 적어도 작품이 잘 나와서 만족해요.

데뷔 18년 차, 열심히 일하는 배우라는 평가 만족해

강동원은 영화 ‘반도’에서 좀비가 점령한 반도에 다시 돌아가 사투를 벌이는 전직 군인 정석을 맡았다.

강동원은 영화 ‘반도’에서 좀비가 점령한 반도에 다시 돌아가 사투를 벌이는 전직 군인 정석을 맡았다.

강동원은 시종일관 질문에 성실하게 답했고, 털털하고 시원시원한 면모도 보였다. 함께 출연한 이정현과의 호흡에 대해 물었을 때는 “항상 밝고 성격도 좋아 잘 맞았다. 리액션이 워낙 좋으신 분”이라고 칭찬하며 “만날 때마다 ‘어머~ 동원 씨’ 하고 화답해줘 좋았다”고도 답했다. 이정현 성대모사를 선보이는 모습에선 다가가기 힘든 미소년이 아니라 빙구미 넘치는 동네 아저씨 같은 느낌도 살짝 풍겼다. 

올해 데뷔 18년 차를 맞은 강동원은 여러모로 여유가 생긴 듯했다. 기자회견 당일 외모 논란이 일었던 데 대해 “그날따라 얼굴이 부었다”며 웃어넘기고, 실력파 후배들이 치고 올라오는 상황에 대해선 “이제는 후배들의 시대”라며 한발 물러나는 듯 답하기도 했다. 강동원이 이 험난한 한국 영화판에서 오랜 기간 살아남아 자신만의 입지를 다진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기자 간담회에서 민정의 딸로 출연한 아역 배우 이예원 양이 강동원 씨에 대해 “엄마가 옛날에 핫했던 사람이라고 했다”고 과거형으로 말해 화제가 됐어요. 

사실이니까 기분 나쁘거나 하지 않았어요. 저도 이제 마흔인걸요(웃음).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예원 양이 그렇게 말한 건 제가 어릴 때 저희 어머니께서 “옛날에 신성일이 핫했다”고 말하는 것과 똑같은 거죠. 전 예원 양이 좋아할 만한 배우 세대가 아니니까요. 

현재 영화계에서 강동원은 어느 정도의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나요. 

어려운 질문이네요. 어쨌든 영화계 안에서 보면 ‘열심히 일하는 배우’라고 평가받는 것 같아요. 스스로 생각했을 때는 ‘다양한 역할을 시도하는 배우’인 거 같고요. 제가 작품을 선택하면 캐릭터에 대해 열심히 준비하는 편인데 그런 걸 다들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또 어쨌든 계속 새로운 작품을 시도하는 것에 대해 좋게 생각해주는 부분도 있고요. 흥행에 성공하든 못 하든 열심히는 하니까 믿어주지 않을까 싶고요. 투자자들을 생각하면 흥행에 성공해서 만족을 드려야 하는데 매번 그렇게 되진 않으니까 아쉽죠. 

최근 10년 사이 주로 액션, 범죄, 스릴러 장르에 출연해왔는데 ‘검사외전’이나 ‘전우치’ 같은 코미디물도 인상적이었어요. 개인적으로 어떤 장르를 선호하나요. 

장르적으로는 코미디 연기하는 걸 좋아해요. 현장에서 웃으면서 찍으니까 기분도 좋고요. 그런데 요즘 코미디 시나리오가 거의 없어요. 마찬가지로 멜로 시나리오도 없고요. 특히 멜로를 주로 만드는 감독도 몇 분 안 계시죠. 데뷔를 로맨틱 코미디 작품으로 했는데 그때만 해도 로코 시나리오가 많았어요. 사람들이 안 보니까 없어진 거죠. 영화계가 냉정하다 보니 흥행이 안 될 것 같은 장르는 안 만들어요. 그런 시나리오는 오히려 잘 쓰기 힘든 것 같아요. 모든 사람이 아는 감정이다 보니 더 새롭고 신선하게 표현해야 하는데 쉽지 않잖아요. 

데뷔 초에는 미소년 이미지가 강했는데 지금은 대중 친화적으로 바뀐 것 같아요. 

전혀 모르겠어요. 저는 늘 비슷해요. 물론 나이가 들면서 마음이 좀 넓어진 지점이 있긴 한데 달라진 건 없어요. 대중이 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다만 현장에서는 저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는 걸 느껴요. 20대 때는 어르신들이 툭툭 치면서 막 대했거든요. 그런데 요즘은 어르신들도 조심스럽게 대하면서 존중해주는 거 같아요. 저도 이제 나이가 들었으니까 어딜 가도 함부로 대하진 않는 것 같아요. 

지난해에는 한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미국에서의 일상을 공유한 뒤로 ‘생태계 파괴자’란 별명을 얻기도 했어요. 유튜브 방송에 출연한 계기가 있었나요. 

원래 화보 촬영이 잡혀 있었는데 ‘브이로그’ 영상을 추가로 찍어야 한다기에 알겠다고 했어요. 원래 알던 분이라 그냥 하기로 한 거죠. 그때까지 브이로그가 뭔지도 몰랐어요. 전 유튜브로 주로 뉴스만 보거든요. 생태계 파괴자는 아니에요. 유튜브에 아이들 장난감으로 촬영한 영상이 많던데 그런 장난감으로 노는 건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공공재 스타’라고 해서 강동원, 소지섭, 공유 등이 꼽혀요. 소지섭 씨가 결혼하자 팬들 사이에 “강동원만은 지켜야 한다” 그런 얘기도 나왔어요. 

이런 질문을 받으면 전 저희 어머니께 여쭤보시라고 해요. 어머니는 좋아하시지 않을 것 같아요. “언제까지 공공재로 남아 있을 거냐”고 하시겠죠. 그런데 요즘도 사람들이 저에 대해 그런 얘기를 하나요? 이제는 젊은 친구들의 시대죠. 저는 뭐 이제 몸도 힘들고 예전 같지 않아요. 

곧 데뷔 20년을 앞두고 있는데 일에 대한 신념이나 생각은 어떤지 궁금해요. 

늘 똑같아요. 제가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관을 지켜나가고 싶고, 남한테 피해 주지 말자는 소신을 지키며 살고 싶어요. 일에 있어서도 예전에는 강하게 나갔다면 지금은 슬기롭게 대처하는 것 같아요. 여유가 생겼달까요. 비유하자면 과거엔 스트레이트만 날렸다면 지금은 리드도 하면서 훅도 날리게 된 것 같아요. 앞으로도 순간순간 타협은 안 하면서 살았으면 좋겠어요. 제가 얻고자 하는 이익 때문에 묻어가는 식으로 살고 싶진 않아요.

사진제공 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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