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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interview

30년 만에 이혼, 애틋한 세월 뒤로하고 홀로서기에 나선 혜은이

EDITOR 김지은

2020. 05. 22

가수 혜은이와 배우 김동현의 이혼 소식이 뒤늦게 알려졌다. 최고 전성기에 결혼했으나 남편의 잇단 사업 실패로 파란만장한 시간을 보내야 했던 혜은이의 홀로서기 심경.

“마흔 살 이상 된 사람들이나 저를 알까, 요즘 젊은 사람들은 잘 몰라요. 올해 서른 살인 아들도 제가 얘기를 하니까 ‘아, 우리 엄마가 예전에 유명한 가수였구나’라고 말하지 또래들은 ‘가수 혜은이’ 하면 잘 모른다고 하더라고요.” 

한때는 아들 아니라 세상 그 누구도 가수 혜은이(64)를 몰랐으면 했다. 지난해 6월 이혼 서류를 접수하러 가던 날도, 한 달여의 이혼숙려기간을 거쳐 이혼확인서에 도장을 찍던 날도 그랬다. 행여나 누가 아는 척이라도 할까 싶어 모자를 푹 눌러쓰고 마스크도 썼다. 마스크를 내렸을 때는 얼굴을 알아본 판사가 제발 아무 말도 하지 않기를 바랐다. 그렇게 1년여를 숨어만 지냈다.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숨 쉬는 모든 순간이 죄스러웠다. 

“그래도 판사님이 저희를 배려해서인지 이혼 절차를 마친 후에는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뒷문으로 나가게 해주셨어요. 그렇게 아무 소리도 않고 도장만 꽝꽝 찍어서 나오는데 눈물도 안 나고, 화도 안 나고, 너무 무덤덤한 거예요.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지난 30년을 어떻게 살아왔는데 이렇게 아무 감정이 안 들 수가 있지? 스스로에게 자문하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정말 답이 안 나왔어요. 그저 남편한테 미안한 마음뿐이었죠. 그 말을 꼭 하고 싶었는데, 결국엔 못 하고 그냥 헤어졌어요.” 

1975년 ‘당신은 모르실꺼야’로 가요계에 데뷔한 혜은이는 ‘진짜진짜 좋아해’ ‘뛰뛰빵빵’ ‘당신만을 사랑해’ ‘감수광’ ‘제3한강교’ ‘새벽비’ 등 발표하는 곡마다 히트를 치며 1970~1980년대 최고 인기 가수로 자리매김했다. 각종 연말시상식과 가요대상의 최고상을 휩쓸던 젊은 시절, ‘불행’이라는 단어가 그의 인생에 기나긴 그림자를 드리울 것이라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은 “미안해요, 여보”

이혼 이야기를 먼저 꺼낸 건 남편 김동현(70)이었다. MBC 공채 탤런트 출신의 김동현은 1990년 혜은이와 결혼할 당시만 해도 중후한 이미지로 안방극장의 사랑을 받는 연기자였다. 하지만 결혼 이후 영화 제작과 부동산 개발 사업 등에 잇따라 실패하면서 구설수에 오르내렸다. 



“남편은 일을 할 때 먼저 의논하거나 털어놓는 스타일이 아니었어요. 한참 있다가 사건이 터지면 언론을 통해 알게 되거나, 소문을 들은 지인들이 저에게 알려주곤 했지요. 그게 너무 답답해서 ‘제발 무슨 일을 할 때는 얘기를 좀 해달라’고 했었죠. 남편이 판사 앞에서 ‘저는 보증을 잘못 선 죄밖에 없습니다’라고 얘기했다는 기사를 보고는 너무 황당해서 ‘보세요. 보증이라는 거, 뜻을 몰라요? 그 사람이 잘못했을 때는 내가 대신 그 사람의 일을 하겠다는 약속을 하는 건데 그걸 왜 한 번도 아니고 수도 없이 하는 건가요’ 그러기도 했었어요.” 

그래도 지난 30년 세월, 언론에 오르내리지 않은 일들까지 합하면 손에 꼽을 수도 없을 만치 많은 사건 사고가 있었지만 그런 풍파를 겪으면서도 단 한 번 큰 소리 내며 싸운 적이 없었다. 처음에는 일이 커지기 전에 어떻게든 막아낼 수 있는 수준이었고, 일이 커졌을 때도 발을 동동 구를지언정 남편을 이해하려 애썼다. 일을 하다 보면 잘못될 수도 있고, 저 사람도 힘들고 나도 힘든데 남편을 괴롭히고 싶지는 않았다고. 

“처음부터 무언가 잘못되게 하려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게다가 김동현 씨는 정말로 선해서 남을 해코지할 사람은 절대 아니거든요. 다만 귀가 너무 얇아 자꾸만 안 좋은 일들에 휘말렸던 것 같아요.” 

남편의 잇단 사업 실패와 사기 사건 연루로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혜은이는 밤낮으로 무대를 뛰어다니며 돈을 벌어야 했다. 지금껏 날린 집만도 자택과 친정어머니의 집, 시어른들의 집, 작은아버지 집까지 모두 다섯 채, 사채업자들이 수시로 협박을 해오고 집이 한 채씩 날아갈 때는 죽으려고 약을 들고 다니기까지 했다. 그렇게 평생을 종종거리며 살아왔지만 1백억원에 달하던 빚은 아직도 다 청산하지 못한 상태다. 

일이 터질 때마다 남편은 “미안하다”고 했지만 그런 말을 들을 때면 혜은이는 오히려 ‘내가 내조를 잘못해서 일이 이렇게 됐나’ ‘내가 남편이 하려는 일에 대해 좀 더 적극적으로 알아보고 말리기라도 했으면 일이 이렇게까지 되는 걸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괴로워졌다. 

“사실 저는 가정주부로서는 빵점이었어요. 어릴 때부터 연예계 생활을 하다 보니 노래만 부를 줄 알았지 집안일은 젬병이었거든요. 오히려 요리와 청소 등 이런저런 살림은 남편이 훨씬 잘했죠. 그런 점에서도 미안하고, 남편이 법정에까지 섰을 때는 ‘일이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내가 어떻게 아무런 도움도 못 되었나’ 싶어 자책감도 들었어요. 이혼 얘길 꺼내면서 남편은 ‘진심으로 미안하다. 지금까지 많이 미안했고, 당신을 볼 낯이 없고, 이제는 정말 미안해서 더 이상 당신을 잡지 못하겠다’ 하더라고요. 한편으론 그 사람도 가족 없이 혼자였으면 지금처럼 힘들지는 않았겠지, 싶었어요. 가장에게는 늘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가족이 짐처럼 따라다니잖아요. 김동현 씨도 이제 무슨 일이 잘못될 때마다 혹여나 내가 알게 될까, 가족들에게 피해가 갈까 노심초사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생각하니 다행이다 싶기도 해요.” 


“엄마는 엄마의 인생을 살라”며 용기를 준 아이들

한동안은 누구에게도 이혼 사실을 알리지 못했다. 사람들은 연예인 아무개가 결혼 소식을 전하면 가벼운 농담처럼 ‘얼마나 갈까’ 따위의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한다. 그럼에도 세상 사람들이 다 알도록 떠들썩하게 결혼할 수밖에 없는 것이 연예인 입장이다. 그러니 더욱더 끝까지 구설수에 오르지 않고 보란 듯 잘 살아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을 터. 이혼 후 세간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던 그를 위로하고 용기를 준 건 바로 아이들이었다. 

“딸이 그러더라고요. ‘엄마, 왜 그런 걱정을 하고 그래. 요즘에는 이혼하는 거 흉도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야. 엄마는 이제 가수 혜은이로 살아.’ 그 말에 그렇게 안심이 될 수가 없었죠.” 

표현만 달랐지 아들도 같은 얘길 했다. 엄마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아이들의 메시지가 그에게는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이 되었다. 

“지금까지 저는 두 인생을 살아온 거 같아요. 하나는 가수 혜은이로서 너무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또 다른 인생은 가정사로 인해 죽을 고생을 하며 살아왔던 거죠. 하지만 이제 과거의 내가 어떠했는지는 필요 없는 이야기 같아요. 현재와 미래의 내가 있을 뿐이죠. 앞으로의 제 꿈은 행복한 사람이 돼서, 노래만 하다 죽는 거예요.” 


가수로 다시 살게 해준 사람들

팬들과 함께한 혜은이의 디지털 싱글 ‘그래’.

팬들과 함께한 혜은이의 디지털 싱글 ‘그래’.

예순을 훌쩍 넘긴 나이, 이혼 후 인생의 패배자가 된 듯한 기분을 쉬이 지울 수는 없었다. 그저 멍한 상태로 예정된 지방 콘서트를 진행하고 도쿄와 오사카 공연을 이어나갔다. 앞으로 무얼 하고 또 어떻게 살아야 할지 깊이 생각할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그런 그를 잡아 끈 것은 10년 전부터 앨범을 제작해주던 팬들이었다. 

“아무것도 안 하는 제가 답답했는지 그 친구들이 자기들끼리 작곡가도 만나고 일정도 잡고 그렇게 앨범을 제작한 게 벌써 3번째예요. 이번 디지털 싱글 앨범도 그 덕에 나오게 된 거고요. 너무 감사하죠.” 

지난 2월 발매된 디지털 싱글 ‘그래’에는 그와 인생의 굴곡을 함께해온 팬들이 코러스를 맡아 더욱 의미가 특별하다. 

“원래 홍서범 씨가 불렀던 곡인데, 가사가 마치 나를 위해 쓰인 것 같아서 ‘그 노래 부르면 좋겠더라’ 했더니 팬들이 저 몰래 준비를 했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이번에는 너희들도 같이 노래하자’고 했죠. 지방에서도 많이들 올라오고, 한 40명 정도가 모여서 코러스를 했어요. 전주 없이 코러스의 서브로 시작하다가 제가 첫 멜로디를 부르고 뒷부분에 다시 코러스가 시작되는 식인데, 아무래도 전문 코러스가 아니다 보니 노래가 매끄럽지는 않아요. 하지만 순박해요. 다듬어지지 않은 돌들이 삐죽삐죽 튀어나온 것처럼 예쁘고요. 녹음을 마치고 엔지니어는 코러스에 손을 좀 댔으면 좋겠다고 했지만 저는 음이 틀려도 상관없으니 그냥 가자고 우겼습니다. 그렇게 할 거 같으면 전문 코러스를 쓰지 그 사람들을 왜 불렀겠느냐 했죠. 때로는 얼마나 잘 부르냐보다 누가 불렀느냐가 더 중요한 법이니까요.” 

그렇게 곡을 또 하나 내고 나니 이혼 후 무력감이 조금은 치유되는 듯했다고 한다. 

“팬들이 이렇게까지 하는데 가수인 내가 가만히 있을 수 없더라고요. 그래서 새로 매니저도 영입하고, 그동안 하지 못했던 방송 활동도 다시 시작하기로 마음먹었죠. 때마침 대학로 소극장에서 러브 콜도 왔고요.” 

2년 전 그는 서울 대학로 SH아트홀에서 40일 릴레이 공연으로 누적 관객 1만 명을 가뿐히 돌파했다. 올해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일찍 종식됐더라면 5월 중순쯤 소극장 공연으로 팬들과 만날 계획이었다. 날짜까지 미뤄가며 고심하다 조금 잠잠해지나 싶어 티켓을 오픈했는데 코로나19 재확산으로 다시 발목이 잡혔다. 

“이미 티켓을 구매한 고객들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환불해드리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팬들이 아이디어를 냈어요. ‘생활 속 거리두기’ 캠페인의 일환으로, 하루에 딱 1백 명의 관객들만 초대해서 일일이 열 재고 손 소독제를 사용하게 하고 마스크를 착용한 채 객석에 자리를 잡도록 하는 거죠. 입장 시에는 주민번호를 쓰게 하고, 충분히 띄어 앉을 수 있도록 자리를 미리 지정해두기로 했는데 이 모든 과정을 영상으로 찍어 캠페인에 활용할 계획입니다.” 


생활 속 거리두기 콘서트

관객들과 살갑게 눈을 맞추고 손도 잡아가며 정을 나누는 것이 소극장 콘서트만의 매력이지만 이번 콘서트에선 조금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대신 멀어진 간격만큼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재미와 더 따스하고 살가운 풍경이 기다리고 있을 듯하다. 

공연(2020 혜은이콘서트 그대를 위한 선물)은 5월 29일부터 6월 28일까지 한 달간, 새로 시작하는 음악 예능 프로그램 MBN ‘보이스트롯’ 녹화가 있는 화요일을 제외하고는 주말까지 하루도 쉬지 않고 계속된다. “체력이 감당할 수 있겠어요”라고 물으니 “아유, 저는 노래를 오래 했잖아요”라며 수줍게 웃어 보였다. 하지만 그냥 하던대로 하겠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는 지금도 무대에 설 때마다 이 무대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한다. 무대는 그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간절함이다. 

“젊게 살고 싶어요. 그간에는 생활이 힘들다 보니 앞만 볼 줄 알았지 옆을 볼 겨를이 없었거든요. 이제 조금 자유로워졌다 생각하고 돌아보니 내가 몰랐던 세상이 너무 많더군요. ‘보이스트롯’ 같은 예능 프로그램에 참여해 달라진 방송 환경도 경험하고, 새로운 물결에도 휩쓸려보려 해요. 앞으로 얼마를 더 살지는 알 수 없지만 도태되고 싶지는 않거든요.” 

문명의 발달은 때로 그에게 뜻하지 않은 길을 열어주기도 한다. 왕년의 혜은이가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질 즈음 가수 조관우가 ‘당신은 모르실 거야’를 부르고, 또 그 노래가 잊혀질 무렵엔 핑클이 리메이크 곡을 불렀던 것처럼. 요즘은 유튜브를 통해서 가수 혜은이가 회자되고 새롭게 재조명되는 시대가 되었다. 젊은 사람들이 이끌어가는 새로운 문물들에 얼마나 잘 적응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열심히, 성실하게 일하고 또 정직하게 사랑받는 법만큼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이혼으로 인해 괴로웠던 시간을 지나고 나니 새로운 깨달음이 왔어요. 기사마다 저를 응원하는 댓글이 달리는걸 보면서 ‘아, 나는 가수 혜은이로서만이 아니라, 인간 혜은이로도 많은 사랑을 받았구나’ 알겠더라고요. 연예계에서도 선배들이 ‘너는 어떻게 주변에 너 나쁘다는 사람이 하나도 없냐’ 하시는데 제가 잘해서가 아니라 그런 응원들이 저를 잘하게 만들었던 게 아닌가 싶어요.” 

이제는 조금 편안해졌고, 또 조금은 행복해진 것 같다는 그에게 차마 물어보지는 못했다. 그는 인터뷰 도중 여전히 전남편을 ‘우리 남편’으로 지칭하곤 했다. 30년 세월의 습관인 것인지, 가슴속 한편에 남겨둔 애틋함 때문인지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만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황혼의 이혼으로 새털처럼 가벼워진 가수 혜은이의 앞날에는 반짝반짝 빛나는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기획 강현숙 기자 디자인 김영화
사진제공 아랑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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