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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couple

배우 커플의 탄생 박동빈 이상이

EDITOR 김지은

2020. 04. 05

‘주스 아저씨’ 배우 박동빈이 배우 이상이와 2년여의 열애 끝에 결혼에 골인했다. 열한 살 나이 차이만큼이나 우여곡절 많았던 이들 부부의 사랑과 결혼, 그리고 연기 인생 이야기.

“‘오빠는 그런 거 못 따. 그런 걸 누가 어떻게 따냐’ 그러더라고요. 오히려 그런 면이 새로웠어요. 대개 남자들은 여자를 꾀려고 들 때 하늘의 별도 따다주고 달도 따다 주고 다 해줄 것처럼 달콤한 소리를 하잖아요.” 

나이 쉰이 되도록 여자한테 사탕발림 한마디 할 줄 모르던 남자와, 모르는 사람이 보면 오해하기 딱 좋을 정도로 성격이 대쪽 같기만 한 여자. 흔히 보는 달콤한 연애의 주인공이 되긴 참 힘들겠다 싶은 두 사람이 풍덩, 사랑에 빠졌다. 

주인공은 2002년 SBS 드라마 ‘야인시대’에서 독사 역으로 얼굴을 알린 베테랑 배우 박동빈(50), 그리고 MBC 30기 공채 탤런트 출신의 배우 이상이(39)다. 이들은 지난 2월 29일 서울 서초구 엘타워에서 가족과 친지, 지인들의 뜨거운 축복 속에 백년가약을 맺고 부부가 되었다. 

이날 결혼식에는 코로나19 확산세를 염려한 부부의 제안에 따라 하객 전원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최대한 말수를 아끼는 등 질서정연한 모습을 보여 기존의 결혼식에서는 좀처럼 만나기 힘든 이색적인 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결혼식 사회는 박동빈의 절친인 배우 안재모가, 축가는 같은 소속사 식구인 노라조가 맡았다. 주례는 박동빈의 중앙대 연극영화과 선배인 ‘단적비연수’의 박제현 감독이 맡아 화려한 인맥을 자랑했다. 

이날 안재모는 하객들의 안전을 염려하는 박동빈 부부를 위해 마스크 1백 장을 기꺼이 준비하는 등 두 사람 인연의 일등 공신다운 면모를 과시했다. 코로나19의 확산 등으로 뒤숭숭해진 사회 분위기가 결혼식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을 염려, 깜짝 이벤트로 하객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하기도 했다. 




사랑의 큐피드는 주도면밀한 안재모

두 사람의 인연은 2017년 MBC 일일드라마 ‘전생에 웬수들’을 준비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이상이는 안재모의 전처 역을, 박동빈은 안재모의 동생으로 나온 구원의 법률사무소 사무장 역을 맡았다. 

“작품을 준비하다 보면 배우들끼리 만날 기회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지잖아요. 그렇게 모인 자리에서 제가 상이를 보고 ‘이번 주 일요일에 뭐 하냐?’ 물었죠. 그날이 화요일이었는데, 스케줄을 보더니 ‘별거 없는데요’ 하더라고요. 그래서 대뜸 ‘그럼 일요일에 나랑 결혼하자’ 그랬죠.” 

그런 박동빈의 마음을 가장 먼저 눈치 챈 것은 안재모였다. 한자리에 앉은 동료 배우들은 물론 뜬금포 청혼을 받은 이상이조차 연차 높은 선배가 어색한 분위기를 깨보려고 애써 던진 어설픈 농담쯤으로 여겼지만 안재모의 촉은 달랐다. 그날부터 이상이를 대놓고 ‘형수’라 부르기 시작한 것. 어색해하는 두 사람을 이어주려는 노력도 당사자인 박동빈보다 한발 앞섰다. 툭하면 동료 배우들에게 여행을 가자, 골프를 치자, 밥을 먹자하면서 자리를 마련하고는 이상이에게 선배들도 모두 참석하는 자리니 안 오면 안 된다고 엄포를 놓은 것이다. 

농담처럼 오가던 ‘우리 형수’ 이야기가 진짜인가 싶게 당사자들도 헷갈리기 시작할 무렵 이상이를 향한 박동빈의 마음에 결정타를 날린 사건이 발생했다. 

“작품을 끝내고 친해진 사람들끼리 제주도로 여행을 갔어요. 여행을 가보면 같이 밥도 해 먹고 낯선 곳에서 이런저런 일들도 겪으면서 그 사람의 몰랐던 진짜 모습을 많이 알게 되잖아요. 그때 상이의 괜찮은 면들을 상당히 많이 볼 수 있었죠. 어릴 때부터 연예계 생활을 하다 보면 아무래도 주변 사람들 눈치를 보게 되고, 주눅 들거나 사람들 시선에 신경을 쓰게 마련이거든요. 그런데 상이는 자기 소신도 뚜렷하고 참 당당하더라고요. 그런 점이 저한텐 엄청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입에 발린 소리 못 하기로 유명한 박동빈에게 속내를 파볼 필요도 없이 담백한 성격의 이상이는 그야말로 천생연분, 하늘이 내린 배필감이었다. 이상이 역시 겪어본 적 없는 박동빈식 들이대기에 괜히 마음이 헷갈리기 시작했다. “너를 사랑해도 별 같은 건 못 따준다”는 박동빈의 진지한 사랑 고백은 이상이에게 꽤나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하늘 같은 선배가 불쑥 들이대는 걸 단칼에 거절하기 어려웠던 이상이의 애매모호한 입장은 결과적으로 박동빈과 기분 나쁘지 않을 정도의 밀당을 즐기며 서로의 면면을 꼼꼼히 따져볼 수 있는 적절한 핑계가 되었다. “상이랑 상의해보고 결정하지 뭐” 같은 아재 개그를 서슴없이 해대는 선배가 모르긴 몰라도 남을 속이거나 없는 얘기를 지어 하거나 자기 책임을 남에게 미룰 사람은 아니란 확신이 생기자 ‘저 선배랑 진짜로 사귀게 된다면 어떨까’ 슬금슬금 꽤나 괜찮은 상상까지 해버리게 된 것이다.

좋은 사람을 끌어당기는 ‘유유상종의 법칙’

조금씩 가까워진 두 사람은 “우리 사귀어요”라고 공식 선언을 할 새도 없이 이미 주변 지인들 사이에 소문난 공식 커플이 되어버렸다. 박동빈이 지인의 가족들과 함께하는 식사 자리에 아무렇지 않게 이상이를 대동하자 지인들도 당연히 둘을 가족 동반 모임에 함께해야 할 사람들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저도 고민이 많았죠. 나이 차이도 꽤 나고 배우라는 게 그다지 안정적인 직업도 아니니까 괜히 남의 집 귀한 딸 데려다 고생시키면 어쩌나, 그런 생각도 들었죠. 그런데 재모뿐만 아니라 주변 지인들이 정말 지원 사격을 많이 해줬어요. 제가 참석하는 모임엔 꼭 상이를 불러주었고, 드라마 ‘보좌관’을 연출한 곽정환 PD 같은 분은 저를 집으로 불러 저녁 식사를 하는 자리에도 당연한 듯 상이를 함께 초대할 정도였으니까요.” 

물론 주변 사람들의 막무가내식 엮어주기 전략이 맥락 없이 통한 것은 아니었다. 처음엔 그저 일 때문에 알게 된 선후배 사이였지만 알면 알수록 성격부터 취미며 취향까지 비슷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만나면 일 얘기보다 운동 얘기를 더 많이 할 정도로 스포츠 마니아인 두 사람에겐 클라이밍부터 골프, 수상 스포츠, 등산까지 사계절 내내 작품 말고도 함께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너무 많았다. 살면서 좋아하는 일을 같이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기도 쉽지 않지만, 일이건 취미 생활이건 함께하면 할수록 매력이 차고 넘치는 사람을 만나기란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려운 일 아닌가.

세상에서 가장 반짝이는 무게 추 ‘가족’

서로가 거울 같다고 느낄 때가 있는데, 그래서인지 오빠를 만나면서 달라진 점이 참 많아요. 둘 다 거짓말 못 하고, 자기 감정에 너무 솔직해서 얼굴에 다 티가 나는 편이거든요. 오빠를 만나기 전까진 그게 상대에게 어떤 느낌을 주는지 잘 몰랐는데 이제는 ‘아, 내가 저렇게 보였을 수도 있겠구나’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더라고요. 그러면서 좋은 점은 좋은 점대로 두고, 미처 몰랐던 좋지 않은 점들은 조금씩 조심도 하게 되고 그랬어요.” 

무엇보다 이상이의 까칠한 성격을 무장해제시켜버린 것은 박동빈과의 만남이 늘어날수록 확연하게 드러나는 ‘유유상종의 법칙’이었다. 좋은 사람 곁에는 좋은 사람들이 많이 모인다는 설득력 있는 가설은 이상이의 입장에선 부담스러웠을 법한 선배 지인들과의 자리마저도 기꺼이 함께하고플 만큼 즐겁고 재미있는 일상으로 녹아들었다. 

이상이를 만나기 전에도, 박동빈의 친구나 지인 모임은 가족 동반의 성격을 띨 때가 많았다. 나이가 나이인 만큼 이제는 그런 게 더 편하고 자연스럽기도 하다. 

“제일 부러운 게 북적북적 떠들썩한 그 느낌이었어요.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 같은 것들요. 꼭 가족 모임이 아니더라도, 오랜만에 밖에서 만나 술 한잔을 기울이게 돼도 하는 얘기는 다 뻔하거든요. 사는 거 다 거기서 거기니까. 그런데도 친구 녀석들 눈에서 반짝반짝 빛이 날 때가 있어요. 아이들 얘기를 하는 순간이죠. 그럴 때 보면 ‘아, 이런 게 가족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죠.” 

그런 순간이면 괜스레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물이 핑 돌기도 한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딱 반백 년 산 ‘갱년기 남성’의 감성이다. 그래서일까. 그에게 결혼은 단순히 사랑하는 여자와 백년해로를 기약하는 일련의 로맨틱한 수순, 그 이상의 묵직함이 있다. 

“밤에 가만히 누워 생각을 해봤죠. 저는 할 줄 아는 게 연기밖에 없고, 정말 하고 싶은 일도 연기밖에 없거든요. 그런데도 이전에는 그게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 일인지 잘 몰랐던 것 같아요. 결혼을 결심하고서야 내가 하고 싶은 일, 할 줄 아는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게 얼마나 재미있고 행복한지 새삼 깨닫게 됐죠. 철없이 살다가 갑자기 어른이 된 것 같은 느낌? 책임감이 450배쯤 늘었죠.” 

두 사람의 신혼집 뒤편에는 걸어서 바로 올라갈 수 있는 작은 산이 하나 자리하고, 또 몇 걸음만 가면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절친 안재모도 산다. 엄청난 인기를 몰고 다니는 주연급 연기자는 아니지만 성실하고 꾸준하게 작품에 임해온 ‘연기파’ 배우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 기억해주는 든든한 팬들도 있다. 두 사람에게는 서로가, 그 소소한 행복을 절대 놓치지 않고 싶어진 절대적 이유가 되었다. 

“결혼식 날 상이가 손수건을 쥐여주더라고요. ‘오빠 울면 안 된다’면서요. 그런데 저희는 진짜 무대 체질인가 봐요. 식전에는 그간 마음고생한 일도 막 떠오르고 눈물이 많이 날 것 같았는데, 막상 입장을 하고 나니 너무 여유로운 거예요.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노라조가 축가를 부를 때 상이가 같이 덩실덩실 어깨춤을 춘 거예요. 낯을 꽤 가리는 친구인데 뜻밖이기도 했고, 그 모습이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벅찰 정도로 행복했습니다. 재모가 사회를 보다가 갑자기 깜짝 이벤트로 ‘축가는 접니다’ 하고선 발라드를 부른 것도 너무 재미있었고요.” 

조심스럽고 엄숙한 식장의 분위기, 줄어든 하객, 신혼여행의 무기한 연기까지. 난데없는 코로나19의 확산은 일생 단 한 번밖에 없을 결혼식마저도 순식간에 폭풍처럼 뒤흔들어버렸다. 하지만 코앞으로 닥친 결혼식의 연기까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했던 두 사람에게는 그 모든 순간이 더할 수 없을 만큼 소중하고 완벽한 웨딩마치였다.

쉰 살의 유튜버 ‘엉클주스’

연애와 결혼 말고도 박동빈이 요즘 잔뜩 심취해버린 일상이 또 있다. 유튜버 선배인 안재모의 강요(?)로 시작한 유튜버 생활은 이제 ‘엉클주스’라는 채널까지 개설할 정도로 제법 그럴싸하게 자리를 잡았다. 

“사실 저는 컴퓨터의 ‘컴’자도 모르는 컴맹인데, 그런 게 재모의 눈에는 재미있게 보였나 봐요. 어느 날 저한테 ‘형도 유튜브를 좀 해야할 거 같아’라면서 자기 채널에 출연을 시키더라고요.” 

안재모의 표현을 빌리자면 박동빈은 ‘문명의 혜택을 거부하는 특이한 성향의 소유자’다. 그런 그의 엉뚱하고 어설픈 모습이 안재모의 유튜브 채널 ‘배우다’를 통해 소개된 것이 박동빈을 유튜버의 길로 인도한 계기라면 계기다. 

‘엉클주스’라는 채널명은 박동빈이 2012년 MBC 드라마 ‘사랑했나봐’에 출연할 당시 보여준 강렬한 ‘주스 리액션’ 때문에 얻게 된 별명에서 그대로 따왔다. 당시 박동빈의 연기는 지인들로부터 “진지한 연기파 배우를 지향하던 놈이 미쳐서 그런 연기를 했다”는 오해까지 샀을 정도로 충격적인 평가를 받았지만 덕분에 엄청난 양의 패러디와 짤이 양산되면서 ‘엉클주스’ 신드롬을 일으키기도 했다. 

최근에는 모 주스 브랜드와 협업으로 다양한 주스 레시피를 개발하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꽤나 재미를 찾아가는 중이다. 유튜버라면 누구나 대박의 꿈을 꾸게 마련이지만, 그에게는 유튜브 스타가 되고픈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유튜브를 시작하면서 확실히 저를 편하게 대하는 분들이 많아진 걸 느껴요. 제 인상이 만만찮은 탓에 어렸을 때부터 저를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많았거든요. 그래서인지, 일평생 악역은 ‘야인시대’ 독사 역을 포함 딱 두 번밖에 없었는데도 사람들은 저를 ‘깡패’ 역을 많이 하는 배우로 기억 하더군요. 그런데 유튜브에선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만들어진 인물이 아닌 실제 제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으니까 아무래도 소통이 많이 되더라고요. 어떤 방식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나중에 사업 같은 걸 하게 된다면 그 수익금으로 소년·소녀 가장들을 돕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해왔는데 제 채널이 잘되면 그런 꿈도 이룰 수 있지 않을까요?” 


연기자 부부로서의 인생 2막

가족에 대한 책임감의 무게는 오히려 그의 삶에서 많은 부분을 가볍고 윤이 나도록 기름칠했다. 언제나 무겁게 끌고 다니던 연기자로서의 중압감도 조금씩 덜어냈다. 일이란 자고로 재미있고 즐거워야 하는 법. 정확하게는, 작품에 대한 판단은 연기자가 아닌 관객이 하는 것이란 깨달음을 얻기까지 걸린 시간이 꽤 길었다는 표현이 맞겠다. 

“예전엔 대본 하나를 받아들 때마다 심각하게 빠져들어 좋은 작품을 가려내려고 욕심을 부렸던 거 같아요. 그런데 요즘엔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배우로서 제 나름의 베스트 아닌가하고요. 그 다음은 관객들의 몫인 거죠. 다시 저를 찾아준다면 그만큼 감사한 일이 없는 거고요.” 

그는 1996년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 재학 시절, 아르바이트 겸 단역으로 영화 ‘은행나무 침대’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스크린과 인연을 맺은 이후 영화 ‘쉬리’ ‘씨어터’ 등에 출연하며 차곡차곡 필모그래피를 쌓았다. 한때는 SBS 드라마 단막극 주연을 잇따라 맡으며 당시로서는 드물게, 연기를 곧잘 하는 패기와 자신감 넘치는 신인 배우로 주목받기도 했다. 

이제는 그때만큼 젊지도, 세상의 주목을 받는 패기 넘치는 신인도 아니지만 그에게는 그때보다 더 멋진 인생 2막이 시작되었다. 서로의 연기를 돌아봐주고 힘이 되어줄 수 있는 든든한 파트너와 함께하는 늦깎이 신혼 생활, 그에게 이보다 더 완벽한 인생 2막이 또 어딨겠는가.

기획 김명희 기자 디자인 김영화
사진제공 이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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