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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interview

무협지와 사자탈 강소라의 경쟁력

EDITOR 두경아

2020. 01. 26

도전에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 특히 고정된 이미지를 가진 스타라면 더욱 그렇다. 당차고 똑 부러지는 캐릭터를 주로 연기해온 강소라가 사자탈을 쓰고 코믹 연기를 할 줄 누가 알았을까.

“탈이 무겁고 시야를 가려 앞이 안 보였지만, 오히려 카메라를 의식 안 하고 편하게 연기할 수 있었어요. 게다가 탈을 쓰고 있으니 분장할 필요가 없어 좋더라고요.” 

배우 강소라(30)는 털털하게 웃으며 사자를 연기한 기분을 전했다. 그는 1월 15일 개봉한 영화 ‘해치지않아’에서 사자를 닮은 사람도 아닌, 정말 사자를 연기했다. 멀리서 보면 진짜 사자처럼 보이는 인형 탈을 쓴 채. 1인 2역이나 마찬가지였다. 그가 맡은 수의사 소원은 망해가는 동물원을 살리기 위해, 팔려간 사자를 대신해 탈을 쓰고 사자 연기를 펼친다. 듣기만 해도 웃음이 나는 코믹한 상황이지만, 강소라는 더욱더 완벽한 사자를 연기하기 위해 진지하게 연구했단다. 그러나 막상 촬영에 들어가니 사자 연기는 죽은 듯 누워 있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는 “공부한 내용이 발휘될 기회가 없었다”며 안타까워했다. 

이 영화를 통해 생애 첫 코미디 연기에 도전한 강소라는 그 매력에 흠뻑 빠져 있었다. 코미디 연기의 대가 박영규, 바라만 봐도 피식 웃음이 나는 안재홍과 연기한 덕분일까. 그는 도전이 즐거워졌다며 “앞으로 코미디 서너 작품을 더 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대체 얼마나 즐거운 촬영 현장이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박영규 씨와 안재홍 씨의 캐스팅 소식을 듣고 바로 합류한 것으로 알아요. 

안재홍 씨는 영화 ‘족구왕’ 때부터 너무 좋아했어요. 팬심으로 만났죠. 박영규 선배님은 어린 시절을 함께한 시트콤 ‘순풍 산부인과’ 덕분에 오랜 팬이었어요. 요즘 ‘순풍 산부인과’가 유튜브에서 다시 뜨고 있어서 애청하고 있지요. 또, 영화를 연출한 손재곤 감독님의 ‘2층의 악당’이라는 작품을 좋아했으니 영화 출연에 고민의 여지가 없었어요. 

두 분을 실제로 만나니 어땠나요. 

안재홍 씨나 박영규 선배님은 상상했던 그대로였어요. 연예인이라는 느낌은 없었고, 동네 친구를 만나는 것 같은 편한 기분이었지요. 코미디 연기는 처음이나 마찬가지였는데, 경험이 풍부한 두 분 덕을 많이 봤어요. 연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 대사를 이렇게 생각했구나’라는 감탄이 절로 나왔습니다. 



코미디 연기는 처음으로 알고 있는데, 어려움은 없었나요. 

억지로 웃기려 하는 과장된 상황이 없어서 저와 잘 맞았어요. 과하게 감정을 쓰면 부산스러워 보일 수 있는데, 편하게 연기할 수 있어서 부담이 없었죠. 사실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는 이게 웃길 수 있는 부분인지 감이 잘 안 왔어요. 감독님을 만나니 어떤 분위기인지 그려지더라고요. 우리 영화는 대사나 말발로 웃기는 코미디가 아닌, 호흡으로 또 간극으로 재미를 주는 작품이에요. 이번 영화를 찍으며 살짝 코미디의 느낌을 알았달까요. 앞으로 서너 작품을 더 하면 감이 올 것 같아요. 코미디를 더 하고 싶어요. 

박영규 씨는 코미디 연기의 대가로 불리는데 그만큼 배울 점이 많았을 것 같아요. 

이번 작품의 개그 맛을 가장 잘 살린 사람이 박영규 선배님이에요. 평소에도 말을 재밌게 하시고 유쾌하세요. 촬영장에서도 분위기 메이커로, 긴장이 풀리도록 배려해주셨어요. 처음 모이면 어색하기 마련인데 항상 재미있는 화두를 던져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어주셨답니다. 애드리브를 거의 안 하는 편이신데, 시나리오를 정말 잘 살리셨어요. 

영화를 찍으며 웃음을 참을 수 없었을 때도 있었을 것 같아요. 

처음 탈을 쓰고 각자 동물 연습을 하는 부분에서 함께 출연한 김성오 씨가 고릴라 시범을 보이는 장면이 있어요. 정말 고릴라 같아 너무 웃겨서 내내 어금니를 꽉 깨물고 있었죠. 그 장면을 잘 보면 제 시선이 김성오 씨를 피하고 있어요(웃음). 

사자탈을 쓰고 연기하는 게 어려웠을 것 같은데요. 

탈을 쓰고 있으면 앞이 안 보였어요. 털이 시야를 가리기도 했고 고개를 숙여야 전면이 보이는 상황이었거든요. 그런데 좋은 점도 있었어요. 아무리 자연스럽게 연기를 하려고 해도 카메라가 앞에 있으면 의식을 안 할 수 없잖아요. 그런데 앞이 안 보이니 오히려 편하게 연기할 수 있더군요. 

이번 작품을 하면서 동물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졌을 것 같아요. 

전북 전주와 경남 진주에 있는 동물원, 또 세트장 등을 돌면서 연기했어요. 겨울이라 날씨가 추워서인지 나와 있는 동물이 거의 없어서 촬영 중에는 많이 보지 못했어요. 동물의 서식지가 줄고 있는 상황이니 동물원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다만 자연과 비슷하게 환경을 조성해 동물들을 배려해야 한다고 봐요. 그렇게 바뀌는 곳도 늘어나는 추세라고 들었고요. 일례로 일본 홋카이도에 있는 동물원도 폐원 위기를 겪었으나, 자연 친화적인 리모델링을 거쳐 다시 호황기를 맞았다고 해요. 

동물원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극 중 인물처럼 간절했던 시기가 있었나요. 

대학 입시를 준비하면서 가장 간절했던 것 같아요. 고등학교 2학년 후반, 남들보다 늦게 연극영화과 입시 준비를 시작했거든요. 게다가 부모님도 반대하셨죠. “이번에 떨어지면 재수는 없다. 가업을 잇든가, 자격증을 따라”고 하셨어요. 당시 부모님이 슈퍼마켓을 운영하셨거든요. 그런데 저는 경영에는 재능이 없어서(웃음), 더 절실하게 입시에 임했던 것 같아요. 3~4개월 만에 22kg을 뺐으니까요. 만일 그때 입시에서 떨어졌으면, 인생이 달라졌을 수도 있겠네요. 


이제 데뷔 11년 차예요. 신인 때와 비교했을 때 어떤 점들이 달라졌나요. 

경험이 쌓이다 보니 예전보다 마음이 편해졌어요. 활동을 하다 보면 특정 이미지가 생기고, 그에 따라 사람들이 제게 기대하는 ‘톤 앤 매너’가 있어요. 그런 점을 인정하고 노력해서 채울 수 있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이 있다는 걸 알게 되니 어느 정도 내려놓게 되더라고요. 예전보다 사생활을 자유롭게 누리기 어려워진 것도 있겠네요. 알아보는 사람들이 늘어서 감사하지만 불편한 부분도 있어요. 

남들 시선을 신경 쓰는 편인가요.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편이에요(웃음). 회사에서 “제발 그렇게 입고 다니지 마라” “식당에서 밥 먹을 때 룸에 들어가면 안 되냐” 그러죠. 그래도 어쩌겠어요. 제가 편한 대로 살아야죠. 사람이 바뀔 수는 없으니까요. 

자신과 관련된 내용을 검색해서 본다고 들었어요. 악플에 신경 쓰는 스타일은 아닌가 봐요. 

이번에 영화와 관련된 평이 궁금해서 SNS를 찾아봤어요. 다행스럽게도 평이 좋았어요. 보통 안 좋은 이야기는 가슴에 꽂히는데 그런 건 없었죠. 아무래도 전보다는 덜 의식하는 것 같아요. 그냥 비난하는 말인지 아니면 비판적인 말인지 구분이 되죠. 비난하는 말에는 신경 쓸 필요가 없어요. 노력해서 나아질 수 있거나 개선할 수 있는 부분은 참고하면 되지만, 그냥 싫어서 하는 말은 어쩔 수 없으니까요. 

영화 홍보차 ‘아는 형님’ ‘런닝맨’ 등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했어요. 고정으로 활동하고 싶은 프로그램이 있나요. 

하고는 싶지만 민폐가 되지 않을까요(웃음). 고정 출연자가 되는 건 부담스러울 것 같아요. 드라마는 정해진 대사만 하면 되는데, 예능은 카메라가 길게는 열두 시간까지 돌아가니 내 말이 방송에 어떻게 나갈지 걱정되더라고요. 순발력 있게 나오는 말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도 재미있어야 하니까, 웬만한 센스가 아니면 힘들 듯합니다. 

어떤 프로그램이 재밌던가요. 

각각 매력이 달랐어요. ‘런닝맨’은 정신이 쏙 빠질 정도로 빠르게 진행됐어요. ‘아는 형님’은 예전부터 막연히 궁금했는데, 고정 출연자 중 아는 사람들이 있어서 부담이 덜했고요. 가장 편한 건 라디오 ‘컬투쇼’였어요. 보이는 라디오였지만 카메라가 적었고, 방청객도 바로바로 호응해주더라고요. 

휴식기에는 여러 가지를 배웠다고 들었어요. 어떤 공부가 재미있었고 도움이 되던가요. 

작품을 하지 않는 기간에는 커리큘럼을 짜서 공부했어요. 대학을 졸업한 게 아니라 제적 상태거든요. 대학교 때 듣고 싶었던 교양 과목들을 찾아서 공부해본 거죠. 1교시에는 중국어를 공부하고, 2교시에는 도자기를 만들고, 3교시에는 보컬 트레이닝을 받는 식이었어요. 주로 연기에 도움 되는 과목들 위주로 선택했어요. 그런데 막상 해보니 집중도 안 되고, 작품에 들어가면 한동안 못 하게 되니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고…. 남는 게 별로 없는 것 같더라고요. 이제는 선택과 집중을 하기로 마음먹었어요. 그게 바로 중국어 공부예요. 어릴 때 무협 소설을 쓴 적이 있을 정도로, 중국에 대한 막연한 로망이 있거든요. 

무협 소설은 어떻게 쓰게 됐나요. 

중학교 때 만화방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만화 대여점 주인이 주말마다 교회를 다녀서 그때만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시간이 점점 늘어났죠. 가게를 보면서 만화를 읽었는데, 나중에는 무협지까지 넘어갔어요. 손님들이 반납한 책을 확인하기 위해 한두 페이지를 넘겨 읽다 보니 빠지게 되더군요. 나중에는 인터넷에 ‘비연신검’이라는 소설도 발표했죠. 오래돼서 자료가 없을 줄 알았는데, 책 제목을 말했더니 팬들이 찾아내더라고요. 

다시 무협 소설을 써볼 생각은 없나요. 

소설보다는 시나리오요. 연기자로서 시나리오를 읽다 보니 줄글보다 대사로 풀어내는 게 익숙해요. 연기를 하면서 다른 작가님들은 어떻게 썼는지 꼼꼼하게 살펴보고 있어요. 그런데 줄거리는 되는데 대사가 어렵더라고요. 어떤 대사든 다 강소라 말투였어요. 경력이 쌓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협업도 고려했지만, 코드가 잘 맞아야 하니 어려울 것 같고요. 또 내용이 너무 소수 취향이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어요. 부모님은 제가 쓴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으시더라고요(웃음). 

언제 가장 행복한가요. 

친구들과 밥 먹을 때 행복해요. 만화책 볼 때도. 요즘에는 스마트폰으로 볼 수 있게 만화가 너무 잘 나와 있더라고요. 

한창 다이어트할 때는 친구들을 자주 못 만났다고 하던데요.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친구들을 만나지 못했어요. 칼로리가 그려지니까요. 지금은 신경 쓰지 않고 건강한 음식을 골라 먹으려고 해요. 염분이 많은 음식을 먹으면 잘 붓는 편이라, 저염식을 하려고 노력 중이에요. 안재홍 씨가 인터뷰 때마다 말하길 제가 저녁 6시 이후에는 아무것도 안 먹는다고 하던데, 그 정도까지 프로는 아니에요(웃음). 

다이어터들에게 하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요. 

너무 몸무게 숫자에 신경 쓰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정상적으로 건강하게 사는 게 좋아요. 몸이 무거워지고 옷을 입었을 때 핏감이 좋지 않은 건 스스로가 잘 알잖아요. 스트레스도 최악이에요. 될 수 있으면 저염식을 하고, 몸에 좋은 음식을 먹고, 폭식이나 과식하지 않는 게 중요하죠. 모두 지키기 어려운 것들인 건 잘 압니다(웃음). 

술과 커피, 모두 안 마신다고 들었어요. 

술까지 마시면 배우 생활 못 해요. 취하면 바로 자거든요. 술자리에 가더라도 한두 잔 마시면 졸음이 오니까 분위기상 한 잔 정도 마시는 편이에요. 커피는 카페인 부작용으로 가슴이 두근거려서 못 마시는데, 대신 차를 즐겨요. 최근에는 중국 친구에게 연꽃처럼 피어나는 차를 선물 받아서 잘 마시고 있어요. 

자신 있는 역할이 있나요. 

전문직 역을 많이 하다 보니 의사, 변호사처럼 ‘사’자 들어가는 직업이나 회사원 같은 역할로 많이 찾아주시는 것 같아요. 제복이나 정장을 입었을 때 신뢰가 가는 직업요. 

앞으로 도전해보고 싶은 분야는요. 

좋은 기회가 주어지면 어떤 것이든 잘하고 싶어요. 예전에는 그런 마음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남들에게 비칠 이미지에 많이 신경 썼지요. 하지만 지금은 자신이 없어도 뭐든 도전해보고 싶어요. 20대 때는 자신감이 많이 없었던 것 같아요. 

강소라에게 연기란 어떤 것인가요. 

직업이에요. 김성오 씨가 “연예인 김성오와 본인 김성오는 다르다. 세계관이 다르다”고 하더라고요. 연기자 강소라와 저 강소라는 다르니까요. 이제는 그게 구분이 되고 있어요. 작년부터 가능해졌어요.

기획 강현숙 기자 디자인 최정미 사진제공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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