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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CEO

뮤지컬과 나, 신춘수 오디컴퍼니 대표

EDITOR 정혜연 기자

2019. 11. 17

한국 뮤지컬 시장이 지금처럼 전성기를 맞게 된 것은 불과 10여 년 전의 일이다. 그 변화의 중심에 신춘수 대표가 있다.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 ‘드림 걸즈’ ‘맨 오브 라만차’ ‘드라큘라’ ‘닥터 지바고’ 등 이름만 들어도 알 법한 유명 작품들이 모두 한 사람의 손에서 탄생했다. 2001년 뮤지컬 제작사로 업계에 처음 발을 디딘 신춘수(51) 오디컴퍼니 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회사를 설립할 때 신 대표는 세계적인 프로듀서를 꿈꾸며 ‘오픈 더 도어(Open the Door)’를 줄여 ‘오디(OD)컴퍼니’라고 이름을 지었다. 회사 명칭대로 그는 18년 동안 한국 뮤지컬 제작사의 새 역사를 써왔고, 다소 생소했던 뮤지컬이라는 장르를 하나의 대중문화로 확고히 자리매김하는 데 앞장섰다. 

매년 2~3편의 작품을 무대에 올려온 신 대표는 올해 ‘지킬 앤 하이드’(~5월), ‘그리스’(4~8월)에 이어 10월 2일부터 ‘스위니토드’를 서울 송파구 샤롯데씨어터에서 공연하고 있다. ‘스위니토드’는 1900년대 영국 런던에서 한 남자(벤자민 바커)가 자신의 아내를 탐한 악랄한 판사 때문에 억울한 누명을 쓰고 15년 동안 복역한 뒤 출소해 스위니 토드로 이름을 바꾸고 이발소를 열어 잔혹한 복수극을 벌인다는 내용이다. 조승우, 옥주현, 홍광호, 박은태 등 내로라하는 뮤지컬 스타가 캐스팅돼 티켓 오픈과 동시에 전석 매진을 기록할 정도로 화제가 됐다. 신 대표는 “국내에서 두 번째 공연되는 작품인 만큼 다양한 변화를 시도해 극의 완성도를 높였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3년 만에 다시 관객을 맞이한 ‘스위니토드’는 사실감 넘치는 무대 연출과 조승우, 옥주현 등 정상급 뮤지컬 배우의 호연으로 화제가 되고 있다.

3년 만에 다시 관객을 맞이한 ‘스위니토드’는 사실감 넘치는 무대 연출과 조승우, 옥주현 등 정상급 뮤지컬 배우의 호연으로 화제가 되고 있다.

‘스위니토드’가 관객들에게 호평을 받고 있는데요. 대표님 개인에게는 어떤 작품인지 궁금합니다. 

프로듀서로서 꼭 제작하고 싶은 작품들이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죠. 특히 ‘스위니토드’는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새롭게 만들 수 있어 매력 있는 작품이에요. 3년 전 첫 공연에서는 무대 전체를 흰색 배경의 계단식으로 만들어 관객이 배우의 동선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 했어요. 이번에는 1900년대 영국의 어느 공장을 그대로 축소한 듯 어두운 분위기의 입체적 무대를 설치했어요. 관객의 눈높이는 해를 거듭할수록 높아지는데 이를 충족시키기 위해 제작비를 많이 써 무대에 공을 들였어요. 

조승우, 옥주현, 홍광호 등 뮤지컬 스타 캐스팅이 어렵지 않았나요. 

배우는 제작자가 작품의 제작 방향과 뜻을 충분히 설명하면 이해하고 공감해요. “이번 작품은 3년 전과 다른 시각으로 접근할 생각”이라고 피력했고 많은 배우가 관심을 가졌어요. 훌륭한 배우들이 뜻을 가지고 대거 참여해줬죠. 또 오디컴퍼니가 그동안 쌓아온 신뢰와 크레디트가 있는 편이기 때문에 캐스팅이 가능했다고 봐요. 



‘스위니토드’는 오디컴퍼니에서 올해 제작한 세 번째 작품으로 쉴 틈 없이 공연을 이어가고 있는데, 매번 흥행에 성공하는 비결은 무엇인가요. 

한국의 큰 제작사들은 평균 1년에 2편, 보통은 2년에 3편을 만들어요. 미리 정확한 일정을 세워 제작에 들어가기 때문에 완성도가 높죠. ‘지킬 앤 하이드’는 관객 인지도가 있는 작품인데, 완성도가 높다는 평가로 새로운 관객이 유입돼 흥행에 성공했어요. ‘그리스’는 애초 다양한 연령층을 대상으로 세대를 초월해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 인기를 얻었고요. ‘스위니토드’는 뮤지컬을 즐기는 마니아층이 꼭 한번 제대로 감상하고 싶어하는 작품으로 무대 퀄리티를 높인 것이 주효했어요. 

2001년에 뮤지컬 제작자로 출발했는데, 그때는 어떤 꿈을 가지고 시작했나요. 

꿈은 거창했으나 실력으로 보면 그럴 상황은 아니었죠(웃음). 대신 열정만큼은 넘쳤고, 항상 긍정적이었어요. 처음 무대에 올린 작품은 직접 쓴 ‘안녕 비틀즈’라는 창작 뮤지컬이었는데 잘 안됐어요. 이후 뮤지컬에 대한 학습과 문법을 배우고 싶어 기존의 작품인 ‘사랑은 비를 타고’의 제작을 맡아 새로운 각도로 새로운 배우들과 함께해 흥행에 성공했어요. 사실 초창기 뮤지컬 제작 환경은 열악해서 성공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공연장도 작았고, 관객 수도 적었죠. 그렇지만 10년 후 미래를 보고 과감하게 투자하면서 공격적으로 제작했어요. 2010년 이후에야 본격적으로 뮤지컬 산업이 성행해 여러모로 결실을 맺을 수 있었어요. 

‘지킬 앤 하이드’를 비롯해 수많은 대표작이 있는데, 뮤지컬 제작 인생에 터닝 포인트가 된 작품은 무엇인가요. 

여러 작품이 있죠. 먼저 2002년 만든 창작 뮤지컬 ‘킹 앤 아이’는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지만 좋은 평가를 받아서 회사가 커나갈 수 있는 자산이 됐어요. 2004년 초연한 ‘지킬 앤 하이드’는 지금의 오디컴퍼니를 있게 해준 중요한 작품이고, 2008년 ‘맨 오브 라만차’는 회사의 색깔을 만들어준 의미 있는 작품이에요. 또 2009년 제작한 한미 합작 뮤지컬 ‘드림걸즈’는 오디컴퍼니가 브로드웨이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어줬어요. 

창작 뮤지컬을 비롯해 라이선스 뮤지컬 등 다양한 작품을 제작해왔는데, 작품을 선별하는 기준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어릴 때부터 영화와 연극을 좋아했어요. 취향이 확고한 편인데, 문학성이 있는 작품을 선호하죠. 한 편을 보더라도 진한 울림이 있는 그런 작품 말이에요. ‘지킬 앤 하이드’를 처음 무대에 올리던 당시 ‘한국 관객들은 이해하지 못하고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왔어요. 그때 다른 곳에서 공연하던 작품이 ‘미녀와 야수’였으니까요. 그만큼 생소한 작품이었지만 문학성과 흥미로운 주제가 있기에 충분히 승산 있다고 확신했어요. 


조승우, 정성화, 조정석 등 내로라하는 뮤지컬 스타들은 어떻게 배출하셨나요. 

승우는 2000년대 초반 재능 있는 배우로 알려졌지만 뮤지컬에도 엄청난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봤어요. ‘지킬 앤 하이드’ 초연 때 의사(지킬)가 보통 서른 살은 넘어야 하는데 승우는 스물다섯이었지만 과감하게 캐스팅했어요. 젊고 미남인 의사라야 전달력이 높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실제로도 반응이 좋았어요. 뮤지컬은 10년은 해야 전성기가 펼쳐지는데 승우는 지금 그 시기죠. 또 성화는 ‘맨 오브 라만차’ 공연 때 산초로 캐스팅하려고 했는데 돈키호테를 하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오디션에서 4등을 했지만 가능성을 읽고 과감하게 주연으로 캐스팅했어요. 정석이는 대학생 워크숍 때 재능 있어 보여서 ‘넌센스 어 맨’에 주연급으로 캐스팅했어요. 당시 완전 무명이었으니까 스태프들 사이에서 난리가 났죠(웃음). 그런데 그 역할을 결국 해내더라고요. 이외 류정한, 김소현, 홍광호 등도 모두 처음에는 유명한 스타가 아니었어요. 모두 당시의 실력보다 미래를 봤고, 가능성만 있다면 기회를 줬는데 다들 자기 몫을 해냈죠. 

조정석, 한지상 등 뮤지컬계에서 이름이 알려져 TV나 영화로 옮겨 잘되는 경우도 많은데, 기분이 어떤가요. 

요즘은 한 장르를 고집하는 배우가 드물어졌어요. 젊은 배우일수록 하나의 장르로 특정화하는 경우는 없죠. 뮤지컬 무대에서의 경험을 살려 다른 장르에서 성공하는 걸 보면 기분이 좋아요. 그렇지만 뮤지컬에 캐스팅된 상태에서는 다른 작품과 겹치기 출연하지 않고 집중해줬으면 해요. 호주 출신의 세계적인 배우 휴 잭맨도 브로드웨이에서 공연하는 3개월 동안에는 영화 촬영 등을 일절 하지 않아요. 그만큼 뮤지컬 배우는 관객에 대한 경외심이 있어야 해요. 아무리 스타가 되더라도 그게 관객에 대한 예의죠. 

오디컴퍼니의 대표작이 정말 많은데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명작’을 꼽는다면. 

‘맨 오브 라만차’예요. 진중한 울림이 있거든요. 엔딩 부분이 굉장히 강렬한데 그걸 보고 살아갈 힘을 얻었어요. 화려한 무대나 유명한 배우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작품의 진정성 있는 내용과 메시지라고 생각해요. ‘맨 오브 라만차’를 제대로 본 관객이라면 희망과 꿈을 갖고 늘 도전하며 살아갈 수 있을 거예요.
 
중국에서도 뮤지컬을 제작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지킬 앤 하이드’에 출연할 중국 배우들을 캐스팅하고 있어요. 아직 중국은 뮤지컬 시장이 형성돼 있지 않아요. 하지만 국가가 잘사는 속도와 맞물려 대중은 문화에 대한 갈증을 느끼기 마련이에요. 우리나라도 그런 과정을 거쳤죠. 지금 중국은 뮤지컬에 대한 학습과 대중적 콘텐츠가 없고, ‘뮤지컬 배우’라는 직업조차 형성돼 있지 않아요. 알리바바와 합작해 중국 뮤지컬 제작에 도전하고 있는데 머지않아 거대한 뮤지컬 시장이 형성될 것이라고 봅니다. 

브로드웨이에서 2014년 ‘Holler If Ya Hear Me’를, 2015년 ‘닥터 지바고’를 제작해 공연했지만 흥행 성적은 좋지 않았습니다. 브로드웨이 진출에 계속 뜻을 품고 있나요. 

뮤지컬은 하나의 산업이에요. 뮤지컬 ‘라이온킹’은 전 세계에서 9천5백만 명이 관람했고, 수익이 10조원 정도 됩니다. 한국에서 뮤지컬이 크게 흥행해도 시장 규모가 작기 때문에 연속성을 주지 못해요. 만약 브로드웨이에서 성공하면 각 나라에서 다양한 언어로 제작될 거고, 재공연하는 등 롱런할 수도 있죠. 그렇게 되면 회사의 규모가 달라질 거예요. 브로드웨이에서 경험한 두 번의 흥행 실패를 두고 혹자는 ‘외화 낭비’라고도 하지만 제가 나랏돈으로 사업하는 것도 아닌데 왜 비판하는지 모르겠어요. 저는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브로드웨이 시스템을 경험했고, 다음 작품을 구상할 기회를 얻었기 때문이죠. 이 또한 성공으로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지금도 어렵지만 그런 큰 꿈을 가지고 계속 브로드웨이에 도전해나갈 거예요. 

국내 뮤지컬을 사랑하는 많은 팬이 있는데, 그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관객 수준이 높아지면서 작품에 대한 평가와 비평 수준도 높아졌어요. 그만큼 작품을 제대로 즐기려는 욕구가 커진 거죠. 하지만 너무 깊게 공부하고, 비평을 공유하다 보면 중요한 것을 놓칠 수 있어요. 제작자들은 관객이 작품을 그저 즐겨줬으면 하는 마음으로 만들거든요. 훌륭한 무대, 배우, 제작진을 비롯해 공연장을 찾은 관객 전체의 에너지가 합쳐져 좋은 공연을 만든다고 생각해요. 작품을 만든 모든 사람을 생각하면서 넓은 마음으로 감상해주기 바랍니다.

사진 홍중식 기자 디자인 최정미
사진제공 오디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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