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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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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여왕 김소현의 워라밸

EDITOR 김지영 기자

2019. 07. 08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에서 젊은 귀족과 불륜에 빠지는 파격적인 연기에 도전하고 있는 김소현. 이 작품의 주인공과는 다르게, 현실에서는 8세 연하의 남편과 같은 길을 걸으며 지금도 연인처럼 사는 그녀가 일터와 가정을 오가며 삶의 균형을 맞추는 법.

사랑은 1인칭, 불륜은 3인칭 시점이다. 최근 막을 올린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도 사랑에 모든 것을 걸지만 끝내 불륜이라는 세인들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한 한 여자에 관한 이야기다. 이 작품에서 감정의 진동 폭이 큰 주인공 안나 카레니나 역을 맡은 김소현(44)은 그 어느 때보다 섬세한 심리 묘사로 “동공까지 연기한다”는 평을 듣고 있다. 

안나 카레니나는 연상의 남편 카레닌과 사랑 없는 결혼을 한 아름다운 귀부인으로 자신에게 첫눈에 반한 젊은 백작 브론스키와 뜨겁고 위험한 사랑에 빠진다. 남편에게 둘의 관계를 고백하고 아들마저 멀리한 채 브론스키와 동거를 시작하지만 출세에 대한 야심이 가득한 그로 인해 상심하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뮤지컬은 김소현 특유의 시원시원한 고음이나 밝은 이미지를 기대한다면 실망스러울 수도 있는 작품이다. 노래보다 대사 비중이 크고 곡의 톤이 전반적으로 어두워서다. 더구나 뮤지컬 배우 손준호(36)와 2011년 결혼해 여전히 연인처럼 살고 있는 김소현에게 안나 카레니나는 받아들이기 힘든 캐릭터일 수 있다. 익숙한 길을 두고 그녀는 왜 굳이 낯선 모험에 도전했을까. 그동안 쌓인 궁금증을 안고 그녀와 마주했다. 


이번처럼 나직한 목소리로 노래하는 공연은 처음 봤어요. 

러시아 뮤지컬이 대개 노래보다 대사의 비중이 커요. 감정 표현이 많아 연기적인 요소가 절대적이고요. 러시아에서는 연극배우가 안나 카레니나를 연기했대요. 노래 비중이 크지 않은 데다 전반적인 톤이 어둡고 묵직한 저음이다 보니 곡 위주로 감상한 분들에겐 낯설 수 있어요. 저의 소프라노 목소리에 익숙하신 분들은 낮은 톤의 노래들이 거칠게 느껴질 수도 있고요. 항상 꾀꼬리처럼 노래하는 공연만 있는 게 아니란 점을 관객들이 알아주면 좋겠어요. 



안나 카레니나 역을 맡은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처음엔 망설였어요. 제 현실과는 다른 이야기고, 살면서 쉽게 경험하기 힘든 상황에 직면하는 캐릭터여서 공감하기가 어렵더군요. 사랑에 빠진 남자와 가정을 버리고 도망간다는 것은 19세기 러시아에서뿐만 아니라 지금도 상당히 파격적인 내용이에요. 그걸 관객들에게 이해시키기는 굉장히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게다가 노래가 많지 않고 섬세한 감정 연기가 중요한 캐릭터여서 그걸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지 난감했어요. 안나가 느끼는 내밀한 감정을 직설적인 가사로 전달하는 것이 아닌, 제 목소리만 듣고도 이해할 수 있도록 표현해야 하잖아요. 무대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관객은 제 미세한 표정 변화를 볼 수 없으니까요. 그 때문에 고민이 됐지만 새로운 도전을 계속해야 하는 것이 배우의 숙명이고 좋은 경험이 될 만한 작품이라서 출연하게 됐어요. 

어떤 점에 포인트를 두고 연기하는지요. 

겉으로 비치는 모습에 치중하면 내면의 감정이 희석되기 때문에 둘의 밸런스를 맞추기 어려워요. 안나의 마음도 100% 이해하고 있어야 하고요. 극의 흐름에 굉장히 집중하면서 안나가 느끼는 감정의 끈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이번처럼 천천히 망가져가는 여정을 표현하는 게 정말 어렵거든요. 그래도 관객들이 제 연기를 보면서 같이 눈물을 흘리시고 응원 메시지도 보내주셔서 매회 큰 힘이 되고 있어요. 

안나 카레니나를 어떻게 이해하게 됐나요. 

남들이 보기엔 뭐가 부족해 안정된 삶을 박차고 나갔을까 의아해할 만해요. 그런데 그 안을 들여다보면 공갈빵처럼 텅 비어 있는 삶이에요. 뮤지컬에 나오진 않지만 안나는 가난한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 정략결혼을 한 거로 보여요. 나이 많은 재력가 남편이 외적인 부분은 충족시켜주었고 자식도 있지만 마음이 공허했기에 브론스키를 만나 처음으로 육체적, 정신적으로 충만한 사랑에 빠져버린 거죠. 그걸 행복으로 확신하고 자신의 진짜 인생을 살고 싶어 모든 걸 버리고 브론스키와 함께하는 삶을 선택했는데, 그게 바른 길도 아니었고 행복하지도 않았던 거예요. 그러다 자신의 그릇된 선택으로 주위 사람을 힘들게 했다는 죄책감을 이기지 못해 너무 괴롭고 힘들어 죽음 외엔 다른 선택지가 없었던 게 아닌가 싶어요. 그 절망의 순간, 너무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어요. 좌절에 빠진 안나를 꼭 안아주고 싶었어요. 저라면 그런 선택을 안 했을 거기 때문에 처음부터 쉽게 빠져들진 못했지만 그 상황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나니 그녀가 이해됐어요. 

어떤 관객이 “브론스키와의 러브 신 가운데 서로를 응시하는 눈에서 꿀이 떨어질 듯했다”는 평을 전하더군요. “남편 손준호 씨가 보면 진짜 질투날 것 같다”면서요(웃음). 

(손준호 씨는) 안 봐도 될 것 같아요. 하하하. 저희는 상대의 연기에 개의치 않아요. 저 역시 남편이 제 눈앞에서 키스 신을 연기하는 걸 많이 봤는데 괜찮았어요. 남편도 마찬가지일 것 같긴 하지만 안 보면 좋겠어요. 아무래도 소재가 열정적인 사랑, 불륜이기 때문에 다른 작품보다 연기 호흡이 강렬하거든요. 

어떤 연기도 일로만 본다는 의미인가요. 

물론입니다. ‘배우자가 보고 불편하면 어떻게 하지?’ 그런 걱정을 입 밖으로 표현할 정도면 둘 다 은퇴해야죠. 러브 신이 없는 작품은 거의 없으니까요. 그런 뮤지컬 배우의 삶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없었다면 저희 사이가 발전할 수 없었을 거예요. 

두 분은 어떻게 만났어요. 

2009년 ‘오페라의 유령’에서 상대역으로 만났어요. ‘명성황후’도, ‘엘리자벳’도 같이하고요. 

무대에서 상대역으로 만난 손준호 씨는 어떤 느낌인가요. 

엄청 멋져요. 현실에선 든든한 가장이고요. 아침에 같이 된장찌개에 김치를 먹었던 남편이 상대역으로 무대에 섰을 때 아름답고 사랑스러워 보이긴 힘들 것 같잖아요. 벌써 10년을 이렇게 살았는데도 남편과 풋풋한 러브 신이 가능한 거에 놀랐어요. 관객들도 저희 부부가 한 무대에서 연기할 때 “너무 잘 어울린다” “둘의 감정이 더 깊이 와 닿는다”는 평을 해주셔서 너무 감사하고요. 한때는 같은 작품을 해도 한 무대에 서는 걸 피했는데 요즘은 제작사들이 먼저 저희가 같이하기를 원해요. 

결혼 생활이 연기에 도움이 되고 있나요. 

결혼 후 살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며 굉장히 다양한 감정을 경험할 수 있었어요. 그 자체가 저한테는 너무나 소중한 자산이에요. 아이를 안고 행복해서 가슴이 저미는 느낌을 경험해보지 않았다면 이런 감정을 어떻게 알겠어요. 행복감은 물론 힘듦의 깊이도 마찬가지고요. ‘아이를 낳고 길러봐야 진짜 어른이 된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닌 것 같아요. 배우에게 경험보다 더 큰 공부는 없어요. 그 경험을 통해 많은 걸 느끼고 배우게 되니까요. 

아들을 직접 ‘풀 케어’한다고 들었어요. 

지금까지 도우미를 들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아이 이유식도 다 제가 만들었어요. 일할 때만 부모님이 와서 도와주시고 살림과 육아 모두 직접 해요. 아무리 일이 늦게 끝나도 아침 6시에 일어나요.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인데 아침 6시 반에 학교에 가거든요. 

집에서 요리를 자주 하는 편인가요. 

대단한 솜씨가 있진 않지만 아이에게 밥 차려줄 정도는 돼요. 부모님 생신상도 직접 차려요. 어르신들이 제가 만든 갈비찜과 도미찜을 좋아하시더라고요. 


배우에겐 외모도 중요한 요소잖아요. 몸매 관리를 어떻게 하고 있나요. 

의상이 커버해주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매혹적인 여성으로 보이기 위한 몸매 관리는 배우가 당연히 감당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날씬한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해요. 식사량을 줄이는 것은 기본이고 유산소 운동과 걷기를 즐겨요. 식사도 제게 맞는 체질식을 하고요. 저는 금(金)체질이라 밥하고 김만 먹어요. 고기가 안 맞아서 생선을 즐겨 먹고요. 공연할 때는 잠도 잘 안 오고 입맛도 없어서 자연스럽게 소식을 하게 돼요. 힘들어서 배고픔도 잘 못 느껴요. 쉴 때 편하게 먹고, 다시 작품에 들어가면 식사를 절제하는 그런 삶의 연속이죠. 

목을 많이 쓰는 직업이니만큼 목 관리 노하우도 있을 것 같아요. 

인위적인 걸 안 좋아해서 약이나 주사에 의지하진 않아요. 규칙적인 생활과 건강식으로 체력을 보강하고 술은 아예 안 마셔요. 20대 후반에 뮤지컬 배우로 데뷔해 술을 처음 마셔봤고 이후 6~7년간 회식 자리에서만 술을 마셨는데, 결혼하기 2~3년 전부터 저한테 안 맞는다는 생각이 들어서 금주를 하게 됐어요.
 
매니저를 따로 두지 않고 스케줄을 직접 관리한다죠. 워킹맘으로서의 고충은 뭔가요. 

아이에 대한 미안함을 떨치기 힘든 거요. 제가 힘든 건 저 혼자 감당하면 되지만 아이가 엄마를 보고 싶어한다든지, 아이가 아픈데 공연하러 가야 한다든지 하는 난감한 상황이 종종 발생하거든요. 그래도 주안이가 이제는 엄마를 이해해줄 정도로 많이 컸어요. 엄마가 공연하는 게 자기도 너무 좋대요. 그러면서 “엄마, 오늘도 1등 하고 와”라고 말해주고, 제가 배고플까 봐 밥상을 차려놓고 자기도 해요. 아침이면 저를 꼭 안아주고요. 얼마 전엔 엄마가 만날 죽는 역할을 해서 마음이 아프다고 하더라고요. 

엄마로서나 배우로서나 어느 하나 소홀하지 않고 잘해내는 모습이 정말 대단해 보여요. 일과 개인 삶의 균형을 어떻게 유지하나요. 

제 일 때문에 가정의 균형이 깨지면 안 되니까 작품 속 역할에 빠져 있어도 할 일은 해야 한다는 주의예요. 이번에도 역할이 힘들어서 평소보다 예민해진 면이 없지 않지만 연기 톤을 잘 유지하면서 가정을 건사하는 일도 충실히 하고 있어요. 공연 개막 후 며칠은 굉장히 힘들었어요. 감정 기복이 심한 역할이라서요. 그런 저를 보면서 준호 씨가 “힘들지? 잘될 거야!”라고 격려해주더라고요. 같은 일을 하는 남편의 무한 긍정 에너지가 늘 큰 위안이 되고 있어요. 

주위의 부러움을 살 정도로 금실이 좋은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듯해요. 

오랫동안 다른 환경에서 살던 남녀가 부부가 되면 처음에는 삐거덕거릴 수밖에 없어요. 서로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상대가 틀렸다고만 생각하기에 부딪히는 거죠.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해주는 것이 저희가 화목한 가정을 이룬 비결인 것 같아요. 그리고 남편이 정말 착하고 긍정적이에요. 그런 면이 저를 많이 희석해줘요. 제가 원래는 예민하고 제 자신에게 부정적이고 인색했거든요. 남편의 격려 덕분에 지금은 많이 밝아지고 조바심이나 초조함도 전보다 많이 내려놓을 수 있게 됐어요. 

인생의 길잡이가 되어주는 좌우명이 있나요. 

‘오늘은 다시 오지 않는다’는 말을 혼잣말처럼 자주 내뱉어요. 자꾸 내일에 연연하면 오늘을 충실히 보내기가 힘들지만 오늘이 마지막이라 생각하면 ‘또 언제 오늘이 오겠어?’ 하면서 매 순간 최선을 다하게 되죠.

사진 김도균 디자인 김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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