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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interview #star

진짜 사나이 박형식

EDITOR 두경아

2019. 06. 10

입대를 정확히 한 달 앞둔 날, 박형식을 만났다.

“전 아직도 제가 고등학생 같아요. 자고 일어나면 허리가 아픈 것만 빼면요(웃음).” 

배우 박형식(28)이 장난기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2010년 아이돌 그룹 ‘제국의아이들’ 멤버로 데뷔해 2013년 예능 프로그램 ‘일밤-진짜 사나이’(이하 ‘진짜 사나이’)에 출연하며 모성 본능 자극하는 ‘아기병사’로 불리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그도 벌써 데뷔 10년 차에 접어들었다. 그사이 여러 편의 굵직한 드라마 주인공을 거쳐, 최근 첫 장편영화 ‘배심원들’을 통해 스크린에도 진출했다. 이 영화는 6월 입대하기 전에 출연한 마지막 작품이다. 

“외국에 나가면 꼭 그 나라 고유 음식을 먹어봐요. 더러 입에 안 맞는 경우가 있지만 새로운 경험을 좋아하거든요. 그동안 연기를 통해 새로운 것들을 충분히 경험해왔어요. 여전히 더 많은 것들을 얻고 싶은데 (입대로 인해) 브레이크 걸리는 건 아쉽지만, 그렇게 생각해서 뭐 하겠어요. 털어버려야죠. 그럼에도 마음으로는 ‘잠시 휴식기를 갖는다고 생각하자’ 해도 정해진 시간이 다가올수록 심리적인 압박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네요.”

군 입대 전 지인들과 여행 다녀

박형식은 군대 이야기가 나오자 달관한 듯 가볍게 이야기를 하다가도, 이내 진지해지곤 했다. 아무래도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없을 터. 군 입대는 지인들이 불러내도 잘 나가지 않던 그의 ‘집돌이’ 성향까지 바꿔놨을 정도다. 

“짧게라도 여행을 다니고 있어요. 얼마 전 가족들이랑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고, 또래 배우들과 캠핑도 갔었죠. 사실 그동안에는 친구들과 만나도 밥 먹고 맥주 한 잔 마시는 게 다였지, 여행을 간 적은 없거든요. 



(군 입대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입대 날짜가 다가오니 저도 변하네요(웃음).” 

지난 3월 전역한 제국의아이들 출신 배우 임시완은 그에게 솔메이트 같은 존재다. 박형식은 누구보다 임시완의 전역을 반겼지만 그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시완 형과는 함께 여행을 가고 그 여행을 즐겁게 보내기 위한 계획을 짜는 사이예요. 형과 함께라면 jtbc ‘트래블러’ 같은 여행 프로그램에 출연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아쉽게도 바통 터치하듯 이번에는 제가 입대하게 돼 다시 떨어져 지내야 해요.” 

임시완에게 군 입대 관련 어떤 조언을 들었느냐고 묻자 그는 “‘몸 다치지 말고 잘 다녀와라. 시간 금방 간다’는 뻔한 말을 해줬다. 형은 이미 군대를 다녀왔으니 여유가 있지만 그 말을 듣는 나는 울상이었다”며 웃었다. 

박형식은 이미 ‘진짜 사나이’를 통해 군 생활을 여러 번 경험한 바 있다. 비록 경력으로 인정받을 수 없는 시간이지만, ‘진짜 사나이’에서의 경험은 군 입대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많은 도움이 됐다. 

“여러 부대를 다니며 촬영한 덕분에 각 부대의 특성을 파악하게 됐어요. 그 덕분에 ‘어느 부대가 내 적성에 맞겠다’는 생각도 하게 됐고요. 촬영하면서 잘한다는 칭찬도 받고 적성에도 맞았던 수도방위사령부에 지원했는데, 다행히 합격했어요. 다만 방송에서 나온 모습을 보고 제게 기대를 걸면 어쩌나 하는 걱정은 있어요. 아무리 경험을 했어도 실전은 다를 테니까요.” 

그는 군 입대 이야기를 하며 자주, “다치지만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실제로 ‘진짜 사나이’ 촬영을 하며 부상을 여러 번 경험했기 때문이다. 

“군대에 가는 건 두렵지 않은데, 부상이 걱정되긴 해요. ‘진짜 사나이’ 촬영 중 허리를 다쳐서 물리치료를 받았거든요. 연예인 선배들이 다치는 모습도 많이 봤고요. 제대 후 바로 일을 해야 하니, 다치지 않도록 몸을 잘 챙겨야겠구나 하며 마음을 다잡고 있어요.”

박수 칠 때 떠난다

‘박수 칠 때 떠나라’는 말처럼 박형식은 한창 연기에 물이 올랐을 때 군대에 가게 됐다. 그는 2013년 ‘상속자들’을 시작으로 ‘가족끼리 왜 이래’ ‘상류사회’ ‘화랑’ ‘힘쎈여자 도봉순’ ‘슈츠’ 등 여러 장르의 드라마를 넘나들며 다양한 역할을 소화해냈다. 또 2017년엔 31분짜리 단편영화 ‘두 개의 빛:릴루미노’를 촬영했고, 이번에는 본격 상업영화 ‘배심원들’에 도전한다. 

5월 15일 개봉한 ‘배심원들’은 2008년 국내 처음 도입된 ‘국민참여재판’의 실제 사건을 재구성한 작품으로, 어쩌다 배심원이 된 평범한 사람들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찾아가는 내용이다. 직업도, 성격도 다른 8명의 배심원이 재판에 참여하는 과정이 흥미롭다. 그중 박형식은 얼떨결에 마지막 배심원으로 합류한, 포기를 모르는 청년 창업가 권남우 역을 맡았다. 

“처음부터 대본이 한 번에 쭉 읽히더라고요. 배심원들이 저마다 개성이 뚜렷한데 모두 현실에 정말 있을 법한 캐릭터여서 재미있었어요. 읽으면서 피식피식했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도 그 안에 메시지가 정확하게 있고, 특히 남우가 전하는 메시지가 마음에 들었죠.” 

박형식이 연기한 권남우는 국민참여재판에서 모두가 유죄라고 단정할 때 혼자 “(의심이 풀리지 않은 상태로는 아무것도 결정하기) 싫어요!”라고 말하는 인물이다. 

“남우를 연기하며 ‘실제로 내가 과연 그 자리에 섰을 때 남우처럼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남들이 다 유죄라고 하면 나도 그렇게 휩쓸려갈 것 같거든요. 다른 한편으로는 남우와 비슷한 부분도 있어요. 저도 남우처럼 호기심이 많고, 맡은 일은 책임감을 가지고 끝까지 해내려고 하는 성격이거든요. 궁금한 건 알아야 직성이 풀리고요.” 

아이돌 가수에서 배우로 전향한 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연기력 논란이 불거진 적 없는 그는 이번 영화를 촬영하는 동안 가장 고생스러웠던 점으로 “평범하게 보이기 위한 힘 빼기”를 꼽았다. 

“감독님은 촬영 현장에서 제게 ‘표현을 안 했으면 좋겠다’ ‘(남우가) 평범했으면 좋겠다’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어요. 그게 뭘 어떻게 하라는 건지 쉽게 감이 오지 않았어요. 저는 나름대로 평범하게 연기한 것 같거든요. 나중에야 무슨 뜻인지 알게 됐죠. 제가 전작 ‘슈츠’에서 천재 변호사 역을 했기 때문에 극 중 판사나 변호사가 쓰는 법적 용어가 무슨 뜻인지 알거든요. 그런데 남우는 법에 대해 전혀 모르는 철없는 캐릭터라 알아들으면 안 됐어요. 그래서 감독님이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그냥 있으라’고 하신 거고요. 감독님은 제가 이 사건에 어린아이 같은 순수한 마음으로 접근하길 바랐던 거예요.” 

이번 영화에서는 배심원들 간의 호흡이 매우 중요했다. 다른 배심원들과 수개월 동안 뮤지컬 연습을 하듯 호흡을 맞춘 이유다. 그러다 보니 그는 “어느 순간 만담을 하듯 대사를 주고받게 되고, 영화가 아닌 공연을 하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선배 연기자들 사이에서 저는 받아먹은 것밖에 없어요. 정신없이 연기했죠. 선배들이 워낙 열정적으로 연기하시니 아무 생각 없이 빨려 들어가더라고요. 그 상황이 감당하기 벅찰 정도로 감동적이기도 했어요.” 

특히 선배 연기자 문소리와의 만남은 그에게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 문소리는 ‘배심원들’에서 냉철하지만 사려 깊은 부장 판사를 연기하며, 호기심 많은 배심원인 박형식과 대립각을 세운다. 

“문소리 선배님은 아우라가 남달라요. 말도 못 꺼낼 것 같은 분위기에서 공간을 잡아먹는구나, 이게 연기로 가능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선배님이 멋있었고, 무섭기도 했어요. 그러다가도 선배님은 ‘컷’ 하는 소리가 나면 바로 웃고 농담을 하시더라고요.” 

박형식은 기술 시사회 때 처음 영화를 보고는 “부끄러웠고, 아쉬운 점이 많았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도 본인 연기에 몇 점을 주고 싶으냐는 질문에는 주저 없이 “110점”이라고 답했다. 

“100점 만점에 110점은 나올 수 없는 불가능한 점수잖아요. 이번 영화를 통해 말도 안 되는 경험을 한 것 같아요. 새로운 경험을 하며 연기 호흡이라는 것이 뭔지 알았고, 감독님과의 신뢰 등 많은 것들을 배웠으니 제게 불가능한 점수를 주고 싶어요(웃음).” 

박형식이 ‘배심원들’에 캐스팅된 이유 중 하나는 아기병사 이미지였다. 홍승완 감독은 ‘진짜 사나이’에서 박형식의 순수한 모습에 매료돼 그만큼 순수한 캐릭터인 청년 남우 역할을 그에게 제안했다. 박형식은 “이미 5~6년이 지났기에 나는 더 이상 아기병사가 아니다. 그리고 그때만큼 순수하지 않아서인지 감독님이 약간 실망한 것 같기도 했다”며 웃었다. 

홍 감독처럼 박형식 하면 그때의 아기병사 이미지를 떠올리는 이가 지금도 적지 않다. 아기병사 이미지는 그가 배우로 전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줬지만, 반대로 그의 연기 스펙트럼이 확장되는 것을 방해하기도 한다. 

“제 이미지와 상반되는 역할이 주어지지 않더라고요. 그걸 깨는 게 어렵고요. ‘만일 사람들이 제 기존 이미지에 대해 모른다면, 다른 모습도 재미있게 봐주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제 안에는 아기병사 같은 모습도 있지만 ‘똘아이’도 있거든요.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누아르 장르나 사이코패스 역할에 도전해보고 싶어요.”

9년간 지치지 않고 달려온 에너자이저

연기자로서 그의 길은 비교적 순탄했다. 사극부터 현대극까지 두루 경험하고 재벌 2세, 천재 변호사 등을 연기하며 배우로서 호평을 받았음은 물론 출연한 드라마의 시청률도 높았다. 그러나 그는 “발연기라는 평조차 못 들었을 정도로 주목받지 못하던 시절도 있었다”고 했다. 그가 연기자로서 가능성을 인정받기 시작한 것은 2014년 ‘가족끼리 왜 이래’라는 주말드라마에 출연하면서부터다. 유동근이 이끄는 대가족의 막내아들로 출연한 이 드라마가 그에게 연기 교본이 됐다고 한다. 

“촬영하면서 대사를 하면 양희경 선배님이 ‘그래서 네가 말하고 싶은 게 뭐야?’라고 물으셨어요. 연기를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어 ‘그냥 이렇게 하면 되는 게 아닌가’ 싶었는데, 대사가 주고자 하는 메시지의 정확성과 강조의 필요성을 그때 알았고, 발음이나 발성 등 기술적인 것들도 그때 배웠어요. 양희경 선배님이나 김현주 누나 등 모든 선배님들에게 정말 감사하죠.” 

박형식은 또한 뮤지컬 배우로 수많은 무대에 섰다. ‘엘리자벳’ ‘삼총사’ ‘보니 앤 클라이드’ 등 굵직한 뮤지컬에서 연기자와 가수로서의 기량을 보여준 바 있다. 

“뮤지컬은 생방송이잖아요. 관객들의 눈이 나를 보고 있잖아요. 그 긴장감이 저를 짜릿하게 해요. 그 자리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좋은 것 같아요. 드라마도 실시간으로 피드백을 받으니까 긴장감이 느껴지고, 지적을 하면 ‘이런 부분을 놓쳤구나’ 생각하게 되어서 좋아요. 영화는 더 심혈을 기울이는 분야라 또 다른 것 같아요. 영화는 처음이었으니 무대 인사하는 것도 신기했고요.” 

그는 “억지로 하는 건 없다”며 “모든 장르가 각각의 매력이 있어서 좋다”고 말한다. 9년 동안 꾸준히 연기와 노래, 예능 프로그램을 오갔던 에너지의 근원은 무엇일까? 그는 “재미”라고 명쾌하게 답했다. 

“일단 재미를 느끼면 싫증 나기 쉽지 않아요. 무엇을 선택할 때까지, 또 재미를 느낄 때까지 오래 걸리는 편이지만 일단 시작하면 열심히 하는 편이에요. 대신 재미없다고 느끼면 안 할 것 같아요. 아직도 제 자신이 고등학생처럼 느껴지고, 철이 없는 것 같지만 초심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늘 처음처럼 재미있고 기분 좋게…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가고 싶어요.”

기획 김지영 기자 디자인 김영화
사진제공 UA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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