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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goodpeople #interview

추리하고 싶은 남자, 도진기

EDITOR 김우정 기자

2019. 05. 13

냉철한 지성, 번뜩이는 재치, 따뜻한 시선을 모두 갖춘 사람이 있다. 채널A 예능 프로그램 ‘신입사원 탄생기-굿피플’에 출연 중인 도진기 변호사다.

2017년 서울북부지방법원 부장판사를 끝으로 20여 년간의 판사 생활을 마감한 도진기(52) 변호사의 또 다른 직함은 추리소설가다. 그는 판사로 재직 중이던 2010년 추리소설 ‘선택’으로 한국추리작가협회 미스터리 신인상을 받으며 데뷔했다. 이후 자신의 페르소나를 주인공으로 한 ‘어둠의 변호사 고진’ 시리즈와 ‘백수 탐정 진구’ 시리즈를 내며 특유의 작품 세계를 구축해왔다. 최근에는 실제 사건을 모티프 삼아 판사의 내면을 심도 있게 다룬 신작 ‘합리적 의심’을 내놓는 등 장르적 실험도 계속하고 있다. 

서울 서초구의 법무법인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책장을 가득 메운 법전을 배경으로 깔끔한 정장을 차려입은 모습이 영락없는 변호사다. 하지만 추리소설로 운을 띄우자 한편으로 ‘어둠의 변호사’ 고진의 예리함이, 때로는 ‘비딱한 천재’ 진구의 재치가 빛을 발한다. 채널A 예능 프로그램 ‘신입사원 도전기-굿피플’(이하 ‘굿피플’)에서 로펌이 8명의 인턴 가운데 누구를 정식 사원으로 채용할지 추리하는 ‘굿피플 응원단’의 일원으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필요한 능력이자 매력이다.

‘굿피플’에 ‘굿피플 응원단’으로 출연 중인 도진기 변호사, 배우 이시원, ‘굿피플’ MC 강호동(왼쪽부터).

‘굿피플’에 ‘굿피플 응원단’으로 출연 중인 도진기 변호사, 배우 이시원, ‘굿피플’ MC 강호동(왼쪽부터).

첫 방송(4월 13일) 후 주변 반응은 어떤가요. 

동료 법조인들은 재밌다고 호평 일색입니다. 원래 의사는 의학 드라마 안 보듯이 판사나 검사, 변호사들도 법정 드라마를 안 봅니다. 핀치에 몰리던 변호인이 결정적 증인을 찾아 막판 역전극을 벌이는 드라마와 달리 현실은 벽돌 쌓듯 주장과 근거를 정리해나가는 것이니까요. ‘굿피플’은 이제껏 법조계를 다룬 대중매체 중 가장 현실적이지 않나 싶습니다. 

방송 출연을 결정한 이유나 계기가 궁금합니다. 


법률 관련 자문 등으로 짧게 TV에 나온 적은 있지만 이렇게 본격적인 출연은 처음이에요. 남 웃기는 재주가 없어 일반 예능 프로그램이라면 엄두도 못 냈을 텐데 시청자들에게 법 지식을 쉽게 풀어 설명하는 역할은 자신 있었어요. 법조계를 소재로 한 예능 프로그램이 재밌을 리 없어 시청률 부담도 없겠거니 싶었고요. 프로그램 취지가 청춘을 응원하는 것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다만 주변 반응이 너무 좋아 내심 걱정입니다(웃음). 

프로그램 관전 포인트를 말씀해주세요. 

어느 인턴이 최종 관문을 통과할지 ‘굿피플 응원단’과 함께하는 추리와 인턴들의 성장과정이 관전 포인트라고 생각해요. 법률에 관련된 지식들을 자연스레 알아가는 것도 재미고요. 추리에 팁을 드리자면 예비 법조인으로서의 소양에 주목하시라는 것입니다. 로펌 입장에서 채용할 인턴은 미래의 동료입니다. 가령 가수 오디션 프로그램의 출연자가 노래 하나로 평가받는 것과 달리 ‘굿피플’은 조직의 구성원을 선발하는 것이니까요. 따라서 인턴뿐 아니라 멘토 변호사들의 분위기를 눈여겨보면 추리에 도움이 됩니다. 

동료 출연자들과의 케미도 궁금합니다.
 



첫 녹화를 앞두고 너무 긴장됐어요. 그런데 강호동 씨가 “항상 첫 녹화는 너무 떨린다”며 먼저 말을 걸어와 긴장을 풀어주더라고요. 방송 진행은 물론 다른 출연진을 북돋는 모습까지, 역시 프로 방송인이다 싶었어요. 털털하게 던지는 신아영 씨의 멘트들도 뒤돌아보면 방송의 흐름에 꼭 필요한 것들이에요. 티는 안 나지만 신아영 씨는 출연진 중 산소 같은 존재죠. 가수 전범선 씨의 예능 캐릭터도 프로그램의 활력을 위해 꼭 필요합니다. 특히 저보다 추리에 뛰어난 분들이 있어 놀랐어요. 내심 추리소설가라는 자부심에 누구보다 잘 맞힐 것을 자신해 ‘적당히 못하는 척해야지’라는 생각도 있었는데 막상 해보니 정말 어렵더군요(웃음). 심리학을 공부한 배우 이시원 씨는 사람을 꿰뚫는 능력이 있어서 인턴과 멘토 변호사들 간의 미묘한 감정 기류를 잘 포착하더라고요. 이수근 씨의 육감은 놀라울 정도입니다. 법률 지식이나 법조계 생리를 떠나 흐름을 잘 읽어냅니다. 

지금까지 인턴들의 인상을 평가한다면. 

이시훈 인턴은 변호사로서의 자질이 잘 다듬어져 있어요. 임현서 인턴은 톡톡 튀는 매력에 실력도 겸비했습니다. 이상호 인턴의 경우 선한 인상 속 번뜩이는 직관력이 돋보이고요. 이주미 인턴이 보이는 친화력도 변호사의 중요한 덕목 중 하나입니다. 송지원 인턴은 사람과 사건을 다루는 자세가 프로 법조인 못지않습니다. 이강호 인턴은 실제 법정에 선 모습이 궁금하더군요. 자기표현이 분명해서 좌중을 압도할 듯합니다. 승부사 기질이 엿보이는 김다경 인턴도 빼놓을 수 없죠. 매사에 대충이 없습니다. 김현우 인턴은 순수한 열정과 번뜩이는 예리함이 있어 앞으로 성장 가능성이 높다고 봐요. 

법조인 겸 추리소설가라는 이력이 이색적입니다. 


단조로운 판사 생활에서 뭔가 돌파구를 찾다가 마흔 살이 넘어 어릴 때 좋아했던 추리소설을 다시 손에 잡았습니다. 트릭이 기발한 시마다 소지의 ‘점성술 살인사건’이며 괴기와 추리를 절묘하게 뒤섞은 에도가와 란포의 작품 세계에 빠져들었어요. 다만 이런 걸작을 읽을 때는 수용자로서의 즐거움이 더 컸습니다. 나도 모르는 새 차오른 창작 욕구에 방아쇠를 당긴 것은 오히려 졸작들이었어요. 일본의 추리소설 브랜드가 워낙 유명하니까 국내에 별 여과 없이 번역본이 소개되고는 했습니다. 그런데 개중에 트릭에만 매몰돼 사람이 안 보이는 작품들이 있어요. 가령 범인의 범행 동기가 알고 보니 ‘미(美)’의 추구였다든지. 판사로서 실제 범죄를 많이 접하는 입장에서는 어처구니가 없었죠(웃음). 돌이켜보면 패기가 지나쳤나 싶기도 한데, ‘내가 더 재밌게 쓸 수 있겠다’는 생각에 소설 집필을 시작했습니다. 

판사 퇴직 후 변호사 생활은 어떤가요. 


변호사 개업 전과 후 찍은 제 사진을 보면 차이가 잘 드러나요. 판사 시절에는 뭔가 울상인데 요즘 찍은 사진을 보니 개운하게 웃고 있더라고요. 판사는 창의력을 최대한 억제해야 하는 직업입니다. 누군가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판결에 정해진 법과 원칙 외에 다른 것이 개입하면 안 되거든요. 반면 소설가는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생명이잖아요. 변호사가 되니 법조인으로서나 소설가로서나 자유로워 만족하고 있습니다. 

실화에서 영감을 얻은 최신작 ‘합리적 의심’에 반향이 큽니다. 

2010년 이른바 ‘산낙지 살인사건’이 있었습니다. 남녀 연인이 모텔에 함께 투숙했는데 남성이 여자친구가 산낙지를 먹다 질식으로 숨졌다고 경찰에 신고한 사건입니다.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여자친구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피고에게 1심은 무기징역을 선고했죠. 그런데 2심과 3심에서는 증거 부족으로 무죄가 선고됐습니다. ‘합리적 의심’은 이 사건에서 모티프를 얻었습니다. 실제 판결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다만 진실과 정의에 대한 판사의 고민을 소설로 승화시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최근 3쇄에 들어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법으로는 해소 안 되는 정의에 대한 갈증이 작용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앞으로의 활동 계획이 궁금합니다. 

‘굿피플’ 출연은 제게도 성장의 계기가 된 뜻깊은 경험입니다. 인턴들의 성장을 지켜보는 일이 선배 법조인으로서 뿌듯하고 보람 있습니다. 또 시청자들에게 법조계의 현실이나 법률 상식을 설명하는 제 나름의 역할에도 충실하고자 노력 중입니다. 하지만 역시 추리소설을 쓰는 일이 가장 즐겁습니다. 언젠가는 고향인 추리소설로 돌아가야죠.

사진 지호영 기자 디자인 이지은
사진제공 채널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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