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PEOPLE

#interview #star

잘 자란 22년 차 배우 이세영에게 궁금한 것들

EDITOR 두경아

2019. 04. 15

‘역변’ 없는 고운 얼굴부터 안정된 연기력, 바른 생각까지 “참 잘 자랐다”는 말이 어울리는 배우다. 올해 데뷔 22년 차, 이세영의 아주 특별한 꿈을 공개한다.

‘배우 겸 오피스라이프스타일팀 과장 이세영’. 최근 인기리에 종영한 tvN 드라마 ‘왕이 된 남자’의 주연 배우 이세영(27)에게서 건네받은 명함에는 뜻밖의 타이틀이 적혀 있었다. 배우가 소속사의 ‘과장’이라니, 무슨 일을 수행한다는 뜻일까. 곁에 있던 매니저는 “이세영 씨가 스케줄이 없는 날에는 오늘처럼 소속사 사무실에 나와 청소를 하거나 회사 비품을 체크한다”면서 “그걸 청소팀이라고 할 수 없으니 나름 ‘보그체’로 ‘오피스라이프스타일팀’이라 이름 붙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고 보니 이세영의 명함은 기자들 사이에서 유명했다. 드라마 ‘화유기’ 때는 자신의 사진 위에 이름만 넣었다가, ‘왕이 된 남자’ 이후에는 팀 이름 · 직책(과장) · 회사 전화번호까지 올려 제법 명함의 구색을 갖췄다. 사무실에는 그의 전용 책상도 있다. 

“(명함을 직접 건네면) 주체적인 입장이 된 기분이랄까요? 직장인 같은 마음이 들어요. 스케줄이 없을 때는 회사에 나와서 사람들과 인사하고 밥이라도 먹고 공부도 조금 하려고 해요. 자리에서 딱히 하는 일은 없지만 바깥공기를 쐬는 데 의의가 있는 것 같아요. 청소는… 그냥 앉아 있기 미안하니까 굳이 안 해도 되는 잡다한 일들을 하는 거죠.” 

이세영이 사무실에서 하는 일이 하나 더 있다. 사무실 이곳저곳 여백이 있는 곳에 명언을 써서 붙여놓는다. 마침 인터뷰 장소가 소속사 사무실이었는데, 이 덕분에 기자도 출입문 바로 눈높이에 붙은 ‘세 가지 명언’을 발견했다. 청소와 명언은 공통점이 없어 보이지만, 지저분한 곳을 치우는 것과 명언 게시하는 것은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사람들을 좀 더 행복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이것이 인터뷰를 관통하는 주제가 될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지만 이날 그와 함께한 시간은 방송에서는 볼 수 없었던 자연인 이세영의 진심을 들여다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 

기자가 노트북을 켜고 인터뷰를 준비하는 동안, 이세영은 노트를 펴고 펜을 쥔 채 질문을 기다리고 있었다. 

“실수할까 봐 질문을 적어요. 한 번에 두 가지 이상을 묻는 경우엔 질문 내용을 까먹거나 놓치곤 해서요. 나중에 기사를 보다가 이상하면 무슨 질문을 받아서 그런 답을 했는지 확인해볼 수도 있겠죠.” 



그 모습에 웃음이 났는데, 수첩 위 글씨 또한 너무도 또박또박 예뻐 눈길이 갔다. 

“학교 다닐 때는 필기에 목매는 스타일이었어요. 필기가 잘돼 있어야 마음이 편했죠. 색색의 볼펜과 형광펜으로 정리했어요. 회사가 좋은 이유가 사무용품이 많아서예요.” 

‘필기의 여왕’답게 자신만의 필기 비법도 있었다. 

“필기를 하면서 시험 예상 문제를 함께 정리했어요. ‘~대해서 서술하라’ 이런 식으로. 혼자 질문하고 답하면서 공부를 했죠. 남다른 재능이 없어서예요. 공부 잘하는 아이들은 시험에 뭐가 나올지 보인대요. 저는 그게 안 되니까 혹시 나올 것 같은 문제들은 정리해서 달달 통으로 외웠죠.” 

공부와 대본 암기는 별개인 모양이다. 그는 “대본을 외우는 것은 단기 기억”이라며 선을 그었다. 

“대본은 샤프와 형광펜으로만 정리해요. 아무리 대사를 외워도 기억력에 도움은 안 되더군요. 해당 장면을 촬영하고 나면 단기 기억이라 암기했던 대사가 날아가는 것 같아요. 교과서도 백번 읽으면 외워진다고 하잖아요. 시험공부를 할 때 ‘바를 정(正)’ 자를 그리면서 읽었던 것 같아요. 효율이 떨어지는 스타일이죠. 대본도 여러 번 보면서 외워도 금방 까먹어요.” 

이쯤 되니, 학교 다닐 때 성적이 궁금해진다. 가장 성적이 잘 나왔던 과목은 국어였다. 

“저희 가족들이 유전적으로 국어를 좋아하는 성향을 타고난 것 같아요. 언니도 책을 좋아해요. 대신 ‘듣기’엔 약한 편이에요. 감독님 디렉션은 생업이니 집중해서 듣는데, 평소 대화할 땐 놓치는 게 많아요. 그래서 듣기보다는 ‘읽기’가 주제를 파악하기 더 쉬운 것 같아요.”

휴대전화 메인 화면은 늘 상대 배우 사진

지난 3월 4일 드라마 ‘왕이 된 남자’가 막을 내린 후 그는 촬영으로 중단했던 치아 교정을 다시 시작하고 건강검진을 예약했다. 그의 얼굴엔 드라마가 방영 중일 때는 없던 뾰루지가 생겼다. 긴장이 한 번에 풀어진 탓이었다. 

“촬영 기간에는 뾰루지가 올라오면 손으로 꾸욱 눌러 못 나오게 했어요. 그 정도는 컨트롤해야 중전 아니겠습니까(웃음). 조명을 받아 피부가 번들거리게 보이지 않으려고 파우더를 자주 바르다 보니 트러블이 생기더라고요. ‘이미 이렇게 된 거 어떻게 하나?’ 하는 마음에 메이크업으로 커버하지만 뾰루지가 안 가려지면 그냥 나가는 거죠(웃음). 작품이 끝나면 이렇게 한 번에 다 올라오고요.” 

아직은 극 중 ‘소운’의 캐릭터에서 벗어나기는 이른 시간일 터. ‘왕이 된 남자’는 권력 다툼이 극에 달했던 조선 중기, 임금이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자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쌍둥이보다 더 닮은 광대를 궁에 들여놓으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로 여진구가 왕 이헌과 광대 하선 역을, 그가 중전 유소운을 연기했다. 그는 “가끔 극 중 하선이 생각날 때가 있다”고 한다. 드라마에서 여진구가 맡은 하선과 이세영이 맡은 소운은 가짜 임금과 중전이 아닌 평범한 부부로 재회해 해피 엔딩을 맞았다. 둘의 교제를 바라는 댓글이 무수히 달릴 정도로 여진구와 좋은 케미를 선보인 그는 촬영 기간 내내 하선에게 푹 빠지려고 노력했다. 이를 위해 휴대전화 메인 화면을 여진구의 사진으로 채웠을 정도다. 

“멜로 연기를 위해 상대 배우 사진을 메인 화면에 저장해둬요. 그게 화제가 돼서 여진구 씨와 더 빨리 친해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덕분에 몰입도 금방 됐고요. 2016년 엑소 수호 씨와 웹 드라마 ‘하와유브레드’ 촬영을 할 때도 그랬어요. 작품 준비 기간이 짧은데 사랑의 감정을 표현해야 해서 휴대전화 메인 화면에 수호 씨 사진을 저장했었어요. 채팅방에도 얼굴을 항상 보이게 설정하고요. 그게 연기에 몰입하는 데 도움이 되기에 이후에는 항상 그렇게 하고 있어요.”
 
드라마 촬영 중 몰입하는 그만의 비법이 하나 더 있다. 카메라 앵글 밖에서도 상대 배우를 같은 호칭으로 부르는 것이다. 

“제가 몰입을 방해하는 것들을 피하려 한다는 걸 여진구 씨가 잘 알고 있어서 배려해주셨던 것 같아요. 편하게 이야기하면서도 서로 말을 놓지 않고 ‘전하’ ‘중전’으로 불렀어요. 예를 들면 진구 씨는 제게 ‘중전, 무얼 하고 계시오’ ‘어찌 그리 웃는 게요’ ‘이제 그만하시오’ 하는 식이었죠. 호칭이 사람 사이의 관계를 만든다고 생각해요. 서로 존중이 필요한 역할이었기 때문에 더 깍듯이 불렀지요. 만약 진구 씨가 제게 ‘누나’라고 불렀으면 느낌이 달랐을 것 같아요.” 

그는 여진구에 대해 “나보다 어리지만 배울 게 많은 배우”라며 입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진구 씨는 어릴 때부터 작품 활동을 많이 해서인지 ‘그 나이가 맞나’ 싶을 정도로 의젓하고 성숙해요. 어쩔 땐 오빠같이 듬직하고요. 현장에 대해서도 잘 알아요. ‘이거 준비해서 시작하면, 몇 시쯤 밥을 먹겠다’는 식이죠. 그래서 편하고 재밌었어요. 연기할 때도 의지가 많이 됐는데, 함께하는 배우를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것이 큰 힘이 되더군요.” 

사극은 야외 촬영이 많아 겨울엔 추위, 여름엔 더위와 싸워야 한다. 그는 지난겨울의 추위를 견디기 위해 치마 안에 바지를 겹겹이 입고 버선 안에 양말을 신었다. 그렇게 해도 추운 기색을 숨길 수 없는 순간이 있었다. 

“8회 방송에서 소운이 궁 밖으로 피접을 나갔다가 돌아오다 다리 위에서 하선을 만나는 신이었어요. 우연히 만나 감격스럽게 ‘정녕, 전하십니까?’ 해야 하는데 입이 얼어서 발음이 안 되는 거예요. 발음이 될 때까지 찍고 나중에 방송을 보니 귀랑 코가 빨개져 있더라고요.” 

가장 숨길 수 없는 건 사랑의 감정이 아닐까. 이세영이 연기한 소운은 먼저 하선에게 다가가 입맞춤을 하는 등 적극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낸다. 그는 “나 역시 사랑의 감정을 인지하면 직진하는 편”이라면서, 하선처럼 솔직하게 애정 표현을 하는 스타일을 이상형으로 꼽았다. 

“하선은 두려움이 많은데도 용기 있게 사랑이든 정치든 뜻을 펼치는 멋있는 캐릭터죠. 특히 하선이 사랑하는 마음을 숨기지 않고 애정 표현을 하는 게 좋았어요.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떠보거나 돌려서 표현하기보다는 대놓고 이야기하는 걸 선호하는 편이라 하선의 그런 면에 호감이 갔어요.” 

1997년 어린이 프로그램 ‘뽀뽀뽀’로 데뷔한 그는 지난 22년 동안 영화 ‘아홉 살 인생’ ‘여선생 vs 여제자’ ‘열세 살, 수아’ 등과 드라마 ‘트로트의 연인’ ‘뱀파이어 탐정’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 ‘최고의 한방’ 등에 출연하며 성실하게 연기 내공을 다져왔다. 그리고 좀비 역을 맡았던 전작 ‘화유기’에 이어 이번 작품에서도 녹록지 않은 분장과 촬영을 소화해냈다. 이제는 편한 역할을 맡고 싶지 않은지 물으니 그가 손사래를 쳤다. 

“제가 도전할 수 있거나 지금껏 보여주지 않았던 매력적인 캐릭터면 언제든 환영이에요. 저는 다양한 장르에 도전하고 싶어요. 그중에서도 직업적으로 유능한 역할을 하고 싶어요. 냉철하고 이성적인 전문직 캐릭터요. 제가 정에 많이 휘둘리는 스타일이라 그런가 봐요(웃음). 여성 캐릭터도 지금보다 더 다양해지면 좋겠어요.”


아이들의 꿈 찾아주는 교육 사업이 꿈

이세영은 평소 자신의 기사 댓글을 보지 않는다. 대신 방송에 출연할 때는 실시간 댓글을 확인한다. 자신의 연기에서 거슬리는 게 있는지 파악하기 위해서다. 

“사람들이 저에게 갖는 단점이나 문제점에 대해서는 귀를 기울이는 편이에요. 고칠 부분이 없는지 댓글이나 반응을 살펴보지만, 그 외에 다른 부분은 신경 안 쓰는 편이에요. ‘이런 부분은 아쉽더라’ 하는 내용 위주로 참고하죠.” 

이세영에게 연기 이외의 꿈을 물으니 뜻밖에도 “진로 교육 전문가”라는 답을 내놨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진로를 고민하는 학생들을 상담하면서 도움을 주고 싶다는 것이다. 

“뭘 해야 하고 뭘 잘할 수 있는지에 대해 충분히 고민할 시간이 적어서 중요한 것들을 놓치는 것 같거든요. 단체나 재단을 만들어 어린 친구들을 대상으로 진로를 상담하고 원하는 분야의 교육을 지원하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어요. 많은 분들이 도와주셔야 하고 저도 열심히 일해서 재정적인 부분을 채워야 할 것 같아요.” 

여섯 살 때부터 연예계 생활을 한 그는 이 일이 적성에 맞아 진로에 대해 고민한 적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적성에 맞지 않는 공부를 억지로 하는 친구들을 볼 때마다 안타까웠다고. 

“저희 부모님은 ‘뭘 해도 상관없으니 그 결과만 책임지면 돼’라고 가르치셨어요. 스스로 생각하는 과정이 있었고, 그게 동기부여가 됐던 것 같아요. 어릴 때는 촬영 때문에 학교를 조퇴하거나 결석하면 스트레스가 많았어요. 교과 진도를 놓치고, 친구들하고 함께하는 시간이 줄어드니까요. 그런데 친구들은 ‘땡땡이쳐서 좋겠다’고 하더군요. ‘나는 아쉬운데, 친구들은 학교를 벗어나고 싶어한다’는 걸 알게 됐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행복한 진로를 찾아주는 교육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결국 그의 꿈 역시 다른 사람들이 행복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출발하고 있었다. 그가 사무실 청소를 자청하고, 가슴에 새기고 싶은 명언을 소속사 식구들이 오가며 볼 수 있도록 벽에 붙여놓는 것처럼. 지금도 부지런히 움직이며 “아이들이 스트레스 받지 않고 상처 받지 않고 우울증에 시달리지 않고 건강하게 자라기를, 그리고 아이들이 꿈을 찾아나가는 데 작은 힘이나마 보탬이 되기를” 소망하고 있을 이세영의 진심을 함께 응원한다.

기획 김지영 기자 디자인 박경옥
사진제공 프레인TPC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