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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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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스타 유백이 그리고 김지석의 봄

EDITOR 김지영 기자

2019. 03. 14

데뷔 17년 만에 ‘인생작’을 만난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최근 종영한 드라마 ‘톱스타 유백이’로 큰 사랑을 받은 ‘뇌섹남’ 김지석이 그 감동을 풀어놓았다.

배우 김지석(38·본명 김보석)은 연예계에서 ‘엄친아’로 유명하다. 교육열이 남달랐던 부모 덕분에 영국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고 고등학교 3학년 때 한국으로 돌아와 한국외대에서 독어교육학을 전공했다. 연예계의 내로라하는 수재만 출연하는 tvN 장수 예능 프로그램 ‘뇌섹시대-문제적 남자’(이하 ‘문남’)의 고정 멤버로 굳건히 자리를 지키며 ‘뇌블리(두뇌+러블리)’라는 애칭을 얻기도 했다. 

이런 그가 지난해 10월 tvN 드라마 ‘톱스타 유백이’ 출연을 이유로 ‘문남’에서 일시 하차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톱스타 유백이’는 전남 완도에서 배를 타고 가야 닿을 수 있는 작은 섬에서 대부분의 촬영이 이뤄지고, 한 주에 1회씩 방영하는 드라마였다. 이 작품에서 그는 대형 사고를 치고 유배 가다시피 떠난 외딴섬에서 섬 처녀 깡순(전소민)을 만나 사랑에 빠지는 톱 배우 ‘유백’ 역을 맡았다. 유백은 아이돌 그룹으로 데뷔했을 때부터 줄곧 정상의 자리를 지킨 최고의 톱스타이자 자존감과 자기애로 똘똘 뭉친 나르시시즘의 소유자다. 겸손이나 배려는 안중에도 없던 유백이 촌스럽지만 순박하고 따뜻한 깡순과 티격태격하면서 사랑에 눈뜨고 어릴 적 트라우마를 떨치며 사람다운 모습으로 변해가는 과정은 보는 이들을 시도 때도 없이 웃기고 울렸다. 

고생을 마다하지 않은 노고에 대한 보상일까. 김지석은 1월 말 해피 엔딩으로 막을 내린 이 작품을 통해 “데뷔 17년 만에 인생 캐릭터를 만났다”는 호평과 함께 ‘로코(로맨틱 코미디) 장인’ ‘맘블리(마음+러블리)’ 등의 새 애칭을 얻었다. 맘블리는 보는 이들에게 힐링을 선사하는 사랑스러운 마음을 지녔다는 의미다. 어린아이부터 어르신들에게까지 폭넓은 사랑을 받은 그를 드라마 종영 직후 만났다. 

얼굴이 많이 탔네요. 

원래 피부가 까만 편이에요. 전소민 씨 피부가 워낙 하얀데 극 중에서는 메이크업으로 ‘톤 다운’해서 제 얼굴이 상대적으로 덜 까맣게 보이더라고요(웃음). 



촬영장이 가족 같은 분위기였다죠. 

안 그럴 수가 없는 게 촬영 분량의 70% 이상을 완도에서 배를 타고 가야 하는 ‘대모도’라는 섬에서 찍었어요. 낚시 마니아들이나 찾는 잘 알려지지 않은 섬인데 30~40가구밖에 살지 않고 슈퍼도 없었어요. 그곳에 세트를 지어놓고 한번 섬에 들어가면 2주 동안 촬영을 했어요. 밥차로 삼시 세끼를 해결하고 스태프들과 합숙이나 다름없는 생활을 하면서요. 지난해 8월부터 약 6개월을 그렇게 동고동락하다 보니 전우애 같은 유대감이 생기더라고요. 모두 한마음으로 정성을 쏟은 드라마가 열혈 시청자들에게 뜨거운 응원을 받고 있다는 걸 알았을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어요. 

추위나 더위 때문에 힘들진 않았나요. 

유백이 캐릭터는 의상에 큰 제약이 없어서 추우면 화려한 컬러감이 돋보이는 두꺼운 옷을 입을 수 있었어요. 하지만 가벼운 의상을 입어야 했던 배우들과 스태프들은 엄청 추웠을 거예요. 바닷가가 보이도록 창문을 죄다 열어놓고 촬영해 화면에는 아름답게만 비치지만 남쪽이어도 바닷바람이 정말 차가웠거든요.
 
섬에 있는 동안 가장 먹고 싶었던 음식은 뭔가요. 

함께한 60명이 거의 다 그리워한 건 피자, 치킨, 짜장면이었어요. 그 대신 해산물을 원 없이 먹었죠. 

깡순이네 밥상은 정말 푸짐하고 먹음직스러웠어요. 누구의 솜씨인가요. 

‘삼시세끼’와 ‘수요미식회’에도 참여한 푸드 팀요. 넉넉한 시골 인심을 보여드리는 게 관전 포인트 중 하나여서 상차림에 신경을 많이 썼어요. 촬영을 모두 마친 후 다 같이 그 음식을 먹었는데 안타깝게도 저는 다이어트 중이었어요. 노출 신이 많아 근육질 몸매를 유지해야 했거든요. 

초콜릿 복근이 인상적이었어요. 

촬영 3주 전부터 닭가슴살과 소고기 우둔살만 먹으며 몸을 만들었어요.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탄수화물을 끊었고요. 섬 밖에서는 운동기구를 이용해 근육을 단련시키고, 섬 안에서는 노출 신을 찍기 전 팔굽혀펴기, 턱걸이 같은 운동을 집중적으로 했어요. 섬에선 운동하기가 쉽지 않아 단식을 많이 했는데, 그게 유백이의 까칠한 캐릭터를 살리는 데 많은 도움이 됐죠. 먹지 못하니 굉장히 예민해지더라고요(웃음). 

톱스타 유백이처럼 아이돌 가수 출신 연기자더군요. 2001년 그룹 ‘리오’로 데뷔한 후 배우로 전업한 이유는요. 

공부를 굉장히 잘했던 형처럼 되고 싶었는데 역부족이더군요. ‘어떻게 하면 나도 부모님에게 인정받을 수 있을까’ 생각하다 연기로 눈을 돌리게 됐죠. 서울 여의도에 있는 연기학원에서 배우의 꿈을 펼쳐보려고 할 무렵 우연치 않게 길거리 캐스팅이 됐어요. 2000년대 초반 아이돌 그룹이 엄청나게 쏟아질 때였죠. 하늘의 뜻인가 싶어 아이돌 그룹으로 데뷔했는데 잘 풀리지 않았어요. 다시 연기자의 길을 가고자 기획사에 들어가 2003년 드라마 ‘상두야 학교 가자’의 엑스트라로 연기 활동을 시작했어요. 

유백이와 닮은 점과 다른 점을 꼽는다면. 

배우 전향이 결핍에서 비롯됐다는 점이 닮았어요. 유백이가 어머니에게 받은 상처와 배신감, 유년기에 받지 못한 사랑이 동기를 부여해 어떻게든 톱스타가 되려고 한 것처럼 저도 처음에는 부모님에게 인정받고 보여드리기 위해 배우가 됐거든요. 자신에게 닥친 문제를 풀어나가는 방식이나 위안을 얻는 상대는 다른 것 같아요. 

이번 드라마를 찍으면서 누구에게 위안을 받았나요. 

이번 작품은 제게 힐링 그 자체였어요. 특히 유백이에게 많은 것을 배웠어요. 유백이는 깡순이를 만나기 전엔 자기애가 강한 톱스타였어요. 부와 명예를 다 가졌지만 그 이면에는 누구보다 외롭고 마음이 허한 인물이죠. 그런 유백이가 자신과 완전히 다르게 살아온 사람들을 만나며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힐링하며 성장해나가는 과정을 따라가면서, 바닥을 친 후에도 다시 제자리를 찾고 행복하게 자기 일을 즐기는 모습이 부러웠어요. 새로운 캐릭터를 만나다 보면 본연의 나를 잃어 휘청거릴 때도 있고, 다른 것에 기댈 때도 있거든요.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치유를 받고 아름다운 성장을 이루는 유백이를 닮고 싶어요. 그동안 촬영으로 인해 먹고 싶은 대로 못 먹고, 자고 싶은 대로 못 자는 결핍을 경험하면서 지금까지 제가 당연시하던 것들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 것도 이번 드라마를 통해 얻은 큰 소득이에요. 

힘들고 지쳐 슬럼프에 빠질 땐 어떻게 헤어나나요. 

그때그때 달라요. 친한 친구에게 위안을 얻거나 혼자 여행을 하면서 마음을 추스르기도 하고, 가족의 힘으로 극복하기도 해요. 힘들 때 찾아가면 부모님은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저를 받아주시고 제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시니까요. 그런데 부모님이라는 이유로 제가 당연하게 여겨온 그런 면들이 실은 당연한 게 아니었어요. 깡순이를 만난 후 엄마와 남은 숙제를 풀어가는 유백이를 통해 가족이면 서로 불화가 있더라도 다가가야 하고, 그동안 부모님이 제 마음을 어루만져주신 것처럼 아들로서 제가 부모님을 헤아려드릴 부분도 있다는 것을 배웠어요. 

지금 무척 행복해 보여요. 

너무 행복해요. 뭐든 원 없이 먹을 수 있어서요. 그 낙으로 살아요. 하하하. 그리고 유백이에게 배운 걸 실천하려고 가족들에게 각각 만남을 청했어요.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을 잘 헤아리지 못한 것 같아 한 명씩 만나고 있어요. 먼저 남동생과 따로 만나 많은 이야기를 들었고, 내일은 아버지랑 데이트가 있어요. 아버지와 밖에서 술을 마셔본 적이 없어서 무척 기대돼요. 아버지가 술을 잘 못 드세요. 와인도 조금밖에 못 드시는데 내일은 만취하게 만들려고요. 내가 알지 못하는 아버지의 다른 모습을 보고 싶어요. 

술자리를 즐기는 편인가요. 

술자리가 서로 거리를 좁히고 유대 관계를 돈독하게 하는 힘이 있더라고요. ‘보석상자’(김지석이 데뷔한 2001년에 생긴 그의 팬클럽) 회원들과 봉사 활동을 할 때나 ‘정모(정기 모임)’에 예고 없이 가서도 같이 술자리를 갖곤 해요. 다행히 주사가 없어요. 기분 좋게 마시는 주량이 그때그때 다른데 술 마시고 실수한 적은 없어요. 

가족들에게 특별히 하고 싶은 얘기가 있나요. 

깡순이가 유백이에게 했던 “그짝 참 좋은 사람이에요”라는 말과 “괜찮아요. 모두에게 좋은 사람일 필요는 없어요”라는 말이 가슴 깊이 와 닿았어요. 그 말을 부모님과 형제에게 해주고 싶어요. 저로 인해 가족들의 신상까지 노출돼 불편을 겪는 부분에 대한 마음의 짐을 덜어드리고 싶거든요. 그래서 아버지가 취한 모습을 보고 싶은 거예요. “아빠, 휘청거려도 돼요. 늘 곧으실 필요 없어요”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깡순이와 사랑의 결실을 이루는 유백이를 보면서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을 법해요. 미래를 함께 꿈꾸고 싶은 여성상이 있다면. 


정해놓은 이상형은 없어요. 이제 결혼도 생각해야 하고, 연애도 그냥 좋아하는 푸른 마음으로만 할 수 없는 나이니까 제가 아쉬운 처지잖아요. 저는 많은 걸 바라지 않아요. 제 장점이, 상대의 장점을 많이 보려 하는 거예요. 단점이 커버될 정도로요. 대신 저와 코드는 맞아야 할 것 같아요. 

그런 사람을 만나면 공개 연애를 할 의향이 있나요. 

상대적일 것 같아요. 상대가 같은 직종에 있는지 일반인인지, 또 어떤 성향인지에 따라서요. 다만 공개 연애는 둘만의 연애가 아닌 모두의 연애가 될 수도 있어서 어떤 상황에서든 조심스러울 것 같아요. 

인생의 나침반 같은 좌우명은 뭔가요. 

‘몸도, 마음도 건강한 사람이 되자’요. 유백이처럼 제 자신을 계속 성장시키고 발전시키고 싶은데 그러려면 배우이기 이전에 어떤 캐릭터든 담을 수 있는 건강한 사람이 돼야겠더라고요. 

차기작은 정해졌나요. 

아직 결정된 작품은 없어요. 제가 작품이 끝나면 재충전할 시간이 좀 필요한 타입이에요. 당분간은 저를 위한 시간을 갖고 싶어요. 

섬 생활이 잘 어울리던데 앞으로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 ‘삼시세끼’에 출연해보는 건 어때요. 

진짜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바람이 어디에서 어디로 부는지, 밀물과 썰물 때가 언제인지 알게 됐거든요. 게다가 요리도 잘하는 편이에요. 어머니가 전주 분이라 손맛이 정말 좋은데 제가 독립할 때 요리 레시피를 다 전수해주셨어요(웃음).

디자인 김영화 사진제공 제이스타즈 엔터테인먼트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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