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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효진의 소환

대도시 비정규직 여성의 싱글 라이프가 스릴러가 될 때

EDITOR 김지영 기자

입력 2019.01.03 17:00:02

최근 1년 동안 모든 것을 내려놓고 쉼을 택했던 공효진이 ‘일상의 스릴러’로 돌아와 그녀가 아니면 안되는 이유를 보여주었다.
공효진의 소환
2018년 12월 5일 개봉한 영화 ‘도어락’은 지금껏 우리가 알고 있던, 캔디 같은 공효진(39)의 연기를 모두 잊게 하는 스릴러물이다. 이 영화는 평범한 직장인 경민이 혼자 사는 오피스텔의 도어록 덮개가 열려 있는 것에 의심을 품으면서 실체를 알 수 없는 낯선 자에게 쫓기는 이야기를 숨 가쁘게 그린다. 주연 배우 공효진조차 “스릴러를 좋아하는 ‘강심장’만 보라”고 말할 정도로 ‘도어락’은 관객을 극도의 공포로 몰아넣는다. 

공효진이 스릴러 영화에 출연한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2016년 출연한 ‘미씽:사라진 여자’(이하 ‘미씽’)로 이듬해 한국영화촬영감독협회가 주관하는 황금촬영상영화제에서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그는 이번 영화에서도 동공의 떨림과 호흡의 강약까지 조절하며 조금씩 다른 공포의 감정을 담아냈다. ‘싱글라이더’ 이후 1년 10개월 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온 그와 조용한 카페에서 커피를 사이에 두고 마주했다. 그가 먼저 물었다. “영화 어떠셨어요?”


공효진의 소환
스릴러물을 워낙 좋아해서 흥미진진했어요. 다만 용기가 없는 경민이 자신의 집 열쇠로 열리는 낯선 공간에 두 차례나 들어간 것이 납득이 안 되더라고요. 

저도 안 들어가고 싶었어요. 하하하. 그 문이 열릴 때 경민이도 경비를 대동해 들어가고 싶었을 거예요. 하지만 경비원이 자기 때문에 혼나기도 했고 살인 사건을 겪은 직후여서 문을 활짝 열어놓는 것으로 안심을 한 거죠. 그 안에 뭔가를 찾으러 들어간 것은 긴장감을 유지하기 위한 영화적 장치고요. 그래도 인적이 뚝 끊긴 폐가에 들어가는 건 말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스릴러를 싫어해요. 저도 그런 장면에서는 ‘대체 왜 들어가니? 왜?’ 하면서 보거든요(웃음). 

‘미씽’에 이어 다시 스릴러를 선택한 이유는요. 



장르에 꽂힌 건 아니에요. ‘미씽’은 사라진 인물의 행방을 쫓는 미스터리 스릴러고, 이번 작품은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휩싸이는 것이 포인트여서 두 영화의 장르가 같다는 생각을 못 했어요. 사실 ‘미씽’은 대본이 너무 좋아서 출연했어요. 이번 영화를 연출한 이권 감독이 바로 ‘미씽’을 연출한 이언희 감독의 남편이에요. 이번 작품은 순전히 이권 감독과의 깊은 인연 때문에 하게 된 거예요. 

이권 감독과 어떤 인연이 있기에요. 

감독님과는 제 데뷔작인 ‘여고괴담2’(1999)에서 배우와 연출부 막내로 만났어요. 사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관계는 아니었지만 만나면 반가운 ‘오빠’였어요. 촬영하는 날이면 감독님에게 “오빠, 집에 언제 갈 수 있어요? 몇 시에 끝나요?”라고 묻곤 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해요. 그 현장에서의 추억이 제겐 첫정으로 남아 있기에 당시 함께한 사람들이 모두 잘되길 바라죠. 이번 작품도 다른 감독이 제안했으면 고민 없이 거절했을 거예요. 원래 대본이 처음부터 마음에 드는 걸 하지, 마음에 안 든다고 수정해달라고 요구하는 스타일이 아니거든요. 그런데 이번에는 감독님에게 “이런 점들을 바꿔주시면 이 매력 없는 여주인공을 제가 한번 해볼게요”라고 약속했어요. 이씨 부부와의 의리를 지키려고요(웃음). 

이씨 부부를 다 겪어본 느낌은요. 

둘이 성별이 바뀐 것 같아요. 이권 감독이 더 곰살맞고 다정다감하거든요. 이언희 감독은 무뚝뚝한 편이에요(웃음). 

이권 감독이 공효진 씨를 오랫동안 설득했다고 들었어요. 

사실이에요. 2017년 2월 ‘싱글라이더’ 개봉 후 1년간 스스로 안식년이다, 생각하고 무조건 쉴 계획이었기 때문에 출연 제의를 모두 마다했어요. 소속사에도 대본을 안 주면 좋겠다고 얘기했고요. 그런데 ‘1년간 재충전의 시간을 가져야겠다’고 마음먹을 무렵 ‘도어락’ 시나리오를 받았어요. 감독님이 공항까지 와서 직접 주고 가셨는데 일단은 마음 편히 쉬고 싶어서 촬영을 미루다가 꼭 1년이 지난 후 크랭크인에 들어갔죠. 


공효진의 소환
영하 20℃의 혹한 속에 촬영했다고 하더군요. 

2018년 초부터 8월 말까지 촬영했는데 지난겨울이 굉장히 추웠어요. 체감온도가 실제 기온보다 훨씬 낮았어요. 오죽하면 감독님이 수면 양말을 신고 있는 설정을 넣을까 고심하실 정도였죠. 롱 패딩이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했는지 몰라요. 

배우의 안식년은 어떤 시간인가요. 

마냥 쉬었어요. 발리에서 아이 둘 낳고 사는 친한 친구도 만났고요. 마침 그 친구네 이웃이 한 달 정도 집을 비울 거라는 얘기를 듣고 거기서 짐 풀고 지냈어요. 혼자 있는 게 좀 무서워서 발리의 시베리안 허스키랑 같이 살았어요. 주인 잃은 아픈 개였죠. 그 개가 설사를 계속해서 애를 먹었어요. 기생충 때문에 약을 엄청 먹여야 하는데 처음 만난 개라서 좀 무섭기도 했어요. 어릴 때부터 제가 키운 개가 저를 물었을 때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거기서는 ‘이 개가 이러다가 나를 물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일더라고요. 하지만 힘없이 만날 누워 있는 녀석이라 걱정할 만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어요. 그 개를 한 달간 돌보다 새 주인을 찾아주고 왔어요. 

안식년을 가진 결정적 계기가 뭔가요. 

너무 쉼 없이 오다 보니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고, 저번에 했던 작품을 다시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반복됐어요. 그렇게 긴장감 없이, 두근거림이나 설렘 없이 작품에 임하다 보니 매너리즘에 빠진 느낌이었어요. 현장에서 이해가 잘 안 되는 것이 있어도 괜찮겠거니 하고 넘어가고, 그렇게 타협이 쉬워지다 보니 ‘이제 내가 하는 작품이나 연기가 재미없어지겠구나! 정신 차리자!’는 생각이 번쩍 들었어요. ‘크게 후회할 일이 생기기 전에 이런 문제의식을 갖고 있을 때 바로잡아보자’는 각오로 안식년을 가진 거예요. 

계획대로 충분히 쉬었나요. 

1년이나 쉬다 보니 연기를 다시 하고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번 작품을 하게 된 것도 연기가 고파서였어요. 이 작품으로 얼마나 힘들고 괴로울지, 얼마나 어깨가 무거울지, 얼마나 실망하게 될지, 얼마나 상처 받을지 염려를 하면서도 크게 봤을 때는 그것이 배우로서 성장하는 계기가 될 거라는 믿음이 있었어요. 

드라마에서는 로맨틱 코미디의 여주인공을 주로 맡고, 영화에서는 장르 불문 다양한 시도를 해왔어요. 그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많은 사람들이 응원하는 캐릭터를 통해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드라마를 좋아해요. 그러다 보니 주로 로맨틱 코미디를 하게 됐고, 그 작품들이 인기를 끌면서 로맨틱 코미디가 저의 주특기가 됐죠(웃음). 그에 비해 영화에서는 좀 더 용감한 선택을 해온 게 사실이에요. 제가 맡은 역할이 작아도 개의치 않았고요. 그동안 출연한 영화들을 돌아봐도 ‘미쓰 홍당무’(2008) 외에는 제가 원 톱으로 영화를 끌고 간 적이 없어요. ‘싱글라이더’에서는 워낙 작은 배역을 맡아 인터뷰를 하면서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나 고민이 될 정도였죠. 제가 영화에서 그런 선택을 계속하는 건, 다양한 장르를 해보고 싶어서라기보다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 욕구가 크기 때문이에요. 기시감이 드는 역할이 아닌 새로운 시도를 하면서 연기하는 재미를 느끼고 싶어서요. 

차기작도 이미 결정됐다죠. 

‘가장 보통의 연애’라는 가제의 영화예요. 그 작품은 로맨틱하지 않아요. 지금껏 해온 로맨틱 코미디와는 결이 다른 현실 로맨스거든요. 

공효진 씨도 혼자 산다고 들었어요. 이번 영화 주인공을 공감하는 지점이 많았을 것 같아요. 


사실은 공감하는 부분이 많지 않았어요. 감독님에게도 “누가 경민이처럼 만날 집에다 남자 팬티를 걸어놓고, 현관에 남자 구두를 두느냐”고 말했더니 “그런 여성이 정말 많다”며 “그렇게 해두면 남자가 있는 걸로 생각하고 ‘패스’한다”고 하더라고요. 그 지점에서는 잘 이해되지 않았지만, 저도 저희 엄마가 이사한 집으로 착각하고 남의 집 도어록을 막 누른 적이 있어서 ‘그때 집주인이 얼마나 불안했을까?’ 하고 새삼 돌아보게 됐어요. 잘못 누른 사람이 저라는 것을 알면 뭐라 생각할까 싶어서 후다닥 도망쳤었거든요. 

‘혼자’ 사는 것 때문에 공포감을 느껴본 적은요. 

혼자 살아서라기보다 깜깜한 공간에서는 잠을 못 이뤄서 스탠드를 켜놓고 자요. 그러다 강아지가 막 짖으면 화들짝 놀라요. 그럴 땐 화가 나더라고요. 그 녀석이 잘못한 게 아닌 걸 알면서도요. 지금 개를 세 마리 키우고 있어요. 제가 집을 비울 땐 엄마, 아빠가 왔다 갔다 하며 돌봐주시죠. 그 녀석들이 있어서 아주 든든해요. 

공효진 씨에게도 트라우마가 있나요. 

교통사고가 크게 난 적이 있어요.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2014)를 찍을 때 뒤에서 오던 운전자가 졸음운전을 해서 발생한 사고였어요. 그 사고로 팔목 뼈가 부러지고 인대가 끊어지고 그랬어요. 이미 7~8회 촬영을 진행해 그만둘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요. 결국 깁스를 하고 찍었는데 그 일이 있은 후로는 차 안에서 졸 때 몸이 경직되곤 해요. 그렇다고 차를 못 타거나 하지는 않아요. 그저 불편함을 느끼는 정도의 트라우마죠. 

요즘은 ‘혼술’이 대세더라고요. 집에서 혼술을 즐기는 편인가요. 

실은 소주 한 잔만 마셔도 취한답니다. 혼술을 하면 얼굴이 굉장히 빨개지고 심장이 마구 뛰어요. 열감 때문에 피부가 예민해져서 애써 케어를 받은 것이 소용없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일 때문에라도 안 마셔요. 지금까지 만취한 적도, 필름이 끊긴 적도 없어요. 

드라마나 영화 뒤풀이 때는 술이 빠지지 않잖아요. 그럴 땐 어떻게 대처하나요. 

적당히 마셔요. 알코올 분해 효소가 없는지 술이 들어가면 소량에도 순식간에 전신이 빨개지니까 한 잔 마시면 주위에서 더는 안 권해요. 오히려 그만 마시라고들 하죠. 가장 잘 마시게 생겼는데 제일 못 마신다고 놀라더라고요. 하하하. 


언론 시사회에서의 공효진. 패셔니스타로서 그녀의 위치는 아주 특별하다.

언론 시사회에서의 공효진. 패셔니스타로서 그녀의 위치는 아주 특별하다.

새해의 버킷 리스트는요. 

전원생활을 꼭 해보고 싶어요. 최근 전원생활을 그리는 ‘잠시만 빌리지’라는 예능 프로그램의 예고편을 봤는데, 너무 좋더라고요. 

10년 후의 자화상을 그려본다면요. 

지금과 큰 차이 없이 살고 있을 것 같아요. 

그땐 누군가의 아내, 엄마가 돼 있지 않을까요. 

장담할 수 없어요. 저는 지금 제 인생에 만족하고 있어요. 힘들 때도 있고, 고충도 많지만 그럭저럭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해요. 제 인생의 큰 틀을 바꾸는 걸 미루고 싶어요. 이대로도 괜찮은데 다른 변화를 취하는 게 귀찮기도 하고요(웃음). 

마지막으로, 이번 영화를 보러 갈 관객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이 영화가 추운 겨울, 심박 수와 체온을 올려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스릴러 마니아인 강심장들만 오셔서 극강의 쫄깃함을 맛보시길 바랍니다. 관객이 많이 들면 좋지만 너무 무서워 잠을 설치게 될까 송구한 마음이에요. 하지만 마냥 무섭기만 한 작품은 아니에요. 영화가 끝났을 때는 통쾌함이나 승리감이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그것이 제가 마지막까지 이 영화에서 포기할 수 없는 지점이기도 했고요. 극장을 찾는 모든 분을 찾아뵐 순 없지만 다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사진 김도균 디자인 김영화
사진제공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여성동아 2019년 1월 66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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