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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star #interview

멜로 없이, 그냥 송승헌을 보는 재미

EDITOR 김지영 기자

2018. 12. 10

최근 종영한 드라마 ‘플레이어’에서 ‘사기꾼’ 캐릭터를 소화하며 다시 10대 팬들의 소환을 받은 데뷔 23년 차 배우 송승헌. 한 통의 팬레터가 인생을 바꿔놓았다는, 배우의 순도 100% 고백.

지난 11월 11일 종영한 OCN 드라마 ‘플레이어’는 배우 송승헌(42)의 연기 인생에 한 획을 그을 만한 작품이었다. 그에게 굳은살처럼 박여 있던 착한 남자 이미지를 허물고 연기자로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사기꾼, 드라이버, 해커, 파이터 등 각 분야 최고의 능력자 4인방이 검은 돈을 쫓는 이 드라마에서 그는 법 위에서 노는 사기꾼 강하리를 연기했다. 강하리는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 뒤에 감춰진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 사법고시를 최연소로 수석 합격한 과거를 숨긴 채 살아가는 인물이다. 빨강, 파랑 슈트를 유니폼처럼 입고 다니며 악당들을 통쾌하게 응징하는 그의 모습은 시청자들에게 송승헌의 매력을 재발견하는 기쁨을 선사하기에 충분했다. 종영 후 그 여운을 안고 기자와 마주한 송승헌은 이번 작품에 대한 만족감을 숨기지 않았다.

멜로 라인이 없는 작품에 출연한 건 이번이 처음인 것 같아요. 

작년에 출연한 OCN 드라마 ‘블랙’도 멜로 성향은 있었지만 그걸 부각시키진 않았어요. 그 작품을 하면서 장르물의 매력을 알게 됐죠. 인물들 간의 갈등을 깊이 있게 다루다 보니 제가 그동안 했던 가슴 아픈 멜로 연기가 헐겁게 느껴지더라고요. 케이블 채널의 드라마에 출연한 건 ‘블랙’이 처음이었는데 표현 수위에 대한 제약이 덜해서인지 지상파 드라마는 엄두를 낼 수 없는 다양한 시도가 가능하더라고요. 시청자들도 그런 면에 열광하는 것 같고요. 

이번 작품에 출연한 것도 장르물에 매료돼서인가요. 



그런 면도 있고, 작품을 하며 시청자들로부터 “송승헌을 다시 봤다. 저런 면이 있었어?”라는 말을 듣는 것이 연기자로서 뿌듯했어요. 저에 대한 선입견이 대중의 마음에 강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는 것도, 저의 새로운 도전을 응원하는 분들이 많다는 것도 새삼 깨닫게 됐고요. 

이번 작품은 같은 케이퍼 무비 형식의 드라마인 ‘블랙’과 어떤 차이가 있었나요. 

‘블랙’은 복선이 많이 깔려 있어서 한두 번 흐름을 놓치면 이해하기가 어려운 측면이 있었어요. 그런데 이번 작품은 매회 에피소드가 바뀌고 무거운 사건을 경쾌하게 다뤄서 시청자들이 편하게 받아들였어요. 

‘플레이어’를 연출한 고재현 PD가 “친한 지인들과 있을 때 송승헌 씨 모습을 염두에 두고 강하리 캐릭터를 만들었다”고 했어요. 그 말을 듣고 원래 어떤 성격인지 궁금했어요. 

낯을 많이 가려서 낯선 자리에 가면 뚱하고 있어 오해를 사는 경우도 있어요. 근데 지금까지 계속 만나는 중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같이 있으면 그 자리를 편하게 즐겨요. 고재현 PD님과도 사석에서는 호형호제하는 사이예요. PD님이 2003년 방영된 ‘여름 향기’라는 드라마의 조연출일 때부터 알고 지냈거든요. ‘블랙’의 B팀 연출을 맡으셔서 오랜만에 만났는데 그때 PD님이 저한테 “케이퍼 드라마를 준비 중”이라며 강하리 역을 처음 제안하셨어요. “운동하고 놀 때, 편한 사람과 있을 때의 송승헌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연출된 모습 말고 장난기 많은 원래 네 모습으로 강하리 캐릭터를 잡아보자”면서요. 촬영할 때도 제가 몸에 밴 연기 습관 때문에 심각한 장면에서 진지해지려고 하면 PD님이 “쿨하게 웃으면서 연기하면 좋겠다. 조금씩 부족한 친구들이 모여서 사회에 숨어 있는 돈을 터는 얘기니 경쾌하고 지루하지 않게 가자”고 주문하셨어요. 이렇게 날림으로 해도 될까 싶을 정도로 정말 편하게 연기했는데 PD님이 원한 것도 코미디 같은 B급 정서였어요. 실화를 모티프로 했지만 현실과 달리 경쾌하고 통쾌한 드라마여서 많은 분들이 공감해주신 것 같아요. 

10여 년 전 이병헌 씨가 인터뷰를 하면서 친한 후배로 송승헌 씨를 꼽았던 기억이 나요. 지금도 친한가요. 

그럼요. 병헌이 형은 제가 데뷔 전부터 좋아하던 배우고, 같은 연기자로서도 닮고 싶은 선배예요. 신인 때 ‘해피투게더’(1999)라는 드라마를 같이하면서 병헌이 형과 친해졌어요. 심은하 선배와 형이 주연한 ‘아름다운 그녀’(1997)라는 드라마에 제가 잠깐 출연한 적도 있고요. 개그맨 신동엽 씨도 제가 무척 좋아하는 형이에요. 동엽이 형하고는 제 데뷔작인 시트콤 드라마 ‘남자 셋 여자 셋’(1996~99)을 같이하면서 친해졌죠. 동엽이 형은 저한테 은인이에요. 시트콤 할 때 잘릴 뻔했는데 동엽이 형이 담당 PD에게 좀 더 두고 보자고 말해 계속 버틸 수 있었거든요. 

이번에 ‘플레이어’ 4인방으로 함께한 다른 배우들과의 호흡은 어땠나요. 

저희가 대본 연습 날 처음 만났어요. 파이터 역을 한 (태)원석이는 첫 주연을 맡아 현장을 낯설어했고, 해커 역의 (이)시언이도 밝고 재밌는 친구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내성적이더라고요. 드라이버 역을 맡은 (정)수정이도 친한 사람들에겐 허물없이 다가가는데 낯선 곳에선 얼음처럼 변하더군요. 빨리 친해지는 게 관건인 것 같아 촬영장에서 그 친구들과 늘 같이 있으려고 노력했어요. 그렇게 하루, 이틀이 지나면서 편하게 지낼 수 있게 됐죠.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친구들도 저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더라고요. 어려운 선배여서 선뜻 다가오지 못했던 거예요. 정말 환상적인 팀워크 속에서 호흡을 맞추다 보니 종영할 때 많이들 아쉬워했어요. 특히 수정이가요(웃음). 저희끼리 단체 대화방을 만들어 지금도 서로 연락하고 지내요. 

그 배우들과 나이 차가 나는데도 함께 어울리며 친구처럼 지내는 모습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어요. 동안을 유지하는 비결은 뭔가요. 

꾸준한 운동과 금연이 아닌가 싶어요. 담배를 고등학교 때부터 거의 10년간 피우다 2004년에 끊었어요. 영화 ‘인간중독’에서처럼 작품을 위해 흡연 장면이 필요할 땐 금연초를 사용하죠. 운동은 평생 할 생각이에요. 바쁠 때도 틈틈이요. 촬영 때문에 도무지 시간이 나지 않아 운동에 소홀하면 몸 컨디션도 안 좋아지더라고요. 주로 자전거 타기와 웨이트 트레이닝을 해요. 어릴 때는 축구를 좋아했는데 성인이 되니 여럿이 모이기가 힘들어요.
 
평소 마인드 컨트롤을 어떤 식으로 하는지요. 

무슨 일이 생겨도 심각하게 생각지 않아요. 그게 단점일 수도 있는데 일할 때는 장점으로 작용할 때가 많아요. 댓글도 신경 쓰지 않고요. 어릴 때는 신경이 쓰였는데 나이가 들다 보니 악플도 관심의 표현으로 받아들이게 되더라고요. 특히 이번처럼 ‘송승헌이 저런 연기도 해? 새롭다! 다시 봤다!’라는 반응을 접할 땐 큰 힘이 돼요.

이번 작품에 멜로가 빠져 아쉽진 않았나요. 

그래서 더 편했어요.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서 가슴 아파하는 연기는 감정 소모가 많거든요. 범죄물 안에 멜로를 녹이려다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치는 경우도 많이 봤고요. 그런데 얼마 전 TV에서 ‘가을동화’가 재방영됐는데 그 작품처럼 가슴 시리고 눈물을 쏙 빼놓는 클래식한 멜로물을 다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현실에서도 러브 라인이 끊겼어요. 계속 독신으로 지낼 계획인가요.

 
싱글의 삶에 너무도 익숙해져 있지만 독신주의는 아니에요. 저도 결혼을 너무나 하고 싶어요. 남을 부러워하는 성격이 아닌데 결혼해서 아이들을 데리고 나오는 친구들을 보면 부럽기도 해요. 조카들을 좋아해서 제게도 아이가 있으면 정말 잘해줄 것 같아요. 주변에서는 “결혼, 천천히 해”라고들 하는데 결혼해서 행복하게 사는 것이 제 꿈이에요. 

결혼하고 싶은 여성상이 있나요. 

착하고 현명하고 저를 잘 컨트롤하는 분을 만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제가 철이 좀 없거든요. 나이 차는 개의치 않습니다(웃음). 

장르물을 하면서 1020세대 팬이 많이 생겼다죠. 

SNS를 하지 않다가 팬 서비스 차원에서 촬영 현장 사진을 올리곤 했더니 중·고등학생들이 ‘드라마 잘 보고 있다’는 댓글을 남기더라고요. 팬층이 다양해졌다는 것을 실감했죠. 

연기를 오래 해서 매너리즘에 빠질 법한데, 나이가 들수록 연기를 즐기는 느낌이에요. 

제가 1995년 우연히 청바지 회사의 카탈로그 모델로 연예계에 데뷔했어요. ‘스톰’이라는 브랜드였는데 원래는 남성 듀오 듀스의 故 김성재 씨가 메인 모델이고 저와 소지섭 씨가 서브 모델이었어요. 그런데 촬영 열흘 전 김성재 씨가 돌아가셔서 청바지 회사에서도 당시 아무런 인지도 없던 저와 소지섭 씨를 메인 모델로 세우는 모험을 했죠. 그게 좋은 반응을 얻어 ‘남자 셋 여자 셋’에도 출연하게 됐고요. 연기를 처음 해보는 제가 잘했을 리가 있나요. 하도 혼이 나서 이건 내 길이 아니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20대부터 30대 초반까지는 배우 생활을 그만둘 생각을 할 정도로 연기에 재미를 느끼지 못했어요. 그때는 연기를 그냥 돈 버는 수단 정도로 여겼는데 30대 중반에 받은 한 통의 팬레터가 그런 생각을 바꿔놓았죠. ‘당신의 연기가 나한테 감동을 주고 큰 위안이 된다. 남에게 감동을 주는 배우일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라’는 내용이었는데, 마음에 크게 와 닿더군요. 저는 그냥 제 만족을 위해 일을 할 뿐이었는데 제 일이 남에게 감동을 준다는 것이 말로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가슴 벅차더라고요. 그때부터 연기를 정말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열심히 하려고 노력하게 됐어요. 그러면서 연기 욕심이 생기고 작품을 고를 때도 좀 더 신중해졌죠. 특히 최근 3~4년 전부터는 노년까지 이 일을 계속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연기에 재미를 느끼고 있어요. ‘블랙’에 이어 ‘플레이어’에 출연하면서 왜 진즉에 이런 작품을 안 했을까 싶더라고요. 앞으로는 새로운 도전을 적극 해볼 생각이에요(웃음). 

인생의 길잡이가 되어주는 좌우명이 있나요. 

예전에는 ‘매사에 급하게 서두르지 말자’는 생각을 자주 했는데 요즘은 행복에 대한 물음을 제 자신에게 계속 던지고 있어요. 2014년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안 좋은 일로 세상을 떠난 후부터요. 그 일이 굉장히 충격적이었어요. 그 친구가 그렇게 힘들어하는 줄을 몰랐던 게 속상하고요. ‘얼마나 힘들었으면 사랑하는 두 딸을 남기고 갔을까, 인생이란 뭔가’ 싶더라고요. 친구를 떠나보낸 뒤 ‘행복한 삶이란 어떤 것인가?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하는데 아직 답을 얻진 못했어요. 인생은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인 것 같아요.
 
새해가 한 달 남았어요. 새해 소망은 뭔가요. 

보통 작품 한 편을 하다 보면 1년이 가더라고요. 시간이 정말 빠르게 지나가는 것 같아요.그래도 지금은 20대 때보다 마음의 여유가 생겼어요. 배우로서의 목표도 생겼고요. 내년에도 제 자신의 새로운 면을 끄집어낼 수 있는 좋은 작품을 하고 싶어요. 그리고 멋지게 나이 들어가는 배우가 되고 싶고, 제 주변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플레이어’ 엔딩이 시즌2를 기대하게 했어요. 시즌2가 나오면 출연할 의향이 있나요. 

종영 전부터 ‘플레이어 4인방’을 또 보고 싶다는 반응이 많아요. 일단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는 데 성공해 제작진도 시즌2를 긍정적으로 고려하지 않을까 싶어요. 기회가 된다면 저뿐만 아니라 이번에 동고동락한 다른 플레이어들도 기꺼이 출연할 겁니다.

디자인 박경옥
사진제공 더좋은이엔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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