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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게 살진 않을래요 , 김고은

EDITOR 김지영 기자

입력 2018.08.02 17:00:01

불로불사(不老不死)의 도깨비를 사랑하던 김고은이 이번에는 청춘의 고뇌를 이야기한다. ‘값나가게 살지는 못해도 후지게 살진 마라’는 영화 속 대사는 스물일곱 청춘 스타 김고은이 스스로에게 거는 주문이기도 하다.
후지게 살진 않을래요 , 김고은
김고은(27)은 또래 어떤 배우보다 화려한 필모그래피의 소유자다. 2012년 영화 ‘은교’로 데뷔해 각종 영화제의 신인상을 휩쓴 후 ‘몬스터’(2014), ‘차이나타운’(2015) 등에서 장르를 넘나드는 연기 스펙트럼을 선보이며 충무로의 기대주로 자리매김했다. 지난해에는 드라마 ‘도깨비’ 신드롬을 일으키며 TV 팬들마저 사로잡았다. 지난 1년여 동안 많은 작품에서 그를 탐낸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 그가 7월 4일 개봉한 이준익 감독의 신작 ‘변산’으로 스크린으로 돌아왔다. 

‘변산’은 이 감독이 ‘동주’ ‘박열’에 이어 선보인 청춘 3부작의 완결편. 편의점 알바를 하며 빡센 인생을 살아가는 무명 래퍼 학수(박정민)와 그를 고향으로 강제 소환하는 공무원 선미가 엮어가는 훈훈하고 유쾌한 이야기다. 극에서 오랫동안 짝사랑하던 학수의 글솜씨를 동경하다 소설가의 꿈도 이룬 선미로 분하는 김고은은 지금껏 볼 수 없었던 코믹한 연기로 관객을 무장 해제시킨다. 이 역할을 위해 체중을 8kg이나 늘리고 변산 토박이 수준으로 사투리를 익힌 그녀를 만났다.


후지게 살진 않을래요 , 김고은
그동안 많은 작품에서 출연 제의를 받은 걸로 아는데 이 영화를 차기작으로 선택한 이유가 뭔가요. 

예전부터 이준익 감독님과 작업을 해보고 싶었어요. 박정민 선배가 이미 남자 주인공으로 캐스팅돼 있는 점도 끌렸고요. 정민 선배가 ‘파수꾼’(2011)이라는 영화로 데뷔할 때부터 좋은 배우라는 걸 알고 있었거든요. 

박정민 씨와는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 연극원 동문이더군요. 

오빠는 09학번이고 저는 10학번이어서 같은 시간대에 수업을 들었어요. 그때부터 친한 선후배 사이였는데 연기를 함께한 건 ‘변산’이 처음이에요. 

연기 호흡은 어땠나요. 

너무 좋았어요. 원래 친한 사이여서 현장에서 친해질 시간이 필요치 않았고, 굳이 말하지 않아도 감지되는 부분들이 있어 서로 배려하며 편하게 작업했어요. 

코미디 연기를 이렇게까지 잘할 줄 몰랐다는 평이 많아요. 


의도적으로 코믹하게 보이려고 한 건 아니에요. 그 신 안의 감정에 그대로 녹아들려고 노력하다 보면 재미있는 장면이 되더라고요. 개인적으로는 멀리 떨어져 있는 학수를 보며 사투리로 욕하는 장면이 기억에 남아요. 제 애드리브를 상대가 잘 받아칠 때 기쁨을 느껴요. 히힛. 

전라도 사투리도 ‘원어민’ 수준이라는 반응이에요(웃음). 

사투리를 익히는 데 어려움이 많았어요. 촬영에 들어가기 한 달 전부터 사투리를 가르쳐주시는 선생님을 붙잡고 억양부터 새로 잡아나갔어요. 촬영 현장에서도 잘못된 부분을 체크하면서 연기하고요. 

이번 작품을 하며 스스로도 ‘힐링’이 됐다고 들었어요. 

작품 자체가 유쾌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즐길 수 있는 분위기여서 촬영하는 내내 제 나름대로 힐링이 됐어요. 전작들도 즐겁게 촬영하긴 했는데 심각한 장면에서는 감정적으로 압박감이 들 때가 있었거든요. 

영화 ‘은교’로 데뷔할 때부터 큰 관심을 받아서 이후에 출연한 작품들이 더 부담 됐을 것 같아요. 

너무 감사하게도 첫 작품부터 주연을 맡았어요. 그때가 스물한 살이어서 제 자신을 더 압박하려고 했어요. ‘신인이라는 말을 들을 수 없을 때는 연기 스펙트럼이 넓어져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일부러 더 대선배들과 호흡할 수 있는 작품을 선택하고 그에 걸맞은 배우가 되려고 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제가 짊어져야 하는 책임감과 저를 향한 기대감이 작지 않았지만 그것이 부담으로 다가오진 않았어요. 

자신이 들인 노력보다 결과로 평가될 때는 기분이 어떤가요. 

예전에는 다른 사람들이 제가 노력한 걸 알아주지 않는 부분에 대해 서운한 적도 있어요. 근데 그때마다 제가 역할을 잘 소화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더라고요. 제가 요즘 ‘프로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면서 ‘자신이 맡은 역할을 위해 배우로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는 건 노력이 아니라 당연한 책무’라는 걸 알게 됐어요. 그것을 알아봐주지 않는다고 속상해할 필요가 없는 거죠. 

이번 작품을 준비하며 체중을 8kg이나 늘렸다죠. 

출연을 결정짓고 시나리오를 읽을 때 막연하게 그려지는 선미의 이미지가 있었어요. ‘은교’ 때 은교가 단발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처럼 선미는 왠지 마르지 않은 체형일 것 같았어요. 

영화 속 통통한 느낌이 사라졌어요. 언제 그 살을 다 뺐나요. 


두 달 동안 식이요법과 운동을 꾸준히 병행해 체중을 감량했는데 아직 8kg을 다 빼지는 못했어요. 헬스 트레이너가 갑자기 찌운 살을 두 달 안에 안 빼면 빼기가 힘들다고 하더라고요. 

체중 감량 외에도 캐릭터를 위해 노력한 면이 있나요. 

선미의 성격과 성향에 좀 더 본질적으로 다가가려고 했어요. 어떤 사람은 자신의 감정을 수월하게 표출하는 반면 어떤 이들은 그렇지 못한데 선미는 후자라 생각했어요. 학창 시절 존재감이 없었던 것도 그 때문이지 않나 싶어요. 그런 선미가 예전과 달라진 학수를 향해 주옥같은 대사들을 던지는데, 선미의 원래 성향을 감안했을 때 그 말들을 내뱉기까지 많은 고뇌와 큰 용기가 필요했을 것 같았어요. 스스로 부단히 노력한 과정이 있었을 거예요. 

이번 영화에는 촌철살인 같은 대사가 많아요. 그중 평생 가슴에 새기고 싶은 대사를 꼽는다면요. 

선미가 학수에게 ‘값나가게 살지는 못해도 후지게 살진 마라’고 했던 대사가 인상 깊었어요. 제가 지향하는 삶에 대해 정의를 내려준 대사 같았어요. 

선미 캐릭터와 닮은 점, 다른 점은요. 

저도 제 생각을 입 밖으로 말하는 걸 불편해하는 편이에요. 그런 말을 하는 자체가 상대에게 고문일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근데 제게 선미처럼 현명한 면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고, 노래방에서의 선미는 저와 비슷한 면이 있었어요. 평소 제 생각을 표출하는 공간이 노래방이거든요(웃음). 제 큰 행복 중 하나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거 먹고 술 한잔하는 거예요. 쉴 땐 주로 그런 걸 하고 노래방에도 자주 가요. 촬영이 시작되면 어쩔 수 없이 단절된 상태로 지내야 하니까요. 

애창곡이 뭔가요. 

그때그때 달라요. 어제 노래방에 갔을 때는 ‘쑥대머리’라는 곡을 불렀어요. 음치를 찾는 예능 프로그램 ‘너의 목소리가 보여’를 즐겨 시청하는데, 한번은 창을 하는 분이 나와 거미의 ‘아니’와 함께 ‘쑥대머리’를 열창했어요. 그 모습이 너무도 인상적이어서 그분이 실력자일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 하하. 그 노래 덕분에 러시아 월드컵 경기를 관전하기 전 마음을 다잡는 데 도움이 됐어요. MC 스나이퍼의 ‘글루미 선데이’, 리쌍의 ‘광대’, 산이의 ‘아는 사람 얘기’, 윤미래의 ‘검은 행복’ 같은 힙합 곡도 좋아해 랩을 다 외워서 불러요. 노래가 너무 하고 싶을 땐 혼자 노래방에 가기도 해요. 여러 사람이 함께 갔을 때 노래를 연달아 혼자 부르는 건 노래방 예의가 아니거든요(웃음). 


후지게 살진 않을래요 , 김고은
자연인 김고은을 요즘 설레게 하는 게 있다면요. 

축구요. 월드컵 보면서 설렜어요. 그리고 새로운 것을 해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설레더라고요. 제가 다이빙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다이빙 명소에 가면 ‘심쿵’ 합니다. 

만약 영화를 제작하거나 기획할 기회가 생긴다면 어떤 작품을 만들어보고 싶나요. 

‘비긴 어게인’ 같은 음악 영화요. ‘헤드윅’ ‘시카고’ 같은 뮤지컬 영화도 애정해요. 영화를 품은 음악도, 음악을 시각화한 영화도 굉장히 매력적이죠. 

음악을 좋아하나 봐요. 

작품을 할 때도 즐겨 들어요. 촬영에 들어가기 전 시나리오와 어울릴 것 같은 음악을 들으며 안정감을 찾기도 하고 연기할 때 필요한 감정을 끄집어내기도 하죠. 

뮤지컬에 도전해보고 싶지 않나요. 

제가 할 수 있을까요. 춤에 재능이 없거든요. 이번 영화에서도 정민 선배는 탭댄스를 비롯해 다양한 춤을 소화했는데 저는 아무리 노력해도 율동 수준을 못 벗어나더라고요(웃음). 노래는 취미로 남기는 걸로요. 

그동안 로맨스물에서 멋진 남자들을 많이 만났는데 실제 이상형은 어떤 타입인가요. 

코드가 잘 맞고 웃는 모습이 환한 남자요. 저와 웃음과 슬픔 포인트가 비슷한 사람이면 좋겠어요. 저는 슬픈데 상대가 전혀 공감하지 못하면 사귀기 힘들 것 같아요. 


후지게 살진 않을래요 , 김고은
1991년 서울 태생인 김고은은 세 살 때 사업가인 아버지를 따라 중국으로 건너가 살다가 중학교 1학년 때 귀국했다. 영화광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많은 영화를 접하며 영화 스태프나 시나리오 작가를 꿈꿨다고 한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계원예고에 진학하고, 고교 재학 시절 연극에 출연하면서 연기에 매료돼 2010년 한예종 연극원 연기과에 들어갔다. 한예종 2학년 때 오디션을 보고 ‘은교’의 여주인공으로 발탁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극 중 선미처럼 지우고 싶은 흑역사가 있나요. 

계원예고 입시를 앞두고 고민이 많았어요. 학원을 다닌 것도 아니어서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난감했거든요. 그때 실기 시험이 시 낭독과 특기를 보여주는 거였어요. 부모님과 준비하면서 학교 측에 수없이 문의 전화를 했죠. 시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특기로 뭘 하면 좋을지 등등. 특기로 뮤지컬 곡을 하면 좋겠다는 얘기를 듣고 정말 막막했어요. 뮤지컬에 대한 감이 전혀 없었거든요. 당시는 드라마 ‘주몽’을 할 때여서 실기 시험 날 ‘하늘이여 제발’이라는 그 드라마의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OST) 삽입곡을 연습해 갔어요. 파란 형광색 집업에 흰색 비니를 쓰고 펑퍼짐한 청바지를 입고 보드화를 신었죠. 그날 저를 본 모든 사람이 “쟤는 분명 비보이다. 춤을 엄청 잘 출 거다” 그랬대요(웃음). 현장에 도착하니 다른 친구들은 정말 전문적으로 준비했더라고요. 어떤 친구는 캉캉 춤을 추려고 캉캉 댄스복을 입고 왔더군요. 시험을 보기도 전에 기가 죽어 질의응답을 하는 도중 너무 떨려서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죠. 심하게 떨다 보니 호흡 조절이 안 돼 노래도 제대로 못 했어요. 집에 가서 엄마를 부여잡고 “나, 떨어졌어!” 하며 대성통곡을 했죠. 그런데 나중에 합격 통보를 받았어요. 제가 울면서도 꾸역꾸역 노래하는 모습이 순수하고 절박해 보였대요(웃음). 

목표가 생기면 달성할 때까지 집요하게 노력하는 편인가요. 

단기 목표일 땐 그렇게 하는 것 같아요. 고등학교 때 발성이 안 좋다는 얘기를 듣고 1년 동안 매일 운동장을 20바퀴 뛰었어요. 폐활량을 늘리려고요. 

이번에 맡은 인물은 세대 간의 중재자 노릇을 하는 역할이기도 했어요. 선미를 연기하며 구세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나요. 


아주 어릴 때부터 할머니와 살아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모든 세대에 대한 존중심을 갖고 있었어요. 누구나 자기 세대가 가장 힘들다고 느끼겠지만 그것은 획일적으로 비교하기가 어려운 문제인 것 같아요. 각 세대마다 겪는 고충도, 저마다 처한 여건도 다르니까요. 서로 이해의 폭을 넓히려고 노력하다 보면 잘 융합할 수 있는 지점이 생기지 않을까 싶어요. 

김고은 씨에게 할머니는 어떤 존재인가요. 

말이 잘 통하는 친구 같은 존재예요. 저희 할머니는 굉장히 용감하시고 정말 멋진 여성이에요. 할아버지와 일찍 사별하고 5남매를 혼자 힘으로 키우셨어요. 자기 자신을 잘 가꾸시고 유쾌한 면이 많은 분이죠. 할머니를 통해 배운 게 많아요. ‘은교’를 찍을 당시 할머니에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어요. “할머니, 나이가 들면 생각도 늙어?”라고요. 그랬더니 할머니는 “아니, 나이가 들면 육체만 늙어. 철이 드는 것도 언제까지만이고 이후에는 똑같다”고 하셨어요. 제 화장품도 가져다 쓰세요. 할머니와 생활하며 할머니는 물론 부모님 세대를 많이 이해하게 됐어요. 젊은 사람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기성세대도 많다는 걸 알게 됐고요. 

‘변산’은 선미에게 지키고 싶은 공간이었어요. 본인에게도 변산처럼 지키고 싶은 것이 있다면요. 


좋은 배우로 남은 선배들을 보면 배우를 떠나 자연인으로서도 본연의 모습을 항상 잘 간직하고 계시더라고요. 저도 그분들처럼 자연인 김고은의 모습을 잘 지켜내고 싶어요. 가끔 제 본연의 색깔을 잃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그럴 때마다 어떻게 하면 저를 온전히 지켜낼 수 있을까 생각하는데 그게 쉽지 않아요. 해가 갈수록 더 그런 것 같아요. 일하면서 변한 부분도 있고, 배우로서 갖춰진 모습이나 좋은 모습만 보이길 원하게 되더라고요. 

긍정적으로 변한 지점도 있지 않나요. 

데뷔 초에는 낯가림이 무척 심했어요. 제 생각을 자꾸 물어보니까 사람을 대하는 게 두렵고 조심스러웠어요. 제 생각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 난감하고 불편했거든요. 그런데 요즘은 예전에 비해 생각이 잘 정리되는 편이에요. 여전히 조심스러운 부분은 많지만요. 

인생의 나침반 같은 좌우명은 뭔가요. 

‘행복하게 살자’예요. 어떻게 하면 행복할지 저 스스로한테 본질적인 질문을 많이 해요. 행복의 기준도 항상 바뀔 수 있거든요. 배우라는 직업은 내일이 보장돼 있지 않기 때문에 ‘오늘을 후회 없이 잘 살아보자’는 마음으로 지내고 있어요. 

앞으로 어떤 배우가 되고 싶나요. 

어떤 상황에서든 제 몫을 해내는 배우이고 싶어요. 그게 늘 고민하는 지점이지요(웃음).


디자인 김영화
사진제공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BH엔터테인먼트


여성동아 2018년 8월 65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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