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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 많은 ‘예쁜 누나’ 손예진

EDITOR 김지영 기자

입력 2018.07.05 17:00:01

올 상반기는 손예진의 시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에 이어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까지 연타석 홈런을 쳤으니 말이다.
정도 많은 ‘예쁜 누나’ 손예진
올 상반기 1백만 관객 이상을 동원한 한국 영화 11편 가운데 여배우의 존재감이 큰 영화는 많지 않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2백60만 명), ‘리틀 포레스트’(1백50만 명), ‘궁합’(1백33만 명) 정도가 많은 관객을 모았는데 이 중 손예진(36)이 출연한 ‘지금 만나러 갑니다’가 가장 흥행에 성공했다. 더욱이 손예진은 그 여세를 안방극장으로 몰아가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이하 ‘밥잘예’)’로 화제성과 인기 모두를 잡는 데 성공했다. 2000년 영화 ‘비밀’로 데뷔한 이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꾸준히 연기 활동을 하고 있는 그녀를 만났다.

군살 없는 몸매가 부러워요. 

먹는 걸 좋아하고, 먹는 대로 살이 찌는 체질이에요. 그래서 쉴 때 운동을 많이 해요. 촬영으로 바쁠 때도 어떻게든 하루는 짬을 내서 근력 운동을 하죠. 체력이 좋지 않으면 금세 지치거든요. 이번 드라마는 체력적으로 힘들지 않았는데, 캐릭터 특성상 촬영 내내 긴장감을 유지하다 보니 살이 쉽게 찌지 않았던 것 같아요. 

이번 드라마를 끝내고 좀 쉬었겠네요. 

영화 ‘협상’이 추석 무렵 개봉 예정이라 얼마 전 포스터를 찍었어요. 밀린 광고를 찍고 행사에 다니느라 편하게 쉬진 못했어요. 

‘밥잘예’가 워낙 화제성 높은 드라마였기에 윤진아 캐릭터에서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제주도에서 마지막 촬영을 끝내고 돌아오는데 왠지 허전했어요. 5년 만에 출연한 드라마고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3개월 반을 같이 호흡하다 보니 정이 많이 들었던 것 같아요. 게다가 이번 드라마는 비현실적인 공간 안에서 감정을 만드는 게 아니라 아주 현실적인 내용이어서 제가 굳이 애쓰지 않아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어요. 그 모든 것들과 헤어지려다 보니 마지막에 다 같이 밥을 먹으면서 울고불고했어요. 배우들은 연기를 하니 감정이 남아 있을 수 있지만 스태프들은 극에 동화되기가 쉽지 않은데, 다들 이 드라마를 진심으로 사랑한 게 온몸으로 느껴질 정도였어요. 

안판석 PD가 주연 경험이 없는 정해인 씨를 상대 배우로 쓰고자 했을 때 손예진 씨가 기꺼이 수락했다고 들었어요. 

상대 배우는 정말 중요해요. 제 연기에서 상대 배우가 8할을 차지한다고 생각해요. 아무리 제가 그 역할에 빠져 있고 연기를 잘해도 16부 내내 그러기는 힘들어요. 상대 배우와 호흡이 정말 잘 맞아야 시청자가 계속 빠져들고 다음 회를 궁금해하게 만들 수 있어요. 특히 이번 작품은 감정 연기가 매우 중요해서 ‘내가 정말 사랑에 빠져들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어요. 해인 씨는 그때 어떤 것도 검증되지 않은 상태였어요. 정해인 씨의 전작들을 많이 보진 못했지만, 한 장면만 봐도 많은 걸 보여줄 수 있는 배우 같았어요. 감성도 풍부해 보였고요. 저는 이 드라마의 시나리오를 16부까지 다 보고 출연을 결정했기 때문에 준희라는 인물을 떠올렸을 때 그려지는 이미지가 있었어요. 근데 정해인 씨가 제가 그리던 준희의 모습을 하고 있었어요. 같이 연기하면서도 제가 상상했던 모습 그대로여서 굉장히 놀라웠어요. 

오랜만의 드라마 출연이고 연하와의 로맨스여서 초반에 부담 됐을 법해요. 

요즘은 TV 영상이 워낙 고화질이라 클로즈업 신이 부담 됐어요. 그런데 안판석 PD님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클로즈업 신을 잘 안 찍으세요. 심지어 어떤 장면은 뒷모습만 나와요. 이상하게 나오면 PD님이 알아서 빼주실 거란 믿음이 있었어요. 더구나 이 작품에서 윤진아는 예쁘게 나와야 하는 캐릭터가 아니었기 때문에 일부러 치장할 필요도 없었고, 제가 인위적으로 꾸며 예뻐 보이려 하는 건 작품의 흐름에 방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극 중 가장 설렜던 장면을 꼽는다면요. 

놀이터에서 준희와 진아가 같이 걷는 장면요. 본격적인 연애를 하기 전 서로 마음은 있는데 얘기를 못 하고 있는 상황이었죠. 서로 같은 우산을 쓰고 나란히 걸어오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원 신 원 커트’로 찍었는데 그때가 가장 설렜던 것 같아요. 주변에서도 많이들 부러워했어요. 

준희가 미국에 머문 3년 동안 윤진아가 다른 남자 친구를 만든 설정이 시청자들의 비난을 샀어요. “드라마를 보며 위로를 받는 게 아니라 배신감을 느꼈다”고 할 정도였어요. 

저도 윤진아가 준희를 따라 미국에 가길 바랐어요. 그래서 PD님께도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준희 따라가면 안 돼요? 같이 떠나자고 하는 남자를 원해요”라고 했었어요. 근데 촬영을 하면서 진아의 마음이 이해가 되더라고요. 직장에서 불거진 문제를 접어두고 도망치듯이 자신의 사랑과 행복을 위해 떠날 순 없었을 것 같아요. 진아가 함께 떠나지 않았다고 해서 준희를 덜 사랑한 것도 아니고요. 준희가 곁에 없는 3년 동안 진아는 껍데기만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남들이 하는 연애를 흉내 내고 남들처럼 직장을 다니면서 그렇게 견뎠던 것 같아요. 오히려 30대 후반의 여자가 남친과 헤어진 3년 동안 아무도 안 만나는 게 더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해요. 이별의 상처를 잊기 위해 다른 사람을 만났을 수도 있고, 시간이 지나면서 남들이 다 하듯 밥을 먹고 얘기도 하고 웃기도 했겠죠. 저는 사랑의 끝이 결혼은 아닌 것 같아요. 결혼해서 잘 살지, 깨질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잖아요. 

사랑의 끝은 뭘까요. 

글쎄요(웃음). 아직 결혼을 안 해서 잘 모르겠어요. 다만 제가 생각하는 사랑의 범위가 결혼하면 지금보다 더 넓어질 것 같아요. 남녀가 가정을 이루면 사랑은 이성 간의 감정 그 이상의 지점이 분명히 생길 거예요. 진짜 사랑을 할 때 후회하지 않았으면 해요. 어떤 문제에 부딪혔을 때 자신이 처한 상황을 원망하고 사랑하는 상대에게서 그 원인을 찾아 자신을 합리화하려고 들면 그 관계는 오래 지속될 수 없을 거예요. 일방적인 사랑도 마찬가지고요. 정말 사랑한다면 서로 노력해야죠. 

윤진아가 직장에서 성추행 피해자임에도 결국 인사상 불이익을 당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요. 

드라마에서는 그 문제가 해결되는 상황이 구체적으로 그려지지 않았어요. 가해자를 상대로 법정에서 싸우는 3년의 시간을 건너뛰고 극이 이어지거든요. 그사이 윤진아가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가늠하기가 쉽지 않지만, 실제로 이런 일이 벌어져 법적으로 싸울 때 피해자들이 너무 힘들어서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고 하더라고요. 그게 현실이라는 얘기를 듣고 슬펐어요. 하지만 윤진아처럼 힘든 싸움이 될 줄 알면서도 용기를 내는 사람이 없다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거예요. 

내부고발자가 된 윤진아와 그를 끝까지 지지하는 직장 동료 금보라의 케미도 훈훈한 감동을 자아냈다는 평이 많아요. 

안판석 PD님이 이런 얘기를 하셨어요. “결국 진아 옆엔 보라가 있어줬네!”라고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눈물이 쏟아졌어요. 금보라가 진아에겐 모든 걸 다 이야기할 수 있는 진정한 친구였던 것 같아요. 준희의 누나 경선이는 진아와 어릴 때부터 모든 걸 나눈 친구인데, 그런 친구를 곁에 둔 건 큰 행복인 것 같아요. 

손예진 씨에게도 경선이 같은 친구가 있나요. 

고등학교 때부터 친하게 지낸 절친이 지금 아이 둘 키우며 수원에 살고 있어요. 대학교 동창인 아주 친한 언니가 미국 LA에 살고 있고요. 학창 시절 같이 떡볶이 먹으러 다닌 수원 사는 친구와 이제 공통분모를 찾기는 힘들어요. 근데 저희는 서로 만나면 그동안 있었던 얘기를 다 하거든요. 1년에 한 번 만날 때도 있고 그러지 못할 때도 있는데 오랜만에 만나도 소설을 쓰듯이 다 풀어놔요. 그 속에서 위안을 찾는데, 그 친구가 이번에도 ‘그동안 촬영하느라 너무 고생했고, 드라마 정말 재미있었다’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왔어요. 

그동안 출연한 멜로 영화가 모두 흥행에 성공했어요. 이번 드라마를 보더라도 멜로에 특히 강한 면모를 보이는 배우가 아닌가 싶어요. 

영화 ‘클래식(2003)’과 ‘내 머리 속의 지우개(2004)’를 지금도 많은 분들이 사랑해주신다는 걸 알고 있어요. 올해 개봉한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내 머리 속의 지우개’ 이후 오랜만에 출연한 정통 멜로인데 그렇게 좋은 반응을 얻을 줄 몰랐어요. 이번 드라마도 마찬가지예요. 그 덕분에 제 멜로 연기를 좋아하는 분이 많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됐죠. 하지만 작품을 대할 때 멜로 연기에만 초점을 맞추진 않아요. ‘밥잘예’도 진아의 인생을 통틀어 볼 때 사랑 이야기가 전부는 아닌 것처럼요. 제게 연기는 그냥 연기일 뿐이에요. 한 사람의 심리를 표현하고 인생을 살아내는 일이랄까요. 

어떤 멜로 연기를 지향하나요. 

테크닉을 쓰기보다 자연스러운 느낌을 살리려 해요. 오래전 ‘클래식’을 찍을 때는 캐릭터의 틀 안에 갇혀 있었어요. 감정을 극대화하려고 슬픈 생각을 엄청 했어요. 그런데 사랑의 감정이 하나가 아니더라고요. 예전에는 사랑에 대한 감정이 하트 안에 있었는데 지금은 그 범위가 넓어진 것 같아요. 사랑이 그렇게 극적이고 대단한 감정이 아니란 걸 알게 된 거죠. 그래서 연기할 때는 자연스럽게 감정이 녹아드는 사랑을 추구하게 되더라고요.


정도 많은 ‘예쁜 누나’ 손예진
현실의 멜로는 언제 찍을 계획인가요. 

하하하. 그건 비밀이죠(웃음). 

실제 사랑 경험이 많나요. 

하하하. 글쎄요. 그건 상대적일 수 있어요. 제 나이대의 연애 평균치가 나와 있지 않아 ‘많다’ ‘적다’ 말하기가 어려울 것 같아요. 

이상형이 궁금해요. 

그릇이 큰 사람이면 좋겠어요. 마음이 넓은 남자를 만나고 싶어요. 

연하 남친은 어때요. 

사실 연하와의 교제를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근데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하하하. 나이 차는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인성이 중요하죠. 설령 열 살이 더 어린 상대라도 생각이 깊고 인생을 아는 친구라면 소통이 잘될 것 같아요. 

송중기·송혜교 커플처럼 이번 드라마가 오작교가 될 가능성은요. 

없습니다. 정해인 씨와 사귀냐고 물어보는 분이 많은데 저희, 안 사귑니다(웃음). 

나이가 들면서 이성을 보는 기준이 달라지듯이 연기를 대하는 마음도 그러할 것 같아요. 

데뷔했을 때, 처음으로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을 때, 30대로 접어들었을 때 연기에 임하는 마음이 다 달랐던 것 같아요. 저는 어릴 때부터 빨리 서른네 살이 되고 싶었어요. 제가 선망했던 선배 연기자들이 다 그 나이에 빛을 발하셨거든요. 나도 어서 그 나이가 되어 저런 연기를 해야지, 그랬는데 그 나이를 지나 이번 작품을 하고 나니 앞으로 연기를 어떻게 대할 것인지에 대한 다짐이 또 바뀌었어요. 지금은 되게 오래 연기를 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요. 훗날 제가 나오는 장면이 한두 신밖에 안 되더라도 그 안에서 감동을 드리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디자인 김영화 사진제공 엠에스팀엔터테인먼트 마이클코어스


여성동아 2018년 7월 65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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