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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YLE

#joelkimbeck #column

K뷰티는 어떻게 황금알을 낳았나

BB크림부터 스타일난다까지

조엘 킴벡.

2018. 06.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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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엘 킴벡의 칼레이도스코프


뉴욕에서 활동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기네스 팰트로, 미란다 커 등 세기의 뮤즈들과 작업해왔다. 현재 브랜드 컨설팅 및 광고 에이전시 ‘STUDIO HANDSOME’을 이끌고 있다.


스타일난다 홍대 플래그십 스토어와 코즈메틱 브랜드 3CE의 제품들.

브랜드를 계속 성장시켜나갈 것인가, 아니면 좋은 조건에 세계적으로 이름난 기업에 넘길 것인가. 중소 K뷰티 기업들이 세계 뷰티 산업을 좌지우지하는 거대 기업에 매각되는 사례가 늘면서 이런 행복한 고민을 하는 기업들이 생겨나고 있다. 지난해 AHC로 잘 알려진 카버 코리아가 글로벌 생활용품 업체 유니레버에 3조원에 매각된 데 이어 최근에는 세계 최대 화장품 기업 로레알이 스타일난다의 지분을 100% 인수했다. 인수 가격은 5천억~6천억원 선으로 알려졌다. 

토종 뷰티 브랜드들이 글로벌 회사에 거액에 매각된다는 것은 그만큼 세계시장에서 성장 가능성을 인정받고 있다는 이야기다. 몇 년 전부터 한국 화장품들은 K뷰티라는 하나의 장르를 형성하며 존재감을 인정받고 있다. 처음에는 한류 드라마와 K팝 아이돌의 영향에 힘입어 일본과 중국, 동남아 시장에서 인기를 끄는 정도였지만 그 여파가 점차 유럽과 미국 시장에까지 퍼져나가며 이제는 글로벌 시장에서 제법 단단한 입지를 구축한 것이다. 

K뷰티 상종가 랠리의 시작은 피부과 시술 이후 바르는 크림을 일상생활 용도로 발전시킨 BB크림부터가 아닌가 싶다. 당시 서구에선 ‘아시아 뷰티’ 하면 일본 브랜드를 떠올릴 때였다. 오랜 역사와 함께 시장을 선점해온 끌레드뽀 보떼(시세이도), 센사이(가네보), 코스메 데코르테(고세) 등은 뉴욕과 파리, 런던, 밀라노 등의 백화점에 입점해 있었고, 미국 P&G의 공격적인 마케팅이 더해진 SK-II 역시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면서 일본 뷰티 브랜드는 고급 화장품 시장에 안착해 있었다. 반면 한국 뷰티 브랜드들은 세계 유명 백화점에 입점이 성사된 예가 극히 일부분이었고, 그조차 오래 버티지 못하고 철수하는 사례가 발생했다. 



그런 상황에서 BB크림이 K뷰티 글로벌화에 새로운 물꼬를 터준 것이다. 이 BB크림 열풍은 당시 미국판 ‘보그’와 뷰티 전문 매거진인 미국판 ‘얼루어’에서도 크게 다루었고, 급기야는 서구의 유명 뷰티 브랜드들까지 열풍에 동참했다. 많은 매체들이 화장을 하지 않은 듯 자연스러워 보이면서 가릴 것은 가리고 자외선 차단까지 해주는 이 신통방통한 만능 크림의 진원지가 한국이라는 기사들을 쏟아내면서 한국 뷰티 브랜드에 대한 관심이 쏟아졌고, 그 관심은 CC크림에 이어 다양한 종류의 시트 마스크 팩으로 이어졌다. ‘한국 여성들은 1일 1시트 마스크를 한다’는 조금 과장된 소문과 함께 미국의 유명 아침 정보 방송에서 한국발 시트 마스크들을 특집으로 다뤘고 그 결과 시트 마스크가 K뷰티의 새로운 아이콘으로 등장했다.

1 지난 2월 AHC 행사 참석 차 방한한 할리우드 배우 앤 해서웨이와 AHC 더 리얼 아이크림 포 페이스. 
2 메종 키츠네와 3CE 콜래보레이션을 기념해 방한한 메종 키츠네 공동 창업자 마사야 쿠로키와 

  길다 로엑(오른쪽). LOVE 3CE 치크 메이커. 
3 스타일난다와 메종 키츠네의 콜래보레이션을 진행해 함께 방한한 필자 조엘 킴벡(오른쪽).


서구의 거대 뷰티 기업이 K뷰티 브랜드에 대해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이런 히트 아이템들 덕분이기도 하지만 엄청난 잠재력을 지닌 중국에서의 신뢰도와 지명도가 결정적이었다. 불과 5년 전까지만 해도 중국은 막 뷰티에 눈을 뜬 신흥 마켓이었지만 지금은 글로벌 회사들이 명운을 걸고 도전하는, 그야말로 뷰티 브랜드의 최고 격전지다. 그런 중국 마켓에서 지난 5년간 가장 강세를 보인 뷰티 브랜드를 꼽으라면, 단연 한국의 뷰티 브랜드였던 것이다. 특히 한류 스타를 앞세운 한국 브랜드의 공격적인 마케팅에는 세계적인 톱 모델을 기용한 서구의 브랜드들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한류의 힘이 컸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지만, 중국 내에서 한국 뷰티 브랜드들이 크게 성장해나갈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다름 아닌 같은 아시아인, 그중에서도 중국인들과 가장 비슷한 피부 특성과 색감을 지닌 한국인이 만든 화장품이라는 것이었다. 서구 브랜드들이 생각해내지 못했던 동양인의 피부에 적합한 색조 제품들은 물론, 동양의 기후에 의거한 동양인 피부에 딱 맞는 제형의 스킨케어 제품들은 중국인들의 구미를 만족시키기에 충분했다. 특히 동양의학에서 기원한 한방 화장품들은 중국의 고소득층에 큰 인기를 끌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부인 펑리위안 여사가 쓴다고 입소문이 난 한국의 한방 화장품은 사드 위기로 한중 관계가 악화된 시기에도 판매량이 전혀 줄지 않았다. 결국 최근 2~3년 사이에는 서구의 거대 뷰티 브랜드들이 중국 마켓을 의식해서 그간 한국 뷰티 브랜드가 추구해왔던 노선을 따라 가는 상황이 되었다. 랑콤을 필두로 디올, 입생로랑, 에스티 로더 등 다수의 서구 뷰티 브랜드들이 자국에서 만든 글로벌 광고를 뒤로하고, 한류 스타 혹은 중국 내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중국인 스타를 앞세워서 아시아 별도의 광고를 제작하기에 이르렀다. 

스타일난다 산하 뷰티 브랜드 3CE의 경우도, 중국 소비자들에게 인지도가 높은 뷰티 브랜드라는 점이 매각에 영향을 미친 결정적인 요소다. 거기에 프랑스 패션 브랜드 메종 키츠네(Maison Kitsune)와 콜래보레이션을 진행하면서 인지도를 끌어올린 점도 플러스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AHC도 매각 이전에 할리우드 스타 앤 해서웨이를 모델로 기용한 것이 신의 한 수가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들 기업의 사례를 보면 세계적인 인지도가 있는 유명 모델을 기용한다든가,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다른 브랜드와 협업을 구상하는 것이 브랜드의 가치를 높이는 기폭제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의 뷰티 시장은 날로 성장하고 있다. 양적으로만이 아니라 질적으로도 향상되고 있다는 것이 피부로 느껴진다. 뷰티 제품을 구매하는 소비자들도 나날이 더욱 영민한 판단력으로 좋고 나쁨을 구별해내는 ‘스마트 컨슈머’로 변모해나가고 있다. 화장품에 들어가는 화학 성분을 줄줄이 꿰고 있는 소비자들도 많다. 아직 공식적으로 발표되진 않았지만, LVMH그룹 산하의 거대 화장품 멀티 매장인 세포라가 2019년 한국에 공식 진출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미 포화 상태인 한국의 뷰티 시장에 세포라가 뒤늦게 진입하는 것은, 스마트한 한국 소비자들의 반응이야말로 세계시장에서의 성공 여부를 가늠하는 바로미터라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앞으로 더욱 경쟁이 치열해질 한국의 뷰티 시장에서 또다시 세계적으로 이름이 나는 새로운 스타 브랜드가 탄생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K뷰티’ 하면 ‘바로 이 브랜드’라고 떠올릴 만한, 한국을 대표하는 브랜드가 탄생하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기획 김명희 기자 디자인 최정미 사진 동아일보 사진DB파트 동아일보 출판사진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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