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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결혼과 사랑의 사회사

EDITOR 김명희 기자

입력 2018.05.28 11:29:27

재계 오너들은 한두 다리만 건너면 사돈으로 서로 연결된다. 재벌 3세의 혼사에서 그들만의 리그는 여전히 공고해보이지만, 더 이상 기업의 이해나 여론 때문에 사생활과 개인적 행복을 희생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 듯하다.
재벌, 결혼과 사랑의 사회사
1 한성실업 며느리이자 지상욱 의원의 아내 심은하.
2 현대가 정대선 노현정 부부.
3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이혼소송 중인 임우재 씨.
4 현대가 4세 선아영 씨의 결혼식.
5 지난해 10월 맏딸 윤정 씨 손을 잡고 신부 입장을 하고 있는 최태원 SK 회장.
6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과 사이에서 딸을 둔 서미경 씨.
7 임세령 대상그룹 전무.


지난해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과 사실혼 관계에 있는 서미경 씨가 롯데그룹 경영 비리 사건으로 검찰에 출두했을 당시 일부 언론이 서씨를 ‘신격호 회장의 세 번째 부인’이라고 표현한 것을 두고 네티즌들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일었다. 

신 회장은 일본인 아내 시게미쓰 하츠코 씨와 여전히 혼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미스롯데 출신으로 배우 생활을 하다 은퇴한 후 1983년 신 회장과의 사이에서 딸을 출산한 서씨는 엄밀히 말하면 신 회장의 내연녀인 셈이다. 아내를 두고도 두 집 살림을 한 재벌 오너는 신격호 회장 외에도 많다. 고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도 생전에 혼외자가 친자 확인 소송을 제기하면서 사생활이 수면에 떠오른 바 있고, 건설을 주력으로 하는 한 중견 기업 창업주도 혼외자를 자신의 호적에 올려 키웠다. 이처럼 재벌가에는 바람은 피워도 이혼은 하지 않는다는 불문율이 있었다. 남성의 불륜을 어느 정도 용인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그럼에도 조강지처를 버려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결합된 결과다. 

쿨한 결별이 대세 

최근의 재벌들은 할아버지, 아버지 세대와는 다르다. 과거 세대에 비해 사랑에 솔직하고 배우자와 맞지 않으면 이혼도 쿨하게 한다. 매출액 기준 10대 그룹(2017년 기준) 가운데 1위인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은 2009년 임세령 대상그룹 전무와 이혼했다. 임 전무는 현재 배우 이정재와 교제 중이다. 이 부회장의 동생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은 임우재 씨와 이혼소송 중이다. SK를 이끌고 있는 최태원 회장 역시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과 이혼소송을 벌이고 있다. 최 회장은 2015년 한 언론사에 편지를 보내 내연녀와의 사이에서 딸이 있음을 고백하며, 결혼생활의 고충을 토로해 화제가 됐었다. GS 허창수 회장의 딸 윤영 씨도 김영무 김앤장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의 아들 현주 씨와 이혼했다.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은 이혼 후 플루티스트 한지희 씨와 결혼해 새로운 가정을 꾸렸다. 이처럼 재벌가의 이혼이 증가하는 이유에 대해 한 재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사업상의 이해 관계와 여론의 눈치 때문에 결혼생활이 유지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요즘은 서로 맞지 않으면 외부 시선에 개의치 않고 이혼하는 추세다. 정략결혼일수록 더욱 그렇다. 서로 아쉬울 것도 없기 때문이다. 부모들도 회사는 회사고, 사생활은 사생활이라고 여기고 자녀들의 선택을 받아들이는 편”이라고 말했다. 재벌 기업의 경영이 혼맥의 영향을 받기에는 기업들이 글로벌화했고, 우리 경제도 사돈 관계나 친분보다 시스템에 의해 움직이는 방향으로 상당히 선진화했기 때문이다. 

신데렐라는 있을까 

최태원 SK 회장의 맏딸 윤정 씨는 지난해 서울대 출신의 벤처 사업가 윤모 씨와 웨딩마치를 울렸다. 두 사람은 글로벌 컨설팅 회사 베인앤컴퍼니에서 함께 일하며 사랑이 싹튼 것으로 알려졌다. 2016년에는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의 외손녀이자 정성이 이노션 고문의 딸 선아영 씨가 배우 길용우의 아들 성진 씨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이들은 지인의 소개로 만나 오랫동안 연애를 하다가 결혼에 이르렀다. 현대가는 고 정주영 회장 시절부터 혼사에 있어서만큼은 자녀들의 선택을 존중하는 편이어서 2, 3세들은 거의 연애결혼이 많다.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의 아들로 고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양자로 입적된 구광모 LG전자 상무는 미국 유학 중 만난 식품원료기업 보락 정기련 대표의 딸 효정 씨와 2009년 결혼했다. LG가에서는 드문 연애 결혼이다. 지난 5월 중순 구광모 상무의 경영승계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지며 처가인 보락 주가가 연일 상한가를 기록해 화제가 됐다. 오랫동안 재계 오너들의 혼맥을 연구해온 홍성추 한국재벌정책연구원장은 재벌가의 연애결혼은 일반적인 연애결혼과 다르다고 말한다. 유치원, 초등학생 시절부터 제한된 인맥과 커뮤니티 안에서 성장하기 때문에 연애결혼이라고 해도 실제로는 그들만의 리그를 벗어나기 힘들다는 것. 동창이나 동문들 간의 결혼이 많은 것도 그런 이유다. 재벌 오너들이 자녀들을 외국 명문대로 유학 보내는 데는 비슷한 집안의 이성들과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기 위한 목적도 포함돼 있다. 사돈감으로 점찍은 집안의 자녀가 다니는 학교를 콕 집어서 그곳으로 자신의 자녀를 유학 보내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장차 기업을 책임질 사람”으로 불리며 제왕 교육을 받아온 2, 3세들도 비슷한 환경에서 자란 배우자를 선호해 이런 ‘중매 반, 연애 반’ 혼사를 비교적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라고 한다. 

스타 며느리의 애환 

재벌가와 연예계 스타의 결혼은 예전부터 드물지 않았다.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은 세 번 결혼했다 이혼했는데 상대가 모두 스타(배우 김혜정, 가수 배인순, 장은영 전 아나운서)였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의 셋째아들 채승석 애경개발 사장도 스타와 결혼했다 이혼했다. 재벌과 스타 모두 주목을 받는 사람들인 만큼 이들의 사랑과 결혼에는 더 많은 관심이 쏠린다. 배우 박유천과 남양유업 3세 황하나 씨의 경우엔 만남부터 결별까지 전 과정이 기사와 실시간 검색어로 포털에 도배됐다. 현대가 3세 정대선 현대비에스앤씨 사장과 결혼한 노현정 전 아나운서는 지인들에게 집안 행사에 참석할 때마다 언론의 집중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에 대한 고충을 토로한 적이 있다고 한다. 지성한 한성실업 회장의 아들인 지상욱 바른미래당 의원과 결혼한 심은하는 이런 관심을 완전히 차단하기 위해 외부 활동을 일절 하지 않고 있으며 박성경 이랜드 부회장의 아들 윤충근 씨와 결혼한 배우 최정윤도 2016년 출산 이후 육아에만 전념 중이다.


사진 동아일보 사진DB파트 동아일보 출판사진팀 뉴스1 디자인 최정미


여성동아 2018년 6월 65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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