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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ceo #interview

안병광 유니온약품그룹 회장의 성공 비결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황소’처럼 우직하게

editor 김지영 기자

2018. 02. 19

영업사원으로 시작해 연간 5천억 원 매출을 올리는 회사의 CEO가 된 안병광 유니온약품그룹 회장. 예술품에 대한 사랑이 남다른 그는 2012년부터 서울미술관도 운영하고 있다. 그가 사업가로서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과, 예술품은 함께 감상할 때 더 빛난다는 깨달음을 준 미술관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미국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중에 ‘가지 않은 길’이 있어요. 간단히 의미를 정리하면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 나는 사람이 적게 다닌 길을 택했다. 그리고 그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죠. 이처럼 선택의 기로에 있는 젊은이들이 남이 가지않는 길을 가보면 좋겠어요. 오솔길도 누군가가 지나갔기에 생긴 거예요. 그것이 신작로가 되고, 고속도로가 될 수도 있죠. 남이 가지않는 길을 가봐야 자신만의 길을 만들 수 있어요.” 

올해 창립 30주년을 맞은 유니온약품그룹의 안병광(61) 회장이 이 시대의 청춘들에게 전하고 싶다는 메시지다. 안 회장이 ‘가지 않은 길’을 젊은이들에게 권하는 이유는 그 역시 남들이 꺼리는 길에 발을 들여 자수성가했기 때문이다.

#성공 법칙 1. 쉽지 않은 상대를 공략하라

학창 시절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처럼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고 믿었던 그는 대학에서 무역학을 전공한 후 취업을 하지 않고 곧장 사업에 뛰어들었다. 1981년 뜻 맞는 친구 둘과 함께 ‘삼우상사’라는 간판을 내걸고 무역업을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처음 수출한 티셔츠가 빨자마자 배꼽티가 돼버려 반품이 쏟아졌다. 쫄딱 망해 이듬해인 1982년 폐업했다. 당시 살던 집도 사채업자의 손에 넘어갔다. 

그해 그는 친구들이 모아준 돈으로 보증금 30만 원에 월세 3만 원짜리 단칸방을 얻어 재기의 의지를 다졌다. 당시 교제하던 여자친구에게도 “내 사정이 이런 데 같이 살 수 있겠느냐. 대신 나한테 시집오면 5년 안에 여의도에서 살게 해주겠다”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호언장담했다. 여의도는 당시 서울에서 가장 핫한 지역이었다. 그해 결혼한 두 사람은 4년 뒤인 1986년 정말 여의도에 있는 아파트로 이사했다. 1983년 내성적인 성격을 고쳐보려고 친구 따라 제약 회사 영업사원으로 취직한 것이 인생 역전의 계기가 됐다. 

“입사 초년병 때는 로컬(개인 의원)을 출입했어요. 약을 팔아본 경험도 없고, 말주변도 없어서 소아과를 계속 들락날락만 하니까 원장이 저를 불러 ‘제약 회사에서 왔냐. 왜 말도 못 하냐’며 아스피린 5kg을 사줬죠. 그게 제 첫 실적이었고 자신감을 얻는 데 큰 힘이 됐어요. 다음 날부터 열심히 뛰어다녀 로컬 쪽에서 가장 일 잘하는 사원이 됐더니 종합병원 영업을 제게 맡기더라고요. 선배들이 영업이 가장 안 되는 거래처를 넘겨줘 초반에는 실적이 저조했지만 8개월 뒤에는 종합병원 영업사원 가운데 전국 1등을 차지했죠. 이후 한 번도 1등을 놓친 적이 없고요.” 



그 비결을 묻자 안 회장은 기억에 남는 일화를 들려줬다. 

“다른 영업사원이 1주에 한두 번 거래처에 갈 때 전 매일 출근 도장을 찍었어요. 놀 때도 병원에서 놀았죠. 종합병원 스태프들이 보통 10~12층에 있었는데 거기까지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항상 계단으로 올라갔어요. 그러면 옷에서 김이 날 정도로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요. 그때 그분들의 마음을 산 것 같아요. 제게 앉아서 쉬었다 가라’며 시원한 물도 한 잔 주고, 주스도 갖다 주고 그랬거든요. 미련해 보일 만큼 땀을 흘리니 이런 대접을 받는구나 싶더라고요. 값진 깨달음이었죠. 그리고 저는 다른 동료들처럼 쉬운 상대를 찾지 않았어요. 저를 멀리하거나 안 받아주는 상대에게 다가가려고 노력했어요. 한 번에 안 되면 될 때까지 두 번, 열 번, 스무 번이라도 찾아갔고요. 냄비처럼 달아오른 관계는 금방 식지만, 그렇게 공들여 자기 사람을 만들고 나면 관계가 정말 오래가요.”

#성공 법칙 2. 진실한 마음으로 다가가라

유니온약품그룹이 그동안 6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5천억 원에 육박하는 연 매출을 올리는 의약품 유통 회사로 성장한 것도 안 회장이 영업사원 시절 연을 맺은 병원들의 꾸준한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들 병원 중에는 지난 30년 동안 2조 원의 매출을 올려준 곳도 있다. ‘리더가 솔선수범해야 한다’는 소신을 가진 안 회장은 지금도 시간이 날 때마다 거래처를 직접 방문한다. 올 초, 창립 30주년 행사를 하는 날에도 고마운 병원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또 자신과 함께 오랜 시간을 동고동락하며 회사의 성장을 이끌어온 임직원들에게도 포상으로 노고를 치하했다. 

“1985년 당시 한일약품 사장님이 제게 ‘자넨, 우리 회사의 사장을 할 거야’라고 하셨어요. 그 한마디에 자극을 받아 사장을 꿈꾸게 됐어요. 1986년 회사를 그만두고 창립 준비를 해서 1988년 1월 직원 6명을 데리고 회사를 차렸는데 첫 달 매출이 고작 54만 원이었어요. 걱정하는 직원들 앞에서 20억 원의 연 매출을 올리겠다고 큰소리쳤는데 정말 그해 목표치를 달성했죠. 이후엔 그런 상승세가 더욱 가팔라졌고요. 하지만 1997년 IMF 외환 위기 사태와 2000년 의약 분업을 겪을 땐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어요. 월평균 70억 원이던 매출이 15억 원으로 떨어진 적도 있어요. 그런 위기 때마다 큰 힘이 돼준 건 사람이었어요. 제 몸처럼 회사를 사랑하며 헌신적으로 일한 임직원들요. 제가 참 인복이 많은 사람 같아요. 하하하.” 

그에게 인생을 관통한 성공 키워드를 묻자 ‘언행일치’와 ‘진심’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약속한 것은 반드시 지키려고 노력하고 진심으로 다가가니 상대가 마음의 문을 열어주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때 경계해야 할 것이 있다. 조급함이다. 그는 “너무 쉽게 관계를 맺으려고 하면 안 된다”며 “황소처럼 우직하게 일하면 멀리 갈 수 있다”고 조언했다. 

“저도 천천히 걷지만 멀리 가는 황소처럼 일하니 인생이 잘 풀렸어요. 그래서 제가 황소를 좋아하는지도 몰라요. 하하하.” 

안 회장은 이중섭 작가의 대표작인 ‘황소’를 비롯해 은지화, 유화 등 그의 작품을 20여 점 소장하고 있다. 영업사원 시절 액자가게의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다 7천 원을 주고 산 ‘황소’ 사진이 그를 이중섭의 예술 세계에 빠져들게 했다. 

“처음 살던 서울 여의도 아파트에서 평수가 넓은 다른 아파트로 이사했는데 그 위층에 시인 구상(1919~2004) 선생님이 사셨어요. 미술에 조예가 깊은 그분을 통해 이중섭 작가에 대해 알게 돼 1991년부터 그의 작품을 모았죠. 미술에 눈을 뜨면서 이 작가뿐만 아니라 다른 작가의 작품들도 수집하게 됐고요. 특히 ‘황소’는 운명적으로 제게 왔습니다. 2010년 옥션에서 ‘황소’가 경매로 나왔을 때 마침 서울미술관을 짓고 있어 그걸 구입할 엄두를 낼 수 없었어요. 예상가가 35억~55억 원에 달했거든요. 옥션에서 그 그림을 빌려 이틀 동안 갖고 있다 돌려줄 때 굉장히 아쉬웠는데 우여곡절 끝에 제가 35억6천만 원에 낙찰받아 ‘황소’의 주인이 됐죠(웃음).”

#성공 법칙 3. 버는 만큼 베풀어라

안병광 회장이 소장한 이중섭 작가의 대표작 ‘황소’, 김환기 ‘섬 스케치’, 이중섭 ‘싸우는 소’(왼쪽부터).

안병광 회장이 소장한 이중섭 작가의 대표작 ‘황소’, 김환기 ‘섬 스케치’, 이중섭 ‘싸우는 소’(왼쪽부터).

안 회장은 2007년, 흥선대원군의 별장이던 ‘석파정’과 “너무나도 잘생긴” 소나무에 매료돼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 있는 4만 2900㎡(1만3천 평) 규모의 부지를 매입, 이곳에 서울미술관을 지었다. 미술관 건립은 그의 오랜 꿈이었다. 2012년 8월 문 연 서울미술관은 ‘둥섭, 르네상스로 가세! -이중섭과 르네상스 다방의 화가들’이라는 제목으로 개관전을 열었다. 둥섭은 중섭의 서북쪽 방언이다. 2014년에는 개관 2주년 기념 소장품전인 ‘황소걸음: 천천히, 강하게 그리고 멀리’로 화제를 모았다. 지난해 12월부터 이곳에서는 개관 5주년 기념전인 ‘불후의 명작; The Masterpiece’가 열리고 있다. 이중섭은 물론이고 김기창, 김환기, 도상봉, 박수근, 유영국, 천경자까지 한국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화가 7인의 걸작 20여 점이 걸렸다. 서울미술관은 이 밖에도 ‘사임당, 그녀의 화원’전, ‘사랑의 묘약’전 등 신선한 기획전을 통해 연중 관람객이 끊이지 않는 서울의 명소로 자리매김했다. 그간 직원들의 학자금 지원 사업과 심장병 어린이, 노숙자 등을 위한 나눔 활동에 앞장서온 안 회장은 미술관을 운영하며 또 다른 즐거움을 맛보고 있다. 

“미술관을 만들어 함께 작품을 감상하다 보니 서울뿐 아니라 국내외 각지의 사람들이 찾아와요. 그들이 전시를 보고 느끼고 대화하며 소통하는 모습을 보면 절로 미소가 지어져요. 대한민국에서 제가 엄청나게 중대한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미술 작품은 많은 사람과 함께 감상할 때 더 빛난다는 것도 미술관을 운영하며 알게 됐어요.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것이 제게 주어진 숙명 같아요.” 

미술품 컬렉터로서 안 회장이 추천한 좋은 그림은 “집에 걸렸을 때 가족들에게 얘깃거리가 되고 공감대가 이뤄지는 작품”이다. 그는 좋은 그림을 사려면 무엇보다 “발품을 아끼지 말고 작품을 보러 다니고, 귀동냥을 많이 해 안목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력과 정성을 들인 만큼 얻게 돼 있어요. 그것은 작가도 마찬가지예요. 한두 시간 만에 그린 그림은 판매까지 2~3년이 걸리고, 2~3년 동안 공들여 그린 그림은 한두 시간 내 팔려요.” 안 회장이 올해 이루고 싶은 개인적인 꿈 두 가지는 ‘덮어놓고 감사하기’와 ‘비굴할 정도로 고마워하기’다. 그는 최근 시무식에서 “내가 실천할 수 있어 선포한다”며 직원들에게 이를 알렸다고 했다. 스스로 ‘꿈쟁이’라고 밝힌 그가 꿈이 없는 후배들에게 인생 선배로서 건네고 싶은 조언은 이렇다. 

“남이 성공하는 걸 질투하지 말고 그 열정으로 상대가 왜 잘되는지 연구하세요. 상대에게 접근하기 힘들면 무보수로라도 일을 도와주며 그 옆에서 보고 느끼며 배우세요. 그리고 이왕이면 큰 꿈을 꾸세요. 오늘은 비록 새우잠을 자더라도 고래 같은 꿈을 꾸면 그 꿈에 절반까지만 다가가더라도 성공한 인생이라 할 만할 겁니다(웃음).”

photographer 조영철 기자 designer 김영화
사진제공 서울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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