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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globalstar #interview

不狂不及[미쳐서 미치다]의 연기 이병헌

editor Kim Ji Young

2017. 11. 16

개인적인 일로 잡음이 일기도 했지만 데뷔 후 한 번도 쉬지도, 정상에서 내려온 적도 없다. 배우에게는 연기력이 전부라는 것을 보여준 월드스타 이병헌을 만났다.

거리가 온통 노란 은행잎으로 물든 가을의 한복판에서 이병헌(47)을 만났다. 2003년 기자와 처음 인터뷰를 할 당시에도 톱스타였던 그는 지금도 여전히 배우로서 최고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 사이 그는 할리우드 진출에 성공하고 2013년 동료 배우 이민정(35)과 결혼해 아들도 얻었다. 2년 전 한 역술가는 이런 그를 두고 “항상 귀인이 나타나 도와주고 90세까지 대운이 드는 사주를 타고났다”고 했다. 최근 개봉한 영화 <남한산성>을 보고 나서 불현듯 이 말이 떠올랐다. 할리우드 데뷔작 <지. 아이. 조>(2009)에서 맡았던 근육질의 살인 병기 스톰 섀도, 진짜 왕보다 더 왕다운 모습을 보여준 <광해, 왕이 된 남자>(2012)의 천민 하선, “모히토에 가서 몰디브나 한잔하자”던 <내부자들>(2015)의 정치 깡패 안상구, 비열한 악당의 표본인 <마스터>(2016)의 사기꾼 진 회장, 지질하지만 따뜻한 <싱글라이더>(2017)의 증권맨 강재훈…. 이토록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가진 이병헌이 또 보여줄 게 남았을까 싶었는데, <남한산성>에서 그가 연기한 ‘최명길’은 이전의 모든 캐릭터를 잊게 했다. 

<남한산성>은 김훈 작가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병자호란이 일어난 1636년 겨울, 조선의 임금 인조와 신하들이 고립무원의 남한산성에서 벌이는 47일간의 이야기를 그린다. “청과 화친하는 순간의 치욕을 감수하고 나라와 백성을 지켜야 한다”는 이조판서 최명길과, “죽음을 불사하고 청과 싸워야 한다”는 예조판서 김상헌(김윤석)의 불꽃 튀는 설전은 이 작품의 백미로 꼽힌다. 김상헌은 “가벼운 죽음으로 무거운 삶을 지탱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최명길은 “죽음은 결코 가볍지 않다. 백성과 더불어 죽음을 각오하지 말라”고 인조에게 호소한다.

이 작품을 선택한 동기가 뭔가요.
시나리오가 완벽했어요. 이야기에 빠져들게 하는 힘이 굉장했어요. 이대로만 만들어지면 정말 좋은 영화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최명길도, 김상헌도 우열을 가리기 힘들 만큼 멋졌어요. 둘의 비중이 똑같아서 어떤 역이어도 상관없겠다 싶었어요.

촬영 전 원작 소설을 읽었나요.
원작이 있는 작품은 감독에게 먼저 물어봐요. 원작을 보는 게 더 도움이 되는지요. 황동혁 감독님은 안 봐도 된다고 하셨어요. 그래도 읽고 싶더라고요. 그 얘기를 감독님이 들으셨는지 나중에 김훈 선생님이 친필 사인한 책을 선물로 주셨어요.

연기 톤이 색다르더군요. 캐릭터에 대한 연구를 하고 촬영에 들어갔나요.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상상한 최명길의 모습을 고스란히 그 감정으로 연기하자는 생각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시나리오에서 받은 느낌 그대로요. 




최명길은 어떤 사람으로 느껴졌나요.
자기 소신이 단단하고 분명하지만, 김상헌과 달리 왕에게 호소할 때 항상 예의를 갖추고 직선적이기보다 우회적으로 표현하는 온화한 면이 인상 깊었어요. 그러면서도 무서우리만치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사람 같았어요. 자기와 다른 생각을 가진 김상헌과 격한 언쟁을 벌이면서도 왕에게는 김상헌을 이 성 안의 유일한 충신이라고 고할 정도로요. 

촬영 현장의 분위기는 어땠나요.
저를 제외한 대부분의 출연자가 연극배우 출신이어서 공통의 화제와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많았어요. 웃음이 끊이지 않는 현장이었는데 최명길과 김상헌이 격하게 대립하는 신에서는 숨 막히는 정적이 흘렀어요. 분위기를 깨지 않으려고 주위분들이 많이 배려해주셨거든요. 그 덕분에 두 사람의 불꽃같은 감정의 격돌이 어떤 액션 신보다 강렬하고 뜨거울 수 있었죠. 

▼배우 자신과 최명길의 닮은 점은 뭔가요.
저와는 많이 다른 것 같아요. 저는 최명길처럼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밀어붙이거나 주장하거나 하지 못해요. 좀 우유부단한 성격이에요. 인조처럼요. 음식점에 가서도 어느 하나를 똑 부러지게 말하는 편이 아니라 다수의 선택에 맡기거나 이것저것 시켜서 나눠 먹자고 해요. 결정 장애가 있어요. 

본인이 인조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 같나요.
촬영하는 내내 생각해봤는데 제가 왕이어도 누구의 손을 선뜻 못 들어줄 것 같아요. 두 사람의 논리가 너무나 다른데 1%도 어느 한쪽에 더 마음이 얹히지가 않더라고요. 이 영화는 어떤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만들어진 작품이라기보다 ‘서로 의견이 다름에도 경중을 나누지 않고, 우열을 두지 않은 것’이 포인트예요. 그 판단을 관객 개개인의 몫으로 남겨둔 거죠. 

최명길을 연기하며 가장 가슴이 뭉클했던 순간을 꼽는다면요.
칸에게 가서 “제발 진격을 멈춰달라. 우리 백성들은 아무 죄가 없다”고 말하는 대목요. 이 영화가 궁극적으로 다루려고 한 것도 인본주의라고 생각해요. 명길이 끝까지 소신을 굽히지 않는 것도 만백성을 살려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거든요. 

나이가 들수록 연기가 무르익는다는 평을 받고 있어요.
그건 모든 배우에게 적용되는 평가인 것 같아요. 남의 인생을 살아보는 직업이다 보니 많은 걸 겪으면 겪을수록 연기로 담아낼 수 있는 감정의 폭이 넓어지는 것 같아요. 감성이 연기로 발현되는 속도는 개인 차가 있겠지만 어떤 경험이든 배우에겐 자산이 돼요. 

필모그래피에 히트작이 많아요. 작품을 고르는 기준이 뭔가요.
지극히 주관적이에요. 시나리오에 마음이 동하면 그냥 해요. 이야기가 좋거나 큰 울림을 주거나 하면. 캐릭터나 비중은 차후에 고려해요. 


얼마 전 강익중 화가가 ‘내가 아는 것’이란 주제로 지인들에게 한마디씩을 청했어요. 저는 이렇게 말했어요. “누구에게나 마음에 열 살짜리 소년이 있다”고요. 70세가 되든, 80세가 되든 저는 그럴 것 같아요. 어른이 됐다고 해서 일부러 그런 소년 같은 마음을 없애고 싶지도 않아요. 더 큰 생각을 할 수 있는 가지를 다 잘라내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요.

얼마 전 강익중 화가가 ‘내가 아는 것’이란 주제로 지인들에게 한마디씩을 청했어요. 저는 이렇게 말했어요. “누구에게나 마음에 열 살짜리 소년이 있다”고요. 70세가 되든, 80세가 되든 저는 그럴 것 같아요. 어른이 됐다고 해서 일부러 그런 소년 같은 마음을 없애고 싶지도 않아요. 더 큰 생각을 할 수 있는 가지를 다 잘라내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요.

제가 아는 역술가가 “이병헌 씨는 90세까지 대운이 드는 사주”라고 말하더군요.
하하. 그때까지 산대요? 그건 또 다른 건강검진인 거죠? 하하하. 

몸이 근육질이더라고요. 평소 운동을 즐기는 편인가요.
사실 운동을 꾸준히 하는 편이 아니에요. 작품에서 몸을 만들 필요가 있는 배역을 맡았을 때 해요. 

가정을 이룬 뒤 ‘안정감’을 찾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어요.
제가 지켜야 하고, 저를 믿고 따르는 가족이 있으니 당연히 그렇겠죠. 그런데 누군가 예전에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결혼해서 되게 좋은 것도 있지만 남들과 똑같은 평범한 가정을 이루고 살다 보니 생활에 치여 날카롭고 예민해져 있던 촉들이 닫히고 깎이고 무뎌지는 느낌이 들 때마다 화들짝 놀라곤 한다’고요. 저도 가끔 비슷한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제 예민한 감수성이 무뎌지지 않도록 경계하곤 해요. 

인기를 얻으면 CF 스타로 만족하는 배우들과 달리 데뷔 후 줄곧 연기로 새로운 도전을 해왔어요. 그것도 소신의 발로인가요.
해외에서 활동하다 보면 우리 작품이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했구나, 외국인들이 좋아할 만하다, 하고 감탄할 때가 왕왕 있어요. 지금 좀 덜 쉬더라도 나중에 후회하지 않고 싶기에, 좋은 작품이 들어오면 기꺼이 해요. 그러다 보니 꾸준히 연기 활동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근데 저도 오래 쉰 적이 있어요. 이번 영화 홍보가 끝나면 석 달 정도 쉴 수 있을 것 같고요(웃음).

▼당분간 아빠 역할에 충실하시겠어요.
저는 여유가 생길 때면 주로 아이와 시간을 보내요. 틈나는 대로요. 특별히 저는 힘쓰는 일을 해요. 남자아이니까 제가 힘을 많이 씁니다. 들고 있어야 하니까. 하하하.

인생의 나침반 같은 좌우명이 있나요.
얼마 전 강익중 화가가 ‘내가 아는 것’이란 주제로 지인들에게 한마디씩을 청했어요. 자신이 믿는 진리라고 생각하는 것을 말해달라고 하더라고요. ‘엄마 말은 꼭 들어야 한다’ ‘평소 물을 많이 먹는 것이 좋다’ 등 들어보면 수긍이 가는 다양한 의견이 나왔는데, 저는 이렇게 말했어요. “누구에게나 마음에 열 살짜리 소년이 있다”고요. 70세가 되든, 80세가 되든 저는 그럴 것 같아요. 어른이 됐다고 해서 일부러 그런 소년 같은 마음을 없애고 싶지도 않아요. 더 큰 생각을 할 수 있는 가지를 다 잘라내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요.

배우 설경구 씨는 “평생 고통 받으며 살아야 하는 직업”이라는 말로 연기자의 고충을 표현한 적이 있어요. 이병헌 씨는 연기하면서 가장 힘든 점이 뭔가요.
끊임없는 고민을 하는 거요. 작품이 끝나기 전까지는 몸이 수면 상태에 있을 때도 고민이 끊이지 않아요. 한번은 꿈에서 조감독이 달려와 다 끝난 줄 알았던 촬영이 두 신 더 남았다고 해서 화들짝 놀라며 깬 적도 있어요. 무의식 속에도 항상 작품에 대한 생각이 있는 거죠. 그게 다 캐릭터에 온전히 젖어가는 과정인 것 같아요. 그 정도로 몰입하지 않으면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도 없고요.

차기작이 김은숙 작가의 신작 <미스터 선샤인>으로 정해졌더군요. 오랜만에 드라마에 복귀하는 기분이 어떤가요.
오랜만에 하려니 비장해요. 사전 제작은 아니어도 다른 드라마에 비해 많은 분량을 찍어놓는다는데 그래도 방송 내내 촬영하게 될 거라고 합니다. 쉬는 동안 체력을 잘 비축해야 할 것 같아요(웃음).

어떤 배우로 기억되고 싶나요.
하나의 이미지로 굳어지지 않은, 자꾸만 궁금해지는 배우면 좋겠어요. “이병헌은 이렇대!” “이렇다는 이야기도 있더라!!” 하며 대중이 끊임없이 궁금해하는 배우요.

designer Kim Young Hwa
사진제공 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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