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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shion #joelkimbeck_kaleidoscope 조엘 킴벡의 칼레이도스코프

일본 브랜드는 어떻게 대세가 됐나

작성일 | 2017.03.02

일본 브랜드는 어떻게 대세가 됐나
매년 5월 뉴욕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의 의상 관련 박물관인 코스튬 인스티튜트(The Costume Institute)는 한 가지 테마를 정해 기획 전시를 연다. 이 전시의 오프닝 전야 파티는 멧 갈라(Met Gala)라 불리는데 ‘패션계의 오스카 시상식’이라 불릴 만큼 주목 받는 이벤트다. 마돈나, 비욘세, 리한나, 니콜 키드먼, 기네스 팰트로, 레이디 가가, 스칼렛 요한슨, 안젤리나 졸리, 브래드 피트 등 세계적인 스타와 패셔니스타들이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정문의 긴 계단 위에 놓인 레드카펫을 밟고 걸어 올라가는 모습은 장관이다.  

올해 코스튬 인스티튜트가 선정한 테마는 일본의 디자이너이자 ‘꼼데가르송(Comme Des Garçons)’이라는 쿠튀르 하우스의 설립자인 레이 가와쿠보(Rei Kawakubo)의 패션 일대기다. 살아 있는 디자이너의 회고전을 개인 미술관이 아닌, 세계 최대 규모 뮤지엄에서 여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패션계에서 꼼데가르송과 레이 가와쿠보가 차지하는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세계 패션계가 일본 디자이너 브랜드에 매료된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 10여 년간 각국의 아트 뮤지엄에서 일본 패션 디자이너의 전시가 계속 이어져왔고, 유서 깊은 유럽의 패션 하우스들 역시 일본 디자이너에 대한 선망과 동경을 아낌없이 표현해왔다. 루이비통의 경우, 2008년 도쿄의 플래그십 스토어 오픈 30주년을 기념해 꼼데가르송과 콜래보레이션을 단행하며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당시 루이비통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던 디자이너 마크 제이콥스는 꼼데가르송과의 협업에 대해 “이번 작업은 패션 디자이너로서뿐만 아니라 예술가로서의 레이 가와쿠보에 대한 존경의 표현”이라고 고백했다. 매년 디자이너 브랜드들과 콜래보레이션 라인을 내놓는 H&M 역시 2008년 일본 진출을 기념해 꼼데가르송과의 협업을 진행했는데, 두 브랜드의 한정 아이템들은 패션에 있어 비수기라 불리는 11월에 이례적으로 엄청난 매출을 달성했다.
일본 브랜드는 어떻게 대세가 됐나
레이 가와쿠보가 1973년 설립한 꼼데가르송은 1981년부터 파리 컬렉션에 참가했는데 특유의 전위적인 콘셉트가 전 세계 패션 피플과 미디어 사이에서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일본에서는 물론 유럽 전역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현재는 메인 디자이너이자 CEO인 레이 가와쿠보가 이끄는 시그니처 브랜드 ‘꼼데가르송’을 비롯해, 1992년 합류한 준야 와타나베(Junya Watanabe)’가 이끄는 ‘준야 와타나베 꼼데가르송’, 하트 캐릭터로 유명한 ‘플레이 꼼데가르송’, 블랙 컬러를 테마로 한 ‘블랙 꼼데가르송’ 그리고 젊은 층에 인기 높은 지갑과 잡화 브랜드인 ‘포켓 꼼데가르송’ 등 20여 라인을 갖추고 있다.

각각의 라인이 개별 디자인과 콘셉트로 차별화가 확실한 한편, 이미 세계적으로 인지도가 높은 꼼데가르송 브랜드 네임을 사용해 통일성을 부여, 미지의 브랜드에 대해 다소 거리감을 가진 잠재 소비자들을 자연스럽게 유인하는 이 시스템은 꼼데가르송의 기존 아이덴티티는 그대로 보존하면서 다양한 디자인으로의 확장성을 보여준다. 일례로 준야 와타나베는 그의 특출한 패턴 메이커로서의 감각을 접목시킨 파리 컬렉션으로 단번에 세계 패션계의 스타로 떠올랐다. 그가 데뷔 컬렉션부터 매 시즌 지속적으로 실행해온, 이미 명확하게 캐릭터가 구축된 브랜드인 나이키, 리바이스, 컨버스, 닥터 마틴 등과 자신의 디자인을 접목시킨 새로운 형태의 작업은 요즘 패션계의 큰 트렌드가 된 ‘브랜드 대(對) 브랜드 콜래보레이션’의 시발점이 되었다. 이런 다양한 시도는 꼼데가르송 산하의 여러 라인들과 브랜드가 선별한 전 세계 감각 있는 타사 디자이너 브랜드의 컬렉션을 동시에 판매하는, 이른바 ‘플래그십 스토어’와 ‘셀렉트 숍’을 결합한 형태의 하이브리드 매장을 탄생시켰다. 런던에 첫 문을 연 멀티 브랜드 숍인 ‘도버 스트리트 마켓(Dover Street Market)’이 바로 그것이다. 현재 도버 스트리트 마켓은 런던에 이어 도쿄의 긴자와 미국의 뉴욕, 중국의 베이징 등에 매장을 열었고 올 가을에는 싱가포르에도 진출할 예정이다.

일본 브랜드는 어떻게 대세가 됐나
레이 가와쿠보 외에 일본을 대표하는 디자이너로는 이세이 미야케, 다카다 겐조, 요지 야마모토를 꼽을 수 있다. 이 가운데 다카다 겐조는 브랜드를 루이비통의 모회사인 LVMH에 매각한 후 1999년 패션계에서 은퇴했고(현재의 겐조는 뉴욕의 유명 멀티 브랜드 숍인 ‘오프닝 세레모니’를 이끄는 캐롤 림과 움베르토 레온 콤비가 디자인을 맡고 있다), 요지 야마모토는 자신의 이름을 내건 브랜드는 물론 아디다스와 합작한 브랜드 ‘Y-3’를 빅 히트시키기도 했다. 이세이 미야케는 1997년 현역에서 은퇴했지만 지금도 ‘이세이 미야케’ 산하의 모든 브랜드를 총괄 관리하고, 작년 도쿄의 롯폰기에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타다오와 공동 디자인과 제작을 담당한 ‘21-21 디자인 사이트’ 미술관을 오픈했다.

이세이 미야케 하면 제일 먼저 브랜드 특유의 패턴인 ‘주름(Pleats)’을 떠올리게 되는데, 이 플리츠 아이템들은 오랫동안 큰 사랑을 받고 있으며 한국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이세이 미야케의 경우도 플리츠의 대중적 라인인 ‘플리츠 플리즈’와 컬렉션 라인인 ‘이세이 미야케’ ‘하트(HaaT)’ ‘A-POC’ 그리고 최근 인기가 급상승한 가방 잡화 라인인 ‘바오바오’와 남성용 플리츠 라인 ‘옴므 플리세’ 등 여러 라인으로 전개되고 있어 브랜드 운영 방식이 꼼데가르송과 비슷하게 느껴지지만, 이세이 미야케만의 독특한 시스템이 따로 존재한다.
일본 브랜드는 어떻게 대세가 됐나
‘인큐베이터’라 불리는 이 시스템은 이세이 미야케의 관리 하에 브랜드를 키운 후 완전한 별개의 브랜드로 분리, 발전시키는 방식이다. 츠모리 치사토를 필두로, 유럽과 일본의 젊은 층에게 인기가 많은 디자이너 아키라 오노즈카가 이끄는 ‘카반 드 주카’ 와 ‘네네’ ‘메르시보꾸’ ‘파이널 홈’ 등이 이 시스템을 통해 탄생한 브랜드들이다. 이들은 모두 처음엔 이세이 미야케 브랜드 내의 디자이너들이었지만, 회사 내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별도의 브랜드로 독립했다. 이세이 미야케도 자사의 모든 브랜드와 인큐베이터를 통해 새로 발굴한 디자이너 브랜드를 모아 한곳에서 판매하는 ‘엘르토프 테프(Elttob Tep)’라는 이름의 멀티 브랜드 숍을 운영하고 있다.

1세대 일본 디자이너들의 활약도 대단하지만, 최근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하고 있는 ‘사카이’를 비롯해 ‘컬러’ ‘언더커버’ ‘비즈빔’ ‘엔할리우드’ 등 새로운 세대의 일본발 디자이너들의 활약도 1세대 못지않게 대단하다. 사카이는 최근 매 시즌 경이로운 컬렉션을 선보이며 전 세계 패션 피플을 열광시키고 있으며, 작년 나이키와의 협업에 이어 올해 선보인 노스페이스와의 콜래보레이션 아이템들은 패셔니스타들의 머스트 바이 아이템으로 떠올랐다.
일본 브랜드는 어떻게 대세가 됐나
디자이너 브랜드뿐 아니라 소위 스트리트 브랜드의 활약 또한 눈에 띄는데, 마돈나와 기네스 팰트로가 사랑하는 데님 브랜드로 알려진 ‘45rpm’과 브래드 피트가 평상시 즐겨 입는다는 트레디셔널 캐주얼 브랜드 ‘엔지니어드 가먼츠’, 힙합 스타일의 브랜드 ‘어 베이싱 에이프’ 등도 뉴욕의 패션 신에서 이미 인기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이렇게 일본 디자이너 브랜드들의 활약상을 열거하고 나니, 가슴속 한구석에 씁쓸한 무언가가 느껴진다.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디자이너 브랜드가 없다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 물론 뉴욕과 파리 등의 컬렉션에 지속적으로 참가하는 훌륭한 디자이너들이 한국에도 존재하지만, 세계인들에게 각광받고 스며들어 ‘한국’ 하면 ‘그 디자이너’라고 떠올릴 만한 경지에 오른 이는 아직 없다.

한국 디자이너 브랜드들이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이 없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아직 세계적으로 각광받는 디자이너나 브랜드가 탄생하지 못한 건, 브랜드가 반드시 지녀야 할 궁극의 매력도가 떨어지기 때문이지 않을까 판단한다. 요즘 세상에는 상상 이상으로 다양한 선택 사양이 존재하기에, ‘반드시 그것’이어야 하는 궁극의 매력을 보여주는 브랜드가 되지 않고서는 살아남기 힘들다. 그렇기에 한국의 각종 기관들도 ‘패션 코리아’ 같은 애매한 슬로건을 내걸고 형식적인 움직임만 보일 것이 아니라 인재와 아이디어를 모아 전략적으로 디자이너들의 세계 진출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 머지않은 미래에 전 세계 패션 피플이 선망하는 한국발 ‘잇 브랜드
(It Brand)’가 탄생하길 기대한다.
일본 브랜드는 어떻게 대세가 됐나


일본 브랜드는 어떻게 대세가 됐나
Joel Kimbeck

뉴욕에서 활동하는 광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안젤리나 졸리, 기네스 팰트로, 줄리아 로버츠, 아만다 사이프리드, 미란다 커 등 세기의 뮤즈들과 함께 작업해왔다. 현재 ‘pertwo’를 이끌며 패션 광고를 만들고 있다. 〈레드 카펫〉을 번역하고 〈패션 뮤즈〉를 펴냈으며 한국과 일본의 미디어에 칼럼을 기고한다.

기획 여성동아
사진 rex
디자인 최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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