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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star_family

차지현·차태현 부모 인생은 아름다워

editor 정희순

2016. 11. 14

서로 손을 꼭 쥔 부부와 망원동 한강변을 걸었다.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말했다. 부족해서 감사한 삶이라고. 겨울이 있으면 봄도 온다고.

‘가족’이라는 단어만큼 가슴을 따뜻하게 하는 말이 또 있을까. 쌀쌀해진 가을의 찬 바람에도 지나온 인생길을 이야기하는 부부의 얼굴에선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영화제작자 차지현과 배우 차태현의 부모로 잘 알려진 차재완(71)·최수민(71) 부부다. 이들은 최근 가족의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풀어낸 책 〈가족극장〉을 펴냈다. 제목 아래에는 ‘한 방송인 가족의 영원한 사랑’이라는 부제도 달았다. 책에는 돌고 도는 계절과도 같은 부부의 인생을 진솔하게 담아냈다. 남편 차재완 씨는 “일도, 사랑도, 부모도 40년 가까이 했다”며 “요즘은 인생의 가을을 맞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두 아들 모두 스타로 키운 차재완 · 최수민 부부

잘 알려진 것처럼 부부의 두 아들은 연예계 유명 인사다. 둘째 아들은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누비며 활약하는 만능 엔터테이너 차태현(40)이고, 큰아들인 차지현(42) 씨는 영화제작사 AD406의 대표로 과거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끝까지 간다〉 등의 영화를 제작해 칸 영화제에도 초청받았던 인물이다. 형이 제작을 맡고 동생이 주연 배우로 활약한 영화 〈사랑하기 때문에〉도 11월 개봉을 앞두고 있다.

두 형제의 인기에 가려져 있긴 하지만, 사실 이들 부부도 방송계에서 유명하다. KBS의 전신인 동양방송국 성우실에서 만나 지난 1973년 결혼한 방송가 대표 커플. 아내 최수민 씨는 우리에게도 친숙한 만화 〈영심이〉의 영심이와 〈달려라 하니〉의 나애리 목소리 연기를 맡았던 유명 성우이고, 차재완 씨는 KBS 음향효과팀장을 역임하고 지난 2005년 정년퇴임했다. 2012년에는 KBS2 TV 예능 프로그램 〈남자의 자격-패밀리 합창단〉에 부부가 동반 출연했는데, 당시 차재완 씨가 합창단의 단장을 맡아 거침없는 입담을 펼치는 모습을 보며 역시 끼는 대물림이 되는가 보다 싶었다.

독실한 크리스천인 부부는 서울 마포구 망원동에 ‘AD농어촌방송선교회’를 차리고 전국 각지의 작은 교회 목사들에게 사역에 도움이 될 만한 교육용 자료를 만들어 보내는 일을 하고 있다. 인터넷 방송을 중심으로 농어촌의 작은 교회들의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도 주요 업무 중 하나다. 가족 모두가 좋아하는 분야에서 일하며 화려한 성적을 거둔 셈이니 부러울 것 없는 인생이다.




“겉보기엔 ‘자식 잘 둔 덕에 호강한다’고 비치겠죠. 하지만 사연 없는 집이 어디 있겠어요. 사업 실패로 네 식구가 친척 집에 얹혀살며 꾸역꾸역 빚을 갚아나간 적도 있고, 두 아들이 생각한 것처럼 일이 안 풀려 남몰래 운 적도 많죠. 어디 그뿐인가요. 며느리에게 서운해하며 갈등하는 것도 다른 집들과 똑같아요. 하지만 지나고 보니 그 모든 것이 ‘행복’이라는 선물이더라고요. 인생에서 얻은 깨달음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어요. 감추고 포장할 수 있었던 일들을 책에 솔직하게 써내려간 이유도 그거예요.”(최수민)  


아내 최수민 씨가 한창 성우로 잘나가던 1979년, 남편 차재완 씨는 형제들과 (주)푸른동산이라는 이름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초등학교 학생들의 부교재를 만들면서 3년여를 버텼으나 무리한 투자로 인해 3억여원의 빚더미에 앉게 됐다. 부부는 집을 팔아 빚을 정리한 후 개포동에 있는 형님 집에 들어가 얹혀살았다.


“21평짜리 개포동 형님 댁에서 여덟식구가 모여 살았어요. 꼬박 6년을 애먹었는데 저라고 왜 속상하지 않았겠어요. 새벽까지 일해 한 푼 두 푼 모은 돈을 하루아침에 다 날렸으니, 지금도 그 시절 생각을 하면 가슴이 먹먹해질 때가 많죠. 그런데 무조건 남편 탓을 하고 싶지 않았어요. ‘네 잘못이네, 내 잘못이네’를 따졌다면 당장에 갈라섰겠지만, 저는 우리의 일이라고 생각했거든요.”(최수민)


최씨는 “아는 분은 사업을 하다 5억원을 빚졌다고 하던데 우리는 빚이 3억이니 2억은 이익을 본 셈”이라며 의기소침해진 남편을 위로했다. 돈을 잃었는데 가족 간의 화목까지 잃으면 상처가 더 클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한들 남편이 그 마음을 모르기야 했을까. 차씨는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아내에게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든다”고 했다. 남편 차씨는 지금도 매년 결혼기념일마다 특별한 이벤트를 준비한다. 28주년 결혼기념일에는 28년산 포도주를 비밀리에 공수했고, 30주년 결혼기념일에는 아내에게 지금껏 만나 사랑하면서 느꼈던 30가지 기쁨들을 고이 적어 전했다. 지난 결혼 43주년 때는 장미꽃 마흔 세 송이를 정성스레 준비했다. 소박해서 더 낭만적인 노부부의 사랑이다.


“저는 가정을 나라에 비유해요. 제가 대통령이면 아내는 국무총리죠. 아내에게 감사한 마음은 말로 다 표현 못 해요. 제가 제 생일은 잊어도 결혼기념일은 결코 그냥 넘어가지 않는 이유도 그거예요. 결혼기념일은 우리 집의 국경일인 셈이니까요. 최근에 아내에게 준 선물요? 얼마 전 〈아침마당〉에 동반 출연해 받은 출연료를 아내에게 전부 다 준 일이죠(웃음).”(차재완)



태어나서 받은 가장 큰 선물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부부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서로를 지목했다. 둘째 아들 차태현이 부모님을 볼 때마다 “어유, 닭살!” 하며 몸서리를 치는 것도 이런 이유다.


“아내는 제가 인생을 살면서 받은 가장 큰 축복이에요. 1997년에 저는 아내와 함께 방송통신대학교 방송학과에 들어갔어요. 입학식에도 가고 OT, MT에도 참석하면서 늦깎이 대학생 생활을 같이 즐겼죠.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우리 부부의 모습을 보고 ‘불륜 아니야?’ 하고 의심한 동기생들도 많았다고 하더라고요(웃음).”(차재완


지금은 두 아들이 모두 업계에서 알아주는 인물이 됐지만, 자식들의 일로 속을 끓였던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1995년 KBS 슈퍼탤런트 선발대회에서 은상으로 데뷔한 차태현은 4년여의 시간 동안 무명 생활을 겪어야 했다. 당시 공황장애까지 겪었던 그에게 참고 기다리면 네 꿈을 펼칠 수 있을 거라며 위로를 건넨 것도 부모의 몫이었다. 부모의 간절한 기도대로 차태현은 드라마와 영화에서 크게 성공을 거뒀고, 아등바등 갚아나가던 나머지 빚도 1990년대 후반 ‘묻지 마, 다쳐’라는 유행어를 낳은 차태현의 이동통신사 광고로 모두 청산하게 됐다. 힘든 시기에도 굴하지 않고, 가족이 똘똘 뭉친 것에 대한 보상이었다. 사람들은 “성공한 아들 둬 좋겠다”며 부러워했지만, 엄마 최수민 씨에겐 남모를 고민이 있었다. 큰아들에 대한 애잔함이었다. 눈치 없는 남편이 큰아들에게 ‘동생 잘 모셔라’ 하는 식으로 농담이라도 할 때면 남몰래 남편의 허벅지를 쿡쿡 찌르곤 했다.


“두 아들을 키우면서 부모로서 가장 기뻤던 순간을 꼽자면 신문에 지현이와 태현이의 이름이 나란히 실렸을 때예요. 그 기사를 보고 울컥한 마음을 한동안 진정하기 힘들었죠. 그제서야 지현이에게 말했어요. 새벽마다 했던 제 기도는 두 아들이 나란히 성공을 거두는 거였다고요. 저는 지금도 그때 그 신문 기사를 스크랩해서 가지고 있어요.”(최수민)


사람들은 부부에게 두 아들을 나란히 성공시킨 비결이 뭐냐고들 묻는다. 그때마다 최수민 씨는 말한다. 언제나 부족함과 목마름이 있었지만, 그래서 더 간절할 수 있었다고. 부모가 자식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그저 묵묵하게 기다려주는 것뿐이었다고 말이다.  



큰아들 지현 씨는 미국 유학 시절 교회에서 교포 2세를 만나 가정을 꾸렸고, 작은아들 차태현은 무려 13년을 교제한 여자와 결혼했다. 전혀 다른 문화에서 자란 ‘미국댁’ 큰며느리는 부부에게 숙제 같은 존재였다. 그런 큰며느리와 한동안 한집에서 지냈으니, 제아무리 덕이 많기로 소문난 부부라도 갈등은 피하기 어려웠다. 시부모 앞에서 언성을 높이며 부부싸움을 하는 모습과, 다함께 식사를 하고서도 식탁을 치우기는커녕 소파에 비스듬히 앉아 TV를 보는 큰며느리의 모습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더구나 최수민 씨는 오랫동안 관절염을 앓아 설거지는 늘 차재완 씨의 몫이었다. 차재완 씨는 “딸 같은 며느리 때문에 속 끓이는 것이 가장 큰 고민이었다”며 껄껄 웃었다.


“처음엔 천방지축 며느리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울기도 많이 울었어요. 이번에도 제가 할 수 있는 건 기다리는 것뿐이었죠. 다행히 지금은 분가를 해 며느리 시집살이는 많이 줄어들었어요. 같은 아파트로 분가하는 바람에 매일같이 저희 집에 드나들긴 하지만요(웃음). 절대 변하지 않을 것 같았던 큰며느리가 요즘은 ‘엄마, 미안해요’라는 말도 해요. 그럴 때면 ‘속상해도 내 딸’이라는 생각이 들죠. 미운 정 고운 정이 다 들었나 봐요.”(최수민)


요즘 부부에게 가장 행복한 순간이 있다면 토끼 같은 손주들을 볼 때다. 원래는 여든 살까지만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손주들을 보고 나서 아흔까지는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단다. 차재완 씨는 이게 모든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공통된 욕심 아니겠냐며 빙그레 웃었다.


“언젠가 우리 가족이 모두 등장하는 연극을 무대에 올리고 싶어요. ‘우리 집에 놀러오세요’라는 제목으로요. 다른 가족들의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더 공감해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여자 주인공은 남편 때문에, 자식 때문에, 며느리 때문에 속 끓이며 살아온 최수민 여사예요! 저야 당연히 로맨틱한 이야기를 끌고 가는 남자 주인공 아니겠어요?”(차재완)


황혼의 부부는 싱그러웠던 과거의 봄을 그리워하지 않는다. 어차피 계절은 돌고 도는 법이니까. 그게 인생이니까.

사진 홍중식 기자
디자인 김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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