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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CHANGE

오늘부터 우리는

기획 · 안미은 기자 | 사진 · 지호영 기자 셔터스톡 | 디자인 · 이지은

2016. 08. 09

오늘부터 우리는상사에게 혼나고 부하 직원에게 치이고. 하루에도 몇 번씩 사표를 쓰는 직장인이 얼마나 많은가. 회사를 떠나 진짜 꿈을 찾고자 하는 어른들을 위한 퇴사학교가 개교한 이유다. 이 학교의 설립자이자 교장인 동시에 학생이기도 한 장수한 대표가 물었다. 지금 행복하냐고. 선뜻 대답할 수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함께 답을 생각해보기로 했다. 오늘부터 우리는 다시 꿈을 꾸기로 결심한다.

저마다의 개성과 매력이 넘쳐흐르는 스타트업 기업이 한데 모인 곳, 서울혁신센터에 들어서자, 교장이라고 부르기엔 앳된 얼굴의 남자가 손을 흔들었다. 장수한(31) 대표다. 한때 잘나가는 ‘삼성맨’이었던 그가 회사를 박차고 나와 블로그에 퇴직 경험담을 솔직하게 풀어놓은 것이 지금의 퇴사학교를 만드는 계기가 됐다. 불과 1년 전 퇴직할 당시만 해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 당시 그는 그저 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무언가를 ‘하는’ 것이 또다시 스펙 쌓기의 연장이 될까봐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운동을 하고, 요리를 하고, 밀린 책을 읽었다. 그러자 문득 글이 쓰고 싶어졌다. 그렇게 3개월간 끄적거린 글이 운 좋게 라는 책으로 출간됐다. 이 모든 게 9개월 만에 벌어진 일이다. 그의 책은 많은 직장인들의 공감을 사며 베스트셀러 자리에 올랐다. 그때 깨달았다. 퇴직이 불특정 다수가 아닌 동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모두의 고민이란 것을. 올바른 퇴직 문화를 만들어보자는 사명감을 가지고 지난 5월 퇴사학교를 설립했다. 이곳에서 그는 ‘퇴사학개론’을 가르친다. 일자리가 줄어들 수밖에 없는 알파고 시대에 직장인들이 평생 먹고살 수 있는 재미있는 일을 찾아내고 결정할 수 있도록 돕는 컨설턴트 역할을 하고 있다.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 ‘퇴사’는 표면에 드러내놓고 공론화시키기 어려운 주제다.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지고는 있지만, 잦은 이직이나 퇴사 경력을 가진 사람을 사회부적응자나 능력 없는 사람으로 치부하는 부정적 시선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러나 직장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예외 없이 퇴사의 순간을 적어도 한 번은 맛봐야 한다. 배우가 커리어를 위해 필모그래피를 쌓듯 더 만족스런 작품을 위해서는 때론 인생의 무대를 과감히 옮길 필요가 있다. 장수한 대표가 말하는 퇴사 역시 단순히 회사를 그만두는 행위가 아닌  ‘진짜’ 나를 찾아가는 상징적 의미다.




 Interview  장수한 퇴사학교 교장


입학 조건


▼ 누구나 한 번쯤 나를 ‘갈구던’ 상사에게 사직서를 내미는 모습을 상상해보곤 한다. 속이 후련하다. 하지만 실천할 용기가 없다.



당연하다. 나도 퇴사 문제로 고민할 땐 그랬으니까. 해 뜨기 무섭게 출근해 밤늦게 퇴근하는 저녁 없는 삶. 회사 생활 내내 가슴속에 사표를 품고 다녔다. 누구나 감정적 배출구가 필요한 법인데, 회사에서 탁 터놓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그래서 같은 고민을 가진 사람들이 퇴사학교로 몰려드는 것 같다.

▼ 퇴사학교 설립에 영감을 준 사람이나 사물이 있나?


정말 괜찮겠어? 퇴사를 결정하고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다. 난 정말 괜찮았다. 단지 필요 이상의 시선과 관심이 피곤했다. 머리라도 식힐 겸 서점에 들렀다 라는 책을 봤다. 그 자리에 서서 단숨에 다 읽었다. 덴마크는 행복지수 1위인 나라다. 삶의 모든 걸 스스로 결정한다. 그런데 왜 우리나라는 개인적인 일조차 남들 눈치를 보도록 종용당하는 걸까. 자유롭게 이직과 퇴직 고민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다.

▼ 입학과 졸업 테스트가 재미있다. ‘출근하기 싫다’에 ‘Yes’라고 답하면 입학이고, ‘No’라고 답하면 바로 졸업이다. 입학 과정도 이만큼 쉬운가?

단순한 질문이 혁신의 시작이다. 오늘 아침 일어나 출근하기 싫다고 생각했다면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만족스럽지 않은 거다. 당장 퇴사학교 홈페이지에 접속해 회원가입을 하고 원하는 강의를 신청하라. ‘퇴사학개론’ ‘퇴사 후 세계일주’ ‘덕업일체 : 좋아하는 일하며 먹고 살기’ ‘병행창업’ 등 실속 있고 재미있는 강의들이 당신을 기다린다. 학칙이 좀 엄격한 편인데 ‘입학은 조용히, 졸업은 화려하게 하기’ ‘회사에 소문내지 않기’ ‘사무실에서는 절대 학교 홈페이지에 접속하지 않기’ 이 세 가지는 꼭 지켜야 한다.


전공 탐색과 실습



▼ 신입사원부터 대기업 임원까지 다양한 학생들이 있다고 들었다. 퇴사학교에서 나이와 직책은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은 평생의 숙원이다. 껍데기는 중요하지 않다. 그래도 통계를 내보자면 20대는 적성의 문제, 30대는 급여의 문제, 40~50대는 건강과 가정, 스트레스의 문제로 찾아온다. 모두 꿈꾸고 도전하고 싶은 청춘들이다.

▼ 고민의 정점에 돈이 있다면?

금전적인 요인 때문에 퇴사를 쉽사리 결정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들의 사정은 너무나 이해한다. 그러나 업의 본질이 바뀌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이제는 ‘고용’이 아닌 ‘개척’이 모델이 되는 시대다. 지금 당장 퇴사하라는 소리가 아니다. 충분한 시간을 두고 천천히 자신의 강점을 개발해 미래의 삶을 준비하란 소리다. 가끔 “나는 안 될 거야” “힘드니까 쉬어야해” 이런 말들로 핑계를 대며 현실에 안주하는 친구들이 있는데, 그럴 때마다 이렇게 말해준다. “그래도 무한도전 보면서 할 거 다 하잖아!”

▼ 꿈을 위해 어떤 실질적인 방안을 제시하는가?


강의 대부분이 서로의 고민을 공유하는 시간으로 채워진다. 이 시간을 통해 자아를 성찰하고, 자신이 가진 아이덴티티를 찾는다. 우리 학교에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변호사, 요리사, 작가 등으로 변신한 훌륭한 ‘선배 퇴사자’들이 많다. 그들이 노하우를 바탕으로 개인의 적성에 맞는 구체적 방안을 모색하고 제시해준다. 최근에는 ‘워킹맘’에 대한 학생들의 문의가 잦았다. 교사 영입을 위해 엄청나게 공을 들였다. 8월에는 워킹맘을 주제로 한 강의를 추가할 예정이다. 


졸업은 화려하게

▼ 퇴사학교가 가진 비전은 무엇인가?

좋아하는 일을 꿈꾸고 실행할 수 있도록 돕는 것. 퇴사가 더 이상 쉬쉬하는 이야기가 아닌, 누구나 거쳐가는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사회에 인식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건강한 퇴사 문화를 만들고 싶다. 직장인을 위한 다양한 퇴직 프로그램으로 기업들의 참여까지 이끌어낼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 이루고 싶은 개인적인 목표가 있다면 말해달라.

퇴사학교가 활성화돼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는 것. 그런 날이 오면, 동남아처럼 가까운 해외로 동료들과 워크숍을 다녀오고 싶다. 그전까진 정말 하루도 못 쉴 것 같다.
하하.

▼ 처음 질문을 다시 돌려주겠다. 지금 행복한가?


거의 365일 풀타임으로 일한다. 예전보다 업무량은 두 배로 늘었는데, 벌어들이는 수입은 절반도 채 안 된다. 그런데 행복하다. 같은 뜻으로 뭉친 동료들이 있어 행복하고, 사회에서 보여주는 관심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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