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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LITERATURE

조용조용 강물처럼 흘러 큰 강 이룬 맨부커상 수상 작가 한강

기획 · 김명희 기자 | 글 · 김지은 자유기고가 | 사진 · 이상윤 뉴스1 | 디자인 · 김영화

2016. 07. 19

지난 6월 16일 저녁, 소설가 한강의 신작 〈흰〉의 낭독회가 열렸다. 맨부커상 수상 이후 독자와의 첫 만남이다. 문학평론가 권희철의 사회로 진행된, 작가 한강의 ‘흰 것’들에 대한 2시간의 기록을 지면으로 전한다.

지난 5월 16일(현지 시간), 대한민국 문학계에 낭보가 날아들었다. 소설가 한강(46)의 작품 〈채식주의자〉가 2016년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수상작으로 선정된 것이다. 맨부커상은 노벨문학상, 프랑스 공쿠르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히는 상으로, 그해 영국에서 출간된 소설을 대상으로 한다. 맨부커상 선정위원회 위원장이자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 문학 선임기자인 보이드 턴킨은 한강의 작품에 대해 “압축적이고 정교하고 충격적인 소설이 아름다움과 공포의 기묘한 조화를 보여줬다”는 찬사를 보냈다.  〈채식주의자〉는 한강이 2004년 발표해 2007년 단행본으로 출간한 작품으로, 어린 시절 육식과 폭력에 관한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여성이 극단적인 채식을 통해 죽음에 다가가는 이야기다. 2010년부터 독학으로 한국어를 익혀 〈채식주의자〉를 번역한 영국인 데보라 스미스는 한강과 맨부커상을 공동 수상했다.



백지에 눌러 쓴 ‘흰 것’들에 관한 이야기

이번 낭독회는 한강이 맨부커상 수상 이후 처음으로 독자들과 가까이 만나는 시간이었다. 지난 한 달여 그가 얼마나 바빴을지를 짐작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수상 소식에 이어 연일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관한 이야기는 차분하고 정적인 것을 좋아하는 그의 성격상 적잖은 부담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독자들 앞에 선 그가 던진 첫마디는 ‘우리 편’이었다.

“여긴 전부 우리 편인 것 같아 안심이 돼요.”

긴장된 한숨을 길게 뽑아낸 그는 “그 많은 광풍을 거치며 살아남은 것 같다. 빨리 내 방으로 돌아가 작품을 쓰고 싶다”는 말로 수상 이후의 근황을 전했다.



한강의 신작 〈흰〉은 시인으로도 활동한 이력이 있는 그가 기존의 시 혹은 소설 형식에서 벗어나 실험적으로 구성한 작품이다. 그가 밝힌 것처럼 굳이 기존의 장르 구분에 준해 시와 소설, 수필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소설에 가까운, 그러나 시 같기도 하고 수필 같기도 한 모호함이 있다. 작품은 화자인 ‘나’가 태어난 지 2시간 만에 죽은 언니에 대해 회상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한 65편의 이야기가 ‘나’ ‘그녀’ ‘모든 흰’ 이렇게 3부로 나뉘어 펼쳐진다.  

낭독회는 진행을 맡은 문학평론가 권희철과 작가 한강이 각부에서 몇 개의 이야기를 골라 낭독한 다음 권희철이 평론과 해설을, 그리고 한강이 작가의 의도나 작품의 비하인드 스토리 등을 들려주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이 작품은 한강이 2014년 초, 자신의 작품을 폴란드어로 번역해준 번역가의 초대로 4개월간 바르샤바에 머무는 동안 완성했다. 그는 당시의 심경을 “폴란드가 아니더라도 어디로든 도망가고 싶었다”고 했다. 전작 〈소년이 온다〉를 쓰는 동안 넋들이 가까이 와 있다는 느낌이 들었고, 그렇게 자신의 주변을 서성이는 넋들을 느끼는 사이 ‘흰 것’들에 대한 생각이 거듭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작가 한강에게 흰 것은 무슨 의미일까. 한강은 “돌아보면 예전에 ‘흰 꽃’이라는 단편도 썼었다. 하얀 밥풀, 하얀 꽃, 하얀 나비, 바다의 흰 포말…. 그런 것들에 대한 이미지를 모아 쓴 작품이다. 그 뒤로도 흰 것에 대한 이야기는 여러 차례 썼던 것 같다. 몰랐는데, 누가 내 소설에 나오는 여자들은 흰 옷을 많이 입는다고 했다”며 흰 것에 대한 애착을 드러냈다. 그는 “흰 것은 가장 잘 더럽혀지는 색이자 더럽혀지지 않는 색, 밝지만 그 안에 삶과 죽음이 다 들어 있는 색”이라 설명했다. 〈소년이 온다〉의 마지막 장면에서 어린 동호가 엄마의 손을 잡고 ‘기왕이면 햇볕이 있는 곳으로 가자’며 이끄는 장면도 결국엔 흰 것에 대한 이야기다.

“작은 목소리로 조곤조곤 말하는 문장인데도 아주 강렬하게 느껴졌다”는 평론가 권희철의 말처럼, 흰 것에 대한 한강의 이야기는 조용조용 독자들에게 스며들어 강렬한 언어를 선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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