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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David McInnis 데이비드 맥기니스

〈태양의 후예〉 신 스틸러 악당 ‘아구스’

글 · 김지영 기자 | 사진 · 조영철 기자 | 장소 협조 · 충정각(02-313-0424) | 디자인 · 김영화

2016. 05. 26

올해로 데뷔 18년 차가 된 배우지만 얼마 전까지 그를 알아보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지금은 어린아이부터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까지 반길 정도로 유명해졌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서 연기한 신 스틸러 악당 ‘아구스’ 덕분에 인생이 역전된 한국계 미국인 데이비드 맥기니스와의 유쾌한 데이트.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서 갱단 두목 ‘아구스’를 연기한 미국인 배우 데이비드 맥기니스(43)를 기억하는가. 만일 우르크의 평화를 깨고, 유시진(송중기)과 강모연(송혜교)의 목숨을 위태롭게 만드는 그가 없었더라면 이 드라마를 그토록 가슴 졸이며 볼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신장이 188cm에 이르는 이 훤칠한 미남은 한국인 어머니와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1998년 〈컷 런스 딥〉으로 스크린에 데뷔한 후 〈내 머리 속의 지우개〉 〈태풍〉 〈기담〉 〈포화 속으로〉 등의 영화와 〈에어시티〉 〈아이리스〉 〈아이리스 2〉 〈구가의 서〉 등의 드라마에 출연했다. 하지만 〈태양의 후예〉에서 아구스 역을 맡기 전까지 무명 배우나 다름없었다. 아구스는 지금껏 별다른 존재감을 보이지 못하던 그에게 맞춤복처럼 어울리는 옷이었고, 그 덕에 그는 무명의 설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데뷔한 지 18년 만이다.

“제가 한국말 조금 해요.”

한국말이 서툰 데이비드 맥기니스는 인터뷰하는 자리에 통역을 도와줄 진원석 영화감독과 같이 나왔다. 미국 유학파인 진 감독은 데이비드가 〈태양의 후예〉에 출연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조력자다. 항간에는 데이비드의 〈태양의 후예〉 출연이 ‘배우 하정우 덕’으로 소문났는데 그것도 영 터무니없는 얘기는 아니다. 사연인즉, 이렇다.

“친하게 지내는 배우 하정우가 지난해 미국 LA 다운타운에서 미술 전시회를 열었어요. 그 자리에 진 감독님과 같이 갔다가 우연히 강명찬 PD를 만났어요. 그분이 〈태양의 후예〉의 여러 PD 중 한 명인데, 나중에 배우를 캐스팅하는 단계에서 제가 생각났대요. 연락할 방법을 찾다가 당시 미국에 있던 진원석 감독님에게 이메일을 보내 저를 소개받으신 거예요. 국적이 미국이라 일이 없을 때는 주로 미국에 있거든요.”





외국인이 반말하는 게 거슬린다는 이 남자

▼ 최근 〈일요일이 좋다-런닝맨〉과 〈연예가중계〉에 출연해 좋은 반응을 얻었는데, 한국의 예능 프로그램은 어땠나요?

재미있었어요. 〈런닝맨〉은 드라마와 달리 빨리빨리 찍어야 해서 정신이 없었지만 다른 사람들의 에너지를 받으며 할 수 있어 좋았어요. 드라마와 달리 카메라 6~7대가 저희를 찍는 것도 인상적이었고요.

▼ 인기를 실감하나요.

꼬마들이 저를 보면 ‘아구스’라고 부르며 쫓아오더라고요. 식당 같은 데 가면 아주머니들도 사진 같이 찍자고 하시고요. 그런 반응이 재미있고 신기해요.

▼ 〈태양의 후예〉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을 꼽는다면.  

세 신 정도가 인상적이었어요. 우선 송중기 씨와 진구 씨가 교회에서 나와 제 옆을 스쳐가면서 서로 쳐다보는 장면이 떠오르네요. 앞으로 서로 엮이게 될 것을 예고하는 복선이었죠. 송혜교 씨를 납치해 인질로 잡아두었던 제 마지막 장면과, 제 총을 맞고 다리를 다친 파티마에게 이 나라를 떠나야 한다고 협박하는 장면도 기억에 남고요. 조재윤(〈태양의 후예〉에서 악역 진 소장 역으로 열연했다) 씨와 함께한 장면 중에도 좋은 신이 많았어요.

▼ 송중기, 송혜교 씨를 같은 배우로서 어떻게 평가하는지요.

송중기 씨와는 붙는 신이 많아서 대사를 가지고 의논을 많이 했어요. 그는 진정성 있는 배우고, 보이는 그 자체가 그 사람이죠. 송혜교 씨와 함께하는 신은 많지 않았지만 그녀는 재능 많고 감정 연기에 아주 능숙했어요. 원하는 감정을 바로바로 뽑아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두 배우 모두 매 순간 자기가 뭘 해야 하는지 정확히 아는 것 같았어요. 프로다웠죠.

▼ 존댓말을 잘하네요(인터뷰 도중 가끔 한국말을 할 때는 존댓말로 이야기했다).

존댓말 좋아해요. 예의 바른 느낌이 들어서요. 한국 사람이 다 된 건지, 외국인들이 반말로 말하는 것을 보면 거슬려요. 하하.

좋아하는 한국 배우를 묻자 데이비드는 엄지손가락을 세우며 최민식을 꼽았다.“연기 스타일이 좋고 감정 표현이 폭발적이며 심오해서”라는 이유와 “작품을 같이한 이병헌과 이정재, 정우성, 하정우도 좋다”는 말도 덧붙였다. 한국 가수 가운데는 박상민과 김범수를 좋아한다고 했다. 그가 가라오케에 가면 부르는 애창곡도 김범수의 노래 ‘보고 싶다’다. 최근 그는 김범수의 뮤직비디오 〈서툰 시(Pain Poem)〉에 출연했다.



‘이방인’이었던 어린시절

▼ 어머니가 한국분이라고 들었어요.

부모님이 한국에서 만나셨어요. 아버지는 당시 미군이셨어요. 두 분이 결혼해서 미국에서 살다 저를 낳았는데, 제가 2~5세일 때는 다시 한국에서 지냈어요. 이후 미국 위스콘신 주에서 살다가 하와이로 이사해 저는 그곳에서 고등학교를 나왔죠.

▼ 데뷔작인 이재한 감독의 영화 〈컷 런스 딥〉에는 어떻게 출연하게 됐나요.

하와이에서 공군 생활을 7개월간 하다가 미국 뉴욕으로 갔어요. 배우가 되기 위해서요. 뉴욕에서 대학에 다니며 유명한 프랑스 레스토랑에서 서빙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손님으로 온 이재한 감독님의 눈에 들어 오디션을 보고 합격했죠. 두 달 동안 영화를 찍어야 해서 당시 들어가려고 했던 대학 농구팀에는 결국 못 갔어요. 그때부터 다른 생각을 접고 계속 연기를 했죠. 행운은 타이밍과 장소가 맞아야 잡을 수 있는 것 같아요. 레스토랑에서 ‘알바’하다 이재한 감독님을 만나고, 하정우 전시회에서 〈태양의 후예〉 PD님을 만난 것처럼요.   

▼ 〈내 머리 속의 지우개〉 〈포화 속으로〉 등 이재한 감독의 작품에 많이 출연했더군요. 두 분이 무척 친한가 봐요.

제 데뷔작이 이 감독님에게도 첫 작품이었어요. 그때는 저희 둘 다 어렸죠. 그 인연으로 좋은 작품이 있으면 이 감독님이 항상 저를 찾아주세요. 그걸 한국에서는 의리라고 하더군요. 그 의리, 저도 좋아해요. 하하.

▼ 한국에서 연기 활동을 하며 어떤 인상을 받았나요.

따뜻한 나라라는 인상을 받았어요. 한국 사람들은 정이 많아서 좋아요. 한국에는 다른 나라에게서는 찾아보기 힘든 정이라는 문화가 있는데 그게 너무 좋아요. 얼마 전 지인 7명과 청계산에 갔어요. 등산하고 내려와서 술자리를 하며 끈끈한 정을 나눴는데, 지금도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 미국에서 자라면서 어머니의 나라 한국이 그립지 않던가요.

삼촌, 사촌, 숙모, 할머니가 한국에 사세요. 1998년 첫 영화를 찍으려고 20년 만에 한국을 다시 찾았을 때 그분들을 만났어요. 엄마랑 너무 똑같이 생긴 할머니를 보니 눈물이 나더군요. 이렇게 오랫동안 한국에서 배우로 활동하면서 엄마 나라와 문화를 접하고, 한국 친척들과 교류할 수 있어서 감사해요.

▼ 미국에서는 한국말을 배우지 않았나요.

5세까지 한국에 살 때는 한국말은 잘했는데, 영어는 못했어요. 그래서 위스콘신 주로 이민 갔을 때 영어를 못해 여러모로 힘들었죠. 학교에서는 제가 영어를 잘 못하니까 지적 장애인들과 함께 수업받게 했어요. 그때는 영어를 배우는 게 시급했고 살아남기 위한 궁극의 목적이었어요. 아이들과 어울리고 진도를 따라가려면. 이런 이야기는 인터뷰하며 처음 해봐요. 1980년대의 위스콘신 주는 지금처럼 문화가 개방적이지도 않았고 한국말을 배울 기회도 주지 않았어요.

▼ 어린 마음에 상처 받지 않았나요.

어릴 때 저는 이방인이었어요. ‘왕따’ 비슷한. 동양인도, 서양인도 아닌.



같은 지점에서 웃을 수 있는 여자가 좋아

화제를 돌리고 싶었던 걸까. 데이비드는 기자의 운동화를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신발이 참 예쁘다”고 말했다. 이에 기자도 “마음에 들면 줄까요?”라고 물었더니 그의 입에서 웃음이 빵 터진다. 엄청 큰 발을 보여주면서. 만면에 장난기 어린 미소를 머금은 그의 모습은 〈에어시티〉에서 최지우를 납치하고, 〈아이리스〉에서 이병헌을 총으로 쏴 죽이기도 했던 악당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첫 작품에서 악당을 연기했어요. 근데 저 나쁜 사람 아니에요. 그런데도 계속 그런 캐릭터가 들어오니까 저를 나쁜 사람으로 보는 것 같아요. 제 생각엔 눈썹 때문인 것 같아요. 눈썹이 꺾여 있잖아요. 수염도 많이 나고. 하하.”

데이비드의 평소 성격은 어떤지 진 감독에게 묻자 “지금과 똑같다”는 답을 돌려준다. “장난기 있고, 유머러스하고, 정과 의리를 소중히 여기죠.” 그 얘기를 듣던 데이비드는 “아구스를 보면서 나를 발견할 때가 있다”며 끼어들었다.

“아구스는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빅 보스(송중기)’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고 있었어요. 아구스가 나타나니까 송중기가 송혜교를 보호하려고 막아서는 장면이 있는데, 그때 아구스에겐 두 사람에 대한 적개심이 없었어요. 송중기가 반가워서 껄렁껄렁하고 장난스럽게 행동한 거죠.”

그의 특기는 목공과 자동차 수리고, 취미는 영화 감상과 35mm 카메라로 사진 찍기다. 재주가 많으니 도전해보고 싶은 역할이나 장르도 많을 것 같은데, 그는 ‘로맨틱 코미디’만 떠올렸다.

“상대 배우가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어요. 원래 코미디를 좋아해서 코미디에 무게중심을 두고 로맨스를 살짝 넣은 작품을 해보고 싶어요(웃음).

▼ 아직 ‘싱글’이던데, 여자친구가 있나요.

없어요. 한국과 미국을 왔다 갔다 하다 보니 누구를 진득하게 사귀기가 힘들더라고요. 그렇다고 독신주의는 아니에요. 좋은 사람을 만날 날이 오겠죠.

인생을 함께하고 싶은 여성상은 있나요.

한 가지 타입으로 정해두지는 않아요. 그동안 만난 여자들도 스타일이 다 달랐어요. 사람을 좋아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저한테는 웃는 게 중요해요. 같은 지점에서 웃을 수 있는 웃음 코드가 잘 맞는 사람,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이 좋아요.

▼ 앞으로 꼭 이루고 싶은 소망은 뭔가요.

배우로서 더 성공하고 싶어요. 아들로서도 가족과 부모님을 위해 더 성공적인 삶을 살았으면 해요. 부모님이 더는 일을 안 하셔도 될 정도로요. 어머니는 하와이에서 골동품 가게를 운영하시고, 아버지는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계세요. 제가 직접 지은 집에서 은퇴한 부모님을 편히 모시는 게 꿈이에요. 그렇게만 된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아요.

▼ 다시 태어나도 배우가 되고 싶나요.

그때는 건축가를 하고 싶어요. 짓고 만드는 걸 좋아하니까 건축이 잘 맞을 것 같아요. 연기도 무에서 유를 만들어가는 일이라 재미있고, 종종 보람도 느껴요. 특히 〈태양의 후예〉 덕분에 저도 몰랐던 제 모습과 재능을 발견한 것 같아 흐뭇해요. 그 작품을 하면서 아구스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만족스러웠어요. 감독님이 캐릭터를 저 스스로 창조할 수 있게 자유를 주셨거든요. 제가 만든 캐릭터로 재미있게 즐길 수 있었죠(웃음).

데이비드는 한국에서 좀 더 활발하게 활동하길 소망하며 한국어를 열심히 배우고 있다. 현재 목표는 한국어로 연기하는 것. ‘영어만 하는 배우’로는 한국에서 연기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걸 그 자신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자리에서 일어서며 “다음에는 한국말로 인터뷰하자”고 말을 건네자 그가 또다시 아이처럼 해맑게 웃으며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네. 약속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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