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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YLE

KALEIDOSCOPE

촌닭 패션계를 접수하다!

Nerd Rocks Fashion World

글 · 조엘 킴벡 | 사진 · REX, tvN 제공 | 디자인 · 최정미

2016. 02. 12

당신에게 ‘패셔너블하다’는 말의 반대말을 물으면 뭐라고 대답할 것인가. 평범함 아니면 촌스러움. 사실 패셔너블하다는 말의 정의가 사람마다 제각각이니, 그 반대말이 무엇이라 딱히 정하기는 힘들 수도 있다. 패션의 대명제가 ‘남들과 다른 것’이라고 한다면, 평범한 것도 촌스러운 것도 결코 패션에 있어서는 납득이 가지 않는 요소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이 절대로 납득이 되지 않는 요소인 평범함과 촌스러움이 패션계를 휩쓸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 아이러니한 일이 왜 일어났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결국 패션은 시대와 함께 흐르는 트렌드라는 파도이기에, 거기에 편승해 묘기를 부리느냐 아니면 큰 파도 따위는 무시하고 자신만의 길을 가느냐를 선택하면 되는 것이다. 평범함의 최극치가 최고로 스타일리시하다는 주장을 펼치는 ‘놈코어(Normcore)’ 트렌드를 넘어, 촌스러움을 자유자재로 소화해내면서 촌스

당신에게 ‘패셔너블하다’는 말의 반대말을 물으면 뭐라고 대답할 것인가.
평범함 아니면 촌스러움.  
사실 패셔너블하다는 말의 정의가 사람마다 제각각이니, 그 반대말이 무엇이라 딱히 정하기는 힘들 수도 있다. 패션의 대명제가 ‘남들과 다른 것’이라고 한다면, 평범한 것도 촌스러운 것도 결코 패션에 있어서는 납득이 가지 않는 요소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이 절대로 납득이 되지 않는 요소인 평범함과 촌스러움이 패션계를 휩쓸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 아이러니한 일이 왜 일어났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결국 패션은 시대와 함께 흐르는 트렌드라는 파도이기에, 거기에 편승해 묘기를 부리느냐 아니면 큰 파도 따위는 무시하고 자신만의 길을 가느냐를 선택하면 되는 것이다.


평범함의 최극치가 최고로 스타일리시하다는 주장을 펼치는 ‘놈코어(Normcore)’ 트렌드를 넘어, 촌스러움을 자유자재로 소화해내면서 촌스러움을 극복하는 이른바 ‘너드 패션(Nerd Fashion)’까지. 우리는 지금 완전히 새로운 트렌드의 시대를 살기보다, 기존의 콘셉트를 패션으로 재해석해나가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너드(Nerd)는 멍청한 사람을 칭하는 말이다. 하지만 그냥 멍청한 사람이라기보다 오타쿠의 향기가 스멀스멀 피어나는, 한 우물만 너무 파서 자신의 관심사 외의 다른 분야에 대해서는 일절 지식도 없는 사람이라는 뉘앙스가 너드에는 있다. 그렇다고 너드가 결코 좋은 의미라는 말은 아니다. 세상의 보편적인 기준으로 보았을 때, 그들이 멍청하고 따분하다는 소리를 듣는 부류인 것만큼은 분명하니까.
너드와 패션. 이 말을 달리 표현하자면, 촌스러움과 패셔너블이다. 정말 이질감이란 단어를 설명할 때 딱 좋은 예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확연히 다르다는 것이 느껴지는 두 단어가 과감하게 랑데부를 하는 일이 생겼다. 패션과의 거리가 몇 백만 광년은 떨어진 듯 보이는 너드들에게 몇 백만 년 만에 한 번 일어날까 말까 한 진귀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바로 최근의 패션계가 너드들을 주목하기 시작한 것. 아니 정확하게 정정하자면, 실제의 너드들이 아닌 그 너드들이 평소에 입고 다니는 복장들이 패션적으로 재해석되어 패션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맞겠다.
어쩌다 너드들의 평상시 스타일이 최신의 잇 스타일로 등극할 수 있었단 말인가. 너드들의 평상시 복장이라고 하면 얼핏 굵은 뿔테에 빙빙 돌아가는 도수를 넣은 안경을 끼고, 하의로는 무릎이 나온 트레이닝복을 입고 상의는 몇 겹을 겹친 아우터 차림일 것만 같다. 그야말로 재미없고 촌스러운 스타일이 떠오른달까. 패션을 논하기 이전에 오히려 패션 테러리스트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을까 싶은 그들이, 지금 패션 트렌드의 중심에 서 있다고 하니 고개가 갸우뚱해질 사람도 많을 것이다.
이 엄청난 반전의 시발점을 유추해보면 2014년을 휩쓸고 간, 스티브 잡스로 대변되는 이른바 ‘컴퓨터 긱(Computer Geek)’ 스타일인 놈코어 패션일지도 모른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패션의 대명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남들과 다른 무언가를 표현한다는 개념을 완전히 무시하며, 지극히 평범한 것이 결국 스타일의 원류라는 역발상을 앞세운 트렌드, 놈코어. 그 놈코어로부터 시작된 이 안티 패션 트렌드는, 이제 그 세력을 넓혀 너드들의 일상복에까지 파고들며 확고부동한 입지를 굳히고 있는 것이다.


사실 너드들의 일상복이 트렌드의 중심에 섰다고 하는데, 과연 그게 무슨 뜻인지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간단한 예를 들어보겠다. 근래 들어 한 번이라도 남자들이 흰 양말에 샌들을 신고 다니는 모습이라든지, 여자들이 스커트에 코트를 말끔히 차려입고 발목까지 오는 흰 스포츠 양말과 함께 슬라이드라고 불리는 아디다스 3색 슬리퍼로 마무리한 모습을 본 적이 있는지. 바로 이 흰색 스포츠 양말에 슬리퍼나 샌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코디하는 것이 너드 스타일의 특권인 촌스러움의 극치였는데, 어느 순간 이 촌스러움이 패션적으로 재해석되어 무심하고 자연스러우며 스타일리시하다는 평을 듣게 되었다는 것이다.
최근 가장 핫하다고 회자되는 컬렉션 중의 하나를 꼽으라면, 디자이너 알렉산드로 미켈레가 이끄는 구찌의 컬렉션이지 않을까 싶다. 그는 2015년부터 새로이 이탈리아의 유서 깊은 패션 하우스 구찌를 이끄는 수장이 되었다. 그가 구찌의 디자인을 처음 맡으면서부터 컬렉션의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요소 중의 하나가 바로 이 너드 패션이다. 그간 여러 디자이너를 돕는 역할에 그치며 실제로 패션계에서는 거의 무명에 가까웠던 그가 구찌의 디자이너로 발탁되었다는 소식이 패션계에 전해졌을 때, 많은 이들은 구찌가 결국 도박을 감행했다며 브랜드의 앞날을 걱정했다. 하지만 그의 첫 번째 컬렉션이 열린 날 이후 그런 걱정은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그는 요즘 젊은 세대의 테이스트를 잘 읽어내어, 단순하고 모노톤 위주의 베이식 아이템이 주류인 놈코어 패션이 아닌 너드들의 기본 패션 아이템들을 선별했다. 거기에 한층 컬러풀하고 귀여운 톤을 더해 패셔너블한 아이템을 재창조하며 많은 패션 피플의 기대에 부응했고, 일약 트렌드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그가 새로 창조한 구찌의 세상에서는, 기존의 구찌가 추구한 클래식하며 고상한 분위기를 과감히 탈피하는 대신 요즘 젊은 세대들이라면 격하게 공감할 수 있는 오타쿠적 요소가 다분히 스며든 세계관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그의 컬렉션에는 너드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일종의 표식 같은 게 존재하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큰 뿔테의 잠자리 안경이다. 마치 1980년대의 전영록과 이선희가 회귀한 것이 아닌가, 착각이 들 정도로 큼지막한 안경이기에 자칫 한 발만 잘못 디디면 촌스러움이라는 낭떠러지로 떨어질 듯하다. 하지만 그 위험을 무릅쓰는 것이 결국 패션의 도전정신이기에, 근래 들어 많은 패셔니스타가 이 참을 수 없는 촌스러움을 패션으로 승화시키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최근 큰 인기를 모은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의 다양한 의상이 촌스럽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사실 조금만 다른 시선으로 보면 그 세련되지 못한 스타일과 옷들이 지금의 패션계에서는 잇 아이템이 될 수도 있다. 이미 덕선이가 선보인 청청 패션이나 하이웨이스트 핀토스 청바지는 전전 시즌부터 스멀스멀 인기의 영역을 확산하고 있으며, 동룡이가 늘 쓰고 다니는 전영록스러운 뿔테 안경 역시 최근 구찌 컬렉션에서 등장한 그것과 일란성 쌍둥이 처럼 똑같다.
결국 패션은 돌고 돈다는 말처럼, 지금의 트렌드를 이끄는 세계적인 디자이너들이 1988년을 격하게 공감하며 자란 세대이기에 그들이 재창조해내는 세상 역시 그 시대의 잔상을 반영하는 것은 당연하다. 당시의 촌스러움이 지금의 세련됨으로 가면만 바꿔 쓰고 세상에 재등장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어느 순간부터 패션계 전체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야말로 기발하고 한편으로는 괴팍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화려한 패셔니스타들에게서 점점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한때는 모든 컬렉션 런웨이 밖에서 가장 패셔너블하다며 스포트라이트를 독차지한 것이 일본 〈보그〉 안나 델로 루소의 범접하기 힘든 스타일이었지만, 지금은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오히려 그것을 왠지 촌스럽다고 느끼는 시대가 된 것이다. 바야흐로 평범함과 촌스러움이 극단의 패셔너블함을 넘어서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결국 지금 필요한 건 발상의 전환이다. 평범한 것도 패션이 될 수 있고, 촌스러운 것도 종이 한 장 차이로 패셔너블해질 수 있기에 편견을 과감히 버리고 패션 안에서 새로운 모험과 도전을 해보길 권한다. 어쩌면 늘 촌스럽다고만 여기던 남편의 무좀 방지 발가락 양말이 조만간 패션의 최전선에 서게 되는 날이 올지 모를 일이다.





Joel Kimbeck
뉴욕에서 활동하는 광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안젤리나 졸리, 기네스 팰트로, 줄리아 로버츠, 아만다 사이프리드, 미란다 커 등 세기의 뮤즈들과 함께 작업해왔다. 현재 ‘pertwo’를 이끌며 패션 광고를 만들고 있다. ‘레드 카펫’을 번역하고 ‘패션 뮤즈’를 펴냈으며 한국과 일본의 미디어에 칼럼을 기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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