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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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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여행자 양준일과 30년 만의 조우

EDITOR 신을진

2020. 02. 11

돌고 돌아 양준일은 결국 슈퍼스타로 우리 앞에 섰다. 시대를 앞서나갔으나 대중의 기억 속에서 완전히 사라졌던 그가 유튜브로 소환되고 다시 스타로 등극해 무대에 서는 과정은 한 편의 드라마 이상으로 감동적이다.

가수 양준일(51)이 화려하게 컴백했다. 부모님을 따라 미국 LA에서 성장한 그는 대학 재학 시절 한국인 연예 프로듀서로부터 가수 제안을 받고 1990년대 초반 한국으로 돌아와 ‘가나다라마바사’ ‘리베카’ ‘Dance with me 아가씨’ 등의 히트곡을 남기며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당시의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와 회사 계약 문제로 활동을 접고 대중의 기억 속에서 잊혀갔다. 이런 그를 부활시킨 건 바로 ‘유튜브’였다. 지난해 초 뉴트로 열풍을 타고 유튜브에 올라간 각종 과거 영상들이 조회 수 1백만~3백만 회를 훌쩍 넘기며 일명 ‘양준일 신드롬’을 일으켰다. ‘시대를 앞서간 뮤지션’이라는 평가를 받은 것은 물론, 지드래곤을 닮은 외모와 빼어난 패션 센스로 ‘탑골GD’라는 별명이 생겨났을 정도다. 특히 지난해 말 예능 프로그램 ‘투유 프로젝트-슈가맨 3’(이후 ‘슈가맨’) 출연 이후 광고 모델로 데뷔하는 등 요즘 가장 핫한 인물이 됐다. 2015년 미국으로 건너가 레스토랑에서 서빙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던 그는 팬들의 귀국 요청이 빗발치자 한국에서의 활동을 재개하기로 했다. 

지난해 12월 31일 열린 3천6백 석 규모(2회) 생애 첫 팬미팅의 티켓은 예매 시작과 동시에 매진됐다. 1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무한 지지를 보내며 그의 귀환에 열광했다. 팬미팅에 앞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양준일은 자신을 환영하는 팬들에게 놀라움과 감사, 가슴 뛰는 환호를 보냈다.

예능 프로그램 ‘슈가맨’ 출연 이후 큰 화제가 됐습니다. 이후 일상에 많은 변화가 생겼을 것 같은데, 어떤 점이 가장 달라졌나요. 

매일매일이 ‘쇼킹’ 그 자체예요. 머릿속에 있는 제 이미지가 지금도 헷갈려요. 1주일 전만 해도 식당에서 일하는 ‘서버(server)’였잖아요. 많은 팬들이 저를 보기 위해 왔다는 사실이 믿기질 않아요. 사람들이 저를 아티스트로 봐주고 있어, 저 역시 그 사실을 받아들이며 제 이미지를 맞춰가고 있어요. 사실 방송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간 뒤 한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잘 몰랐어요. 그런데 제가 일하는 곳으로 수많은 전화가 걸려오고, “지금 한국이 양준일 때문에 난리인데 거기서 서빙만 하고 있으면 어떡해요”라고 말하는 팬도 있어 놀랐습니다. 

방송 출연 당시 50대답지 않은 외모가 화제였는데, 오늘 보니 더 업그레이드된 느낌입니다(웃음). 

요즘 아침에 일어나 거울을 보면 깜짝깜짝 놀라요. 제가 점점 더 잘생겨지고 젊어지고 있다는 게 느껴져요. 예전 20대 때의 모습이 문득문득 보이기도 하고요. 누군가로부터 보호받고, 사랑받고 있다는 벅찬 느낌이 저를 젊게 만드는 것 같아요. 

가족과 지인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저와 마찬가지로 매일 놀라며 여전히 ‘적응 중’입니다. 아내는 제가 춤추고 노래하는 모습을 ‘슈가맨’에서 처음 봤어요. 오늘처럼 메이크업과 헤어를 하고 집에 가면 못 알아보고 전화번호를 달라고 할 것 같아요(웃음).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어떤 생각을 했나요. 

전 늘 한국에서 살고 싶었어요. 가수 활동을 하지 않을 때도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며 한국에서 살았고요. 몇 년 전, 모든 일을 정리하고 미국으로 떠날 때 ‘이제 다시는 돌아올 수 없겠구나’라는 생각에 슬프더라고요. 떠나고 싶지 않았던 제 자신을 설득하고 달래면서 미국으로 갔어요. 지금 저에 대한 여러분의 ‘웰컴(welcome)’이 너무나 감사해요. 열심히 활동하고, 연예 활동을 안 하더라도 한국에서 살고 싶어요. 지금 느끼는 이 고마움을 잊지 않고 영원히 가져갈 생각입니다. 

과거 방송국의 규제와 기획사의 횡포 등 안 좋은 기억도 많지 않나요. 

그렇지 않아요. 힘든 일만 있었던 게 아니에요. 여러 과정에서 저를 따뜻하게 바라보고 다정하게 대해준 사람들이 있었어요. 제 이야기가 슬프지 않은 이유는 그들로 인해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 같은 시간이 존재했기 때문이죠. 이런저런 일들 때문에 한국을 떠날 수밖에 없었지만 그것보다 더 좋은 추억들이 있고, 힘든 시간 속에서 얻은 게 많아요. 


시대를 앞서갔다는 의미로 ‘시간여행자’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지금의 팬들은 30년 전 양준일을 알아보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하더라고요. 

팬들이 제게 미안할 필요는 전혀 없어요. 그럼 저도 똑같이 미안한걸요. 지금 팬들의 환영이 너무 큰 덕분에 더 이상 과거가 저를 괴롭히지 않아요. 이젠 제가 대한민국을 따뜻하게 감싸고 싶어요(웃음). 과거에는 제가 앞서간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고, 막연하게 ‘한국과 안 맞는구나’라고 여겼어요. 저를 보고 마이클 잭슨을 흉내 낸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아마 제가 조지 마이클 노래를 불러도 마이클 잭슨 같다고 했을 거예요. 저의 생김새, 몸, 느낌(feel)이 그런 이미지를 만든 것 같습니다. 

실제 어떤 노래를 좋아하나요. 

마이클 잭슨도 좋아했지만 그의 콘서트는 딱 한 번 갔어요. 반면 가사가 마음에 와 닿는 엘튼 존 콘서트는 매년 갔었어요. 저는 노래를 감상할 때 가사 위주로 듣거든요. 1, 2집 앨범 발표 이후 미국으로 떠났다가 8년 만에 다시 돌아와 ‘V2’라는 이름으로 앨범을 냈을 때 가사를 직접 썼어요. 전 그때 이미 마지막 앨범이라는 예감을 했던 것 같아요. 보통 가사 쓸 때 시간이 많이 걸리는데 당시에는 머릿속에서 가사가 흘려넘쳐 단숨에 써내려갔거든요. 그만큼 제 얘기를 하고 싶었고, 그걸 노래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사람들이 보고 싶어하는 건 20대의 양준일”이라며 컴백이 두렵다고도 하셨는데요. 

물론 두려웠지만 이젠 그럴 필요가 없는 것 같아요. 언제나 저는 현실에 무릎 꿇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요. 지금 저의 모습을 보고 팬들이 실망해 더 이상 양준일이 필요 없다고 하면 받아들일 거예요. 다시 좋게 보고 무대에 설 수 있는 상황이 되면 그 역시도 받아들일 거고요. 인생 모든 게 계획대로 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20대 때도 그랬고, 50대인 지금의 인생 역시 계획대로 안 되고 있어요. 극과 극을 달리고 있는 거죠. 

방송에서 50대의 양준일이 20대의 양준일에게 했던 “걱정하지 마. 모든 것은 완벽하게 이루어질 수밖에 없어”라고 했던 것도 그런 뜻인가요. 

그 말의 의미는 지금 이런 상황을 얘기한 건 아니었어요. 인생에서 그토록 원하던 것을 내려놓을 때 어떤 식으로든 마무리가 된다는 의미예요. 원하는 것을 내려놓고 현실에 무릎 꿇을 수 있을 때,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고 다른 걸로 채울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저 역시 더 이상 원하지 않으니 비로소 이루어지는 신기한 경험을 하고 있죠(웃음). 


꽃미모 관리는 어떻게 하고 있나요. 

특별한 건 없어요. 운동도 안 했고요. 아이가 태어난 뒤에는 당장 먹여 살려야 한다는 부담감에 닥치는 대로 일했어요. 매달 월세 내고 생활하는 게 큰일이었죠. 서빙할 때는 하루 14시간씩 일했는데, 바쁜 날은 스마트 워치로 재보면 하루에 16km를 걸은 셈이더라고요. 중간에 음식을 먹으면 졸려서 달걀 몇 개로 끼니를 때웠지요. 그렇게 적게 먹는 습관을 들이다 보니 살이 쭉쭉 빠졌어요. 제 패션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 많던데, 저는 제 몸을 잘 아는 것 같아요. 뭐가 어울리는지 본능적으로 아는 거죠. 별 계획 없이 옷 가게에 가더라도 딱 보면 ‘저거다’라는 느낌이 와요. 

앞으로의 활동 계획을 말해주세요. 

책을 준비하고 있어요. 제 머릿속에 들어 있는 이야기들을 글로 담아서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요. 그리고 옛날 제 음반이 중고 시장에서 고가로 팔린다는 얘기를 듣고 너무 놀랐어요. 예전 곡들을 모아 편곡하고 재녹음해서 음반을 낼 생각이에요. 그래서 요즘은 주로 제 노래를 듣고 있답니다(웃음). 저를 원하는 무대가 있다면 오를 것이고, 유튜브 채널도 개설할 계획이에요. 서두르지 않고 하나하나 성의 있게 만들어갈 생각입니다.

생애 첫 팬미팅에 선 양준일은 “Over joy!” “Excited!”라는 말로 기쁨을 표현하고 눈물을 글썽이며 “팬들의 사랑이 파도처럼 나를 치고 뒤에서 끌어안는 느낌”이라고 전했다. 그의 말처럼 모든 것을 내려놓는 순간 다시 새로운 길이 열린 걸까. 유튜브를 보고 환호했던 20대 양준일의 찬란한 젊음은 지금 우리 옆에 없다. 하지만 우린 어쩌면 스타일과 우아함을 동시에 갖춘 50대의 괜찮은 아티스트를 찾은 걸지도 모른다. 양준일, 그의 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

지금 봐도 탐나는 양준일의 패션 잇템 3

1 컬러풀한 실크 셔츠
V 네크라인 블랙 티셔츠에 컬러풀하면서 하늘하늘한 실크 셔츠를 매치한 센스는 지금 봐도 엄지 척이다. 

2 패셔너블 넥타이
다소 밋밋해 보이는 의상의 화룡점정은 바로 넥타이! 블랙이나 화이트 컬러의 깔끔한 셔츠에 도트 무늬나 컬러풀한 패턴의 넥타이를 매치해 포인트를 줬다. 

3 파워 숄더 체크 재킷&쇼트 팬츠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 파워 숄더 재킷은 유행을 타고 돌고 돌아 요즘에도 인기다. 파워 숄더 그레이 패턴 체크 재킷과 쇼트 팬츠로 발랄하게 연출했다.

기획 강현숙 기자 사진 김도균 디자인 김영화
사진제공 KBS 온라인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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