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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YLE

sneakers

우리가 열광한 스니커즈 스토리

EDITOR 정세영 기자

2019. 11. 14

1970년대 중반까지 스포츠 분야에만 한정되어 있던 스니커즈 브랜드들은 뉴욕에서 힙합 문화가 태동하면서 판도가 뒤바뀐다. 계속해서 변화하는 언더그라운드 신에서 디제잉, 그래피티, 브레이크댄스 등 무언가를 할 때마다 스포츠 슈즈는 움직이고, 춤추고, 달리기에 최적화된 아이템이 되었고, 한 집단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스타일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스포츠 브랜드들은 이후 10년 넘게 스니커즈 대유행의 기회를 십분 이용해 당대 최고의 운동선수들을 확보하기 위한 스폰서십 경쟁을 벌이는 한편, 기술 혁신을 이루어내고 시선을 끄는 디자인을 내놓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스타일리시한 디자인과 퍼포먼스에 집중한 제품들을 내놓아 비주얼적으로 완성도를 높이는 데 집중한 것. 2000년대로 넘어오면서 새로운 모델을 적극 개발하기보다는 유행을 타지 않는 클래식 기본 라인 및 베스트셀러 제품을 기반으로 컨템퍼러리 아티스트나 패션 브랜드, 혹은 트렌디한 스토어와의 협업을 통해 성장을 도모하는 경우가 많다. 현재 스니커즈 시장은 전 세계적으로 8백억 달러(약 86조원) 이상의 경제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 추산되며, 수익의 20%는 스포츠 시장에서, 나머지 80%는 라이프스타일 시장에서 거둬들이고 있다.

나이키, 창의적인 선도자

1972년부터 나이키는 퍼포먼스의 향상과 혁신적인 디자인을 접목시켰다. 그 결과 세계 1위 스포츠용품 업체로 등극함과 동시에 스니커즈 마니아 세계에서도 정상의 위치를 점유하고 있다. 현재 연매출 2백억 달러(약 22조원)에 이르는 나이키의 성공 비결은 무엇일까? 기술적인 혁신과 디자인, 그리고 뛰어난 마케팅의 결과이며, 이는 유명한 스우시 로고와 함께 1988년 확립된 슬로건 ‘Just do it’으로 요약할 수 있다. 또 다른 성공 요인으로 스포츠 스타들을 빼놓을 수 없다. 첫 후원이었던 스티브 프리폰테인부터 마이클 조던과 앤드리 애거시를 거쳐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에 이르기까지, 나이키는 최고 스타 선수들의 인기와 대중의 지지를 적극 활용해왔다. 또 한 가지는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생산된 거의 모든 신발이 스트리트 문화에 녹아들 수 있는 디자인이었다는 점이다.

아디다스, 세 개의 생명을 가진 브랜드

1949년 가족 간의 갈등으로 태어난 이 독일 브랜드는 수십 년간 스포츠 시장의 리더로 호령했다. 라이프스타일 분야에서도 인정받고, 힙합을 즐기는 젊은이들에게 상징적인 표상이 되었으며, 모든 대중에게 하나의 캐주얼 액세서리로 자리 잡은 것. 1990년대 초 은행과의 석연치 않은 거래로 파산 위기까지 갔지만, 위기를 무사히 넘긴 아디다스는 다시금 화려하게 부활하여 나이키에 이어 세계 2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현재 아디다스의 연매출은 1백50억 유로(약 20조원)에 육박한다. 이 중 30%는 아디다스가 디자이너 요지 야마모토와의 콜래보레이션을 통해 론칭한 패션 브랜드 Y-3의 데뷔 이후 7년 만인 2010년 론칭한 오리지널스 라이프스타일 상품들이 차지하고 있다.

컨버스, 행운의 별을 타고난 브랜드

컨버스는 창립자 마르퀴스 밀즈가 계단에서 넘어진 뒤 미끄러지지 않는 밑창이 부착된 신발을 만들기로 결심하면서 1908년 미국 매사추세츠주 몰든에서 탄생했다. 1980년대 말까지 스포츠웨어 산업의 빅 히트 브랜드였던 컨버스는 올스타 라인의 광적인 인기에 힘입어 캐주얼 패션의 주축이 되었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올림픽 후원사로, 또 줄리어스 어빙, 래리 버드, 매직 존슨과 같은 당대 유명 농구 선수들과 지미 코너스, 크리스 에버트와 같은 테니스 선수들을 후원하며 그 명성을 드높였다. 그러나 1990년대 컨버스는 과거의 성공과 명성을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고, 결국 2억2천6백만 달러(약 2천억원)의 부채를 청산하기 위해 나이키의 인수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후 2003년부터 컨버스는 나이키 산하에 있다.

반스, 스케이트보더들의 아이콘

반스는 1970년대 중반부터 신축성 있고 튼튼하며 다양한 컬러의 신발들로 스케이트보드 업계를 장악했다. 두 형제가 설립한 이 회사는 스케이트보드화를 저렴하게 판매하기 위해 직접 유통을 했고, 1976년에는 반스 브랜드의 명성을 드높일 모델을 출시했다. 바로 토니 알바나 스테이시 페랄타 같은 유명한 스케이트보더들이 신었던 블루 & 레드 에라였다. 매출은 치솟았고, 반스는 슬립온과 SK8 같은 후속작을 출시했다. 1982년 영화 ‘리치몬드 연애 소동’에서 주인공 숀 펜이 흰색·검은색 체크무늬 반스를 신은 덕에 반스는 돈 들이지 않고도 광고 효과를 톡톡히 봤다. 반스는 브랜드 자체가 화제에 오르자 다른 스포츠 분야로 시장을 확장하려 베팅했지만 결국 실패하며 위기를 맞았다. 비용은 급격히 늘었지만 새로운 영감은 떠오르지 않았고 결국 회사는 파산했다. 이후 반스가 초심으로 돌아가 스케이트보더들의 마음을 돌리기까지, 1988년부터 2004년까지 수차례 기업 인수가 이어졌다.



1000 SNEAKERS 

에어 조단에서부터 스탠 스미스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열광한 스니커즈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냈다. 

전 세계 스니커즈 마니아들에게 큰 영향을 준 스니커즈의 풀 컬러 이미지 1천 장과 함께 스니커즈 백과사전 같은 정보가 가득하다. 컬렉터, 브랜드에 대한 이야기는 물론이고, 팝 문화, 힙합, 패션, 스포츠계의 일화까지 담겨 있다. 루비박스.



디자인 최정미 사진제공 1000 SNEAKERS(루비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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