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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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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년생 공유가 ‘82년생 김지영’에게

EDITOR 조윤

2019. 10. 24

‘도깨비’로 분해 가슴 절절한 사랑을 읊던 공유가 평범한 가정의 남편으로 돌아와 아내를 쓰다듬는다. 대중의 시선을 잠시 내려놓은 채 그가 건네고 싶은 내면의 이야기.

문득 궁금해졌다. 대중도 이 사실을 알까. 배우 공유(40)가 카메라 밖에선 진지하고 담대하며, 고뇌하는 인간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취재진의 질문을 정확히 파악한 뒤 몇 번이나 곱씹고 나서야 조심스레 선택한 단어를 하나씩 뱉어냈다. 

사실 기자들 사이에서 그가 깊이 있게 생각하고, 생각한 것을 유려하게 표현하는 달변가라는 건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대사로, 그러니까 말을 매개로 하는 직업인인 배우가 화면 밖에서도 언어로 자신의 생각을 잘 표현할 줄 아는 능력은 언뜻 당연한 것처럼 보이지만 모든 배우가 이 두 가지를 쉬이 수행하는 건 아니다. 작품 세계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그 안에서 캐릭터를 어떻게 해석해냈는지를 진짜 자신의 언어로 설득시킬 줄 아는 배우. 공유는 그저 말랑하기만 한 배우가 아닌, 자신의 것을 스스로 지킬 줄 아는 예상보다 훨씬 더 단단한 사람이다. 

최신작 ‘82년생 김지영’은 그런 배우에겐 더 할 말이 많을 영화처럼 보인다. 2016년 출간된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1982년에 태어난 주인공 지영(정유미)이 일생을 관통하며 여성이라는 이유로 겪어야 했던 차별과 폭력, 시련의 이야기를 그린다. 소설은 1백만 부가 넘게 팔리며 화제가 됐지만 동시에 여성 혐오와 젠더 갈등이라는 논란을 야기했다. 이런 상황은 작품이 영화화되면서 주인공 역을 맡은 배우들에게로 옮겨갔고, 극 중 지영의 남편 대현 역을 맡은 공유에게도 세간의 질문이 쏟아졌다. 사회성이 짙은 이야기, 그러면서 동시에 일상의 이야기, 그 속의 평범한 인물. 이러한 요소가 ‘도깨비’를 필두로 숱한 작품에서 빛나는 눈동자로 우리를 설레게 했던 공유와는 그리도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을까. 그러나 소설과는 다소 다르게 육아하는 현재의 지영과 그를 보듬는 대현의 이야기를 중심축으로 삼은 영화를 두고 공유는 참 심플하게도 답한다. “이건 그저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고. 시대가, 대중이 필요로 하는 낭만과 현실의 지분을 적당히 조화한 채 세상에 나온 이야기를 공유는 꿋꿋이 설명해낸다.


공유는 ‘82년생 김지영’에 공감해 출연을 결심했고,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고 말한다.

공유는 ‘82년생 김지영’에 공감해 출연을 결심했고,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고 말한다.

많은 여성들이 공감하는 이야기지만 동시에 의도치 않게 젠더 갈등 이슈의 중심에 섰던 작품인데, 출연을 결정하는 데 용기가 필요하지 않았나요. 

부담은 없었어요. 이야기가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다 한들 저는 그 이야기에 공감했고, 그저 배우로서 그걸 연기하면 됐죠. 우려하는 대외적 시선은 이해하지만 왜 용기라는 단어가 필요한지도 모르겠어요. 나이가 들수록 작품을 선택하는 과정이 심플해지는 것 같아요. 

원작을 읽었다고 밝힌 여성 연예인에게 비난이 쏟아졌고 공유 씨도 캐스팅이 확정됐을 때 악플에 시달렸는데. 

한번은 (악플에) 꽂혀서 끝까지 다 읽어본 적도 있어요. 지금도 안 보는 건 아니지만 상처를 받지는 않아요. 그렇다고 그렇게 대범한 사람은 아니고요. 결국 보다 보면 드는 생각은 그렇게까지 시간을 할애할 일은 아니구나 싶죠. 지금은 어느 정도 초월한 것 같아요. 



소설과 영화는 다소 결이 다르죠. 결말에도 차이가 있고. 원작도 읽어봤나요. 

네. 그런데 사실 시나리오를 봤을 때의 느낌과는 본질적으로 차이가 나진 않았어요. 저는 이 이야기를 처음 접했을 때 가족에 대한 이야기로 접근했어요. ‘지영’이 중심인 이야기이지만 그 주위의 여러 가지 복합적인 사회 풍경이 중요한 영화이고, 저는 가족이 먼저 보였단 거예요. 단순히 남성과 여성을 중심으로 나눠 내용을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용의자’ ‘밀정’ ‘부산행’ 등 그간의 필모그래피에 비하면 이번 작품은 조금 심심하게까지 느껴질 수도 있는 내용인데요. 

맞아요. 대중적 시각이나 엔터테인먼트적 관점으로 보면 평범하고 심심한 이야기죠. 배우로서, 관객으로서 영화적 취향은 뚜렷한 편이에요. 캐릭터보다는 영화 자체가 주는 메시지에 끌리죠. 감독이 영화 안에 어떤 메시지를 심어놨는데 거기서 우리의 모습, 나의 모습이 느껴지는 작품. 그런 감성을 흔드는 이야기를 좋아해요. 차기작 ‘서복’은 복제인간 사회를 다룬 스케일이 큰 SF 영화이지만 거기서도 저를 건드리는 인간적인 무언가가 있었죠. 그러니 스케일이나 장르와는 상관이 없는 거예요. 

이번 영화에선 특히 어떤 부분이 공감 되던가요. 

가족이 떠올랐어요. 어머니께 전화를 해 “나를 어떻게 키웠느냐”고 물어보기도 했고요. 영화에서 가족의 모습은 꽤나 화목해 보이잖아요. 밥상에 마주 앉아 이야기하며 투닥투닥 하고 웃고 떠드는. 모든 가정이 다 그렇진 않겠지만 이게 보편적인 모습이 아닐까요. 저 역시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고 그런 가정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라 더 짠하게 느껴졌죠. 어느 누구의 잘못으로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는 게요. 영화를 찍으면서 주변 분들과도 자라온 환경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했죠. 영화보다 더 가부장적인 환경에서 자란 친구들도 많고, 많진 않더라도 굉장히 진보적이고 개방적인 분위기에서 자란 친구도 있고요. 자신이 자라온 환경에 따라 영화를 보는 기준과 시선은 달라질 수 있다고 봐요. 

영화 속에선 평범한 가정이지만 곳곳에 가부장적 모습이 보이죠. 실제 공유 씨의 집안 분위기는 어땠나요. 

아버지는 부산 분이시고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이긴 하지만 자식을 가부장적으로 키우진 않으셨어요. 훨씬 더 가부장적인 환경 속에서 자란 세대인 부모님이 최대한 평등하게 누나와 저를 키워주신 것에 대해 새삼 감사하게 되더군요. 저와는 다른 시대를 지나온 부모님 세대 역시 영화를 보면서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공감하는 부분이 있을 거예요. 

현실의 공유는 영화 속 지영의 동생 ‘지석’ 같았나요. 누군가에겐 아들이란 이유로 편애의 대상이고 또 그것으로 말미암아 누군가에겐 구박의 대상이 되는. 

지석에 대한 공감이 없진 않았죠. 지석에 대해선 측은한 마음이 들기도 해요. 아들 한약만 지어왔다고 아내에게 핀잔을 듣고선 어깨에 힘이 빠진 채로 베란다에 나가 조용히 딸 한약을 주문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참 슬펐어요. 저희 아버지 생각이 나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 장면이에요. 


시나리오를 보고 위로를 받았다고 밝히기도 했어요. 남성으로서 그럴 만한 부분이 있던가요. 

아이와 카페에 갔다 커피를 바닥에 쏟은 지영에게 사람들이 “맘충”이라고 비아냥거리는 장면이 있어요. 그때 지영이 “왜 상처를 주지 못해 애를 쓰느냐”고 말하죠. 남녀를 떠나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모두 ‘내 역할’이란 게 있잖아요. 어떻게 보면 당연하지만 그 관계 속에서 개인이 함몰되는 경우가 있어요. 개인보다 관계를 중심으로 살다 보면 상처를 받는 부분이 있잖아요. 배우로서, 한 인간으로서 저 역시 같은 경험이 있고요. 지영의 대사는 제가 세상에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해준 것 같은 통렬함이 있었죠. 

책과 영화가 여성 중심적인 이야기라며 반발심을 갖는 이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에요. 

그분들의 의견에 동의했다면 이 자리에 있지 않겠죠. 하지만 누군가의 의견이 맞다, 혹은 틀리다는 제가 정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아요. 예전부터 생각해온 배우로서의 덕목 중 하나는 배우는 중립적인 입장을 취해야 한다는 거예요. 배우가 한쪽으로 의견을 갖는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들의 판단이 틀렸다고도 할 수 없죠. 동의하진 않지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고 이해하려 노력 중이에요. 

대현이 원작에 비해 너무 다정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어요. 

영화를 찍을 땐 소설에 대한 생각은 안 했어요. 소설이 아니라 시나리오가 제 기준이죠. 유미 씨는 결혼과 육아의 경험이 없기 때문에 디테일한 부분에 있어선 감정적으로 소설에 기댄 부분이 있다고 하는데 저는 원작을 크게 의식할 필요는 없다고 봤어요. 다만 소설과는 별개로 지영이 남편에게 답답함을 느껴야 하는데 대현이 너무 착한 것 아니냐고 감독님께 질문한 적은 있어요. 관객 입장에서도 ‘세상에 저런 남편이 어디 있느냐’ ‘남편이 저렇게 좋은데 뭐가 불만이야’라고 생각하실 수 있는 측면이 존재하죠. 대현이 모범적인 남편으로 보이는 이유가 제가 연기했기 때문일 수도 있어요. 저에 대한 대중의 판타지를 저조차 의식해 던진 질문이었죠. 그렇다 하더라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요. 

대현이 아내에게 무심하기만 하면 자칫 영화가 젠더 이슈에 지나치게 매몰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의식한 방향 전환은 아니었을까요. 

그럴 수 있겠네요. 그렇다면 감독님의 결정이 좋은 선택이었다고 봐요. 어떤 특별한 인물이 도드라지는 이야기보다는 겉으로 볼 땐 아무 이상 없는 평범한 가정 속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에 공감이 일어나는 거잖아요. 

공유 씨가 남편 역을 맡음으로써 사회문제를 다룬 작품이 대중성을 띠게 된 측면도 있을 듯해요. 

관객들의 반응을 기다려봐야죠. 호감을 산다면 다행이고, 만약 지적을 받는다고 해도 겸허하게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어요. 언론 시사를 한 뒤에는 저의 출연이 크게 독이 된 것 같진 않아 긴장이 좀 풀렸죠. 제가 역할을 맡음으로써 과열된 논란을 완화시키고 대중에게 작품이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기능적인 역할을 했다면 나쁘진 않다는 생각이에요. 

영화를 찍고 결혼에 대한 생각이 변하진 않았나요. 환상이 깨졌다거나…. 

애초에 결혼에 대한 환상 같은 건 없어요. 판타지가 깨진 지는 오래죠. 너무 심하게 이야기했나(웃음)? 예전에는 일찍 결혼하고 싶었는데 30대 후반부터는 결혼이 선택의 문제로 바뀌었어요. 이번 작품은 그런 상황에서 하게 된 거라 생각에 영향을 미치진 않았어요. ‘그럴 수 있지’ 하면서 작품을 받아들였죠. 기혼인 친구들을 보면 결혼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이 6, 긍정이 4 정도인 것 같아요. 하지만 각자의 삶이 다르고, 상대가 다르기 때문에 남의 이야기가 제 결정의 기준이 될 순 없어요. 

몇 년 전 인터뷰에서 배우로서 다름을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고 했더군요. 여전한가요. 

제가 정말 그런 말을 했나요? 강박이 있었다면 놓고 있는 중일 거예요. 단순히 나이를 먹어서 그런 건 아니고 강박에서 벗어나야 오히려 더 좋은 걸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예전에는 주위에서 제 결정을 두고 왈가왈부하는 게 싫어 마음을 접는 일이 없지 않았어요. 앞으론 그저 솔직하게 순리대로 가고 싶어요.

기획 김명희 기자 디자인 김영화 사진제공 매니지먼트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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