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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actor #interview

진짜 배우 진짜 어른, 이선균

EDITOR 조윤

2019. 04. 01

고공비행하는 듯 보였지만 정작 자신은 내면 깊은 곳에서 진정한 배우, 진정한 어른의 모습을 고민했다고 한다. 높이 오르는 대신 깊이 스며들기를 원하는 배우 이선균을 만났다.

이선균(44)은 데뷔 이후 18년간 스크린과 TV를 넘나들며 쉼 없이 달렸다. 코미디, 액션, 드라마 등 장르를 가리지 않았고 그 속에서 선인과 악인을 넘나들었다. 초기작인 드라마 ‘하얀거탑’과 ‘커피프린스 1호점’은 이선균을 선하고 로맨틱한 남성의 이미지로 각인시키는 계기가 됐다. ‘파스타’에서는 막말 작렬, 히스테릭한 셰프를 연기하기도 했지만 이 역시 ‘까칠하지만 그래도 알고 보면 자상한 남자’라는 인상을 심어주는 역할을 했을 뿐이다. 이후 로맨틱 코미디의 대명사로 굳어지는 듯했으나 그는 관성에 끌려가지 않고 스스로의 탄성으로 배우로서 자신의 지름을 넓혀왔다. 모든 사건은 직접 파헤쳐야 직성이 풀리는 코믹한 왕이기도 했고(‘임금님의 사건수첩’) 위기에 몰려 범죄를 저지르는 형사(‘끝까지 간다’)일 때도 있었다. 현실 속 지질한 남성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표현하는 데 능한 홍상수 감독의 영화엔 무려 다섯 번이나 출연해 바로 그 ‘못난 남자’가 됐다(‘옥희의 영화’ 등). 

이런 그에게도 신작 ‘악질경찰’은 놀랄 만한 변신처럼 보인다. 이선균이 표현한 주인공 조필호는 뒷돈은 챙기고 비리는 눈감고 범죄까지 사주하는, 말 그대로 악질 경찰로 관객 입장에선 마음을 조금도 내줄 구석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는 비리 경찰의 좀도둑질에서 정경 유착, 검찰 비리, 병역 면제 등 거대한 사회악으로 서서히 시야를 넓히며 후반부에는 악이 더한 악에 맞선다는 주인공의 ‘각성 서사’로 나아간다. 특히 세월호 사고로 사망한 여고생과 그의 친구, 가족들이 필호의 각성을 이끈다는 설정은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다. 연출을 맡은 이정범 감독은 “이 같은 설정이 정당성을 획득하려면 얼굴에 선한 기운이 있고 변화하는 순간을 풍성하게 표현할 배우가 필요했는데 그게 바로 이선균이었다”고 말했다. 이 영화를 통해 이선균이 겨냥한 건 고정된 이미지를 비트는 관객에 대한 ‘배신’이 아닌 여러 겹의 복잡한 인간 내면을 표현할 수 있는 배우라는 ‘확신’이 아니었을까. 여전히 진정한 배우의 자세를 고민한다는 그를 만나 진정한 어른의 모습을 되묻는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첫 장면부터 욕설을 내뱉으며 등장하는 모습에 놀란 관객이 많을 듯해요. 최근작인 드라마 ‘나의 아저씨’와 영화 ‘PMC : 더 벙커’에서 선한 인물을 연기한 탓에 대비 효과가 더 큰 듯도 하고요. 

캐릭터에 대한 주저함은 없었어요. 조필호는 악질 형사지만 그가 변해가는 게 이 영화의 재미고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부분이기 때문에 부도덕한 캐릭터라는 게 중요한 지점은 아니었어요. 많은 분들이 ‘끝까지 간다’와 비슷하다고 하시더군요. 주인공이 처한 상황과 비리 경찰이라는 캐릭터 등 겹치는 부분이 많긴 하지만 더 독하고 진한 캐릭터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런 면들이 조필호에 더 많이 입혀졌죠.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은 뭔가요. 

기준을 정해놓고 하는 건 아니에요. 정해놓는다고 해서 생각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요. 그저 저에게 주어진 작품 중에 뭐가 더 나을까를 고민할 뿐이죠. 계획적으로 플랜을 짜서 뭘 하겠다가 아니라 주어진 작품을 어떻게 운영할까 생각하는 게 전부예요. 그 속에 물론 전작들에 대한 고려가 있긴 하겠죠. 



세월호 사고를 다룬 첫 상업 영화라는 점에서 논란과 화제를 동시에 일으켰어요. 작품을 선택하는 데 있어 고민이 없지 않았을 텐데요. 

고민이 없었다면 거짓말이죠. 더욱이 영화를 기획하던 시기가 현 정권으로 바뀌기 전이었고…. 감독님뿐 아니라 제작자, 투자사도 고민이 많았겠죠. 용기도 필요했을 거고요. 감독님한테 들은 얘기론 몇몇 배우들은 출연 제의에 난색을 표했다고 하더군요. 그래도 저는 영화적인 재미가 충분하다고 생각해 남들보단 걱정이 덜했던 듯해요. 다만 하나의 우려는 장르 영화, 범죄 영화라 할 수 있는 이 작품이 세월호 사고를 다뤘을 때 관객은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관한 것이었죠. 가수는 이야기를 할 때 힙합이든 발라드든 그들이 하고 싶은 장르 속에 그걸 녹여내잖아요. 이정범 감독은 상업 영화, 장르 영화 감독이니 그 이야기를 이 같은 장르 안에 녹였다고 생각해주시면 좋겠어요. 감독의 진심을 알기에 더 치열하게 찍었어요. 많은 논란과 부침이 있었고 용기가 필요했던 작품이었기 때문에 개봉하는 것 자체가 기적처럼 느껴져요. 개봉이 2년이나 늦춰진 터라 뭉클하죠. 

범죄까지 불사하는 부도덕한 형사가 악에 맞서게 된다는 각성 서사가 영화의 핵심인데, 자칫 관성적이고 억지스러운 전개로 느끼는 관객도 있을 법해요. 

저도 그걸 표현하는 게 가장 큰 과제였어요. ‘이 양아치가 왜 큰 사건에 달려들어 몸을 던질까?’ 고민하는 게 저의 몫이었죠. 어떤 감정으로 연기를 하고 리액션을 할지, 조필호라면 어떻게 그걸 표현할지 혼자 연구하고 감독님과도 많이 이야기했어요. 저는 조필호의 행동을 이해하지만 그게 잘 표현된 건지는 보시는 분들이 판단할 몫이겠죠. 

이선균의 트레이드마크는 단연 목소리인데, 이 영화에선 목소리보다 표정이 돋보여요. 극 중 “조필호는 포커페이스가 안 돼”라는 대사도 여러 번 등장하고요. 

일부러 표정에 신경을 쓴 건 아니었어요. 좀 더 날카롭고 정말 양아치처럼 보이고 싶었어요. 조필호와 어울리는 얼굴이 뭘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외형적으로도 경찰이지만 경찰 같지 않게 보이려고 의상도 신경을 많이 쓰고 체중도 6~7kg 뺐어요. 필호의 표정이 관객에게 잘 보였다면 다행인데, 사실 상황에 집중하다 보니 나타난 것 같아요. 연기할 때 저의 특징인데, 상대 배우의 대사를 많이 고려하는 편이에요. 지질한 건 더 지질하게, 겁이 난 건 더 겁나 보이게, 상대의 대사가 저의 연기에서 나오도록 말이죠. 

우스갯소리로 “이선균은 쫓기고, 억울한 역할을 제일 잘하는 배우”라는 이야기도 회자돼요. 


그런 역할을 많이 했죠. 제가 멋 부리는 걸 잘 못하는 것 같아요. 실제로 멋이 없어서 그런지도 모르지만 그게 더 진짜 같지 않을까 고민을 많이 하고요. 액션 연기를 하면 정말 많이 맞아요. 이번 영화에서도 때리기보단 맞을 때가 많았고요. 

극 중 대결 구도를 형성하는 박해준(권태주 역)과 붙는 장면들은 힘과 힘이 만나 싸우는 쾌감 같은 게 느껴져요. 실제 둘의 호흡은 어땠나요. 


영화가 작년에 개봉했다면 드라마 ‘나의 아저씨’ 팬들은 엄청난 괴리감을 느꼈을 거예요(드라마에서 두 사람은 둘도 없는 다정한 친구로 나온다). 하하. 저는 배우로서 해준이를 정말 좋아해요. 실제로 해준이는 아주 ‘샤이’하죠. 제가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 연극원 1기, 해준이가 2기로 보통 한 기수 차이는 굉장히 막역한데 해준이는 유일하게 저를 ‘선배님’이라고 부르는 친구였어요. 그렇게 수줍음이 많은 친구가 연기할 때 보면 ‘또라이’ 같은 면이 있어요(웃음). 특히 배우로서 그의 얼굴이 무척 좋아요. 올해부턴 대중적으로도 사랑받는 배우가 될 거라 봐요. 

역시 한예종 동문인 이정범 감독과도 막역한 사이로 알려져 있어요. 그런 관계가 작품에 시너지를 일으켰을 듯해요. 

친한 것 이상이죠. 학교 다닐 때부터 워낙 좋아하는 형이었어요. 2002년 형의 졸업 작품 ‘굿바이 데이’를 함께하면서 특히 가까워졌죠. 졸업하고 막 TV에 출연하면서 헤매고 힘들어할 때였는데 형이 영화 출연 제안을 했어요. 아무것도 모르는 사회 초년생, 신인 배우였는데 일주일 동안 단편 영화를 찍는 게 너무 행복했어요. 영화를 하는 게 이런 쾌감이 있고 배우로서 연출의 디렉션을 받는 게 어떤 느낌인지 알게 해준 게 정범이 형이었죠. 그 후 15년 만에 함께한 작품이라 감회가 남달라요. 

스토리나 인물 구도, 몇몇 장면들이 이정범 감독의 대표작 ‘아저씨’를 떠올리게 하는데, 배우로서 볼 때 다른 점은 뭔가요. 


거긴 배우들이 다 멋있잖아요. 과묵하고. 하하. 전 생활 밀착형 캐릭터를 만들어내고 싶었어요. 악당들과 싸울 때도 러닝셔츠 차림으로 하고. 그런 점에서 감독의 데뷔작인 ‘열혈남아’에 더 가까운 듯해요. 하지만 장르적인 재미는 ‘악질경찰’이 더 크죠. 좀 더 확장된 이야기라고 봐요. 

‘좋은 어른이란 어떤 모습일까’를 고민한다는 점에서 전작인 드라마 ‘나의 아저씨’도 떠올라요. 두 작품을 하면서 누구보다 이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해봤을 법한데요. 

‘나의 아저씨’를 할 때 특히 그런 고민을 많이 했죠. 단순히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는 것보단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 돼야겠다고 생각해요. 이번 영화에서도 “너희 같은 것도 어른이라고…”라는 대사가 필호를 돌아보게 하잖아요. 좋은 영향까지는 못 줄지언정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다면 충분하지 않을까 하는. 

조필호는 돈만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인물이에요. 이선균에게 최고의 가치는 뭔가요. 

꿈이나 가치, 그런 것에 의미 부여를 안 해서…. ‘좋은 어른’이랑 비슷한 맥락인데 그저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고 싶어요. 제 아이들에게도 그렇고요. 

많은 작품을 했지만 배우 이선균을 대중적으로 가장 크게 각인시킨 건 드라마 ‘파스타’가 아닌가 싶어요. 앞으로 더 해보고 싶은 역할이 있나요. 

‘파스타’는 성대모사를 하도 많이들 하셔서…. 그게 9년 전 드라마니 어린 친구들은 보지도 못했을 텐데 누가 성대모사한 것만 보고 따라 하고, 그걸 본 사람이 또 따라 하고(웃음). 그동안 관객들과 감정을 같이하는 역할을 많이 해봤으니 이젠 연민이 전혀 안 느껴지는 역할도 해보고 싶어요. 이것저것 해보고 싶은 거죠. 하지만 무엇보다 어떤 캐릭터가 오든 잘해내고 싶어요. 배우는 캐릭터가 ‘옷’이라고 생각해요. 그 옷을 내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게 제일 중요하죠. 어떻게 소화하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에 다양한 옷을 입고, 소화하고 싶어요. ‘난 꼭 어떤 옷을 입을래’ 이런 게 아니라요. 

“배우를 계속해도 될까를 고민한다”고 이야기한 지난 인터뷰 기사를 봤어요. 요즘처럼 다작하는 시기에도 불안감을 느끼나요. 

그럼요. 매번 고민되는 부분이에요. 저를 표현하는 직업이잖아요.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만드는 것처럼 혼자 하는 게 아니라 상업 영화, 대중 영화를 하는 사람이니 대중이 원치 않으면 사라져야 하니까요. 갇혀 있는 게 아닐까, 고여 있는 게 아닐까 늘 고민해요. 연기라는 게 매번 전작에서의 자신을 피드백하고 표현하는 건데, 그 과정에서 저 스스로도 질리는 게 있어요. 작품을 많이 해도 잘하고 싶으니 이런 고민이 생기는 것 같아요. 어떤 인터뷰에서 “30년 후에도 연기를 할 거냐”는 질문을 받았는데 “모르겠다”고 답했어요. 그렇다고 언젠가 은퇴를 한다는 건 아니고 그저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되 끊임없이 연기에 대해 고민하는 거죠. 

인터뷰를 하면서 유난히 동료 배우, 스태프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한예종 동문들을 챙기는 모습도 방송을 통해 많이 알려졌고요. 삶에서 사람을 중요하게 여기는 듯해요. 

이쪽 일이 혼자서 하는 게 아니라 함께하는 거잖아요. 같이 만들어가는 공동 작업이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는 듯해요. 한예종을 졸업한 뒤엔 후배들에게 디딤돌을 마련해주고 싶은 마음이었죠. 소속사가 없는 후배들은 오디션이 있어도 알기 어려우니 그런 걸 알려주는 정도. 워낙 잘하는 친구들이 많은데, 잘된 모습을 보면 좋고요. 제가 먼저 하면 내리사랑이 돼서 그들이 또 후배를 챙기고…. 근데 이제 안 하려고요. 해줘봤자 뭐(웃음). 

클라이맥스 신에서 “이 세상 어디에도 7백80원짜리 인생은 없는 거야”라며 포효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에요. 배우로서 자신은 얼마나 값진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나요. 

운이 좋은 배우인 것 같아요. 주연 배우로서 책임을 지는 자리에 올라왔고, 역량에 비해 많은 걸 얻었다고 생각해요. 얼마나 값진지는 모르겠지만 주어진 책무만큼 값어치를 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저 혼자만의 힘으로 올라온 게 아니라 좋은 분들을 만나 영향을 받고 한 계단씩 올라온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 더 책임을 지고 그 값어치를 하는 배우가 돼야죠.

기획 김명희 기자 디자인 최정미
사진제공 워너브라더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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