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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TALK

김풍&샘킴의 위로 두 스푼

기획 · 김명희 기자 | 글 · 김지은 자유기고가

2015. 11. 17

백 마디 말보다 마음이 담긴 한 그릇의 요리가 더 따스하게 다가오는 순간이 있다. 웹툰 작가 김풍과 셰프 샘킴, 두 남자가 전하는 한 그릇의 위로. 사단법인 위스타트가 저소득층 아동들의 역량 강화 기금 마련을 위해 시작한 ‘위대한 토크’에서 그들을 만났다.

김풍&샘킴의 위로 두 스푼
김풍&샘킴의 위로 두 스푼
누구에게나 위로가 필요한 순간이 있다. 뜻밖의 불행과 마주했을 때, 사소한 다툼으로 가까운 사람과 멀어졌을 때, 세상 사람들 모두가 나를 외면하고 비웃는 듯 느껴질 때, 어둡고 긴 터널 속을 헤매고 있는 듯 두려운 기분이 들 때…. 지난 9월 23일 저녁, 서울 강남구 삼성동 백암아트홀에는 그 절박함을 이겨낼 따스한 위로를 친구, 가족, 연인과 함께 나누고픈 이들로 가득 채워졌다.

사단법인 위스타트가 지난 2011년 저소득층 아동들의 역량 강화 기금 마련을 위해 시작한 ‘위대한 토크’에는 개그우먼 조혜련과 티켓몬스터 신현성 대표를 시작으로 박원순 서울시장,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 송승환 PMC프로덕션 대표, 혜민 스님, 조정래 작가 등 수많은 스타와 유명인사들이 함께했다.

올해는 요즘 각종 TV 예능 프로그램 섭외 1순위인 만화가 김풍(37)과 셰프 샘킴(38)이 강사로 나란히 무대에 섰다. 이날의 행사가 더욱 특별했던 건 이들이 참가자들 중 한 사람을 선정해 즉석에서 위로의 마음이 담긴 음식을 대접하는 감동적인 순간이 함께했기 때문이다. 사연의 주인공은 2년 전 갑상샘암 수술 이후 지금까지 치료를 받으며 후유증과 싸우고 있는 인물. 투병 기간이 길어지면서 비만이 겹쳐 이제는 식이요법까지 필요해진 상황이지만, 답답하고 우울한 마음에 의욕적으로 무언가를 해나가기 힘들다는 그녀를 위해 샘킴 셰프와 김풍 작가는 집에서도 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저염식 샐러드를 선보였다. 무대 위 테이블에 앉아 샐러드를 맛본 그녀의 행복한 미소는 객석에 앉아 지켜보던 관객들의 마음까지도 따스하게 위로해주었다.

김풍 작가의 한 스푼

“도전하지 마세요. 시도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으니까요”




저는 웹툰 작가입니다. 최근에는 네이버에 ‘찌질의 역사’란 작품을 연재했었죠. 그런데 10여 년 전, 저는 ‘폐인가족’이란 작품으로 한 5년 동안 재미를 보다가 한순간 웹툰계를 떠났습니다. 실력이 없어서요. 첨엔 그저 재미있어서 시작한 일이었는데 그게 인기를 얻게 되니까 어느 순간 ‘어, 나 그럼 앞으로 웹툰 작가 하면 되겠네?’ 뭐 그런 생각이 들게 되고 그러다 웹툰 시장이 커지니 저보다 훨씬 실력 있는 작가들이 등장하더라고요. 작품으로 인정을 못 받으니까 하던 일도 재미가 없어지고 ‘아, 나는 이걸로는 먹고살 수 없겠구나’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 뒤 5년 동안 백수로 지내면서 요리를 취미로 갖게 된 거죠.

사실 전 웹툰 말고도 재미있어 보여 시작했던 게 굉장히 많습니다. 아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저는 무도인이에요. 4년간 브라질 무술을 연마한 적이 있었죠. 외발자전거도 샀어요. 너무 재미있어 보여서 샀는데 1주일 타고 창고에 처박아뒀습니다. 탭댄스가 재미있어 보여 6개월 동안 배우러 다닌 적도 있습니다. 물론 탭댄스 슈즈도 지금은 창고에….

이렇게 제가 살아온 얘길 듣다 보면 재미만 찾아다니는 끈기 없는 사람처럼 보이겠지만. 재미있어서 시작했는데 여기서 그만두면 끈기가 없는 거 아닐까 싶어 재미가 없어졌는데도 계속하는 건, 아니지 않나요? 끈기가 없으면 자기가 되게 못나 보일 거 같고, 다른 도전을 해도 마찬가지일 거 같고 그래서 계속하는 게 좋은 걸까요?

재미있어 시작했는데 재미가 없어지면 그만둬야죠. 재미가 없어서 그만둔 일은 다시 재미가 생기면 언제든 가벼운 마음으로 다시 시작할 수 있거든요. 과거의 김풍은 웹툰 작가로서의 자긍심도 없었고. 남들과 자신을 자꾸 비교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작가로서의 자긍심도 생겼고 작품에 대한 애정도 넘치는 사람이 되었어요. 작품에 대한 반응도 나쁘지 않아서 곧 영화화도 앞두고 있고요.

요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요리가 너무 재미있어요. 사람들이 잘한다, 잘한다 해주니까 그것도 너무 신나고요. 그런데 사람들이 자꾸 묻더라고요. 왜 가게를 하지 않냐, 업장도 없이 왜 혼자 요리를 하고 있냐…. 그런데 제가 가게를 하게 되면 그때부터 재미있게 요리를 할 자신이 없어요. 항상 그랬던 것 같아요. 재미있는 것들을 하다 보면 끝까지 할 수 있을까,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생기는 순간이 있고 중간에 멈추면 사람들은 끈기가 없는 것에 대해 질책을 하죠. 그런데 ‘재미’라는 건 에너지 아닐까요?

사람들은 의외로 그 끈기 있게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 때문에 재미있어 보이는 걸 시도조차 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오히려 재미있어 보인다 싶은 걸 바로바로 실행에 옮기는 버릇을 들이는 게 더 좋은 거 같아요. 재미있는 게 나타났다고 해서 처음부터 ‘도전해야겠다’ 생각하지 마세요. 그냥 시도해보는 거죠. 모든 걸 다 그만두고 비장한 각오로 시작할 필요도 없어요. ‘시도한다’는 건 유연한 거거든요. 하다 안되면 잠시 쉬면 되죠.

제가 오늘 하고팠던 얘긴 이게 전부입니다. 재미있는 것들을 찾아다니는 여러분들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샘킴 셰프의 두 스푼

“마음이 담긴 요리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저는 미국에서 요리를 시작했습니다. 요리사로 성공하고 싶었던 저는 그곳에서 최고의 요리, 최고의 레시피, 최고의 레스토랑, 최고의 셰프를 쫓아다녔죠. 요리를 배울 때도 사진을 찍어놓고 노트에 깨알같이 메모를 해뒀습니다. 쉬는 날에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도서관에서 요리 책을 쌓아놓고 봤습니다. 요리사가 된 후로도 유명 요리사 밑에서 일하고 싶어 미슐랭에서 별을 받은 셰프를 열 번도 넘게 찾아가 부탁했죠. “당신 밑에서 일하고 싶으니 제발 나를 채용해달라”고요. 그게 요리사로서 성공하는 길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늘 습관처럼 요리에 점수와 등급을 매겼습니다.

그러던 어느 토요일 오후, 그 셰프가 레스토랑 문을 닫고 다운타운 쪽으로 저를 데려가더라고요. 홈리스들이 사는 곳이었죠. 그분이 그곳에서 타코를 만드는데, 원가로 따지면 1천원도 안 되는 것이었어요. 정말 특이한 경험이었어요. 그분이 일하던 레스토랑에선 10만원, 20만원짜리 요리가 보통이었는데 왜 이런 곳에서 값싼 요리를 만드는 걸까 의아해지더라고요.

그날 이후 계속 생각이 났어요. 과연 음식을 놓고 봤을 때 어떤 것이 더 가치가 있나. 타코는 이미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음식일 뿐만 아니라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음식이었는데 저한텐 그게 굉장히 크게 다가오더라고요. 멋지게 차려입고 좋은 음악이 흐르는 레스토랑에서 훌륭한 와인과 함께 먹는 스테이크보다 그 시끄러운 동네에서 만든 타코가 더 가치 있다는 걸 깨달은 거죠. 그 싸구려 음식이 누군가에겐 소중한 한 끼니까요.

한국에 와서 요리사를 꿈꾸는 학생들과 함께하는 멘토링 프로그램을 진행한 적이 있어요. 주로 탈북 청소년들이나 보육 시설에 있는 친구들이었는데 그중 한 아이가 어느 날 일기를 써와서 읽어주더라고요. 아버지가 심각한 알코올 의존증 환자였는데, 술에 취해 들어오셔서 또 술을 드시려고 하더래요. 그래서 아이가 아버지께 요리를 해드렸대요. 애호박볶음. 아시겠지만 굉장히 간단한 요리예요. 그런데 그걸 드시고 아버지가 술을 끊으셨대요. 우리 딸이 자라서 아빠에게 요리를 해주는구나, 기뻐하시면서요.

좋은 음식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고, 위로가 되어줍니다. 음식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음식을 맛볼 상대를 위해 최상의 식재료를 구하려 애쓰고 정성을 다해 요리하는 거죠. 미슐랭의 별을 받은 레스토랑 셰프가 홈리스들을 위해 요리하는 모습을 본 이후 저는 일상에서 요리하는 즐거움을 찾았습니다. 요리사란 사람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는 매력적인 직업이란 걸 깨달은 거죠.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지 않아도, 제 요리가 누군가를 위해 가치 있게 쓰일 수 있다면 그 음식을 먹는 사람뿐만 아니라 그 요리를 만든 저도 위로받을 수 있거든요. 요리만 그런 건 아닐 거예요. 자신이 하고 있는 일, 자신의 상황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주위를 둘러보세요. 소소한 일상에서 묻어나는 위로를 분명 찾으실 수 있을 거예요.

사진 · 이상윤

디자인 · 최진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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