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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서른둘 오정연이 꿈꾸는 일과 일탈

“앞으로 보여줄 것이 너무 많다”

글 · 김유림 기자 | 사진 · 홍중식 기자

2015. 07. 16

올 초 KBS를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전향한 오정연이 새 둥지를 찾은 뒤 처음으로 인터뷰에 나섰다. 표정과 포즈, 말투와 생각 모두 예전의 그와는 조금 달라 보였다. 아나운서 아우라를 벗어던지고 낮은 자세로 대중과 소통하고 싶다는 오정연에게 짜릿한 일탈을 들었다.

서른둘 오정연이 꿈꾸는 일과 일탈
몸매 우월자들의 ‘흔한’ 패션, 흰 셔츠에 핫팬츠. 지난 6월 중순 서울 홍대 앞 한 카페에서 만난 오정연(32)도 같은 차림이었다(물론 사진 촬영용 의상은 따로 준비해 왔다).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한 바람에 카페 주변을 구경하다 왔다”며 생긋 웃는 그는 늘 화면에서 봐오던 대로 까맣고 동그란 눈동자, 양 볼의 보조개, 차분한 미소가 예뻤다. 사실 아나운서와 핫팬츠는 그리 어울리는 조합은 아니다. 그렇기에 ‘프리랜서’ 오정연의 이날 차림은 마치 일탈의 한 부분처럼 느껴졌다. 실제로 그는 지난 2월 KBS에서 나온 뒤 그동안 해보지 않던 방송을 하고, 생소한 스타일의 의상과 액세서리도 착용한다. 얼마 전 JTBC ‘마녀사냥’에 출연했을 때는 방송에서 난생처음 모자도 썼다. 갈색의 긴 웨이브 머리에 검정 페도라가 유난히 잘 어울렸는데 그 모습이 마음에 들었던 건 오정연도 마찬가지. 방송이 끝난 뒤 아버지로부터 ‘오늘 정말 예쁘더라’는 문자 메시지도 받았다고 한다. 최근 귀에 뚫은 3개의 피어싱도 변신에 대한 그의 갈망을 얘기해준다.

“예전의 모습도 저지만, 조금 달라진 모습도 저예요(웃음). 그동안 공영방송 아나운서로서 지켜야 하는 틀이 있었다면 지금은 하고 싶은 것, 그동안 해보지 못한 것에 도전하는 게 즐거워요. 가장 큰 변화는 늘 복식 호흡으로 어른스럽게 말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예요(웃음). 물론 여전히 저는 방송인이고 프로그램 성향에 따라 그에 맞는 모습을 보여드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겉모습을 떠나서 가장 중요한 건 방송을 대하는 진지한 태도일 테니까요.”

얼마 전 오정연은 JTBC ‘학교 다녀오겠습니다’에 출연해 생애 두 번째 고등학교 적응기를 선보였다. 3일간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고양국제고등학교에 다닌 그는 체육시간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킨볼’ 게임에 임하고, 가수 박정현과 함께 밤을 새워 발표 자료를 준비하는 등 ‘악바리 근성’을 보여줬다. 첫 예능 도전이라 촬영 전 마음이 들떴던 반면 걱정도 많이 됐다고 한다.

“예전에는 MC로서, 찍어온 영상을 소개하면서 ‘나도 저 안으로 직접 들어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했는데, 막상 그럴 기회가 오니까 겁이 덜컥 나더라고요. 딱히 예능감이 있는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아나운서 오정연이 아닌 인간 오정연을 시청자들이 어떻게 봐주실까 걱정이 됐어요. 그래서 솔직히 첫날은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더라고요. 카메라가 계속 돌고 있다는 게 부담스럽고, 이럴 때 이런 표정을 지어도 되나 순간 갈등도 하게 되고…. 그래도 둘째 날부터는 마음을 비우고 아이들과 즐겁게 생활할 수 있었어요. 짝꿍이었던 친구와는 헤어질 때 정말 서운하더라고요. 요즘도 자주 연락하며 지내요(웃음).”

수업 시간 한 조가 돼 발표 준비를 했던 박정현과는, 방송 후 콘서트에도 초대받아 가는 등 친분이 두터워졌다고 한다. 그는 “평소 정현 언니 팬이었는데 콘서트에 가서 더 팬이 됐다”며 박정현의 가창력에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아나운서와 연예인의 경계선에 서 있는 요즘 인간관계의 변화는 없는지 묻자 그는 “예전에는 방송을 같이해도 연예인들과 그렇게 교류가 많지 않았는데, 이제는 소속사(SM C·C) 식구들도 그렇고, 연예인들과 똑같이 출연자 입장에서 만나다 보니 사적으로 친분을 쌓을 기회가 좀 더 늘긴 했다. 그래도 여전히 연예인을 보면 신기하다”며 웃었다. 최근 드라마 ‘프로듀사’를 보면서는 잠시 잊고 지낸 방송국 생활과 아나운서 초년병 시절의 자신이 떠올랐다고 한다.



“아나운서 서기철 선배님이 드라마에서 예능국장님으로 출연하셨잖아요. 방송 보고 반가워서 문자도 보냈어요. 특히 드라마 첫 회에 나온 입사식 장면에서는 가슴이 뭉클하더라고요. KBS 아나운서로서 지녔던 자부심, 애사심도 새삼 떠올랐고요. 특히 아나운서실이 유난히 가족적인 분위기예요. 힘든 일 있을 때 서로 위로해주고, 응원도 많이 해주고요. 그래서 오랜만에 아나운서실 선배, 후배들한테 연락을 했더니, 다들 방송국에서 김수현 씨를 직접 봤다고 자랑을 해서 부러웠어요(웃음).”

나 자신을 탐구하고자 선택한 프리랜서의 길

서른둘 오정연이 꿈꾸는 일과 일탈
서울대 체육교육과를 나와 2004년 청주 MBC 아나운서를 거쳐 2006년 KBS에 입사한 오정연은 신입 때부터 생방송 ‘무한지대 큐’ ‘세상의 아침’ ‘스타 골든벨’ 등 굵직한 프로그램을 맡으며 두각을 나타냈다. 이후에도 ‘KBS 뉴스타임’ ‘세대 공감 토요일’ ‘생생 정보통’ 등을 맡으며 안정적으로 경력을 쌓아왔다.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다고 했을 때 부모님을 비롯해 주변인들도 거의 다 말렸다고 한다.

“사표를 내는 날까지도 손이 부들부들 떨렸어요(웃음). 하지만 비록 불안정하고 불투명한 미래라도 틀에서 벗어나 저 자신을 좀 더 탐구해보고 싶었어요.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한 건 지난해 건강이 나빠지면서부터예요. 호흡기 질환으로 병가까지 냈는데, 체력적으로 힘드니까 마음도 쉽게 지치더라고요. 문득 ‘나 지금 잘 살고 있나’ 하는 회의감이 밀려왔어요. 그러면서 가만히 생각해 봤더니, 저는 여태껏 오늘이 아닌 내일을 위한 삶을 살았더라고요. 8년 동안 데일리 생방송을 진행하면서 늘 내일 컨디션을 걱정했던 거죠. 특별한 일 외에는 약속도 잘 잡지 않고 곧장 퇴근해서 쉬는 게 우선이었어요. 좋은 컨디션으로 카메라 앞에 서려면 몸을 피곤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일종의 강박관념이었던 거죠. 또 일에서도 갈피를 잡지 못했던 게 사실이에요. 그동안 시사, 예능, 음악, 영화, 스포츠 등 안 해본 게 없을 정도로 다양한 장르를 경험해서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더 이상 수동적이지 않은, 능동적으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서른둘 오정연이 꿈꾸는 일과 일탈
KBS 동기이자 같은 소속사 전현무 아나운서의 영향은 없었는지 궁금해하자 그는 “고민할 때 조언을 많이 해줬고, 결심을 굳힌 뒤에도 새로운 길이 보일 거라며 많이 응원해줬다”고 밝혔다. 전현무는 오정연이 프리 선언 후 첫 복귀작으로 ‘썰전’에 나갔을 때도 방송을 보자마자 ‘혼자서도 잘하네’ 하고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고 한다.

“전현무 씨와 함께 ‘스타 골든벨’을 진행했거든요. 당시 저는 예능이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몰랐는데 그때 (현무) 오빠가 항상 미리 대본을 보면서 연습하는 걸 도와줬어요. 얼마 전 백상예술대상에서 ‘남자예능상’을 수상하는 걸 보고는 제 일처럼 기쁘더라고요. 개그맨도 아니고, 전문 MC 출신도 아닌 사람이 예능인으로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아나운서의 한계를 깬 일이라고 생각해요.”

프리랜서로 전향한 지 4개월째. 요즘 그에게 일어난 삶의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일까. 오정연은 마치 질문을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안타깝게도 많지 않다”며 웃었다. 10년 넘게 몸에 밴 습관이 하루아침에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 요즘도 그는 일터와 집, 학교(서강대 언론대학원 재학)를 오가는 단조로운 생활을 하고 있다. 그나마 과거에는 집 앞에 있는 마트만 이용했다면, 요즘은 차를 타고 노량진 수산시장도 가고 얼마 전에는 엄마와 함께 경기도 광명에 있는 이케아에도 다녀왔다고 한다. “꼭 사고 싶었던 그릇 건조대와 수납함을 득템했다”며 자랑하는 모습이 친근하게 다가왔다.

얘기를 들어보니 그는 의외로 살림꾼이다. 요리도 좋아해 집에서 자주 음식을 만들어 먹는다고 한다. 단, 한 가지 장점이자 단점은 레시피 과정을 지나치게 철저히 따른다는 것. 오정연은 “융통성 없어서 그렇다. 한번 요리를 하면 주방 전체가 난장판이 된다”며 털털하게 웃었다. 한편 그는 지난해에는 ‘푸드 큐레이터’ 자격증도 획득했다. 푸드 큐레이터는 한국 식문화 해설사 과정에 포함된 자격증으로 음식에 관련된 역사와 유래, 정보 등을 포괄적으로 전달하는 역할을 배우는 과정이다. 오정연은 5년 동안 ‘6시 내 고향’을 진행하면서 우리 땅에서 나는 식재료에 관심을 갖기 시작해 자격증까지 땄다고 한다.

“‘6시 내 고향’ 덕분에 전국 곳곳을 다니면서 그 지역에서 나는 특산물들을 직접 접할 기회가 많았어요. 또 농어민들께서 제철 채소며 과일, 생선 등을 자주 보내주셔서 우리 농수산물이 얼마나 신선하고 영양가가 풍부한지 자연스럽게 알게 됐죠. 요즘 요리 프로그램이 대세인데, 저도 음식을 다루거나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한번 해보고 싶어요(웃음).”

덧붙여 그는 앞으로 밝고 긍정적인 기운을 줄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면 뭐든 도전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방송 채널이나 규모 등은 차치하고 오로지 대중과의 공감·소통에 집중하고 싶다고. 그러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먼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일일 터. 오정연은 “가끔 자신이 없을 때, 내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질 때는 모든 걸 놓아버리고 훌쩍 떠난다”고 말했다.

대중에게 사랑받기 위해 나 자신을 더욱 사랑할 터

“평소에는 앞만 보고 달려가다가도 1년에 한 번쯤은 일탈을 경험하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사실 저는 20대 때는 여름휴가를 써본 적이 없어요. 그러다 처음 휴가를 낸 게 이혼하고 다음 해인 2013년도였어요. 심적으로 많이 힘들기도 했고, 더 이상 청춘을 이렇게 보낼 수 없다는 오기가 발동해서 큰맘 먹고 혼자 프랑스로 떠났죠. 공항에 내려서 바라본 파란 하늘,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황홀감은 지금도 생생해요. 그 이후로 1년에 한 번 정도는 꼭 혼자 여행을 다니려고 해요. 지난해에는 스페인에 갔다가 난생처음 누드 비치도 가봤어요(웃음).”

또한 그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으로 “가장 빛났던 순간을 떠올려보라”는 조언도 했다. 그 역시 슬럼프나 매너리즘에 빠질 때면 과거 자신이 가장 잘했다고 생각되는 프로그램을 찾아서 다시 본다고 한다. 오정연은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었던 때를 되돌아보면서 다시 앞으로 나갈 힘을 얻는다”고 말했다.

궁극적으로 그가 꿈꾸는 방송인상은 이웃집 언니· 누나· 동생 같은 편안한 사람이다. “만만하다 느껴도 좋다. 뭐든 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하는 그에게서 비장함과 자신감이 동시에 느껴진다.

디자인 · 최진이 기자

의상&제품협찬 · 슈즈원 1st

장소협조 · 르끌로

헤어&메이크업 · 율하 혜선(제니하우스 청담점)

스타일리스트 · 강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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