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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엘리트 코스 밟은 서초동 40대 가장! 왜 그는 끔찍한 선택을 했나

우먼동아일보

2015. 02. 16

40대 가장이 아내와 두 딸을 살해한 뒤 도주했다가 7시간 만에 붙잡혔다. 그는 서울 강남에 값비싼 아파트와 외제 승용차를 소유했고, 명문 대학을 나온 엘리트였다. 어린 시절부터 누려온 사회적 지위와 부를 잃었다는 중산층의 상대적 빈곤감과 불안이 살인으로 이어진 비극적 사건이다.


엘리트 코스 밟은 서초동 40대 가장! 왜 그는 끔찍한 선택을 했나

‘서초동 세 모녀 살인 사건’ 피의자 강모(48) 씨는 1월 6일 오전 3시부터 1시간 30분 동안 거주지인 서초구 A아파트에서 자고 있던 아내 이모(44) 씨와 큰딸(14), 막내딸(8)의 목을 차례로 졸라 숨지게 했다. 서울 서초경찰서에 따르면 강씨는 가족들을 재우기 위해 아내에겐 수면제를 탄 와인을 건넸고, 복통을 호소한 큰딸에게는 약이라며 수면제를 줬다. 평소 불면증에 시달려왔던 그는 앞서 두 차례에 걸쳐 20정의 수면제를 처방받았고, 이를 범행에 이용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 결과 아내와 큰딸에게서 수면제로 쓰이는 졸피뎀이 검출됐다.

강씨는 아내와 딸들이 잠들기를 기다리면서 공책 2장 분량의 유서를 썼다. 유서에는 ‘경제적으로 너무나 어려워져 더 이상 못 참게 됐다. 미안해 여보. 미안해 딸아. 천국으로 잘 가렴. 아빠는 지옥에서 죗값을 치를게’라고 적혀 있었다. 가족이 잠들자 그는 머플러로 한 명씩 목을 졸라 숨지게 했다. 사건 현장에서는 흉기로 사용된 머플러 두 장이 발견됐다.

범행 직후 시신이 놓인 방에서 줄담배를 피운 강씨는 오전 5시경 자신의 혼다 어코드 승용차를 타고 아파트를 빠져나갔다. 충북 청주에 도착한 뒤 119안전센터에 전화해 “아내와 딸을 죽였다. 아파트에 가면 시신을 발견할 수 있다. 나도 죽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강씨는 소방대원들이 자택에 들어갈 수 있도록 현관문 비밀번호까지 알려줬다. 경찰과 소방대원들은 강씨의 자택에서 세 모녀의 시신을 발견했다. 아내는 거실에 누워 있었고 큰딸은 큰방 바닥에, 막내딸은 작은방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강씨가 스스로 살인 사실을 신고한 것 때문에 수사 초기 우발적 범행 가능성이 제기됐다. 그러나 경찰 관계자는 “강씨는 수면제를 사용한 데다 과거에도 동반 자살을 생각했기 때문에 계획 범죄로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경찰에 따르면 강씨는 지난해 말 가족 여행 중 충북 대청호 인근을 지나게 되자 ‘호수로 차를 몰아 함께 죽어버릴까’하고 갈등했지만 차 안에서 자고 있던 가족들이 깨어나면서 범행을 포기했다. 범행 후 119안전센터에 신고한 이유에 대해서 강씨는 “부모님이 집을 방문했다가 시신을 보면 충격 받을 것 같았다. 나도 죽을 생각이었기 때문에 시신 수습을 위해 신고한 것”이라고 진술했다.



신고 후 그는 경북 상주를 거쳐 문경까지 도주했다가 낮 12시 10분경 문경시 농암면에서 경찰에 검거됐다. 경찰 관계자는 “강씨는 자살을 위해 목적지도 없이 고속도로를 내달렸다. 자신이 어디에서 검거됐는지를 모를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고 말했다. 도주 이유에 대해 강씨는 “나도 죽기 위해 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청주에 도착해 흉기로 왼쪽 손목을 자해했다. 대청호에 뛰어들었지만 두꺼운 겨울옷 때문인지 몸이 가라앉지 않아 결국 걸어 나왔다”고 진술했다. 이날 오후 5시경 서초경찰서로 압송된 그는 취재진의 질문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다가 “가족과 함께 죽으려 한 것이냐”는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1월 13일 자택인 A아파트에서 진행된 현장검증에서 담담한 태도로 범행을 재연했던 그는 이후 경찰 조사에서는 죄책감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가족 이야기가 나오면 눈물을 보였고, 범행 현장을 찍은 사진 앞에서는 고개를 돌렸다. 식음을 전폐한 그는 경찰이 건넨 커피만 조금씩 마셨다. 강씨는 “내가 죽고 나면 남은 가족들이 멸시받을 것 같았다. (경제적으로) 미래에 대한 희망이 보이지 않아 함께 죽으려 했다”고 범행 동기를 설명했다. 부모의 면회도 거부한 채 서초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됐던 강씨는 1월 14일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됐다.


엘리트 코스 밟은 서초동 40대 가장! 왜 그는 끔찍한 선택을 했나

피의자 강씨가 현장검증을 하고 있는 가운데 베란다에 아이들의 옷이 걸려 있는 모습이 보인다.


“아내와의 불화는 없었다”
서울 명문대 경영학과 출신인 강씨는 직장 세 곳을 다녔다. 지인들에 따르면 그의 첫 직장은 국내 대기업인 A사(에너지 관련 업체)였다. 강씨의 한 대학 선배는 “A사에서 일도 잘하고 평판도 좋았지만 1997년 외환 위기 여파로 이뤄진 구조 조정 과정에서 퇴사했다”고 말했다. 이후 B사(외국계 컴퓨터 회사)로 이직했지만 2009년에 “더 좋은 조건으로 일할 기회가 왔다”며 사표를 냈다. B사를 나온 뒤 그는 C사(한의원)에서 연봉 9천만원을 받고 회계 업무를 봤다. 그러나 대표 변경 등 업무 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C사의 계열사인 D사(화장품 업체)로 또다시 이직했다. 이후 강씨는 2011년 7월부터 2012년 11월까지 D사에서 전무로 재직했다. 직원 10명의 중소기업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곳에서도 오래 있지 못했다. D사 관계자는 “명문대 출신이 작은 회사에 다니려니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경찰은 “강씨는 퇴직 후 다른 회사에 수차례 이력서를 냈지만 취업에 실패했다”고 말했다. 명문대 출신 엘리트의 자존심이 무너진 그는 이때부터 자포자기 상태에 빠졌다.

그는 퇴직 사실을 아내 외에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경찰 조사에서 강씨는 “나는 힘들어도 남에게 손 벌리지 않는다”며 “(실직 후) 두 딸을 똑바로 볼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강씨의 한 지인은 “평소에도 자존심이 너무 강해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했다”고 말했다. 대학원 시절 그의 지도 교수였던 박모 씨는 “지난해 5월 스승의 날에 강씨가 찾아왔지만 실직에 관해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대학원 제자들과 매년 모이는데 강씨가 최근 모임에서 회사 얘기를 일절 하지 않아 ‘(사정이) 어려운 것 같다’고 추측했었다”고 덧붙였다.

수입이 없어진 강씨에게 남은 것은 자신이 소유한 매매가 11억원의 A아파트뿐이었다. 그는 2012년 11월 아파트를 담보로 5억원을 대출받아 아내에게 매달 4백만원을 생활비로 줬다. 실직 상태였지만 큰딸을 연회비 80만원인 요가 학원에 보내는 등 ‘강남 중산층’의 면모를 유지하려 했다. 정작 자신은 최근 1년간 서울 서초구 남부터미널 인근 고시원으로 출근해 주식 투자로 재기를 꿈꿨으나 2억7천만원의 손실을 봤다. 고시원 사장은 “강씨는 3층에 화장실이 없는 가장 작은 방을 사용했고 담배를 피우기 위해 자주 흡연장으로 내려왔다”고 말했다. 그는 “강씨가 지난해 12월 30일 다른 곳으로 옮기겠다며 방을 뺐다”고 덧붙였다. 고시원 주차 관리원에 따르면 강씨는 방을 빼면서 “아는 사람들과 사업을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가 실제로 사업 구상을 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강씨는 범행 동기로 경제적 어려움을 지목했다. 그러나 그의 주변 상황을 고려하면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는 주식 투자로 날린 돈을 빼고도 여전히 대출금 중 1억3천만원이 남은 상태다. 아파트를 팔면 대출금을 갚고 남는 돈을 생활비로 사용할 수도 있다. 게다가 경찰 조사에서 “아내의 통장에 3억원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때문에 생활고 외에 아내와의 마찰 등 다른 범행 동기가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그러나 강씨는 “우리 부부는 ‘막장’이 아니며 불화는 없었다”고 반박했다.

사건을 검찰로 송치한 경찰은 강씨가 실직한 뒤 재취업을 못했고, 주식 투자마저 실패하자 자포자기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판단했다. 일반적인 기준에서 강씨의 경제적 상황이 극단적이었다고 볼 수 없지만, 그의 기준에서는 유복하게 살다가 갑자기 닥친 고난에 심리적으로 무너졌을 수 있다는 것이다.

범죄심리학 전문가들은 “자신의 평소 생활 수준이나 다른 사람과의 비교에서 오는 상대적 박탈감 때문에 미래를 비관적으로 보게 된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강남 중산층으로써 누려왔던 경제·사회적 기준이 무너지자 ‘상대적 빈곤감’과 함께 취업에 대한 의지를 상실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재헌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고학력자나 중산층 중에는 한 번의 실패에도 자존감에 큰 상처를 받는 사례가 많다. 자존감이 낮아진 강씨가 홀로 문제를 해결하려다 실패해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글·정윤철 동아일보 사회부 기자|사진·동아일보 사진DB파트, 뉴시스 제공|디자인·박경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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