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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꽃피는 오골계’ B1A4 산들

복면, 드라마틱, 성공적.

기획 · 김지영 기자 | 글 · 김지은 자유기고가

2015. 06. 16

산들은 인기 아이돌 그룹 B1A4의 메인 보컬이다. 10대 소녀들 사이에서는 이미 실력 있는 보컬로 이름나 있지만 그가 최근 세대를 넘어선 폭넓은 관심과 지지를 얻게 된 것은 MBC ‘복면가왕’ 덕분이다. 가면을 쓰고 오직 가창력만으로 실력자를 가려내는 이 프로그램에서 그는 소름 돋는 노래 실력과 세련된 무대 매너로 기립 박수를 받았다.

‘꽃피는 오골계’  B1A4 산들
‘꽃피는 오골계’  B1A4 산들
“아이돌이기 때문에 저에 관해 가졌던 편견들, 저를 둘러싼 키워드들이 있었어요. 그런데 이 복면이 저를 자유롭게 해줬어요.”

최근 MBC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에서 아이돌 그룹 B1A4의 메인 보컬 산들(23·본명 이정환)이 밝힌 출연 소감은 그를 잘 모르던 중년 시청자들의 마음까지 짠하게 만들었다. ‘복면가왕’은 직업과 신분, 외모 등 선입견을 갖게 하는 모든 요소를 배제하고 오로지 노래 실력으로만 승부하는 음악 프로그램이다. 특수 제작된 복면을 쓰고 무대에 오른 연예인들은 지금까지 자신에게 덧입혀진 모든 선입견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에서 가창력을 뽐낸다. 이들의 별명은 매회 방송이 끝나자마자 포털 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오르고, 인터넷상에서는 그들의 정체를 추리해내려는 네티즌들의 뜨거운 설전이 벌어지기도 한다.

방송 초반, 최대 반전 카드로 활약하며 시청률의 견인차 역할을 한 주인공은 바로 ‘꽃피는 오골계’ 산들이었다. 1대 가왕을 가리는 무대에서 ‘황금락카 두통썼네’ 복면을 쓴 걸 그룹 f(x)의 루나에게 2표 차로 아깝게 패했지만, 산들의 가창력은 가까이서 지켜본 채점단과 방청객들뿐만 아니라 시청자들까지 모두 찬탄할 정도의 수준이어서 ‘꽃피는 오골계’의 정체에 이목이 집중됐다. 하지만 연륜이 묻어나는 세련된 무대 매너와 카리스마 넘치는 가창력, 자유자재로 창법을 바꾸는 노련함에서 아이돌 그룹의 멤버를 떠올리기란 쉽지 않았다. 아이돌은 노래보다 춤과 외모로 승부한다는 편견 때문이다.

가면이 나를 자유롭게 하리라

데뷔 4년 차 국내 정상급 아이돌 그룹의 메인 보컬에게 ‘숨겨진 보석’이란 표현을 쓰는 것은 사뭇 미안한 일이지만, 사실 B1A4 열성 팬이 아니라면 이전까지는 그의 장기는커녕 이름이나 얼굴조차 기억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실 산들이 가창력으로 세간을 놀라게 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는 KBS ‘불후의 명곡’에서 임재범의 ‘그대 앞에 난 촛불이어라’를 불러 가창력의 대명사 휘성을 꺾고 우승을 차지하는가 하면 신승훈의 ‘내 방식대로의 사랑’, 서유석의 ‘뚝 잘라 말해’, 이용의 ‘잊혀진 계절’, 해바라기의 ‘나는 그대 품안에’ 등을 불러 극찬을 받았다. ‘불후의 명곡’ 왕중왕전에 유일한 아이돌 가수로 출연한 그는 김상희의 ‘코스모스 피어 있는 길’을 호소력 짙은 음색으로 소화해내며 또 한 번 화제가 됐다.

하지만 아이돌 가수가 자신의 앨범에 수록된 노래로 무대에 올라 ‘불후의 명곡’이나 ‘복면가왕’에서처럼 호평을 받기는 쉽지 않다. 아무리 폼 나게 노래를 잘 불러도 화려한 춤사위나 외모에 가창력이 가려지거나, 립싱크 아니면 오디오 기술로 다듬은 목소리라는 오해를 받기 일쑤다. 게다가 아이돌 그룹의 특성상 노래 한 곡을 한 명이 오롯이 부르는 경우가 드물다 보니 가창력을 제대로 평가받을 기회는 흔치 않다. 한 명이 한두 소절 목소리를 내고 나면 노래가 끝나버리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아이돌’이라는 타이틀이 산들처럼 잘생긴 오디오형 가수에게는 오히려 불편한 수식어가 아닐까.

“글쎄요. 간혹 아이돌의 한계를 극복해나가야 한다는 얘기를 듣곤 하는데, 그 말이 깊이 와 닿지는 않아요. 저는 아이돌이기 때문에 더 주목받는 것일 수 있거든요. 아이돌이기에 제 노래를 들려드릴 기회도 가질 수 있었고, 그런 무대를 통해 성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 자리가 좋아요. 앞으로 연륜이 쌓이면 자연스럽게 더 많은 것들을 할 수 있게 되겠죠. 아이돌 가수들에게 가창력을 선보일 기회를 주는 ‘복면가왕’ 같은 프로그램이 계속 생겨날 테니까요.”

산들은 대표적인 자수성가형 아이돌이다. 대한민국청소년가요제 대상을 비롯해 친친가요제, 춘장대 뮤직 페스티벌, 심지어 함양산삼축제 · 금산인삼축제 같은 지역 축제와 포항가요제, 송정해변가요제, 경성대학가요제, 대청가요제까지 대한민국에서 개최되는 가요제라는 가요제에는 죄다 출전해 상을 휩쓴 것이 그의 데뷔 전 이력이다. 부산에서 나고 자란 그가 여느 아이돌 가수들처럼 서울에서 오랫동안 연습생 생활을 하지 않았어도 어떤 무대에서든 뛰어난 기량을 선보인 이유다.

‘꽃피는 오골계’  B1A4 산들
꿈꾸는 자여, 뻔뻔해져라

“원래는 되게 소심한 성격이었어요. 학교에서 발표도 잘 못하고, 선생님이 일어나서 책을 읽으라고 하면 덜덜 떨었어요. 노래를 하고 싶었는데, 그 소심한 성격이 발목을 잡더라고요. 그래선 안 되겠다 싶어 일단 부딪혀보기로 마음먹고 고등학교 1학년 때 동네 아파트 주민가요제부터 벚꽃축제, 인근 해수욕장에서 하는 가요제까지 제 실력을 검증해볼 만한 무대가 있으면 다 찾아다녔어요. 저희 학교가 인문계다 보니 저처럼 학교에 공문을 제출하고 가요제에 출전하는 사례가 없었어요. 처음엔 선생님이 그걸 불편해하며 좀 뭐라 하셨는데 제가 하도 우겨대니까 ‘그래, 한번 해봐라’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문제는, 죄다 떨어졌어요. 그것도 예선에서요. 너무 떨려서 제가 가진 기량의 20%도 발휘가 안 되더군요. 정말 미치겠더라고요. 너무 답답해서 속이 터질 것만 같았죠.”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었다. 어린 시절부터 가수가 꿈이었고, 다른 걸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그래서 이를 악물었다. 성과는 서서히 나타났다. 이듬해엔 출전하는 대회마다 상을 받았다. 자신감이 생기니 실력까지 일취월장했다.

“마지막으로 출전한 대회가 춘장대 뮤직 페스티벌이었어요. 다행히 예선을 통과해서 공문을 들고 교무실로 찾아갔더니 담임선생님이 엄청 걱정하시더라고요. 이제 곧 고3인데 지금 뭐 하고 있느냐, 다른 친구들은 뭐 하는지 안 보이냐고 야단치면서 공문에 사인을 안 해주시는 거예요. 선생님뿐만 아니라 친구들도 진심으로 저를 걱정하고 있었어요. 다들 제가 노래 부르는 걸 본 적이 없었으니 당연한 반응이었죠.”

그는 쉬는 시간마다 교무실로 쫓아가 담임선생님을 설득했다. 점심시간쯤 되자 교무실에 계신 선생님들까지 전부 그에게 주목하는 상황이 되었다. 보다 못한 부장선생님이 “정말로 대회에 나가고 싶으면 선생님들 다 보는 이 자리에서 노래를 불러보라”고 거들었다. 때마침 교무실 근처를 오가던 학생들까지 웅성웅성 모여들었다. 하지만 이것저것 따질 때가 아니었다. 망설이다간 다시없을 금쪽같은 기회를 놓칠 판이었다. 이판사판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반주도 없이 목청을 한껏 열어젖힌 덕에 그는 겨우 담임선생님의 승낙을 받아냈고, 다행히 대상의 영예까지 거머쥐었다.

‘꽃피는 오골계’  B1A4 산들
선생님, 부모… 숨은 조력자들

“상을 받자마자 교무실로 달려가서 선생님 책상 위에 상장을 올려놓았죠. 그제야 선생님도 기뻐하면서 격려해주시더라고요. 그 뒤 서울로 올라와 1년 남짓 연습생 생활을 했어요. 그것도 저희 학교에서는 전례가 없는 일이었죠. 데뷔 후 담임선생님을 찾아뵀는데 그제야 비하인드 스토리를 말씀해주시더라고요. 저 때문에 담임선생님께서 교장선생님과 면담까지 하셨대요. 담임선생님이 ‘정환이는 공부를 해서 될 아이가 아니다. 그나마 노래는 꽤 잘하니 우리가 밀어줘야 한다’고 교장선생님을 설득하셨더라고요. 정말 감사한 일이죠.”

19세에 난생처음 가족과 떨어져 낯선 사람들과 생활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그래도 절대 안 될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얼마가 걸릴지는 몰라도 언젠가는 꼭 가수가 될 수 있을 거란 자신감이 그를 불안과 초조에서 벗어나게 했다.

“서울로 올라올 때 아버지께서 말씀하시더라고요. ‘너는 어차피 노래를 할 사람이니까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해. 안 되면 짐 싸서 내려와라. 그렇다고 네가 잃는 건 없다’는 그 말씀이 제게 정말 큰 힘이 됐어요. 사실 아버지는 제가 서울로 올라오기 직전까지도 가수가 되는 걸 반대하셨거든요. 세상에 노래 잘하는 가수가 얼마나 많은데, 공부는 안 하고 노래만 하려 하느냐고 걱정하셨죠. 근데 그게 오히려 좋은 자극이 됐어요. ‘오냐, 그럼 공부하지 말고 노래만 해’ 그러셨으면 아마도 그때처럼 열심히 노래 연습을 하지 않았을 거예요. 부모님의 기대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더 잘할 수 없었을지도 모르고요.”

‘꽃피는 오골계’  B1A4 산들

가수의 길을 열어준 어머니와 미대 진학을 포기하면서까지 동생의 꿈을 밀어준 누나에게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노래하겠다는 당찬 아이돌 산들.

그에게 가수가 될 거란 확신을 심어준 사람은 어머니였다. 중학교 때부터 가수가 되겠다며 보컬 학원을 보내달라 조르던 그에게 어머니는 고등학교에 입학하면 학원에 보내주겠노라 약속했고, 그 약속을 두말 않고 지켰다. 그러고는 하루도 빠짐없이 학원에서 뭘 배웠느냐, 노래는 어떻게 했느냐 꼬치꼬치 캐묻는 것으로도 모자라 어김없이 앞에서 한번 불러보라고 했다. 학원을 마치고 집까지 한 시간 남짓을 걸어오면 새벽 1시가 넘을 때도 종종 있었지만 그때까지도 어머니는 불을 끄고 잠자리에 드는 법이 없었다. 어머니의 평가는 눈물이 쏙 빠질 정도로 냉정했다. 아직 멀었다, 그 부분은 그렇게 하면 안 되지 않느냐 등 세심한 부분 하나하나까지도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엄마가 음악을 좋아하기도 하고 그에 관해 아시는 게 많은 편이에요. 성악을 전공하셨다는 소문도 있는데 그건 아니고요. 학교 다닐 때 합창부 활동을 하셨대요. 제가 노래를 좋아하게 된 것도 엄마의 영향이 커요. 그리고 엄마 덕분에 노래에서 가사가 왜 중요한지도 알게 되었죠. 엄마랑은 노래 가사에 대해 토론도 많이 하고 그랬어요. 어릴 땐 멜로디만 좋으면 좋은 노래인 줄 알았었거든요. 어느 날 문득 연습을 하다 무언가 모를 벽에 부딪힌 적이 있었어요. 제가 뭔가 중요한 걸 놓치고 있는 거 같더라고요. 그러다 퍼뜩 엄마와 나눈 얘기들이 떠오르더라고요. 가사였죠. 소름이 끼쳤어요.”

현재 그의 곁에서 가장 큰 조력자이자 친구, 선생님의 역할까지 해주고 있는 사람은 그가 소속된 그룹 B1A4의 멤버들이다.

“연습생 시절부터 그랬어요. 그때는 생겼다 사라지는 남자 아이돌 그룹들이 부지기수였는데도 우리는 잘될 거라고, 당연히 그럴 거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우리는 서로에 대해 모니터링해줄 때는 필터가 없어요. 억지로 미화하거나 말을 돌려 하는 법이 없죠. 하지만 그건 그만큼 서로에 대한 신뢰가 두텁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해요. 칭찬이든 지적이든 서로에게 어떻게 하면 더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을까 고민하고 하는 말이니까 진심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마음을 열고 대안을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그렇게 서로 발전하는 모습이 보이면 서로 칭찬하고 격려해주는 것도 잊지 않아요. 그건 각자의 활동 영역이 생긴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신우 형이 뮤지컬 무대를 준비할 때는 제가 해줄 수 있는 말들이 많아서 좋았어요. 제가 뮤지컬을 하면서 느꼈던 것들, 미리 준비해두면 좋을 것들을 얘기해줬어요. 제가 만약 드라마를 시작하게 된다면 진영이 형이나 바로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예요. 공찬이는 언어 능력이 정말 뛰어나요. 언어를 공부할 때는 찬이한테 물어보곤 해요.”

소년 산들, 어른이 되다

‘꽃피는 오골계’  B1A4 산들
어릴 때는 노래가 좋아서 막연히 가수를 꿈꿨다. 가수가 되면 좋아하는 노래를 마음껏 부를 수 있고, 그렇게만 되면 마냥 행복할 것 같았다. 하지만 가수 데뷔하고 4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노래에 대한 그의 생각은 많이 바뀌어 있다. 4년 전 중학생이던 팬들은 어느새 입시생이 됐고, 이미 대학에 입학했거나 졸업 후 취업을 한 팬들도 적지 않다. 그들이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든 그가 부른 노래가 희망과 위로가 돼준다는 걸 그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아이돌’이란 말 뜻 그대로 누군가에게 희망과 자극의 에너지를 주고, 또 그들의 에너지로 또다시 기운을 얻는 것이야말로 그에게 주어진 숙명과도 같은 일일 것이다.

그 숙명에 보다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아이돌은 노래를 못한다’는 것이 편견이듯 ‘가수는 노래만 잘하면 된다’는 가수에 대한 고집스러운 편견을 꺾은 뒤로 그에게는 해야 할 일이 무척 많아졌다. 노래는 물론 춤과 연기, 재치 넘치는 입담까지 두루 갖춘 가수가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노래를 계속하려면, 진짜 가수가 되려면 지금도 배우고 익혀야 할 것이 너무나 많다. 가수가 된다는 건 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무언가를 배워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는 걸 이제야 어렴풋이 깨닫는 중이다.

그에게는 정말 열심히 해야 하는 이유가 또 있다. 그림을 그리고 싶었지만 부유하지 않은 집안 형편 때문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누나에게 이제야 겨우 보답할 기회가 왔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시절, 미대 진학을 꿈꾸던 누나는 동생 산들이 꿈을 이루기 위해 보컬 학원에 등록했다는 사실을 알고 실기 준비를 포기했다.

“누나는 오랫동안 혼자 고민하다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부모님께 말씀드린 거였는데 저는 어릴 때부터 가수가 되겠다고, 보컬 학원에 다니게 해달라고 떼를 썼거든요. 그래서 엄마가 누나를 설득하신 것 같아요. 당장 둘 다 예체능을 시킬 형편은 안 되니 동생을 위해 양보하는 게 어떻겠느냐고요. 그 뒤로 누나는 다시는 그림 얘길 꺼내지 않았는데 최근에야 알게 됐어요. 누나가 여전히 화가의 꿈을 안고 살아간다는 걸.”

이제는 그가 꿈을 키워가는 과정을 오랫동안 지켜보고 응원해준 사람들에게 보답할 차례. 지금보다 더 열심히, 최선을 다해 노래해야 하는 이유다.

사진 · 조영철 기자

디자인 · 최진이 기자

헤어 · 강호(더레드카펫)

메이크업 · 박수진(더레드카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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