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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미디어 시대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안젤리나 졸리

글·조엘 킴벡 | 사진·뉴시스AP REX 제공

2015. 02. 23

미디어 시대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안젤리나 졸리
요즘 배우 안젤리나 졸리(40)는 그 어느 때보다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시상식 시즌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영화를 만든 감독 자격으로 시상식에 참석하는 것은 배우로 레드 카펫을 밟는 것과는 다른 무게감으로 다가온다. 특히 1월 15일 열린 전미 비평가상 시상식(Critics’ Choice Awards)에서는 배우 브래드 피트의 전 부인인 제니퍼 애니스톤과 현 부인인 안젤리나 졸리가 같은 레드 카펫 위를 걷는 상황이 발생해 초미의 관심을 모았다. 물론 애니스톤은 배우 자격으로, 졸리는 감독 자격으로 초대된 것이라 카펫 위에서의 시간 차는 존재했지만.

사실 안젤리나 졸리가 이번에 연출한 영화 ‘언브로큰’은 여러모로 화제가 됐다. 반일 감정을 조성한다며 일본 내 극우 세력으로부터 엄청난 비난을 받기 시작하더니, 오히려 그것을 계기로 전 세계적으로 역사의식에 대한 재조명이 이뤄지면서 일본의 국제적 이미지가 더 나빠지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이 영화는 신문의 문화면보다 정치면 혹은 사회면에서 언급되는 경우가 많았다. 거기에 감독이 다른 이도 아닌 안젤리나 졸리라니.

안젤리나 졸리는 할리우드의 배우라는 타이틀에만 가둘 수 없을 정도로 국제 정치 무대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는 파워 우먼이 됐다. 유엔난민기구(UNHCR) 특사로 정치의 세계에 발을 디딘 그는 이제 각국 정치인, 외교관들과 함께 국제 행사에 참석하는가 하면 직접 단상에 올라 연설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적극적인 행동가가 됐다.

대중의 상상력에 자신을 가두지 않는 배우

미디어 시대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안젤리나 졸리
안젤리나 졸리는 그야말로 이 시대가 요구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대표적인 유명인 중 한 명이다. 단순히 재산을 환원하는 차원이 아닌 주목도가 높은 배우라는 지명도를 기반으로 막연하게 알려진 각국의 난민과 관련된 열악한 환경을 전 세계의 대중에게 정치·사회 뉴스가 아닌 연예 뉴스로 전달하며 저변을 확대하고 관심을 증폭시키는, 이른바 미디어 시대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현존하는 여배우로서 할리우드 역대 최고의 몸값을 자랑하지만, 그 이상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사회적인 역할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실천하는 머리와 가슴을 지녔다.



그는 자신의 최근 출연작인 ‘말레피센트’에 등장하는, 영화를 보고 나면 사랑할 수밖에 없게 되는 악녀처럼 어린 시절 아버지에 반항하고, 마약을 일삼았으며, 레즈비언 애인과 염문을 뿌리고, 아버지뻘의 배우와 사랑에 빠져 그 사랑의 서약으로 엄청난 문신을 새기고, 거기에 최고의 배우를 사로잡아 이혼까지 시킨, 이른바 할리우드의 가십을 좋아하는 이들의 육감을 충족시켜주는 ‘희대의 나쁜 X’임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그 누구도 그를 향해 가운뎃 손가락을 치켜들지 않는다. 아마 그것이 전부 안젤리나 졸리의 머릿속에서 나온 것이고 대중이 그의 각본대로 움직여준 것이라면 그는 천재일지도 모른다.

세기의 커플 안젤리나 졸리와 브래드 피트. 할리우드의 톱 배우 두 사람이 부부가 됐으니 그렇게 불리는 것이 당연지사. 여기에 이들을 둘러싼 크고 작은 뉴스들도 한몫 톡톡히 한다. 졸리는 영화 ‘미스터 앤 미세스 스미스’ 촬영 도중 상대역을 맡은 브래드 피트와의 열애로, 할리우드의 빅 커플이었던 브래드 피트와 제니퍼 애니스톤의 결혼 생활에 종지부를 찍게 한 장본인이다. 그는 자칫하면 ‘가정 파괴녀’라는 주홍글씨를 달고 살뻔 했지만 캄보디아와 에티오피아, 베트남에서 매덕스와 자하라, 팍스를 입양하고 샤일로, 녹스, 비비안 등 자신의 아이를 낳아 키우는 엄마로 이미지로 바꿔놓은, 범인의 예상을 뛰어넘는 여인임이 분명하다.

그뿐인가. 자신의 연기 경력에서도 대중적인 인기를 누릴 수 있는 블록버스터만을 고집하지 않고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작품, ‘체인질링’으로 연기파 배우로서의 균형도 잃지 않고 있다. 또한 제작자나 감독으로서의 역량도 범상치 않다. 제2차 세계대전 생존 영웅인 루이스 잠페리니의 일생을 그린 영화 ‘언브로큰’은 2월 열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촬영, 음향 편집, 음향 믹싱 등 3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됐다. 각종 UN 관련 행사 그리고 아내와 엄마 역할만도 상상 이상인데, 감독일까지 수행했다니 그저 입이 딱 벌어질 뿐이다.

특히 톰 크루즈가 개인 사정으로 하차하자 감독 필립 노이스가 졸리를 위해(그 둘은 이전 영화 ‘본 콜렉터’로 함께 작업을 한 경력이 있음) 전면 시나리오를 수정해 제작했던 ‘솔트’ 이후 앞으로 액션 영화는 사양하겠다던 그였지만, 결국 후속편 주연을 맡아 전편을 능가하는 하드한 액션을 수행하며 촬영 중이라는 전언을 들으니 미리부터 심장이 쿵쾅거리기까지 한다.

미디어 시대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안젤리나 졸리


미디어 시대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안젤리나 졸리
Fantastic! Gorgeous!

카리스마는 두말하면 잔소리에, 할리우드는 물론 세계 정치계에서의 위상 면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배우 안젤리나 졸리와 2006년 광고 작업을 한 적이 있다. 9년 전의 일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내게는 그날의 기억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할리우드 배우들과 광고나 화보 작업을 하면서도 특정 배우에게 팬심을 가진 적은 거의 없는데 졸리만큼은 달랐다. 이 때문에 그를 만나기에 앞서 작업을 함께하는 사람이라기보다 스타를 만난다는 묘한 흥분감에 사로잡혔다.

이날 촬영은 일본 최대 코즈메틱 회사 시세이도가 내수용 메이크업 전문 브랜드 ‘인테그레이트(Integrate)’의 대대적인 론칭을 위해 세계적으로 인지도가 높은 할리우드 스타, 안젤리나 졸리를 브랜드 모델로 기용하면서 성사됐다. 그런데 촬영지가 미국 LA에서 갑자기 프랑스 파리로 변경됐다. 당시 임신 6개월이던 졸리가 장거리 이동이 어려워 그가 극비로 머물고 있던 파리에서 광고 촬영을 하게 된 것이다. 장소가 급하게 바뀐 것도 문제였지만 10대 후반부터 20대 초반 사이의 여성들을 핵심 타깃으로 하는 메이크업 브랜드에서 모델의 임신은 결코 호재로 작용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걱정’일 뿐이었다. 2006년 8월의 어느 날, 파리 외곽의 스튜디오에 모습을 드러낸 안젤리나 졸리는 임산부용 의류를 착용했음에도 불구하고 ‘포스 작렬’이었다. 임신으로 체형이 바뀌지 않았을까 걱정했던 현장 스태프를 머쓱하게 할 만큼, 그의 몸매는 변함이 없어 보였다. 메이크업 브랜드의 광고 특징상 얼굴 클로즈업이 많아서 배 부분만 살짝 모션 그래픽(리터칭 개념) 작업을 한다면 전신을 비추어도 문제가 될 것은 없어 보였다.

촬영을 위해 시세이도의 전속 메이크업 아티스트, 디자이너 마크 제이콥스와 마이클 코어스가 극찬해 마지않는 딕 페이지(Dick Paige)가 메이크업을 시작하자 그도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광고의 콘셉트가 약간 미래지향적인 느낌이라 세트는 실버톤의 차가운 질감이었고, 졸리의 의상도 메탈릭한 요소가 가미된 슬릭한 원피스였다. 그 원피스는 플라스티크(Plastiq) 백으로 유명한, 이탈리아에서 활동 중인 일본계 디자이너 브랜드 안테프리마(Anteprima)의 룩이었다. 의상 착장과 메이크업이 끝나고 촬영이 시작됐다. 먼저 립스틱을 위한 컷이었는데, 안젤리나 졸리 하면 많은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그의 입술이기에 촬영 내내 남녀를 불문하고 현장의 모든 이들이 그의 육감적인 입술의 움직임에 시선이 고정됐고, 금세 촬영장 곳곳에서 ‘Fantastic’ ‘Gorgeous’ 같은 찬사가 끊이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올해 40대로 접어든 안젤리나 졸리. 브래드 피트와의 결혼 이후 안정기에 접어든 듯 이전보다 훨씬 더 여유롭게 다양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감독으로서의 활동도 그러하지만, “일생의 마지막 작업이라고 생각하고 온 힘을 다할 것”이라는 말에 은퇴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을 만큼 그가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영화 ‘클레오파트라’. 어쩌면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열연했던 클레오파트라를 뛰어넘을 안젤리나 졸리표 클레오파트라가 탄생할지도 모를 일이다. 이쯤 되면 이 시대 진정한 의미의 멀티태스커(Multitasker) 안젤리나 졸리의 다음 행보가 기대되는 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 같다.

미디어 시대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안젤리나 졸리
Joel Kimbeck

뉴욕에서 활동하는 광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안젤리나 졸리, 기네스 팰트로, 아만다 사이프리드, 미란다 커 등 세기의 뮤즈들과 함께 작업해왔다. 현재 ‘퍼투’를 이끌며 패션 광고를 만들고 있다. ‘레드 카펫’을 번역하고 ‘패션 뮤즈’를 펴냈으며 한국과 일본의 미디어에 칼럼을 기고한다.

디자인·최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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