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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사

리안맘의 아이와 함께하는 유럽 여행기

영국 뮤지엄 순례

입장료 무료, 보고 느낄 것 많은

글&사진·정윤숙 자유기고가 | 사진·REX 제공

2014. 10. 01

영국은 물가가 비싸기로 유명하지만, 박물관과 미술관은 대부분 입장료가 무료인 데다 볼거리와 놀거리가 풍부해 유럽 여행 시 꼭 들러봐야 한다.

영국 뮤지엄 순례

영국 대부분의 박물관은 입장료가 무료인데, 이는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요인으로 작용해 정부로서도 손해나는 장사가 아니라고 한다.

영국의 미술관과 박물관은 정부 지원과 기부금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대부분 입장료가 무료다. 여기에는 19세기부터 아이들의 교육 장소 역할을 해온 박물관이 공공의 자산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비용이 거의 들지 않고 짐 보관소가 따로 있어 무거운 가방을 맡길 수 있으며, 화장실도 맘껏 이용할 수 있으니 아이와 함께하는 여행객에겐 ‘이보다 좋을 수 없는’ 장소다.

우리 가족은 8박 9일 일정으로 런던과 잉글랜드 북쪽에 위치한 맨체스터, 브래드퍼드를 돌아보기로 했다. 뮤지엄에서 실컷 놀기, 그것이 이번 여행의 숙제이자 의무였다.

◆ 뮤지엄의 도시, 런던

런던 시내 곳곳에는 수많은 뮤지엄이 산재해 있다. 영국은 18세기 중반 개인 컬렉터들이 소장하고 있던 예술품을 국가나 기관이 기증받아 박물관을 만들기 시작했다. 정부는 무료로 운영되는 뮤지엄들을 지원하기 위해 해마다 엄청난 예산을 쏟아붓고 있지만 무료 입장이라는 매력적인 카드 덕분에 외국 관광객이 꾸준하게 증가해 손해나는 장사는 아니라고 한다.

대영박물관으로 잘 알려진 브리티시 뮤지엄(The British Museum)과 명화가 많은 내셔널 갤러리(National Gallery), 현대 미술관인 테이트 모던(Tate Modern) 등은 런던 여행자들에게 필수 코스 같은 곳이다. 하지만 아이를 데리고 잠깐 들르기엔 그 규모가 어마어마하고, 자칫하면 끝도 없이 늘어선 입구의 줄만 쳐다보다 나와야 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고심 끝에 우리가 선택한 곳은 미술품과 조각품, 각종 수집품과 전시물이 많은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뮤지엄과 신진 작가들의 설치 작품이 많은 사치 갤러리다.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뮤지엄(Victoria and Albert Museum)

세계 최대의 아트&디자인 뮤지엄이라는 사실만으로도 흥분을 안겨준 곳이다. 빅토리아 여왕과 그의 남편 앨버트 공이 1852년 만든 박물관으로, 4백50만 점의 방대한 컬렉션을 자랑하는 만큼 볼거리도 풍부하다. 그러나 ‘아이와 함께’라는 현실 때문에 많은 걸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어린이들을 위한 행사가 알차게 진행되고 있었다. 무료로 참여할 수 있고, 프로그램도 다양했다.

뮤지엄에서는 ‘Back-packs’라는 가족 단위 프로그램을 상시로 운영하는데, 몇 가지 주제가 들어 있는 백팩 중 하나를 빌려주어 그 안에 있는 문제를 풀도록 해 교육 효과를 얻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 이벤트는 만 5~12세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그보다 어린 리안이는 아쉽게도 참여하지 못했다. 대신 전시물을 보면서 십이간지가 그려진 동그란 그림판에 자신의 띠와 관련된, 혹은 자신이 그리고 싶은 동물을 그려보는 이벤트에 참여했는데, 과제를 수행하기에는 아직 어린 나이임에도 언니 오빠들이 하는 모습을 곁눈질하면서 열심히 그림을 그렸다.

이곳은 미술품을 유리문 안에 넣어 전시하기 때문에 아이가 혹시라도 만질까 노심초사하지 않아도 된다. 곳곳에 쉴 수 있는 공간도 많아 쉬면서 이동하기도 좋았다. 이날 프로그램 중에 매시 정각 1층 전시실에서 공연하는 인형극이 있었다. 무대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전시실 중간에 조금 넓은 공간에서 공연을 펼쳤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중국에서 온 팀이 그림자 공연을 선보였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오자 먹을거리를 찾아 1층 야외 카페로 나가보았다. 카페테리아에서는 간단한 샌드위치나 스콘, 머핀 종류와 커피, 음료를 판매하고 있었다. 앞쪽에 보이는 고풍스런 건물과 잔디밭이 눈의 피로를 말끔히 사라지게 했다. 날씨가 좋으면 햇빛을 받으며 잔디밭에 앉아서 음식을 먹을 수도 있다.

주소 Cromwell Road, London SW7 2RL 운영시간 오전 10시~오후 5시 45분, 금요일 오전 10시~오후 10시

영국 뮤지엄 순례

1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뮤지엄의 외관. 정원에 잔디와 분수대가 있어 아이들이 뛰놀기 좋다. 2 전시 중인 작품만도 50만 점에 이르는 뮤지엄 내부 모습. 3 아이들이 빙 둘러앉아 공연을 보고 있다.



사치 갤러리(SAATCHI Gallery)

사치 갤러리는 신인 아티스트를 발굴해 그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지원하는 곳으로, 찰스 사치라는 유명한 컬렉터의 개인 미술관이다. 1990년대 영국의 젊은 작가 그룹(YBA: Young British Artists)전을 통해 데미안 허스트, 트레이시 에민, 사라 루카스 등을 스타로 만들어내며 현대 예술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곳으로 자리 잡았다. 우리는 현대 미술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갤러리가 런던에서도 부촌으로 유명한 첼시에 있어 동네 구경 삼아 가보기로 했다. 지하철 Sloane Square 역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어 찾기 쉬웠다.

일단 갤러리 바깥쪽 풍경이 눈에 띄었다. 동네 사람들도 자주 산책을 나오는지 유모차를 끌고 나온 가족이 많았고, 바로 앞 정원에 자그마한 바닥 분수가 있어 아이들이 놀기 좋았다. 이곳 역시 무료라 부담 없이 안으로 들어갔는데, 고풍스러운 외관과 달리 현대 미술과 어울리는 깨끗하고 모던한 흰색 직사각형 내부가 인상적이었다.

전시물은 역시 설치 작품이 많았고 디지털 프린팅을 이용한 현대 미술 작품들도 볼 수 있었는데 아이는 무척이나 신기해하며 재미있게 관람했다.

붓터치 기교에 감탄하게 되는 고전 미술 작품과 달리, ‘감성’과 ‘감각’을 자극하는 작품들이 많았다. 이곳은 상설 전시보다 매번 새로운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모아 여는 전시를 선보인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젊은 러시아 출신 작가들의 사진, 콜라주, 설치 작품 등이 전시 중이었다.

우리가 찾은 날은 마침 갤러리 바깥 공터에서 파머스 마켓이 열리는 날이었다. 치즈나 유제품류, 오가닉 농산물이나 키슈, 누가, 컵케이크 등 예쁜 디저트들을 판매하는 곳이 많았다. 여기에서 원하는 걸 구입해 계단이나 의자 등에 앉아 먹으면 된다. 간단한 점심식사 후 첼시 거리를 걸으며 예쁜 숍들과 집 그리고 골목길을 구경하는 재미도 빼놓을 수 없는 코스. 이 갤러리는 쉬는 날은 없지만 새로운 전시를 준비할 때는 간혹 문을 닫기도 하고 전시가 계속 바뀌므로 홈페이지(www.saatchigallery. com)에서 미리 확인하고 가는 것이 좋다.

주소 Duke Of York’s HQ King’s Road, London SW3 4RY 운영시간 오전 10시~오후 6시 

영국 뮤지엄 순례

1 2 사치 갤러리는 영국에서도 동네가 예쁘기로 소문난 첼시 지역에 있어 볼거리가 풍부하다. 3 갤러리 앞 공터에서 열린 파머스 마켓 풍경.

◆ 축구와 산업혁명의 본고장 맨체스터

런던에서 기차로 2시간 거리에 맨체스터가 위치한다.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은 영국에 오면 마치 무엇엔가 홀린 듯 이곳 맨체스터를 찾게 된다고 한다. 세계 최초의 기차역을 개조해 만든 테마파크도 있어, 남자와 아이들이 열광하는 곳이다.

내셔널 풋볼 뮤지엄(National Football Museum)

유리로 만들어진 모던한 스타일의 풋볼 뮤지엄은 맨체스터의 고풍스러운 벽돌 건물들 사이에서 유난히 눈에 띄었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입구에 들어서면 커다란 전광판에 보비 찰턴, 엘렌 시어러, 데이비드 베컴 등 유명 선수들의 모습을 담아 공개해 공간을 압도했다. 입장료는 무료.

1층부터 3층까지가 전시실인데 1층 한켠에 유모차를 두고 다닐 수 있다. 2층 키즈룸에는 장난감과 미술도구, 아이들이 공을 갖고 놀 수 있는 공간도 있었다. 그 옆에는 푹신한 스펀지로 만든 바닥과 소파가 놓인 놀이방이 있는데, 색색깔의 빛이 나오는 바닥을 밟으면 축구 경기장에서 들리는 심판의 목소리가 나와 아이가 재밌어했다. 전시실에는 유명 선수와 각종 기록, 유명 경기에 관한 자료, 과거 유니폼과 트로피 등이 영상이나 사진 등으로 자세히 설명돼 있었다. 특히 기록이나 역사 등에 관한 내용은 간단한 게임으로도 알 수 있도록 돼 있어 아이가 직접 해보면서 흥미로워했다.

주소 Urbis Building Cathedral Gardens, Manchester M4 3BG 운영시간 월~토요일 오전 10시~오후 5시, 일요일 오전 11시~오후 5시

영국 뮤지엄 순례

1 풋볼 뮤지엄 내부를 장식한 축구 스타들의 현수막과 전광판들. 2 키즈룸 안에는 미니축구를 할 수 있는 작은 놀이방이 있다.

 

뮤지엄 오브 사이언스 앤드 인더스트리(MOSI : Museum of Science and Industry)

한국 아이들에게 ‘뽀로로’가 있다면 영국엔 ‘토마스와 친구들’이 있다. 1984년부터 방영된 이 만화영화에는 세계 최초로 철도를 개통하고 기차를 운행한 영국인의 자부심이 담겨 있다. 뮤지엄 오브 사이언스 앤드 인더스트리는 세계 최초의 기차역을 개조해 만든, 테마파크 같은 박물관이다. 

19세기 산업혁명의 중심지였던 맨체스터에서 증기기관 기차와 방직 기술은 세계 최고였다. 그래서 그 전까지 석탄을 나르던 운송 수단이던 기차는 필요한 인력과 짐을 실어 나르기 위해 항구 도시인 리버풀과 맨체스터를 오갔다.

뮤지엄 안에 들어서면서부터 그 규모에 압도당했다. 산업혁명 당시의 기차, 전기와 동력, 가스, 방직 시스템은 물론 그 이후 시대의 비행기까지 실물을 전시해놓았다. 주제에 따라 전시 건물이 다르고 건물 사이에 기차 선로가 놓여 있어 자칫하면 입구와 출구를 잃고 방황하는 사태가 생길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을 배려해서인지 건물마다 번호가 매겨져 있다.

박물관 곳곳에는 가스등을 켜놓은 거리, 그 시절 쓰던 물건들을 전시해놓은 상점 등 그 시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간접적으로 체험해볼 수 있는 공간이 있고, 건물 밖으로 나가면 토마스 기차처럼 생긴 작은 증기기관차를 직접 타볼 수 있는 시설도 마련돼 있다.

꼭 놓치지 말아야 할 곳은 식당 바로 옆에 있는 놀이 시설. ‘Welcome to experiment’라는 문을 지나면 과학의 원리를 이용한 놀이 체험 시설이 있다. 비눗방울, 자석, 빛, 거울 반사 등 과학의 원리를 이용한 것인데 어른도 아이도 재밌게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단, 아이가 한번 들어가면 절대 나오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 단점.

주소 Liverpool Road Castlefield, Manchester M3 4FP 운영시간 오전 10시~오후 5시

영국 뮤지엄 순례

1 2 맨체스터와 리버풀을 오가던 최초의 기차역을 개조해 만든 뮤지엄 안쪽에는 실제 증기 기관차가 다니고 선로도 그대로 있어 마치 기차역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 브래드퍼드

브래드퍼드는 런던 북쪽으로 기차로 약 3시간 거리에 위치한 도시로, 지도를 살펴보면 영국의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석탄이 산업혁명의 동력이 됐기 때문에 ‘영국의 심장’으로 불리기도 한다.

영국 뮤지엄 순례

내셔널 미디어 뮤지엄 30주년 기념 행사의 한 장면. 귀여운 미니 컵케이크는 덤.

내셔널 미디어 뮤지엄(National Media Museum)

1980년대 초반 영국은 경제 위기를 겪으면서 대대적인 구조 조정을 했는데, 이로 인해 잘나가던 탄광 도시였던 브래드퍼드는 쇠락의 길을 걷게 됐다. 이때 지은 것이 바로 사진, 텔레비전, 애니메이션, 게임, 인터넷 등 화려한 신산업의 핵심을 보여주는 내셔널 미디어 뮤지엄이다.

뮤지엄은 지하 2층부터 지상 7층까지 다양한 전시와 체험을 할 수 있게 꾸며놓았다. 그중 텔레비전 룸은 스튜디오처럼 꾸며놓고 블루 스크린을 쳐놓았다. 그곳에 사람이 들어가면 화면에 모습이 잡힌다. 이때 배경화면은 여러 개 중에서 선택할 수 있는데 우린 텔레토비를 골라보았다. 아이는 텔레토비와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이 신기한지 연신 화면을 쳐다보았다. 

3층의 텔레비전 룸에서는 비디오테이프를 비치해놓고 관람객의 취향에 따라 틀어준다. 이외에도 빛과 거울을 이용해 재밌는 체험을 할 수 있는 매직팩토리와 애니메이션 룸, 초창기 비디오 게임을 즐길 수 있는 비디오 게임 룸 등이 있어 하루 종일 아이와 놀기 좋다. 

주소 Bradford, West Yorkshire, BD1 1NQ 운영시간 오전 10시~오후 6시

영국 뮤지엄 순례
정윤숙

‘여성동아’ 기자 출신으로 체코 마사릭대에서 강의하는 남편과 다섯 살 된 딸 리안을 두고 있으며, 현재 핸드메이드 인형 만드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여행과 사진 찍는 것이 취미인 남편과 함께 유럽의 많은 곳을 여행하면서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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