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LIFE STYLE

Age of PASSION

3050 ‘꽃누나’들의 지갑 패권 장악기

글·김명희 기자|사진·동아일보 사진DB파트, REX 제공

2014. 07. 29

20년 전, 20대 때 패션 리더였던 이영애, 고소영, 김남주 같은 ‘언니’들이 여전히 럭셔리 브랜드의 섭외 1순위라는 사실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스타가 대중의 욕망을 대변하는 존재라는 공식에 충실하다면, 그들의 견고한 인기는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즐기며, 자신에게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삶을 아름답게 가꿀 줄 아는 3050 여성들의 라이프스타일에 힘입은 바가 크다.

3050 ‘꽃누나’들의 지갑 패권 장악기
‘불금’을 기다리는 청춘도, 사업차 미팅을 갖는 중년 남성들도 아니었다. 금요일 오전 11시, 서울 시내 A호텔에서 가장 전망 좋은 레스토랑을 차지하고 있는 이들은 고운 피부에 멋스럽게 차려입은 30, 40대 여성들이었다. 이들의 브런치 테이블에선 해외여행에서 사 온 명품 백 이야기부터 서래마을에서 가장 핫한 레스토랑 메뉴, 자동차 시승기, 고가와 저가 화장품 브랜드의 자외선 차단제 품평기까지 업계 관계자들이 들으면 귀가 솔깃할 만한 이야기들이 음식과 함께 등장했다가 빠르게 소비됐다. 서울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지리적 장점을 이용해 비즈니스 호텔로 콘셉트를 잡았던 이곳은 얼마 전 타깃을 3545 여성들로 확대하고 그릴 바에 브런치와 애프터눈 티 메뉴를 추가했다. 여성들을 위한 패키지 프로그램도 새로 선보였다.

“이 세대의 여성들을 잡지 못하면 영업이 안 되겠더라”는 이 호텔 홍보 담당자의 말은 여러 수치로도 증명되고 있다. 온라인 쇼핑몰 11번가에 따르면 2013년 1~10월 여성 의류 연령별 구매 비중을 분석한 결과 3545세대가 50%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0% 상승한 결과로 2535세대(30%)의 구매 비중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NS홈쇼핑도 올해 1~5월 주문량을 분석한 결과 ‘누나 파워’가 두드러졌다고 분석했다. 히트 상품 상위 10개 중 6개가 30, 40대 여성들을 위한 뷰티와 패션 제품이었다는 것이다.

인터넷과 홈쇼핑뿐이 아니다. tvN 예능 프로그램 ‘꽃보다 누나’의 관광지 크로아티아 여행 상품은 대박을 기록했다. 단순히 프로그램의 영향력 덕분이었다고 치부하기에 ‘크로아티아 붐’은 ‘꽃보다 할배’ 여행지였던 스페인이나 대만과의 격차가 너무 크다. 그러니 장사하는 사람들의 입에서 “돈을 벌려면 3050 여성들이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명품업계의 랜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갤러리아 백화점이 올 초 3050 여성들의 니즈에 맞춰 캐주얼 중심으로 란제리와 슈즈 멀티 섹션 등을 대폭 강화하고, 독일 명품 키친웨어 브랜드 WMF가 주부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배우 이정재를 모델로 내세운 것에는 이런 배경이 깔려 있다.

3050 ‘꽃누나’들의 지갑 패권 장악기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즐길 줄 아는 그녀들

트렌드를 예측하는 통계청의 ‘블루슈머 리포트’에서 올해 트렌드 키워드로 지목한 단어가 바로 ‘꽃누나’다. ‘블루슈머’란 블루오션(경쟁 없는 시장)과 컨슈머(소비자)의 합성어로, 성장 가능성이 큰 시장을 의미한다. 말하자면 중년 여성들이 소비의 중심축으로 자리 잡았다는 이야기인데, 꽃누나들이 어떻게 지갑의 패권을 장악했는지는 이들이 살아온 과정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들이 태어난 1970~80년대는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구호가 전국적으로 유행하던 시절이다. 유사 이래로 내려오던 남아선호사상의 매듭을 처음으로 끊은 세대로, 엄마들로부터 “나는 그러지 못했지만 너는 하고 싶은 일을 맘껏 하면서 살라”는 이야기를 주문처럼 듣고 자랐다. 중학교 때는 홍콩 영화가 이룬 성취에 함께 고무돼 주윤발·장국영·유덕화에 열광, 책받침과 브로마이드를 닥치는 대로 사들이며 현재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기틀을 마련했다. 감수성이 예민한 고등학교 땐 마침 딱 맞춰 나타난 서태지의 ‘됐어 됐어 이제 그런 가르침은 됐어’ 라는 노래 가사를 읊조리며 따분한 기성세대에 반기를 들었다. 3050세대는 기존 질서에 정치적으로 반항하고, 기성세대의 벽을 문화적으로 공략했다.

대학에 입학하자, 기성세대는 자신들과는 다른 이들에게 ‘X세대’ ‘신세대’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캠퍼스는 자본론과 마르크시즘 대신 포스트모더니즘을 거쳐 다양한 사유들이 흩어졌고, 학교 밖에는 노래방·록 카페 같은 놀거리들이 날마다 새로 생겨났다. 이들은 얼리어답터로 CD플레이어, 삐삐, 컴퓨터, PC 통신, 인터넷, 휴대전화 같은 전자 기기 및 통신 산업의 발달을 주도했으며 배낭여행, 어학연수 등 그 어느 세대보다 다양하고 풍족한 문화적 경험을 했지만 동시에 외환 위기라는 엄청난 경제적 고비를 겪기도 했다. 199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프라다, 크리스찬 디올, 루이비통 등 해외 명품의 유혹은 외환위기를 거치는 동안 더욱 달콤해졌다. 1999년 이화여대 앞에 처음 문을 연 후 빠르게 번져나간 스타벅스를 통해 글로벌 럭셔리 라이프스타일을 경험하기 시작했고, 2000년대 초·중반부터 등장한 홈쇼핑과 마트 등 다양한 유통 채널은 소비의 안목을 키우는 계기가 됐다.

3050 ‘꽃누나’들의 지갑 패권 장악기
이렇게 다이내믹한 시대를 지나면서 한국 사회에 에너지를 불어넣은 3050세대는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즐기는 데 익숙하다. 부모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자랐지만 부모처럼 살고 싶지 않은 이들은 돈을 얼마나 모으느냐보다 ‘내’가 얼마나 즐겁고 만족하냐를 행복의 지표로 삼는다. ‘적당히’라는 말은 이들에게 통하지 않는다. 숱한 시행착오를 통해 트렌드를 읽어내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소화하는 능력을 갖게 됐다. 지갑을 열기 전에는 깐깐하지만 한번 선택한 상품에 대해서는 충성도가 높고, 다른 이들과 의견을 교환하는 데도 적극적이다. 자기만족을 위해, 또 결혼이든 취업이든 인간관계든 외모가 ‘플러스 알파’가 된다는 걸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덕분에 외모를 가꾸는 데도 열성적이다. 학자금 걱정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20대나 은퇴한 실버 세대들에 비해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덕분이기도 하다.

인터넷 서점 예스24가 7월 1일 발표한 ‘2014년 상반기 베스트셀러 분석 및 도서 판매 동향’에 따르면 40대 여성이 23.6%로 1위, 30대 여성이 23%로 2위를 차지했다. 이는 여성들의 투자가 비단 외양 가꾸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과거에는 남편과 자식의 성공이 인생의 목표였다면 요즘은 독서, 외국어 공부 등을 하며 자기 계발에도 적극적인 여성들이 많다. 분명한 것은 3050 여성은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지나고 있으며 이들만큼 열정적으로 자신의 삶을 관리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한 세대가 없었다는 점이다. 아픈 청춘을 지나 진짜 아픈 노년으로 향하기 전에 허용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기에.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