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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현영, 잠시 멈추고 바라본 세상

글ㆍ진혜린 사진ㆍ지호영 기자

2013. 11. 15

‘1+1=귀요미’라는 공식이 있다면 ‘긍정+긍정=현영’이라는 공식을 새로 쓰고 싶다. 타고난 긍정에 스스로 터득한 긍정을 더하니 더 차분하고 묵직한 현영이 됐다. 철딱서니 없는 이미지는 이제 눈 씻고도 찾아볼 수 없는, 인터뷰 내내 언니 같던 현영의 새로운 공식.

현영, 잠시 멈추고 바라본 세상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언제나 듣기 좋지만, 아이들과의 촬영이 늘 반가운 것은 아니다. 생글거리며 웃던 아이들도 촬영을 진행하다 보면 엄마를 찾으며 울음을 터트리니까. 그런데 정은서, 이현준 여섯 살 동갑인 두 아이는 촬영장에 도착할 때부터 떠나는 순간까지 까르르 넘어갈 듯 웃기만 했다. 은서와 현준이는 현영(37)과 오랫동안 연을 맺어온 ‘서울시립뇌성마비복지관’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아이들이다. 은서는 하지 마비, 현준이는 오른쪽 편마비 증상이 있지만 스튜디오를 종횡무진하며 스태프의 마음을 빼앗고 있었다.
“은서랑 현준이가 너무 잘해줘서 고맙네요. 정말 예쁘죠?”
현영 또한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같은 데시벨로 까르르 웃더니 “이모도 좀 끼워줘” 하며 어느새 아이들의 놀이에 자연스레 어우러진다. 아이들과 놀아주는 품이 ‘엄마 다 됐다’ 싶다.

제 친구들 참 예쁘죠?
두 아이들과 기차놀이도 하고 고양이 흉내도 내면서 정신없이 사진 촬영을 마쳤는데도, 현영은 오히려 스튜디오에 도착했을 때보다 더 생기가 넘쳐 보였다.
“오늘은 제가 만나는 아이들이 얼마나 예쁜지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뇌성마비에 대한 편견이 있잖아요. 그런데 사실 마음은 더 순수하고 맑은 친구들이거든요. 그래서 뇌성마비에 대한 사회의 인식변화를 돕고 사회와 다리를 이어주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뇌성마비는 우리 사회가 보듬어야 할 아픔이라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어요.”
그는 아기가 산도를 빠져나오는 순간, 혹은 인큐베이터에 들어가 있을 때 누군가의 실수로 잠깐 산소 공급이 되지 않는 경우에도 뇌성마비가 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뇌성마비 환자들은 진단이 내려지는 그 순간부터는 직업을 갖기가 무척 힘들어요. 제가 임신했을 때 도예를 배운 인연이 있어서 복지관 내 도자기반 일을 돕게 됐는데, 도자기반 친구들은 취미로 도자기를 만드는 게 아니에요. 업체에서 제품을 납품받아 열쇠고리 같은 걸 만들어 돈을 벌면 복지관 직원으로 등록돼 최저임금을 받을 수 있거든요. 요즘은 이들이 만든 도자기를 브랜드화해 팔 수 있는 판로를 고민하고 있어요.”
실제 현영은 자신의 딸 다은이의 돌잔치 답례품으로 도자기반 친구들이 만든 제품을 선택했다. 도자기반 친구들과 함께 ‘답례품용 도자기’를 상품화했고 이제는 판로를 개척하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요즘 연예인 친구들이 돌잔치를 할 때면 어김없이 이 제품을 추천하고 있단다. 판매가 늘면 그만큼 복지관 혜택도 늘어난다.
“직접 청소를 도와주고, 옆에서 침을 닦아주고, 재활 치료를 돕는 것도 중요해요. 그런데 누군가는 이런 손길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야 하잖아요. 직접 봉사하는 것도 좋지만, 다른 사람에게 제가 손을 내밀어서 봉사의 소중함을 알려준다는 게 얼마나 좋아요.”
최근 보육원인 남산원을 찾았을 때도 그간 알고 지내던 베이비스튜디오 사진작가와 산부인과 의사를 대동했다. 사진작가는 아이들 사진을 찍어주었고, 산부인과 의사는 분유업체를 소개해 지원받을 수 있는 길을 열었다.

봉사도 중독된답니다
“연예인으로 1년에 3백60일을 일할 때 봉사를 처음 시작했어요. 그땐 자주 찾아가고 싶어도 몸이 힘들어서 행사 때 사회 보고, 사진 찍고, 기부하는 게 다였어요. 그런데 지금은 시간과 에너지가 있으니까 마음껏 할 수 있어 좋아요.”
모든 사람에게 하루 24시간이 주어지지만 그는 고등학교 방학 이후 한 번도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스스로 꾸려나가지 못했다고 했다. 대학생 때는 수업 외 시간은 아르바이트로 꽉꽉 채워져 있었고, 연예계 데뷔 이후에는 오직 ‘일’을 위해 하루하루를 보냈다. 다른 데 눈을 돌릴 수 있는 시간도, 몸을 움직일 에너지도 없었다.
“신인 때는 ‘방송에 출연해야지’, 패널이 된 후에는 ‘MC가 돼야지’, 나중에는 ‘더 큰 역을 맡아야지’ 하면서 앞으로만 나가려고 정신없이 달렸거든요. 그러다 정체기에 왔을 때도 주변 사람들이 워커홀릭이라고 할 만큼 일에만 매달려 살았던 것 같아요. 그때는 ‘오늘 방송이 참 잘됐다’거나 ‘오늘 좀 웃겼지?’ 싶을 때 성취감을 느꼈는데, 지금은 (방송 일을) 하고 싶어도 못하게 된 상황이니까 스스로 제 시간을 어떻게든 가치 있게 써보고 싶었어요.”

현영, 잠시 멈추고 바라본 세상




현영, 잠시 멈추고 바라본 세상


그는 지난해 여름, 딸 다은이를 낳고 곧 방송에 복귀했지만, 예기치 못한 상황으로 6개월 전부터 방송 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그 시간의 터널을 지나면서 오히려 작은 것에 행복을 느끼는 긍정적인 마음을 갖게 됐다고 한다.
“출산 전에 계약된 일들이 있어서 서둘러 방송에 복귀해야 했어요. 원치 않게 모유 수유도 빨리 끊어야 했고요. 그때는 아이를 떼어놓고 방송을 잘할 수 있을까만 걱정했는데, 모든 걸 내려놓고 보니까 소중한 것을 많이 놓치고 살았더라고요. 그 시간에 예정대로 일을 했다면 느끼지 못했을 것들을 경험하면서 무엇보다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된것 같아요.”
그래서 그는 한창 바쁠 때보다 지금이 더 행복하다고 했다. 애초 고민도, 걱정도 오래할 수 있는 성격이 못된단다.
“원래 한 가지 문제를 두고 깊게 고민하는 편이 아니에요. O형이라 그런가 봐요. 예전부터 포기할 거는 빨리 포기하고 인정할 건 빨리 인정하고, 선택한 것은 그대로 밀어붙이며 살아온 것 같아요. 그래서 크게 스트레스 받지 않았던 것 같고요.”
뜻하지 않게 찾아온 시간. 그는 그간 시간과 에너지가 부족해 열과 성의를 다하지 못했던 일을 본격적으로 해보고 싶었다.
“아이의 무의식에 어렸을 때 엄마가 보여줬던 모습이 남는대요. 저희 오빠(남편)도 어렸을 때 어머님께서 꽃동네 봉사를 다니시던 모습이 기억에 남아 봉사의 가치를 높이 생각하게 됐다고 하더라고요. 꼭 엄마가 아이와 모든 시간을 함께하는 것보다 아이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오빠도 적극적으로 응원해주면서 다은이에게도 좋은 영향을 줄 거라고 하고, 무엇보다 제가 행복하니까 이것만큼 좋은 게 없는 거죠.”
요즘 봉사 활동을 하는 연예인들이 많지만, 때로는 이미지 관리를 위해 연기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더욱이 공백 기간 중에 전해지는 봉사 활동 소식은 ‘컴백’으로 받아들여지기 십상이다. 현영은 이미 2009년에 ‘아너소사이어티’(고액 기부자 모임)의 회원이 됐지만 여전히 그를 불편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있다.
“다른 사람이 저의 봉사 의도를 오해할까 봐 걱정하고 해명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어요. 여기(봉사 활동)에 발을 담그지 않은 사람들이 보면 그렇게 느낄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한두 번 하고 마는 게 아니라, 그게 열 번이 되고 백 번 천 번이 되면 그렇게 생각하시지는 않을거라 믿어요. 그건 제 몫인 거고요.”
그래서 무슨 활동을 하고 있는지 기사에 조목조목 쓰겠다고 하니 “그냥 봉사 활동을 한다”라고만 해달란다.
“이렇게 기사가 나가면 여기저기에서 연락이 와요. ‘우리도 좀 도와달라’는 내용이죠. 연락을 주시면 일단 가겠다고 해요.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지는 한번 해보고 결정하겠다고 하고요. 그런데 해보니까 하나라도 지속적으로 봉사하는 게 정말 중요하더라고요.”
지난해 말 ‘소아암전문지원센터’ 건립을 위해 2천만원을 기부했고, 최근에는 ‘한국뇌성마비복지회’가 추진하는 오뚜기 캠프의 준비 과정에 참여하다가 행사 진행에 차질이 빚어지는 것을 보고 아예 1천만원을 후원하기도 했다. 한양대학교 봉사 동아리 학생들과 함께 장판·도배 공사도 돕고, 사단복지법인 남산원 바자회에 참여하거나 일일교사가 되기도 하고, 지난달 9월에는 MBC 해외봉사팀과 함께 방글라데시에도 다녀왔다. 자꾸 판이 커지는 느낌이라 버거울 것도 같았다.
“가끔 봉사자 중에 생업 놓으시고 봉사 활동만 하는 분들이 계세요. 봉사를 하다 보니까 그런 분들의 마음이 어떤지 아주 조금은 알겠더라고요. 이게 맞는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쉽게 말해 쇼핑중독이랑 증상이 비슷한 게 아닌가 싶어요. 이것도 좋아 보이고 저것도 좋아 보여서 자꾸 물건을 사잖아요. 봉사 활동을 하다 보면 내 몸은 버틸 수 없을 것만 같은데, 이걸 해보니까 저것도 하면 좋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오늘 이거 한 김에 저것도 하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 거죠. 그러다 보면 어느새 신청서를 쓰고 있더라고요(웃음).”
그의 시간을 소중하게 채워줬던 것은 봉사 활동뿐만은 아니었다. 연예 활동과 출산으로 미뤄뒀던 학업도 마무리 지었다. 최근 고려대 언론대학원 장학생이 됐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했더니 손을 절레절레 흔든다.
“학교에서 주는 장학금은 아니었고요. ‘한국연기실연자협회’에서 학기마다 공부하는 연예인과 연예인 자녀에게 주는 성적 장학금이었어요. 성적 우수자 10명에게 주는 건데, 저도 처음 받아보는 장학금이라 그걸 또 어디에 뜻 깊게 쓸까 고민하고 있어요.”
지난 학기 4과목 중 두 과목은 A+를, 다른 두 과목은 A를 받았다. 논문 쓸 자격을 얻으려면 전 학기 평점이 A를 넘어야 한다던데, 지금 현영은 논문을 쓰고 있으니 전 학기 평점 A를 넘긴 모양이다.
“결석 한 번만 해도 A+는 포기해야 해요. 과제물이나 발표에서 조금만 삐끗해도 안 되고요. 보통 A+를 받는 학생은 수강생 중 1명꼴이에요. 어릴 때 제가 왜 공부를 열심히 안 했는지 모르겠지만(웃음),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까 아무런 잡념 없이 공부할 수 있다는 게 너무 좋더라고요. 또 전공이 언론과 방송 분야여서 그동안 방송 활동을 하면서 보지 못했던 것이 보이더라고요. 공부가 어렵긴 한데, 평생 살아갈 날을 생각하면 이렇게 하나씩 풀어나가는 과정이 필요한 것 같아요.”
아이 키우랴, 봉사 활동하랴, 공부하랴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하겠다 싶었다. 더욱이 뭐 하나를 해도 ‘적당히’라는 게 없어 보이는 그다. 인터뷰 도중 ‘할 수 있는 만큼 해보자’ ‘오늘이 가면 다시는 안 올 것처럼 했다’ ‘한 곳에만 빠져들 수 있었다’ 등의 말을 자주 했는데, 이 말은 마치 그의 생활 태도를 종합적으로 표현하는 말처럼 들렸다.

현영, 잠시 멈추고 바라본 세상

현영은 지난여름, 다은이의 돌을 맞아 자신이 직접 작사한 노래를 돌잔치 현장에서 불렀다고 한다. 다은이는 엄마를 닮아 낭랑한 목소리를 가졌고, 얼굴은 아빠를 쏙 빼닮았다고.



엄마 닮아 낭랑한 목소리의 다은이
“봉사와 마찬가지로 엄마가 공부하는 모습을 아이한테 보여주면 그렇게 좋대요. 저는 친정어머니가 육아를 도와주고 계셔서 가능한 일이지만, 엄마가 아이에게만 너무 매달리면 엄마도 아이도 서로가 힘들어질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대신 아이의 생활도 지키고 제 생활도 지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고 있어요. 덕분인지 다은이는 의존적이지 않고 벌써 자신의 놀잇감을 스스로 찾아서 잘 놀아요.”
예를 들면 다은이의 문화센터 수업을 등록할 때 아예 같은 건물에 운동 시설이 있는 곳을 고르는 것. 다은이가 수업을 받는 동안 재빨리 운동을 하고 아이와 함께 집에 돌아온 뒤 두어 시간 신나게 놀아준 다음 아이가 잠든 틈을 타 과제를 하는 식의 일과를 꾸려나간다.
“다은이는 배고플 때 짜증이 나나 봐요(웃음). 짜증 낼 때 그걸 흉내 내면 아이가 재미있어하더라고요. 제가 원래 아이들을 좋아하는 편이에요. 어린아이들이랑 놀아주는 게 제 성향이랑 맞는 것 같아요. 아기들 장난감 가지고 노는 것도, 아기들 그림책 보는 것도 너무 재미있거든요.”
요즘 딸 바보 아빠가 대세인데, 남편의 딸 사랑에 질투하지는 않을까?
“웬걸요. 오빠가 오히려 다은이를 질투해요. 둘이 살 때는 제가 오빠랑 재미있게 놀아줬는데, 이제는 다은이랑만 놀아주니까요(웃음). 집에서 생활할 때도 좀 버라이어티한 면이 있어서 오빠 퇴근 시간에 맞춰 숨바꼭질을 한다거나 하면서 좀 재미있게 해줬거든요. 요즘에는 그런 게 없어서 좀 아쉬워하죠.”
지난해 3월 결혼해 결혼 2년 차에 접어든 부부에게는 둘만의 달콤함이 여전히 간절해 보였다. 외국계 금융 회사에 다니는 남편은 퇴근 후 운동, 운동 후 귀가, 귀가 후 다은이와 1시간 놀기를 꼭 지키는 멋진 사람이다. 가끔 친정어머니의 배려로 둘만의 시간을 가질 때는 최선을 다해 남편과 놀아준다는 그의 일상은 행복으로 가득차 보였다.
이렇듯 긍정적이고 행복한 삶을 설계해나가는 그의 모습을 언제쯤 방송에서 볼 수 있을까.
“언제 해야겠다 내지는 어떤 상황이 되면 한다는 계획은 아직 없어요. 그런 것은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야지 계획한다고 되는 일은 아닌 것 같아요. 저희 소속사도 치밀하게 전략을 세워서 하는 스타일은 아니거든요(웃음). 아무것도 없던 신인 때는 바닥부터 시작했는데요, 뭘. 지금의 저에게도 엄마, 이모, 새댁이나 며느리, 시누이로서 대중 옆에 허락된 자리가 있을 거라고 믿어요.”

현영, 잠시 멈추고 바라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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