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PEOPLE

페이스북 2인자 셰릴 샌드버그 메시지

“여성들이여, 기회가 오면 달려들어라”

글·진혜린 | 사진·이기욱 기자, 와이즈베리 제공

2013. 08. 23

페이스북 최고책임운영자(COO) 셰릴 샌드버그가 7월 한국을 방문했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 찾은 그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미래의 여성 대통령 후보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평범함과는 거리가 먼 그가 던지는 메시지는 흔한 성공담을 넘어서 보통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페이스북 2인자 셰릴 샌드버그 메시지


“내가 저녁 시간에 맞춰 갈 수 없었기 때문에 아이들이 내 사무실로 왔다. 페이스북은 놀라울 정도로 가족 지향적이어서 어린이 방문객들은 엔지니어들이 가져다주는 엄청난 레고 조각이며 수북한 캔디, 피자에 파묻혀 즐거워했다. 아이들이 동료들을 알아가고 동료들이 내 아이들을 알아가는 광경을 보면 행복하다. 마크(페이스북 CEO 마크 주커버그)는 내 아들에게 펜싱을 가르쳐서 두 사람은 가끔씩 포일로 만든 가짜 칼로 펜싱 연습을 한다.”

한 손에는 형광펜, 한 손에는 포스트잇을 들고 최근 발간된 셰릴 샌드버그(44)의 ‘LEAN IN(린인)’을 정독하다 이 구절에 도달했을 때, 가슴에 뭔가 덜컥 걸리는 듯했다. 아이를 키우며 일하는 여성, 혹은 그럴 계획을 가지고 있는 여성들이 꿈꾸는 모습이지만 애초에 실현 불가능한 일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하버드 경제학과 출신 셰릴 샌드버그는 세계은행 연구원을 거쳐 하버드 경영대학원 졸업 후 논문 지도교수로 인연을 맺은 래리 서머스 당시 재무부 차관의 특별비서로 일하다 서머스가 장관으로 임명되면서 비서실장으로 승진, 4년간 재무부에서 일했다. 2001년부터 2008년까지는 구글에서 글로벌 온라인 세일즈 부사장을 지냈으며, 2008년 페이스북의 COO가 됐다. 그는 당시 적자에 시달리던 페이스북을 입사 1년 반 만에 소셜 광고 서비스로 흑자 전환시키며 경영인으로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미국 경제 전문지 ‘포춘’이 매년 선정하는 ‘비즈니스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에 꾸준히 이름을 올리고 있으며, 지난해에는 미국 시사 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오르기도 했다.
‘이 정도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니 퇴근시간을 못 맞췄다고 직원의 자녀를 회사가 신경 써주는 시스템이 가능한 것이겠지’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셰릴 샌드버그는 “불가능한 일이 절대 아니다”라고 말한다.
“저도 출산 전까지는 살인적인 근무 시간을 소화했습니다. 아이를 낳은 후로는 퇴근 시간을 엄격하게 지키려고 노력했죠. 그게 미국 문화에서만 가능한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근무 조건이 보수적인 일본에서도 오후 7시 퇴근 시간을 정확히 지키자는 근무 방침을 내놓는 회사도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노력하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섹시 앤드 더 시티’의 샬롯을 닮은 부드러운 인상의 샌드버그는 낯선 한국 기자들의 질문마다 “Good Question”이라고 치켜세우며 얼굴에 미소를 띠었다. 여성 리더들이 모두 폭주 기관차처럼 저돌적이고 공격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을 거라는 선입견이 사르르 무너졌다. 남성들과의 경쟁에서 이긴 여성들이 꼭 ‘여전사’ 같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또한 ‘기가 세다’는 말을 셀 수 없이 많이 들었다고 했다. 일 잘하는 남성에게는 ‘능력자’라는 수식어가, 일 잘하는 여성에게는 ‘기센 여자’라는 수식어가 붙는 이 불편한 진실부터 바꾸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더 많은 여성이 리더가 되는 그날을 바란다. 하지만 그것은 여성의 사회 지배가 아닌 양성의 평등한 사회 지배를 뜻한다. 그것이 샌드버그가 꿈꾸는, 모든 인류가 행복해질 수 있는 미래다.

어린 시절 골목대장에 공부 잘 하는 아이
“성 고정관념을 바꾸는 것이 가장 큰 과제입니다. 남성이 리더십을 발휘하고 주도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는 긍정적인 데 반해, 여성에게는 ‘돌봄’과 ‘희생’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더욱이 능력 있는 여성들에게는 ‘나댄다’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이런 고정관념은 성장 과정에서 형성됩니다. 어린 시절부터 남녀가 똑같이 리더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칠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 자신이 ‘골목대장’이었다고 고백한다. 이는 여자아이가 ‘골목대장’ 노릇을 한다는 것에 주변 어른들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았다는 것을 내포하고 있다. 미국 워싱턴의 유대인 가정에서 3남매 중 첫째로 태어난 그에 대해 그의 동생들은 우스개로 자신들이 샌드버그의 ‘첫 부하직원’이었다고 말할 정도다. 두 동생 모두 의사가 될 만큼 똑똑했음에도 말이다. 반에서 1등을 도맡아 하던 그였지만 ‘반에서 가장 똑똑한 아이’라는 수식어도 달갑지 않았단다. ‘반에서 가장 똑똑한 아이’와는 아무도 졸업 무도회에 같이 가려고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고등학생 때 하원의원 윌리엄 리먼 밑에서 수행원으로 일할 당시, 하원의장 팁 오닐에게 ‘예쁘게 생겼군, 학교 치어리더니?’라고 오해받아 정색을 했던 적도 있었다.

페이스북 2인자 셰릴 샌드버그 메시지

샌드버그는 ‘린인’을 36개국에서 발간하면서 각 나라의 상황을 조사해 책에 반영했다. 한국을 찾아 7월 3일 연세대에서 한 강연은 젊은이들의 큰 호응을 이끌었다.





그간 그가 ‘여성의 이미지’와 싸워왔던 에피소드다. 골목대장에, 공부 잘하는 여자아이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 예쁜 여고생을 보며 ‘수행원’보다 ‘치어리더’를 먼저 떠올리는 고정관념. 하버드대 경제학과 재학 당시 성적우수자로 장학금을 받은 사실이 부정적인 이미지를 줄 것 같아 친구들에게 그 사실을 말하지 않은 적도 있었단다. 하지만 사회의 시선보다 인생의 한계를 결정한 것은 샌드버그 자신이었다.
대학 졸업 후 샌드버그는 해외특별연구원에 지원해보라는 논문 지도교수 래리 서머스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외국에 나가면 배우자를 만날 가능성이 희박해질 것 같아 결혼 적령기 남성이 가득한 워싱턴 D.C.에 터전을 잡았다. 자신의 바람대로 졸업 첫해 스물네 살의 나이로 결혼했지만 이듬해 이혼을 하고 말았다. 그는 이혼하고 나서 여러 해 동안 직장에서 아무리 큰 성과를 거둬도 ‘이혼’이라는 주홍 글씨 때문에 그 빛이 사그라진다고 느꼈다. 그 후 10년이 지나서야 ‘항상 좋은 결혼 생활’은 없다는 것을 깨닫고 지금의 남편인 데이브 골드버그와 재혼했다.
“여성들은 출산을 하면 경력이 단절됩니다. 복직 시점에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되죠. 여성들이 계속 일할 수 있으려면 처우가 더욱 좋아져야 합니다. 하지만 똑같은 일을 하는 남성보다 여성이 평균 39% 적은 임금을 받고 있습니다.”

여성이여, 내면의 두려움에서 벗어나자
그는 여성 리더에 대한 좋지 않은 시선, 일터에서의 불평등한 처우와 급여, 그리고 결혼을 하기도 전에 머리 싸매고 고민하게 되는 육아와 가정생활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여성이 사회에 전면으로 나서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그것은 여성 내면의 두려움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그 두려움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소한 것이라고 치부돼 왔지만, 그는 따뜻하고 냉철한 시선으로 여성의 두려움을 바라본다. 그리고 결정적인 문제라고 두둔하기까지 한다. 두려움을 인정하고 극복해나가자는 거다.
“여성이 직면한 숱한 장애물의 뿌리에는 두려움이 도사리고 있다. 다른 사람이 자신을 좋아하지 않으리라는 두려움, 잘못 선택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부정적 시선을 받게 되리라는 두려움, 비판의 대상이 되리라는 두려움,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등이 그것이다. 거기에 나쁜 어머니나 나쁜 아내나 나쁜 딸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의 삼위일체가 가세한다.”(‘린인’ 중)
샌드버그는 반문한다. ‘만약 두려움이 없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그는 두려움만 느끼지 않는다면 여성은 직장에서 업적을 달성하든 개인 생활에서 성공하든 혹은 둘 다 하든 목표를 자유롭게 선택해서 추구할 수 있다고 용기를 북돋아준다.
이러한 두려움은 여성이 사회적으로 이룬 성과를 ‘과소평가’하는 결과로 이어진다고 했다. 샌드버그는 “여성은 자신의 성공을 자신이 아닌 외부적 요인, 즉 운이 좋아서 혹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서라고 생각한다. 반면 남성은 자신의 자질과 기술 덕택이라고 말한다”며 “많은 성취를 이루고도 자신 없어하는 여성은 기회 앞에서도 머뭇거리다 놓치게 된다”고 꼬집어 말한다.
그가 말한 대로 리더의 자질이 충분한 여성들이 누군가가 자신의 능력을 알아봐주고 머리에 왕관을 씌워주기만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샌드버그는 자신이 이룬 성과 앞에,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 앞에 조금 더 당당해지라고 말한다. 자신을 위해 스스로 발 벗고 뛰어야 한다고 말이다.
물론 샌드버그 자신 또한 ‘자신감을 느끼는 경지에 도달하려면 아직도 멀었다’고 고백한다. 첫아이를 낳던 2004년 당시에는 구글의 주요 임원이었음에도 ‘자신의 자리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3개월의 출산 휴가조차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수시로 이메일을 확인했고 직원들을 불러 거실에서 회의를 열었다. 회의를 진행하는 동안 모유 수유를 하기도 할 만큼 회사 일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출산 휴가가 끝난 후에는 사무실 문을 걸어 잠그고 전화로 회의를 하면서 유축기를 사용해 모유를 짰다. 물론 회의 상대가 그 사실을 눈치 채지 못하도록 진땀을 흘려야 했다.

페이스북 2인자 셰릴 샌드버그 메시지


“자녀가 있는 직장 여성은 가족에 대한 책임이 없는 남녀 동료보다 업무에 전념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까봐 두려워하죠. 하지만 사무실에 머무는 시간보다 업무의 효율성을 더 중시한다면 근무 시간 자유 선택제 또한 긍정적일 수 있다고 봅니다.”
그는 실제로 ‘살인적인 근무 시간’을 출산 후 과감히 변경했다. 비록 변경된 근무 시간을 숨기기 위해 갖은 애를 써야 했지만 출근 오전 9시, 퇴근 오후 5시 30분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했다. 일찍 퇴근한 날에는 아이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고 흔들의자에 앉아 두 아이를 무릎에 앉혀놓고 책을 읽는 시간을 갖는다. 물론 아이들이 잠에 곯아떨어지기 무섭게 쏜살같이 달려가 컴퓨터 앞에 앉는다.
“직장 생활을 오래하면서 터득한 진리는 직장에 100% 헌신하는 것 외에 다른 일을 한다는 내색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죠. 부하 직원이든 누구든 내 성실성이나 직장에서의 헌신에 의문을 던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겁이 났습니다. 하지만 제 근무시간을 공개한 후에도 그런 사태는 벌어지지 않더군요. 저는 다른 직원들도 개인 사정에 맞추어 일정을 조절하라고 격려하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여성들이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해야 합니다. 우리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면 바꿀 수 없고, 일단 인식하고 나면 바꾸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페이스북 2인자 셰릴 샌드버그 메시지


워킹맘, 죄책감 갖지 마라
샌드버그는 국가적·기업적 정책 변화도 시급하지만 개인의 혹은 가정의 변화도 중요하다고 언급한다. 특히 워킹맘은 시간 관리만큼 죄책감 관리도 중요하다고 한다.
“지금도 아이들과 떨어져 있는 시간을 안타까워하고 아이들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하지 못하거나 밤을 함께 지내지 못하면 슬픕니다. 하지만 남편은 아이들과 함께 밤을 지내지 못한다고 슬퍼하기는커녕, 우리 부부가 함께 아이들과 저녁 식사를 하려고 노력한다는 것을 가상하게 생각합니다. 엄마는 죄책감을 품는 동시에 자신의 일이 가족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고민하지만 아버지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리고 백악관 프로젝트 설립자 마리 월슨의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여성을 내게 데려오라. 그러면 그가 남성임을 증명해 보이겠다’라는 말을 들어 육아에 대한 책임감으로 ‘자책하지 말자’고 말한다. 반대로 남성에게 ‘가정에 달려들라고 격려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가정 내에서의 업무 분담 구조가 아주 중요합니다. 이것을 실현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저희 부부도 처음부터 잘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첫아들을 출산한 직후에는 모든 육아를 제가 다 해야 했으니까요. 하지만 남편에게도 모든 것을 공동으로 해야 한다는 사실을 배워나가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남편이 가사와 육아를 많이 도와줄수록 아내가 행복해합니다. 모든 일을 도맡아 해야 할 때는 행복하지 않았지만 남편이 많이 도와주니 행복해졌습니다. 아내의 행복을 바라는 남편이라면 꽃다발보다 세탁기 한 번 돌려주시기 바랍니다.”
샌드버그의 연봉은 우리 돈으로 따지면 3백 50억원 정도 된다. 남편 또한 서베이 몽키의 CEO다. 슬하에 8세 아들과 6세 딸을 두었다. 모든 면에서 ‘성공’이라는 단어와 부합되는 셰릴 샌드버그의 삶은 그가 아무리 많은 어려움을 극복해냈다 하더라도 일반인의 삶과는 많이 다르다. 그래서 전 세계 여성들에게 ‘기회에 달려들어라(Lean in)’라고 독려하는 것은 위험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와 비슷한 비난을 많이 들었다고 샌드버그도 고백한 바 있다. 더욱이 자신이 근무했던 ‘구글’과 ‘페이스북’의 근무 환경이 탄력적이었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었다는 것도 인정했다.
하지만 ‘여성 고위 임원이 늘어날수록 더 많은 여성들이 이 같은 변화를 경험할 수 있다’는 그의 뜻에는 변함이 없다. 그것은 지금 당장의 결과보다 ‘우리 자녀세대에는 꼭 도래했으면 하는 세상’이라고 했다.
샌드버그는 책을 발간하고 강연회를 여는 데 그치지 않고 여성의 사회 진출을 돕기 위한 ‘린인 재단(www.leanin.org)’을 만들었다. 현재 한국을 포함한 48개국에서 린인 서클이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성별에 따라 미래가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꿈꾸는 것에 따라 미래가 정해지는 사회. 온 인류가 행복해질 수 있을 거라고 샌드버그가 믿는 그 미래가 머지않은 듯하다.

참고도서·‘LEAN IN’(와이즈베리)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