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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인생 사용설명서 열두 번째 | 우리시대 진정한 영웅

“운동 배운 사람마저 도망가면 많은 시민 다치겠다 생각했죠”

‘여의도 묻지마 칼부림’ 초기 진압한 명지대 이각수 교수

글 | 구희언 기자 사진 | 조영철 기자

2012. 10. 15

퇴근 시간 여의도 한복판에서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벌어진 칼부림 사건. 경찰보다 먼저 범행 현장을 목격하고 주저 없이 범인에게 돌려차기를 날린 용감한 사람이 있다. 이종격투기 세계 챔피언 출신 명지대 이각수 교수다.

“운동 배운 사람마저 도망가면 많은 시민 다치겠다 생각했죠”


“지인들과 식사하러 가던 중이었어요. 바로 뒤에서 비명이 들려 돌아봤는데 사람이 칼에 찔려 쓰러지더라고요. 그걸 보고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죠.”
8월 22일 오후 7시경 퇴근 시간이라 인파로 붐비던 서울 여의도 한복판. 붉게 상기된 얼굴의 김모(31) 씨가 전 직장 동료들에게 흉기를 휘둘렀다. 그 모습을 보고 모두 겁에 질려 도망가기 바쁠 때 그를 막아선 사람이 있었다. 세계 챔피언 출신 이각수(51) 교수(명지대 사회교육원 무예과)였다.
경찰은 사건 수사 결과를 브리핑하며 이례적으로 ‘여의도 칼부림 사건’을 막은 시민 이각수, 김정기, 계진성 씨의 실명을 거론하며 “피의자를 검거하는 데 큰 도움을 줬다”고 감사의 뜻을 표했다.
기자와 만난 날도 언론사 7군데와 인터뷰를 했다는 이 교수. 그의 휴대전화는 ‘용감한 시민 영웅’을 궁금해하는 사람들로 인해 전화 벨소리가 끊일 줄 몰랐다. 사건 당일 이 교수의 이름이 포털 사이트 검색어 1위를 한 것은 물론 그의 미니 홈피에는 존경과 감사를 표하는 방문객이 줄을 이었다.
“스타는 어울리지도 않아요. 제 본분이 있으니까요. 그저 무인으로서 할 일을 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처럼 운동한 사람마저 도망가면 많은 시민이 다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사건 당일 이 교수가 피해자들이 쓰러지는 모습을 보고 김씨에게 다가서자 김씨도 흉기를 들고 이 교수에게 다가왔다. 이 교수는 곧바로 김씨의 얼굴에 하이킥을 날렸으나 살짝 빗나갔다. 그사이 김씨는 쓰러져 있던 피해자를 한 차례 더 흉기로 찔렀다. 이어 이 교수가 다시 날린 돌려차기가 김씨의 가슴에 꽂혔다. 발차기에 맞은 김씨는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때 이 교수가 저지하지 않았다면 이미 칼에 찔린 피해자는 계속되는 칼부림에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이 교수는 김씨를 뒤쫓았다. 도망가면서도 김씨는 시민 2명을 잇따라 흉기로 찔렀다. 막다른 골목까지 그를 몰아넣는 데 성공한 이 교수. 청와대 경호실 출신의 김정기 씨 등 다른 시민도 함께 그를 포위했다. 코너에 몰린 김씨가 흉기를 자신의 목에 가져다 대며 “가까이 오면 자해하겠다”고 위협하는데 마침 경찰이 도착해 그를 검거할 수 있었다.
“가족들이 뉴스를 보고 걱정하지 않았느냐”고 묻자 이 교수는 “별로 놀라지 않더라”라고 무덤덤하게 답한 뒤 “처음 발차기가 빗맞지 않았다면 추가 피해가 없었을 텐데 아쉽다”라며 오히려 자책하는 모습이었다.

어려운 상황에서 피하지 않아야 진정한 무도인
이 교수는 1990년 이종격투기 라이트헤비급 세계 챔피언 출신으로, 현재 세계종합격투기연맹 사무총장으로 재직하며 명지대 무예과 합기도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합기도 8단·종합격투기 8단·검도 7단·태권도 5단 등 각종 무술이 28단이나 되는 고수 중에 고수다. 베트남에서 일행에게 운임을 바가지 씌우려다 뜻대로 되지 않자 덤벼든 사람들 다수와 싸워 이긴 그의 이야기는 KBS 프로그램 ‘스펀지’에 소개되기도 했다. 수년 전에는 바닷가에서 시비를 걸어오는 어깨들을 발차기 하나로 제압한 적이 있다. 정두홍 무술감독은 평소 인터뷰에서 이각수 관장에게 무술을 배워 이 길에 들어섰다고 밝혀온 바 있다.
명지대 무예과 합기도부 학생들에게 그가 제일 먼저 가르치는 것이 ‘솔선수범’이다.
“한창 자라날 때 몸을 만들어야 테크닉과 힘이 생깁니다. 사람 몸이 영원히 젊을 수 없거든요. 어떤 운동이라도 게을리하지 않고 꾸준히 하다 보면 경지에 도달하는데, 이번처럼 어려운 상황이 발생할 때 피하지 말고 솔선수범하라고, 남을 돕고 정의롭게 사는 데 힘을 쓰라고 이야기해줍니다. 그냥 남자가 아니니까요.”
이 교수는 앞으로도 이런 일이 생긴다면 몇 번이고 나설 거라고 했다. 생각보다 먼저 몸이 나선다는 거였다. 9월 5일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피의자 검거에 도움을 준 4명의 ‘용감한 시민’에게 감사장과 포상금을 지급했다. 이 교수는 “포상금은 다친 분들의 치료비로 쓸 계획”이라고 밝혔다.

“운동 배운 사람마저 도망가면 많은 시민 다치겠다 생각했죠”

세계 챔피언 이각수 교수의 전성기 때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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