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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사

LIFE IN HOKKAIDO

노천탕에 누워 오호츠크 해를 보다

나는야 홋카이도의 무인역장

글·사진 | 황경성 일본 나요로시립대학 보건복지학부 교수

2012. 05. 31

일본은 매년 4월 마지막 주와 5월 첫 주에 각종 기념일들이 이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일주일 전후로 쉬는 ‘황금 주간’을 맞이한다. 이번 기회에 홋카이도 북동쪽 오호츠크 해를 따라 100km가 넘는 거리를 달리는 가족여행을 떠났다.

노천탕에 누워 오호츠크 해를 보다

아바시리 국정공원 노토로 호수에서 바라본 일몰.



홋카이도는 아이누족이라는 원주민이 살던 땅으로 원래 지명은 에조치(蝦夷地)였으나 1869년 메이지 정부가 홋카이도(北海道)로 개명한 뒤 개척을 시작했다. 홋카이도의 면적은 8만3453km2로 일본 전 국토 면적의 22%를 차지하며 남한 면적의 약 85%에 해당한다. 이런 광활한 땅에 인구는 2011년 10월 현재 5백48만6천 명에 1km2당 인구 밀도는 66명(2010년 11월 기준 한국의 인구 밀도는 4백86명)에 불과하다.
일반적으로 홋카이도는 도남(道南), 도앙(道央), 도북(道北), 도동(道東) 네 지역으로 나눈다. 이번 여행 코스는 북동부 지역 오호츠크 해 연안으로 언뜻 스코틀랜드 해변을 연상시키는 특이하면서도 아름다운 해안이 많지만 일본 내에서도 그리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여행의 최종 목적지는 아바시리(網走) 시로 바다와 호수가 어우러지는 대자연과 감옥박물관 같은 볼거리를 갖추고 있다. 물론 홋카이도 여행의 즐거움은 목적지뿐만 아니라 도중에 우연히 발견할지도 모르는 아름다운 풍경에 대한 설렘도 빼놓을 수 없다.
우리 가족이 살고 있는 나요로 시에서 출발해 한 시간 반가량 달리면 가장 먼저 오호츠크 해를 볼 수 있는 오코페(興部) 마을에 이른다. ‘여성동아’ 3월호에 잠깐 소개했던 다이코쿠(大黑) 사장의 목장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 지역은 벼농사가 불가능해서 자연스럽게 낙농업이 발달했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완만한 능선을 따라 목초지가 한없이 이어지는 풍경이 영락없이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한 장면이다. 신록의 향기와 오호츠크 해에서 불어오는 봄바람을 맞으며 초원 위에서 마시는 커피 맛이 일품이다.

히노테미사키 호텔의 노천탕과 긴노후네의 스시
오호츠크 해 여행에는 두 가지 즐거움이 동반된다. 하나는 바다를 바라보며 느긋하게 노천욕을 즐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맛있는 스시에 대한 기대감이다. 오무초(雄武町)에 자리한 히노테미사키(日の出岬) 호텔은 오호츠크 해를 파노라마 사진처럼 내려다볼 있는 언덕에 자리 잡고 있어 노천탕으로는 최고의 전망을 자랑한다. 특히 2월을 전후로 북쪽에서 흘러내려온 유빙(流氷)이 이 일대에서 장관을 이룬다. 유빙은 중국 헤이룽 강(러시아 아무르 강)의 물이 아무르 만으로 흘러와 바닷물과 섞여 염도가 떨어지면서 강추위에 얼음 덩어리가 된 것이다. 유빙이 남하해 아바시리를 중심으로 한 오호츠크 해역을 떠다니는데 이 자체가 관광 상품이다. 곳곳에 유빙을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설치돼 있고 유빙 체험관을 비롯해 유빙 워크, 쇄빙선을 타고 유빙 사이를 헤쳐나가는 탐험 코스도 마련돼 있다. 안타깝게도 최근 온난화 영향으로 유빙의 양이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고 한다.
온천에서 심신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내고 눈도 마음도 정갈해지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허기를 채우러 들르는 곳이 오코페 근처 몬베쓰(紋別) 시에 있는 스시 전문점 ‘긴노후네(銀の船)’다. 1백20가지가 넘는 메뉴도 메뉴지만 무엇보다 스시 고유의 맛을 만끽할 수 있다. 푸근한 인상에 나이가 지긋한 점장 야마다 준(山田純) 씨가 정성스럽게 만들어주는 스시는 언제나 기대 이상의 만족과 행복을 느끼게 해준다. 우리 가족은 나요로 시에 정착한 뒤 주말을 이용해 히노테미사키에서 온천을 하고 긴노후네에서 스시를 즐기는 것이 필수 코스가 됐다. 이렇게 에너지를 충전한 다음 최종 목적지인 아바시리로 향했다.
일본에서 국정공원(國定公園)은 국립공원에 준하는 뛰어난 자연경관을 가진 지역을 가리키는 것으로, 아바시리 국정공원은 홋카이도 오호츠크 해에 면한 사로마(佐呂間), 노토로(能取), 아바시리(網走) 등 7개의 호수와 모래밭, 초원, 구릉지대 등을 끼고 있어 웅장한 자연경관으로 유명하다. 몬베쓰를 출발해 오호츠크 해를 왼쪽으로 끼고 20분쯤 달리자 유베쓰(湧別)라는 마을이 나오고 갑자기 수천 송이의 백합을 연상시키는 천남성 숲이 나타났다.
그리고 얼마쯤 더 달리자 바다인지 호수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드넓은 호수가 시야에 들어왔다. 안내판을 보고서야 홋카이도에서 가장 큰 사로마 호임을 알 수 있었다. ‘사로마’ 란 아이누어로 ‘갈대가 자라는 강’이라는 뜻. 홋카이도의 북동부에 동서로 길게 뻗어 있으며 오호츠크 해와 이 호수를 구분 짓는 모래톱의 길이가 25km나 된다. 호수 주변에 경승지가 널려 있는 데다 무엇보다 타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자생 식물의 보고인 원생화원(原生花園)을 이루고 있다. 원생화원이란 인위적으로 손을 댄 흔적 없이 자연 상태 그대로 아름다운 꽃이 피는 습지대나 초원지대를 일컫는 것으로 지역 생태를 한눈에 볼 수 있어 ‘자연 꽃밭’이라고도 한다. 사로마 호는 특히 남동쪽의 일몰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노천탕에 누워 오호츠크 해를 보다

1 히노테미사키 호텔 노천탕에서 볼 수 있는 오호츠크 해 전경. 2 몬베쓰 시에 있는 스시 전문점 ‘긴노후네’의 야마다 준 점장.



노천탕에 누워 오호츠크 해를 보다

1 아바시리 감옥박물관에 세워진 신출귀몰 탈옥의 명수 도라기치의 모형. 2 사로마 호수로 가는 길에 있는 유베쓰 마을의 천남성 숲. 3 주위 풍경이 아름다워 영화 촬영지로 자주 이용되는 기타하마 역.





현재 아바시리 시의 인구는 4만 명에 가깝지만 1백20여 년 전만 해도 인구가 7백 명도 안 되는 작은 마을에 불과했다. 아바시리가 세상에 알려진 배경에는 역사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1868년 2백60여 년간 계속되던 도쿠가와 막부가 막을 내리고 천황을 중심으로 한 메이지 정부가 탄생했다. 하지만 유신 초기 정치 혼란기에 크게 늘어난 국사범 등 9만 명에 이르는 죄수들을 수용할 감옥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한편 얼지 않는 항구를 찾아 러시아가 남하하는 것을 막기 위해 홋카이도 개발이 불가결했고 이때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죄수들의 활용이었다. 아바시리 감옥도 이때 지어졌다. 북쪽은 오호츠크 해, 남쪽은 아바시리 호, 서쪽으로는 노토로 호 등 3개의 수면을 끼고 있는 산허리에 감옥을 지은 것은 감시에 유리하고 도망가기 어렵다는 지형적인 이점을 고려한 것이지만, 지금처럼 평화롭고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 관광 명소가 될 줄은 누가 상상이나 했으랴.
당시 죄수들은 혹독한 추위와 힘겨운 노동, 식량 부족, 열악한 위생 환경에 시달리다 쓰러졌고 현장에서 매장됐다. 1천 명이 넘는 죄수와 간수들이 있었는데 그중 2백 명 이상이 희생됐다고 한다. 이때 죽은 사람들의 표식이 달린 사슬을 무덤 곁에 놓아서 누구라 할 것 없이 ‘사슬 무덤’이라 불렀다. 1950년대 중반 이들의 희생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고 연구자와 주민들에 의해 유해 발굴과 함께 추도비와 묘지가 만들어졌다. 또 이들이 홋카이도 개척에 기여한 것을 기리기 위해 5개의 부챗살 형태의 건물 등을 포함한 아바시리 감옥박물관이 세워졌다. 일본 내에서 가장 오래된 감옥이자 메이지 시대 중요 건축물로 인정받아 문화재로 지정된 것도 있다.
이 감옥과 관련해 ‘탈옥의 명수’로 알려진 고순쿠기 도라기치(五寸釘寅吉, 본명 니시카와 도라기치·西川寅吉 1854~1941)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는 14세 때 숙부의 원수를 갚기 위해 4명을 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 받으면서 감옥과 인연을 맺었다. 그 후 6번의 탈옥에 성공했고, 홍길동처럼 동서남북 신출귀몰하며 부자의 돈을 훔쳐 가난한 집이나 가장이 돈 벌러 외지에 나간 집에 몰래 던져 넣어 시민들의 우상이 되기도 했다. 결정적으로 두 번째 탈옥 시도에서 그의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그는 감옥 탈출에는 성공했으나 순찰 중이던 경관에게 발각돼 도망치다 5촌(약 15cm)짜리 못을 밟아 찔린 상태로 12km나 도망갔다고 한다. 결국 힘이 빠져 잡히고 말았지만 이 사건으로 그는 고순쿠기(五寸釘)라는 별명을 얻었다. 최근 아바시리 감옥박물관에는 도라기치가 빗자루를 들고 청소하는 모형이 세워져 관광객의 눈길을 끌고 있다.

고시미즈 원생화원과 기타하마 무인역
이번 여행의 피날레는 자연경관이 빼어나고 잘 보존된 샤리(斜里)의 고시미즈(小淸水) 원생화원과 해변의 무인역 기타하마(北浜) 역, 노토로미사키(能取岬) 등대 방문이었다. 원생화원은 오호츠크 해 연안을 시작으로 홋카이도 동북 지역에 많이 분포해 있는데 이 가운데에도 고시미즈 원생화원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오호츠크 해와 토후츠(濤沸) 호수 사이에 약 8km에 걸쳐 좁고 긴 모래언덕 위에 펼쳐진 자연 꽃밭인데, 신비스러운 검은 백합꽃의 개화를 신호로 6월부터 8월에 걸쳐 40종류에 달하는 각종 희귀한 꽃들이 군락을 이뤄 짙푸른 오호츠크 해를 배경으로 환상적인 풍경을 만든다.
고시미즈 원생화원의 길게 뻗은 기찻길을 따라 10여 분을 달리면 기타하마 역이 나온다. 아바시리 시내에서 오호츠크 해로 가는 가장 근접한 역인 데다 바닷가에 고즈넉하게 자리 잡은 역의 주변 풍경이 아름다워 영화 촬영지로 사랑 받고 있다. 아담한 역 대합실 벽면에는 여행자들이 적은 사랑 고백의 메모가 빽빽하게 붙어 있다. ‘내 평생 사랑할 연인을 만나 고백할 곳 여기 말고 어디 또 있으리.’ 아름다운 것을 보고 아름답다고 느끼는 그대의 마음이 아름답다고 했던가.
오호츠크 해는 찾아오는 이들의 마음을 사랑으로 충만하게 만드는 곳이다. 흥분에 가까운 감동을 가슴에 간직한 채 마지막 코스인 노토로미사키 등대를 찾아갔다. 이번 여행의 성공에 대한 축복이 거기에 있었다. 사랑하는 연인을 보듯 적절한 거리에서 떨어져 등대를 보노라면 그 자체로 한 장의 엽서를 꾸며 소중한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들 정도다. 봄볕이 따사로이 내리쬐는 오호츠크 해에 에메랄드 보석처럼 반짝거리는 어선들과 어우러진 이 등대를 어떤 화가가 완벽하게 그려낼 수 있을까. 누구도 그렇게 쉬이 범하거나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움, 자연에 대한 외경심을 선물처럼 품고 나요로로 돌아오는 길이 유달리 상큼하게 느껴졌다.

노천탕에 누워 오호츠크 해를 보다


홋카이도 닛싱 역의 명예역장 황경성은…
고교를 중퇴하고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에서는 체육교육을 전공했으나 복지에 뜻을 두고 일본 도쿄대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일본 나요로시립대학 보건복지학부 교수로 재직하며 지역 사회의 문화·예술 진흥에 힘을 쏟고 있다. kyungsungh@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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