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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사

이재현의 스포츠와 건강

균형을 잡아야 노화를 잡는다

놀이기구 울렁증은 균형 감각의 문제

글 | 이재현(운동생리학 박사) 사진 | 문형일 기자, 동아일보 사진DB파트

2012. 02. 07

여자들은 피부 노화를 막는 데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이지만 정작 서른 살 이후 노화가 성큼성큼 진행되는 것은 ‘균형 감각’이다. 그렇게 신나던 놀이기구가 두려워지고 울렁증이 생겼다면 균형 감각이 떨어지기 시작했다는 신호. 방치했다간 어느 날 넘어지고 다친다.

균형을 잡아야 노화를 잡는다


몇 년 전 대학생들과 함께 테마파크에 갔다. ‘롤러코스터와 바이킹은 기본으로 타고, 자이로드롭이라는 것도 스릴 있어 보이던데 타볼까? 다람쥐통은 아직도 있나?’ 어린 시절 추억을 떠올리니 약간 설레기까지 했다. 화창한 날씨 덕분에 기분은 더욱 고조됐다. 하지만 빙글빙글 돌며 진자 운동을 하는 기구를 탄 뒤 설렘은 울렁임으로 바뀌었고 놀이기구를 타겠다는 의욕은 바닥에 떨어졌다. 결국 나를 포함해 30대들은 20대와 따로 놀기로 했다. 우리가 선택한 것은 회전이 아니라 선 운동에 가까운 단순한 놀이기구와 손으로 뭔가를 맞히거나 공을 넣는 게임이었다.
TV의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의 한 장면. 실내 잠자리를 걸고 20대와 30대가 내기를 한다. 내기 방식은 코끼리 코를 하고 뱅뱅 돌다 공을 차는 것. 하지만 아슬아슬할 것 같았던 승부는 싱겁게 끝났다. 20대의 완승!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내 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나이가 들면 인체의 기능은 퇴화한다. 신체 기관과 체력의 종류마다 발육의 양상이 다르듯이, 노화의 양상도 요인에 따라 그 속도와 정도가 다르다. 여러 가지 체력 요인 중에서 기능 저하가 가장 빨리 찾아오는 것이 밸런스, 즉 평형성(균형 감각)이다. 평형성은 30대에 이미 20대와 유의한 차이를 보이고, 60대 전반에 이르면 최고 수준의 20% 정도로 떨어진다. 근력이 50세가 넘어 감소가 가속화되다 80세 때 20세의 60% 수준에 이르는 것과 비교하면, 평형성은 나이가 들면서 놀라울 만큼 빨리 무너진다.
평형성은 모든 스포츠의 기본으로 특히 체조나 피겨스케이팅 같은 종목에선 절대적으로 필요한 체력 요인이다. 또 자전거 타기와 같은 스포츠 활동뿐만 아니라 알게 모르게 일상생활의 모든 동작 수행에 주요한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계단 오르내리기, 높은 곳에 있는 물건 내리기, 물에 젖은 목욕탕에서 이동하기 등 사소한 동작에서도 균형 감각이 요구된다. 그런데 30대 이후 균형 감각이 급격히 저하되기 때문에 젊을 때는 전혀 의식하지 못했던 동작에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결국 걷기라는 가장 보편적인 동작을 수행할 때도 균형 감각이 떨어지고 있음을 의식하게 된다. 예전에 비해 지하철, 버스 등의 손잡이에 힘이 더 많이 들어가고 계단을 오르내릴 때 무의식적으로 손잡이에 손이 간다면 ‘아 이제는 균형을 잡을 때다’라고 생각해야 한다.

외발서기 하다 눈을 감으면 왜 중심을 못 잡을까

균형을 잡아야 노화를 잡는다

외발자전거 타기를 연습하는 어린이.



평형성은 감각 정보와 운동 실행의 통합을 통해 자세를 균형 있게 조절하는 능력으로, 평형성이 뛰어난 사람은 감각·운동 신경계 및 근골격계의 커뮤니케이션이 잘 이뤄진다고 보면 된다. 또 평형성은 시각 정보, 전정계, 고유수용성 감각(자신의 신체 위치, 자세, 평형 및 움직임에 대한 정보를 파악해 중추신경계로 전달하는 감각), 근피로도 등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흔히 외발서기로 균형을 잘 유지하던 사람도 눈을 감으라고 하면 금방 균형이 무너지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시각 정보가 차단되면 자신의 상대적 위치를 가늠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또 몸의 움직임이나 위치 정보를 뇌에 전달해 평형 감각을 담당하는 전정 기관도 안구 활동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 전정 기관에 이상이 생기거나 스트레스 및 잘못된 생활습관 등으로 인해 뇌의 혈액순환이 안 돼 어지럼증이 발생할 수 있는데 이 또한 평형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된다.
한편 우리 몸 구석구석 분포돼 있는 작은 센서들은 균형 유지에 중요한 기능을 한다. 이러한 센서들을 고유수용기라고 부른다. 이들은 각 관절의 위치라든가 근육의 길이가 늘어난 정도 혹은 장력 등에 관한 반응을 감지해 실시간으로 움직임을 조정하도록 도우며 특히 동적 평형성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다. 우리가 흔들리는 배 위에서 커피를 흘리지 않고 마실 수 있는 것도 이 센서들 덕분이다. 윗몸일으키기를 평평한 바닥이 아닌 흔들리는 짐볼 위에서 하면 이 센서들이 단련돼 몸에 대한 자각도(awareness)가 높아진다.



또 아무리 신경 기능이 뛰어나도 그 명령을 받아 움직임을 만들어내야 하는 근육에 힘이 부족하면 적절하게 균형을 유지할 수 없다. 근육량이 부족하거나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서 활성도가 떨어져 있거나 근육에 피로가 누적돼 있으면 적절한 타이밍에 적절한 동작을 만들어낼 수 없다. 특히 하체와 중심 근육(core muscle)의 힘을 유지해야 빠른 움직임 속에서도 균형을 찾고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다.
균형을 잡아야 노화를 잡는다


나이 들수록 중심을 잘 잡아야 하는 이유
균형이 깨지면 무너진다. 무너지면 넘어지고 다친다. 회복 능력이 좋을 때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중장년층은 한번 다치면 치명적이다. 나이가 들면서 시각, 전정 기관, 고유수용 감각의 기능이 상실돼 지각-반응 시간이 늘어나고 근육의 양은 줄어든다. 결과적으로 균형 능력이 현저히 감소하며 이로 인해 낙상이 다반사로 발생한다. 65세 이상 고령자 중 약 3분의 1이 1년 동안 한 번 이상 경험할 정도로 낙상은 흔하고, 여성이 남성에 비해 그 발생률이 높다고 보고됐다. 노인을 위한 낙상 예방 교실이 그렇게 많은 것은 낙상이 독립적인 삶에서 의존적인 삶으로 전환되는 시발점이 될 수 있고 일상 활동의 제한으로 체력 저하 및 심리적 위축을 가져오며 결국 삶의 질이 현격하게 떨어지는 원인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내 몸이 균형을 잘 잡고 있는가’는 낙상 예방을 위한 유용한 바로미터다. 균형 능력을 키우려면 평소 고유수용성 감각을 자극하는 운동을 하고 하체와 중심 근육을 단련시키며 각 관절의 유연성 특히 발목이 뻣뻣하게 굳지 않도록 스트레칭을 자주 해줘야 한다. 사이클링, 댄스, 태극권 등도 균형 감각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되는 활동이다. 나도 모르는 새 빠르게 무너지고 있는 밸런스. 이제 간단한 운동으로 제동을 걸어보자. 균형 감각을 지켜야 노화로부터 나의 평범한 일상을 지킬 수 있다.

균형을 잡아야 노화를 잡는다


균형을 잡아야 노화를 잡는다


이재현 박사는… 고려대학교 체육학과에서 운동생리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고, 고려대학교 스포츠과학연구소 선임연구원으로 있다가 캐나다 McMaster University, Medical Center 내 Children’s Exercise and Nutrition Center에서 박사후 연수 뒤, 하늘스포츠의학연구소 책임연구원으로 재직했다. 지금은 대한비만학회 운동분과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leejh1215@gmail.com

촬영협조 | finest private gym(02-529-7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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