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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이재만 변호사가 본 영화 ‘도가니’신드롬 & 법조인의 자화상

글 | 김명희 기자 사진 | 박해윤 기자

2011. 11. 16

영화 ‘도가니’로 인해 성폭행 범죄의 심각성과 장애인 인권 문제가 국민적 관심사로 떠올랐다. ‘무죄 제조기’로 알려진 이재만 변호사로부터 ‘도가니’에서 발생되는 문제점과 성범죄 사건의 대처 방법에 대해 들었다.

이재만 변호사가 본 영화 ‘도가니’신드롬 & 법조인의 자화상


6년 전 광주 인화학교에서 발생한 장애 아동 대상 성범죄에 바탕을 둔 영화 ‘도가니’는 개인의 양심이 흔들리고 ‘최소한의 도덕’인 법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할 때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를 보여준다. 영화에서 가해자들은 ‘전관예우’를 통해 사건을 최소화하려고 하고 피해자에 대한 협박과 증인 매수도 시도한다. 이 때문에 영화는 법조계에서도 논란이 됐고 자성의 목소리도 높다. 한국장애인협회 법률 고문을 역임했고 각종 TV 프로그램에 출연, 알기 쉬운 법률 조언을 해 ‘친절한 법 해설가’로 유명한 이재만 변호사는 “영화를 보면서 장애인이 범죄에 대처하는 능력이 미숙한 점을 감안하여 사회 각계각층, 특히 법에서 이에 대한 보완책 마련이 시급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도가니’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지만 영화의 극적 재미를 위해 사건을 다소 과장한 부분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가해자들의 처벌 수위. 영화에서 아이들을 학대하고 성폭행한 교장이 1심에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심에서 항소 기각 판결을 받은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 사건에서는 1심에서 징역 5년에 추징금 3백만원, 2심에서는 고소 취하로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끔찍한 범행임에도 가해자가 미성년자인 피해자의 가족과 합의를 했다는 이유로 법원으로부터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성 범죄는 ‘영혼 살인’, 처벌 수위 높아질 듯

▼ ‘도가니’ 사건 실제 가해자들이 솜방망이 처벌을 받은 것에 대해 국민들이 분노하고 있습니다.
“2005년 사건 당시는 미성년자에 대한 성범죄라고 하더라도 친고죄이기 때문에 피해자가 합의하고 1심 판결 선고 전까지만 고소 취하를 하면 아예 처벌을 할 수 없었지요. 2심 재판부는 피해자가 1심 판결 선고 후에 합의하고 고소 취하를 했다고 1심처럼 5년형을 선고하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고 판단할 수는 있지요. 그러나, 현재는 살인범의 경우 평균 형량이 징역 10년 정도이지만, 성범죄는 ‘영혼 살인’이라고 봐서 성폭행 사건의 경우 징역 25년형을 선고한 사례도 있어요.”

▼ 전관예우, 증인 매수 등 법조계 관행도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전관예우를 차단하기 위해 현직에서 퇴직하면 최종 근무지에서 1년 동안 변호사 업무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으로 변호사법을 개정했죠. 증인 매수는 재판부로 하여금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데 장애가 되므로 엄하게 처벌하고 있습니다.”



▼ 현행 15년으로 돼 있는 아동 대상 성범죄 공소 시효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공소 시효의 존치 이유는 첫째, 시간이 지나면 증거 확보가 어렵고 둘째, 공소 시효 기간 동안 도피했으면 그동안 창살 없는 감옥에 산 것과 마찬가지고 셋째, 국가의 태만(잡지 못한 것)을 개인에게 부담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동 성범죄의 경우는, 아이에게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는 점과 현대 과학의 발달로 범죄자의 DNA 분석이나 추출 등 증거의 장기적인 보존이 가능해져서 공소 시효를 폐지하거나 연장하자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 인화학교 장애 아동 성범죄나 조두순 사건 등 아동 성범죄와 불특정 다수를 향한 ‘묻지 마’ 살인 사건 등이 계속 발생하고 점점 잔혹해지는 것 같습니다.
“사이코패스 범죄 또는 불특정 다수를 향한 ‘묻지 마’ 범죄는 가정 내 폭력이나 도박 등 불행한 가족사, 극심한 빈부 격차에서 오는 괴리감, 범죄에 대한 죄의식의 결여, 타인의 고통에 대한 무관심, 게임에서의 잔혹성을 현실과 혼동한 경우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어요. 그래서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가정 내에서 도덕성과 준법정신을 일깨워줘야 합니다. 사회에서는 종교 활동, 생활 스포츠의 일상화, 인문학적인 소양 교육, 봉사 활동 등을 통해 타인과 소통하고 정을 나눌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중요해요.”

▼ 한국장애인협회 고문 변호사로도 활동하셨는데요, 느끼신 점이 있다면?
“‘도가니’에서 보다시피 장애인들은 성범죄에 많이 노출돼 있어요. 그들을 성범죄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대책이 마련돼야 합니다. 또 사회 구성원으로 독립해서 살아갈 수 있게끔 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지요. 저상버스가 도입되고 공공건물에 휠체어 진입로가 만들어지는 등 이동권 보장을 위한 물리적인 환경은 개선됐지만, 나아가 독립적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취업의 문턱도 낮아져야 합니다. 또 무엇보다 그들이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살면서 심리적으로 위축되지 않도록 편안한 시선으로 봐주시면 좋겠어요.”

이재만 변호사가 본 영화 ‘도가니’신드롬 & 법조인의 자화상

이재만 변호사는 조두순 사건, ‘도가니’ 파장 등으로 앞으로 성 범죄 처벌 수위가 높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이재만 변호사는 지난 5월 도미니크 스트로스 칸 전 IMF 총재가 호텔 청소부 강간 혐의로 고소당했을 때 한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칸이 사건을 의뢰한다면 맡아보고 싶다. 하지만 그 사람이 내가 여기 있는 것을 모를 테니까”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낸 적이 있다. 당시는 칸 총재의 유죄가 확실시되는 분위기였다. 그럼에도 그는 왜 변론을 맡을 수도 있다고 했던 걸까.
“사건 기록은 보지 못했지만 ‘여성이 뱉은 침에서 칸의 DNA가 검출될 가능성이 높다’는 보도가 있더군요. 그렇다면 오럴 섹스를 했다는 것이어서 강제성이 없다는 반증이죠. 그런 증거들을 종합해 분석하면 실체적인 진실에 접근할 수 있어요. 하지만 죄는 없다고 하더라도 공인으로서 도덕성에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은 셈이지요.”
이 변호사의 예측대로 칸 총재는 얼마 후 피해 여성의 진술이 신빙성이 없다는 이유로 공소 기각 판결을 받았다. 이 변호사와 인터뷰한 시기에 마침 유명 개그맨 K씨가 성폭행 혐의로 고소됐다. K씨는 혐의를 부인하며 “각서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의 추이를 예상해달라고 하자 이 변호사는 “각서가 있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다. 성관계를 가진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이를 덮기 위해 각서를 작성했거나, 그런 사실이 없다 해도 K씨가 연예인이기 때문에 이미지가 손상되는 것을 피하려고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합의했을 수도 있다. 둘 중 어느 이유든 합의를 했다면 처벌은 피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역시 이 변호사의 예상대로 K씨 사건은 피해자 측의 고소 취하로 마무리됐다. 이렇듯 사건 추이를 손바닥 들여다보듯 정확하게 짚어내는 비결이 궁금했다.

집요하게 진실 추구, 단서는 언제나 현장에
그는 어릴 때부터 애거사 크리스티의 추리 소설이나 ‘명탐정 홈스’ 같은 탐정 소설을 즐겨 읽었다고 한다.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 트릭을 피하는 기법 등을 연구하는 것이 너무 재미있었다는 것. 이런 독서 습관이 그에게 준 교훈이 하나 있다.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는 바로 현장에 있다는 사실이다.
“범죄자들은 사건 현장에 1백 가지 이상의 증거를 남긴대요. 천재적인 범죄자는 그 가운데 50가지 증거를 없앨 수 있다고 하는데 범죄자들은 천재도 아니잖아요(웃음).”

▼ 주병진씨 사건의 경우에는 1심에서 유죄 선고를 받은 사건을 2심부터 변론을 맡아 무죄 판결을 이끌어냈습니다. 어떻게 그가 무죄라는 걸 확신했나요?
“무죄의 경우, 특히 강간 사건은 피해자와 가해자 두 사람만이 진실을 알고 있으므로 범죄자의 말에 속아서 무죄 변론을 하여 승소를 이끌어내면 피해자는 두 번 피해를 입게 되므로 무죄 변론 시에는 확신이 있어야 변론을 할 수 있어요. 주병진씨 사건의 경우 무죄 확신은 있었지만 1심에서 주병진씨가 2억원에 합의했기 때문에 이를 해명하기 위해 상당히 고심했었죠. 사건 해결의 답은 수사 기록과 현장에 있습니다. 사건 발생 당시인 새벽 3시에 현장에 가서 사건을 재현하면서 수사 기록 속에 흩어져 있는 퍼즐을 맞추며 실체적 진실을 찾아냈죠.”

▼ 사건 이후 방송계를 떠났던 주병진씨가 10년 만에 컴백을 앞두고 있는데 감회가 새로울 듯합니다.
“‘개그계의 신사’라는 별명처럼 아주 멋있고 매력적인 사람이에요. 방송에 복귀한다고 하니, 최고의 MC가 될 것이라 확신하며 앞으로 좋은 배필을 만나서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좋은 일도 많이 하면서 사회에 기여할 것으로 봅니다.”

▼ 송일국, 주지훈 등 연예인 사건을 많이 맡아 해결하여 연예인들과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재판 진행 과정에서 연예인이 일반인과 다른 점이 있다면.
“연예인들은 외양은 화려하지만 내면은 외롭고 예민하고 감성이 풍부하지요. 감정의 기복이 심한 연예인은 악성 댓글을 접하거나 주연을 못 맡거나 하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기도 합니다. 타인의 주목을 받다 보니 자신의 감정을 자연스럽게 표출하지도 못하죠. 속으로만 삭이다 보면 우울해하고, 작은 사건도 언론에 크게 보도되다 보니 대인기피증이나 언론기피증도 심한 편입니다. 다른 한편으론 ‘걸어다니는 1인 기업’이라고 할 만큼 소득 규모도 커졌고, 한류 열풍으로 한국을 해외에 널리 알리는 문화 홍보대사의 역할도 하므로 공인으로서의 책임에 대한 기준도 높아졌죠. 그래서 사건 사고에 휘말리면 이미지가 실추돼 재기 불능 상태가 될 수 있으므로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대처해 리스크를 줄이는 리스크매니지먼트가 필요합니다.”

▼ 연세대에서 정치학을 전공했는데 사법고시를 보게 된 계기는?
“당시 사법고시는 오르기 어려운 높은 산 같은 존재여서 오히려 도전하고 싶더군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밖을 내다보니 마침 비가 오더라고요. 어떤 사람은 우산을 쓰고 가는데, 어떤 사람은 우산이 없어서 그냥 비를 맞고 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어요. 우리가 살아가는 데 법이란 눈이나 비를 막아주는 우산과 같지 않나, 나도 법을 공부해서 누군가의 우산이 돼주고 싶다,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막상 합격하고 보니 그곳은 더 이상 정상이 아니지만 정상에서의 시원한 바람과 휴식이 좋았던 생각이 듭니다.”

자신의 권리 찾고 범죄 예방하려면 주부와 어린이도 법 알아야

이재만 변호사가 본 영화 ‘도가니’신드롬 & 법조인의 자화상


사시에 합격하고 변호사가 된 이래 그는 초심을 잃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가 몸담은 법무법인 청파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한 명도 억울한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글귀가 눈에 띈다.
“법에 관한 격언 중에 ‘백 명의 범죄자를 놓치는 한이 있어도 한 명의 억울한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된다”라는 게 있어요.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이 범죄자로 몰리면 그 사람 인생이 망가지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집안도 풍비박산 나요. 그렇게 억울하게 누명을 쓰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는 겁니다.”

▼ 사건을 맡으면 부담이 클 것 같습니다.
“당사자들에게는 소송의 승패가 인생에서 중요한 사건이므로 당사자들만큼 증거나 쟁점 분석 등에 집중하게 되죠.”

▼ 요즘 법적 분쟁이 부쩍 늘어난 것 같습니다. 사회가 그만큼 각박해졌다는 이야기겠죠?
“경제 규모가 커지고 교육수준이 높아지면서 유산 상속이나 이혼사건, 기업 간·국가 간 분쟁도 늘고 있어요. 구조적으로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불신이 쌓이고 불만이 팽배해서 사소한 일도 참지 못하고 법적 분쟁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죠. 법에 판단을 맡기는 건 사건을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이지만 지나치게 사소한 사건까지 분쟁으로 이어지는 건 안타까운 일이죠.”

▼ 주부들이 법을 알아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여성들의 사회 참여가 많아지면서 이혼이나 각종 범죄에 노출되는 빈도가 높아졌어요. 주부들이 자신의 권리를 찾고 범죄의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예방법학적 관점에서 법 지식을 습득할 필요가 있어요. 여성이 행복해야 가족이 행복하고 가족이 행복해야 사회가 행복해지므로, 주부들은 행복하기 위해서도 법을 알아야 합니다.”

▼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나요?
“평정심을 유지하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여행이나 산책을 하고 영화를 보기도 하며 주말에는 산악자전거를 탑니다.”
이재만 변호사는 평소 봉사와 재능 나눔을 통해 사회를 밝게 바꾸는 데도 관심이 많다. 최근 청소년 법률 서적 ‘주니어 로스쿨’을 펴내고 인세 일부를 긴급 구호 단체 굿네이버스에 기부한 것도 그런 맥락. 굿네이버스 홍보위원인 그는 굿네이버스와 함께하는 희망네이버후드에서 활동하며 법조인, 연예인, 기업인, 문학인들과 함께 사회적 약자인 아동과 청소년들에게 재능·시간·물질 기부를 통하여 희망을 나눠주는 일을 계획하고 있다.

▼ 최근 어린이들에게 법에 대해 쉽게 알려주는 ‘주니어 로스쿨’이라는 책을 펴내셨는데.
“아이들에게 준법정신을 가르치는 건 질병에 걸리기 전에 예방주사를 맞히는 것과 같아요. 아이들이 법을 알고 지킨다면 우리 사회가 훨씬 더 밝고 안전해지겠죠. 아이들은 물론이고 어른들도 법을 제대로 알면 생활하면서 겪는 불편을 줄일 수 있고,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능력도 키울 수 있죠. 지구촌화된 현대에 글로벌 리더가 되려면 준법정신의 함양이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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