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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아름다운 콘서트

피아니스트 백건우 섬마을 콘서트에 가다

거장이 내민 치유의 손길~

글·권이지 사진·이기욱 기자, MBC제공

2011. 10. 21

북한에 의한 연평도 포격 사건이 발생한 지 어느덧 열 달. 서서히 기억 속에서 멀어지고 있지만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았다.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백건우와 영화배우 윤정희 부부가 연평도로 가 섬마을 사람들에게 들려준 치유의 선율을 지면에 담았다.

피아니스트 백건우 섬마을 콘서트에 가다


연평도 포격 사태가 일어났던 지난해 11월23일, 그날 기자는 해외에 있었다. 만리타향에서 접한 사건이라 더했을까? 언론에 보도된 민간인 사상자 이야기와 포격으로 페허가 된 연평도의 모습을 보며 두려움이 엄습했다. 하지만 걱정도 잠시. 시간이 흐르면서 사건에 대한 기억은 서서히 흩어지기 시작했다. 연평도라는 섬이 기억 저편으로 밀려났던 어느 날 갑작스럽게 거장의 콘서트 소식이 들려왔다. 콘서트 홀에서도 보기 힘든 피아니스트 백건우(65)가 외딴 섬에서 공연을 한다니, 그 모습이 어떨지 사뭇 궁금했다.
부산이 고향인 백건우는 열다섯 살 때 미국 유학을 떠나 현재는 프랑스를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다. 해외 생활을 한 지 어느덧 반 세기. 그는 언제부터인지 고향 땅의 바다와 섬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을 마음에 담기 시작했다. 2010년 늦은 가을, 아내인 영화배우 윤정희(67)와 의논 끝에 ‘섬마을 콘서트’를 열기로 결심했다.
가장 먼저 선정된 섬은 욕지도. 백건우는 결혼 직후 아내를 따라 영화 ‘화려한 외출’ 촬영지 경남 통영 욕지도를 방문한 뒤 섬의 매력에 푹 빠졌다고 한다. “우리나라 섬 중에 아름답지 않은 곳이 어디 있겠느냐?”며 아픔에 빠진 섬을 한번 찾아보자고 아내에게 제안했다. 인천광역시 강화군에 자리 잡은 연평도는 제1연평해전과 제2연평해전에 이어 지난해 11월 포격 사건까지 겪은, 분단의 상처를 온몸으로 겪은 곳. 전북 부안 위도는 1993년 서해훼리호 침몰 사건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으며, 핵 폐기장 건립을 둘러싸고 주민들 간의 반목이 심해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난 뒤 결정됐다.

평화로운 섬마을의 아물지 않은 상처
연평도에서 콘서트가 열리던 9월17일.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에서 하루에 한 번 운행하는 배를 타고 연평도로 출발했다. 연평도에 도착해서야 지금이 가을 꽃게철임을 알았다. 하필 연평도 주민들이 가장 바쁠 때라고 한다.
나무 사이로 좁게 뻗어 있는 길을 따라 공연장으로 걸어 올라가자마자 눈앞에 보인 것은 절벽 위 무대였다. 날이 좋으면 황해도까지 보일 정도로 탁 트인 절벽에 위치한 조기역사관. 이 기념관은 1960년대까지 앞바다에서 파시(바다 위 어시장)가 열릴 만큼 조기가 많이 잡혔던 것을 기념하여 세워졌다. 소연평도와 작은 섬 몇 개가 내려다보이는 무대는 섬들과 함께 거장의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천혜의 공연장이었다.
공연 시작 30분 전, 안내 데스크에서 나눠주는 무릎담요와 공연 안내책자를 받아든 사람들의 행렬이 차츰 늘어나기 시작했다. 섬 아이들이 제일 먼저 언덕 위로 뛰어올라가 피아노 주변 앞자리를 차지했다. “이 아저씨 유명한 사람이에요?” 하고 물어보는 아이, 피아노 옆에서 무대를 정리하는 스태프를 보며 괜히 “와 저기 백건우다, 백건우!” 하는 아이까지 마음껏 웃고 떠든다. 공연 자체가 무척 신기했던지 “와! 저렇게 큰 피아노는 처음 봐요! 저 피아노 이름이 뭐예요?” 하고 묻는 아이들도 있었다.
바람막이용 무릎담요를 뒤집어쓴 아이들은 공연장 이곳저곳을 “와아아아아!” 하며 요리조리 뛰어다녔다. 그런 아이들의 모습이 예뻐 사진에 담으려 하니 몇몇 아이들이 갑자기 담요로 얼굴을 가리고는 자리를 피했다. 초등학교 선생님에게 그 이유를 물으니 지난번 포격 사건 이후 기자들이 초등학교 주변에 진을 치고 사진을 찍는 바람에 아이들도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한다. “아이들이 적응할 때가 됐는데, 적응한 만큼 오히려 더 싫어하네요.” 아물지 않은 상처란 바로 이런 것이구나 싶다.
1년 중 가장 바쁜 시기임에도 잠시 일손을 놓고 나온 주민들과 연평도를 지키는 군인들, 콘서트를 보러 찾아온 외지인들까지 몰려들어 작은 공연장에 사람이 빼곡히 들어찼다. 절벽 위의 쌀쌀한 바람을 의식해 준비한 4백50장의 무릎담요는 모두 동이 났고 준비한 의자 3백50석도 부족해 공연장 주변 언덕 위까지 자리를 잡으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윤정희는 앞쪽에 마련된 귀빈석 대신 맨 뒷자리에 앉았다. 꼭 잡은 두 손에 긴장감이 흘렀다. 잠깐씩 구름 낀 하늘을 올려다보며 혹시나 비가 오지는 않을까 하고 걱정하는 눈치였다.
어떠한 오프닝 사인도, 멘트도 없이 백건우가 역사관의 문을 열고 등장했다. 거장의 등장은 소란스럽던 장내를 일순간에 잠재웠다. 야외 공연이라 객석의 ‘암전’도 없었지만 모두가 자연스레 숨을 죽였다. 의자에 앉기 전 객석을 한 바퀴 빙 둘러본 그는 마지막으로 피아노 주변으로 다가와 속닥이는 섬 아이들을 할아버지의 엄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조용히 해달라는 의미였다. 아이들은 순식간에 입을 다물었고 그제야 그는 피아노 건반에 손을 올리며 음악을 통해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네기 시작했다.

피아니스트 백건우 섬마을 콘서트에 가다

1 두 섬 사이로 떠오르는 연평도의 아침 해. 2 백건우의 인삿말이 적힌 공연 안내 플래카드가 섬 곳곳에 걸려 있다. 3 일몰과 함께 떠오르는 풍부한 음의 향연에 모든 사람들이 빠져들었다.



손끝은 노가 되어 바람결 따라 흐르고
쇼팽의 ‘뱃노래’를 시작으로 연주가 시작됐다. 바람이 쉴 새 없이 여러 방향에서 불어오는 절벽의 특성상 바람을 타고 소리가 흩어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잠시, 바람과 함께 맑고 영롱한 피아노 소리가 순식간에 공연장 구석구석으로 퍼져나갔다. 다음 곡인 리스트의 ‘물 위를 걷는 성 프랑수아’가 연주되자 건반을 위아래로 오르락내리락하는 음에서 쉴 새 없이 절벽 아래에서 움직이는 파도가 느껴졌다.
다음 차례는 드뷔시의 ‘기쁨의 섬’. 드뷔시가 애인과 함께 바캉스를 떠난 섬에서 작곡했다는 후일담으로 더 유명한 이 곡은 백건우의 메시지 그 자체였다. 연평도와 사랑에 빠질 수 있어 행복하다고, 공연에 찾아와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가 전해졌다. 거장의 손끝에서 펼쳐지는 다채로운 음들이 청중들을 정신없이 휘어잡기 시작했다. 그는 공연 전날 밤 10시 반까지 바람소리를 확인하며 혹여나 소리가 흩어지지 않을까 하나씩 소리를 확인했다고 했다. 그 덕분일까? 바다와 하늘이 공존하는 이곳을 채우는 아름다운 피아노 소리에 사람들은 나직히 감탄사를 내뱉었다.
어둑어둑해지는 하늘은 어느덧 사람들을 마지막 곡으로 이끌었다. 흐린 날씨 탓에 달을 찾을 수 없었지만,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14번 ‘월광’이 시작되는 순간 구름에 가려진 달은 어느새 섬 사람들의 눈앞에 나타났다. 연주가 시작되자마자 절벽 위아래에서 바람이 세차게 불어왔다. 그러나 바람소리가 곡을 방해하기는커녕 오히려 피아노와 협주를 시작했다. 세찬 바람에 놀랐는지 공연장 한쪽에선 아이의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윤정희는 갑작스런 아이의 울음소리에 놀란 관계자들을 다독이며 말했다.
“쉿, 조용히 해요. 바람소리와 아이가 우는 소리가 다 오늘만의 콘서트를 만드는 거야. 이 얼마나 아름다워요. 가만히 지켜봐요.”
거장의 피아노 선율과 바람소리, 아이들의 웃음소리, 갓난아이의 울음소리가 어우러진, 보통의 콘서트홀에서는 볼 수 없는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공연이 끝나자 기립박수와 환호, 앙코르 요청이 쏟아졌다. 백건우는 세 번이나 다시 나와 관객들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넨 뒤 아무런 말없이 피아노 앞에 앉아 건반에 손을 올렸다. 만나서 정말 반가웠다고, 환호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뜻이었을까? 앙코르 곡인 리스트 ‘잊혀진 왈츠’는 짧지만 긴 여운을 남겼다. ‘잊혀진 왈츠’의 끝나지 않을 듯 매듭짓는 곡의 마지막 음은 한용운 시인의 ‘님의 침묵’ 한 구절을 떠오르게 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앙코르 곡이 끝난 뒤 마지막으로 무대 인사를 하는 백건우에게 한 여중생이 수줍게 다가가 꽃다발을 안겼다. 꽃집도 없는 섬에서 어떻게 구했을까 의아해했는데 자세히 보니 종이로 접어 만든 것이었다. 한 손에는 이 꽃다발을, 다른 한 손은 남편의 손을 꼭 잡고 주민과의 만남에 참석한 윤정희는 “꽃이 너무 예쁘다”는 말과 함께 “프랑스 파리의 집으로 이 꽃다발을 꼭 가져가겠다”는 말을 전했다.



피아니스트 백건우 섬마을 콘서트에 가다

1 두 손으로 황홀한 음을 연주하는 피아니스트 백건우. 2 공연이 끝나자 환한 얼굴로 주민들에게 인사를 건넨다. 3 남편의 공연을 지켜보는 윤정희. 4 백건우·윤정희 부부가 섬 주민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아름다운 모험은 계속된다

피아니스트 백건우 섬마을 콘서트에 가다


공연장 근처 마을회관에서는 주민들이 준비한 음식과 함께 작은 뒤풀이가 열렸다. 주민들이 백건우의 공연에 감사하며 벌인 잔치로 마을 사람들과 막걸리 한잔 나누고 싶다던 소원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막걸리를 채운 잔을 손에 들고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공연의 성공을 축하했다.
마을 주민들은 지난 아픔을 아름다운 음악으로 치유받았다며, 앞으로 더 힘차게 살아가겠다는 마음을 전하자 백건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연평도 주민들이 아름다운 음악을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고 성공적인 공연을 도와주신 것에 감사하다”고 대답했다. 쌀쌀한 밤 날씨에도 사람들의 따뜻한 웃음소리가 섬 이곳저곳으로 퍼져나갔다.
다음 섬마을 콘서트에 대한 물음에 백건우는 “연주하는 곡은 같지만 다른 섬에서는 연평도와는 또 다른 음악이 만들어질 것이다. 연평도에는 연평도만의 소리가, 위도(9월21일)에는 위도만의 소리가, 욕지도(9월24일)에는 욕지도만의 소리가 있다. 다른 섬에서는 어떤 소리가 날지 정말 궁금하다”고 기대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다 그가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이 어린아이처럼 해맑은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공연 시작하기 전에 무대에서 쭉 객석을 돌아보는데 갓난아이가 보였어요. 그런데 그 아이가 나를 보고 갑자기 방긋방긋 웃는 거예요. 한 곡을 마치고 바라봤는데 또 웃어요. 그렇게 웃는 아이의 얼굴을 보니 온갖 걱정이 싹 사라졌어요. 그때 이 공연이 성공적이구나라고 생각했지요.”
거장에게도 이번 공연은 새로운 도전의 연속이었다.
“이번 공연을 기획할 때 특별한 연출이나 효과, 안내 방송과 시작을 알리는 어떠한 음악도 모두 필요 없다고 했어요.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 없는 공연을 한 거죠. 저에게는 모험이었지요. 아름다운 모험.”
마지막 행사까지 모두 마친 뒤 아내의 손을 꼭 잡고 내려가는 그의 뒷모습은 어떠한 평지풍파에도 굴하지 않고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는 섬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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