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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from Beijing | 한석준의 유학 에세이

백두산 천지에 오르다

글&사진·한석준

2011. 10. 04

백두산 천지에 오르다

1 옌볜 투먼시에 있는 중국과 북한의 국경선. 뒤로 몇 발짝만 더 가면 북한 땅이다. 2 백두산 정상 천지에서. 일년 중 천지를 온전히 감상할 수 있는 날은 열 손가락에 꼽힌다. 3 윤동주 시인이 다녔던 룽징시 명성교회.



한국에도 중국 조선족자치주 옌볜 출신 동포들이 많이 살고 있지만, 한국 사람들은 여전히 옌볜에 대해 백두산이 있는 곳이라는 것 외에 아는 것도 없고 관심도 없다. 지난 9월 초 옌볜을 여행하면서 나 역시 백두산 천지나 둘러볼 요량이었다.
그러나 막상 옌볜에 가보니 항일 독립운동의 근거지로, 독립군의 기상이 지금도 느껴지는 살아 있는 역사 박물관 같은 곳이었다. 김좌진 장군의 청산리대첩은 말할 것도 없고, 교과서에 등장하지 않는 수많은 크고 작은 항일 운동이 이곳에서 전개됐다. 조선족 동포들은 조상들의 항일운동 역사를 무척 자랑스러워하고 있었으며 관련 유적을 보존하는 데도 열심이었다. 중국에 유학하면서 중국 정부가 여러 소수 민족 가운데 특히 조선족에게 관대하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이는 바로 우리 선조들의 항일 투쟁의 결과물이라고 한다. 중국 정부 역시 항일 투쟁을 함께했던 우리 선조들의 희생을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살아 있는 역사 교과서 옌볜과 천지
그럼에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옌볜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윤동주 시인의 기념관이 있는 룽징(용정)시 대성학교에서 본 항일운동 자료에 따르면, 이곳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의 상당수가 광복 후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노선을 택하면서 그들의 행적이 알려지는 데 한계가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한다. 독립을 위해 치열하게 살았지만 이후 선택한 이념 때문에 제대로 평가 받을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룽징을 둘러본 후 백두산에 올랐다. 백두산을 오르는 방법은 동파, 서파, 남파, 북파 네 가지 코스가 있는데 동파는 북한에서 출발하는 여정이다. 나는 나머지 세 갈래 길 중에서 천지 바로 앞까지 자동차로 갈 수 있는 북파 코스를 택했다. 등산이 아니라 산책에 가까웠다. 차에서 내려 10분 정도 걸어가자 눈앞에 장대한 천지가 펼쳐졌다. 그곳에 올라보니 백두산에 가도 천지 구경하기는 어렵다는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천지는 구름 위에 있는 것도, 구름 아래 있는 것도 아니라 바로 옆에 구름을 끼고 있었다. 구름이 조금만 움직여도 천지의 본 모습을 보기 힘들었다. 일 년 중 천지를 온전히 감상할 수 있는 날은 열흘 안팎이라고 한다. 고맙고 다행스럽게도 천지는 나에게 그 행운을 허락했다. 천지 앞에 서니 일단 그 장엄한 풍경에 압도됐다. 면적이 9.17㎢ 라고 하는데, 카메라로 담을 수 없을 정도로 넓고 깊었다.

백두산 천지에 오르다


천지는 다른 나라 사람들에겐 그저 크고 아름다운 산정 호수에 불과할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민족의 발원지이자 곳곳에 항일 투쟁의 역사가 서려 있는 뜻 깊은 곳이다. 하루하루 힘겨운 삶을 잠시 내려놓고 독립운동에 몸 바쳤던 조상의 기상을 되새겨본다. 그 후손들인 조선족 동포들이 제대로 평가받는 날이 오면 좋겠다.



한석준 아나운서는… 2003년 KBS에 입사. 2008 베이징올림픽 당시 현지 경기 중계를 하며 중국에 관심을 가진 후 기회를 엿보다 올 2월 중국 칭화대로 연수를 떠났다. 직장인에서 학생으로 돌아간 그는 중국에서의 유학생활 중 느낀 점을 매달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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