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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산골 예절학교

회초리 든 김봉곤 훈장과 50명의 악동들 영화 찍고 울다

“효와 같은 가치교육을 하고 예절로써 태도교육을 시켜야 한다”

글·김현미 기자 사진·박해윤 기자

2011. 09. 06

‘청학동 훈장’ 김봉곤씨가 강원도 철원 한민족예절학교를 배경으로 영화를 찍었다. 지난겨울 예절학교에 입교한 50명의 아이들과 함께 김 훈장이 주연·연출·편집까지 1인3역으로 만든 이 영화가 정식 개봉도 하기 전 시사회를 통해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까닭은?

회초리 든 김봉곤 훈장과 50명의 악동들 영화 찍고 울다


진퇴양난
“예, 민족학당입니다. 예, 알겠습니다.”
부모들이 뿔났다. “학교 간다고 거짓말하고 안 가고, 학원 간다고 거짓말하고 안 가고, PC방에 가 있고….”(한 아버지의 하소연) 하기 싫으면 요리조리 빠져나가고, 툭하면 말대꾸하고, 버르장머리 없는 아이들을 다잡기로 결심했다. 방학을 맞아 부모들이 SOS를 보낸 곳은 강원도 철원군 근남면 산골짜기에 자리 잡고 있는 한민족예절학교. ‘청학동 댕기 머리 총각’으로 유명한 김봉곤 훈장(44)이 2005년에 새 둥지를 튼 곳이다. 민족학당은 예절학교 16채의 건물 중 주요 강의가 진행되는 대강당의 명칭이기도 하다.
“여기는 예절학교인데….” “예절학교는 왜? 방학인데… 엄마 또 거짓말했지!” 캠프에 보내준다더니 예절학교는 웬말. 그제야 속았다는 것을 알고 아이는 반항을 해보지만 이미 차는 첩첩산중에 접어들었다.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의 좁은 자갈길을 지나 개울을 건너자 산중턱에 16채의 기와집이 당당하게 서 있다. “헐, 졸라 크다.” 비명에 가까운 반응. 하지만 그 위용에 압도된 아이는 이내 입을 다문다. 1만6000여㎡(약 5천 평)에 이르는 예절학교를 해발 1000m가 넘는 복주산과 복계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고, 발아래에는 한겨울에도 마르지 않는 개울이 양쪽으로 흐른다. 천하의 명당이요, 천혜의 요새다. 이곳에서 2주 동안 진행되는 ‘인간 만들기’ 프로젝트에 참여한 50명의 악동들이 속속 예절학교에 입교한다. “○○아, 인간 되래이. 안 되면 못 돌아온데이.”(한 어머니의 당부)

유아독존
“자식을 하나씩만 낳아서 불면 날아갈까 쥐면 부서질까 하고 키우니 요즘 아이들이 부모를 얼마나 우습게 압니까. 유아독존(唯我獨尊)이 아니라 유아독존(幼兒獨尊)이요, ‘싫으면 안 해도 돼’ 하는 식으로 놓아 기르니 초등학교 3학년 아이가 ‘자유를 달라’고 합니다. ‘나 건들지 마’란 뜻이죠. 효(孝)란 글자를 보면 부모 밑에 자식이 있는데, 요즘은 자식이 부모의 머리 꼭대기에 올라앉아 있어요.”
김봉곤 훈장은 이를 가리켜 상전벽해(桑田碧海)라고 했다. 뽕나무 밭이 푸른 바다가 된다는 것은 지구의 대 지각변동을 의미하는데, 요사이 이런 일이 많이 벌어지고 있단다. 제자가 스승을 무시하고 자식이 부모를 막 대하니 세상이 거꾸로 됐다는 말이다. 성적지상주의, 물질지상주에 밀려 효, 예절, 인성은 곰팡내 나는 개념이 됐다. 그럴수록 “효와 같은 가치교육을 하고 예절로써 태도교육을 시켜야 한다”는 게 김 훈장의 철학이다. 또 학교 체벌금지 시대에 그는 오히려 회초리를 들었다.
“회초리는 인류 최초의 교육적 도구입니다. 돌아올 회(回), 처음 초(初), 이치 리(理). 초심으로 돌아가라는 말이죠. 인간이 본연의 모습을 잃었을 때 이 회초리를 드는 것입니다. 회초리에는 두 가지가 있어요. 무형의 회초리는 말로써 상대방을 따끔하게 혼내 깨우쳐주는 것이고, 그렇게 말로 해도 해도 안 되면 가슴 아프지만 이 나무 막대기를 들어서 그 병을 고치기 위해 초심으로 돌아가라는 간절한 염원을 담아 때리는 겁니다.”
예절학교 입교식 때 자녀가 각자 이름이 적힌 회초리를 부모에게 드리고, 부모가 그것을 다시 자녀에게 건네주는 회초리 증정식이 열린다. 아이들은 이 ‘공인된 회초리’를 무릎 꿇고 훈장께 올린다. 이쯤 되면 천방지축인 아이들도 왜 여기까지 왔는지 자신이 더 잘 안다. “젓가락질을 잘 못해서 제대로 배우라고….” “부모님께 말대꾸한다고….” “동생과 싸워서….” “인간이 돼 오라고….” 허물을 고백하는 표정은 자못 진지하다.
“너희들은 큰 병이 있다. 아무 데서나 떠들고 아무렇게나 행동하고 정신이 하나도 없다. 2주 동안 잘못된 습관과 태도를 고쳐야 한다. 그 병 못 고치면 집에 못 간다~.” 훈장의 엄포가 슬슬 현실로 다가온다.

회초리 든 김봉곤 훈장과 50명의 악동들 영화 찍고 울다

8월 여름방학 ‘선비체험’에 참가한 학생들과 함께한 김봉곤 훈장.



빙동삼척
“흔히 요즘 아이들은 말을 안 듣는다고 해요. 청각장애인도 아닌데 왜 말을 안 들을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죠. 도무지 받아들일 자세가 안 돼 있는 겁니다. 연애할 때 어떻게 하면 로맨틱하게 할까 온갖 궁리를 하고 분위기를 잡아서 사랑을 고백하지 않습니까. 교육도 그렇게 해야 해요. 계기를 만나면 180도 달라집니다. 다섯 살, 여섯 살짜리도 눈물을 흘리고 ‘아~’ 하고 가슴을 치고 땅을 치며 부모님께 잘못했다고 반성합니다. 효, 예절 이런 단어는 이미 4천 년 전부터 우리 안에 저장돼 있는데 휴면상태인 거죠. 이것을 툭툭 쳐서 잠에서 깨우는 것이 교육입니다. 어떻게 하느냐. 저는 전쟁을 치른다고 말합니다. 융단폭격, 집중사격을 해야죠.”(김봉곤)
아이들이 예절학교에서 제일 먼저 배우는 것이 인사법이다. “인사는 나를 낮추고 상대를 존중하는 것이기에 예를 갖추고 허리를 굽혀야 한다”는 훈장님 말씀에 따라 아이들은 어른을 만나면 예외 없이 공수(拱手: 두 손을 앞으로 모아 포개는 것)를 하고 90도로 허리를 굽히며 큰 소리로 “안녕하십니까”라고 한다. 고개를 외로 꼬며 하는 둥 마는 둥 하는 인사와는 차원이 다르다. 웃어른께 하는 상읍례, 남자의 큰절인 계수배, 여자의 큰절인 숙배도 제대로 배운다.
“아이들이 하도 인사를 안 하기에 같은 사람을 열 번을 만나도 그때마다 인사를 하라고 했습니다. 옛말에 ‘석 자 얼음이 하루 추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氷凍三尺非一日之寒)’라고 했어요. 무슨 일이 이루어지려면 시간이 걸린다는 뜻이죠. 가르치는 때도 중요합니다. 송아지가 젖을 떼면 코뚜레를 하고 길을 들입니다. 그런데 다 큰 소에게 코뚜레를 하려고 하면 엄청나게 반항을 해요. 근본을 건강하게 하는 인성교육의 적기는 15세 이전이에요. 저는 이때 3개월 교육이 여든까지 간다고 말합니다.”
태도 공부의 핵심은 아홉 가지 태도를 가리키는 구용(九容). 발걸음은 진중하게 하고, 쓸데없이 손을 놀리지 말고, 눈은 단정하게 정면을 바라보고, 입은 조용히 다물고, 나직하게 말하라, 머리는 곧게 들고, 몸을 비틀지 마라…. 어느새 목이 흔들흔들 조는 녀석이 눈에 띈다. 훈장이 묻는다. “네가 졸았느냐?” “눈 감고 있었는데요.” 거짓말처럼 나쁜 게 없는 법이라며 회초리 두 대.
밥 먹는 예절에서는 남기지 않고 먹는 것을 강조한다. 밥이며 반찬이며 지저분하게 남긴 아이 곁에 다가가 훈장이 묻는다. “왜 다 안 먹느냐?” “배가 불러서요.” “이것 다 합치면 몇 숟가락이나 나올 것 같으냐.” “세 숟가락이요.” “그래 한번 해보자.” 남은 밥과 반찬과 국물을 모으니 한 숟가락이 채 안 된다. “이 정도를 배가 불러서 못 먹느냐.” “버리고 싶어요.” “정말 버리고 싶으냐. 그래 버리자.” 자신의 숟가락이 훈장 입으로 쏙 들어가자 아이의 표정이 멍해진다. “질리고 맛없어서 못 먹겠다”며 버티다 끝내 토하는 아이, 먹지는 않고 계속 울기만 하는 아이, 식당도 전쟁터나 다름없다. 그 아우성 속에서 김 훈장은 느긋하게 숟가락을 든다. 3일만 지나면 이 아이들이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싹싹 비운다는 것을 알기에.

회초리 든 김봉곤 훈장과 50명의 악동들 영화 찍고 울다


일촉즉발
남학생들 방이 시끄럽다. 두 아이가 치고받다 안경이 날아가고 코피가 터졌다. “심심하고 짜증이 나서 그랬다”는 녀석과 “살짝 밀었더니 마구 때렸다”는 녀석, 서로 잘못을 미루며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자 면벽하고 무릎을 꿇게 했다. 결국 두 녀석이 서로 “내가 더 많이 잘못한 것 같다”며 손을 잡는 것으로 마무리.
며칠 뒤 다른 방에서 또 사고가 터졌다. 이번에는 신발이 없어졌다. 누군가 일부러 감춘 것이다. 아무도 자백을 하지 않자 같은 방 남학생들 모두 눈 쌓인 마당에 맨발로 서서 반성하는 벌을 섰다. “제가 잘못했습니다”라는 말이 나올 때까지 훈장도 함께 맨발로 버텼다. 1학년인 영준이는 “내 잘못도 아닌데, 왜 나만 가지고 그래”라며 소리를 지르고 발버둥 치다 남보다 곱절로 벌을 서야 했다.
첩첩산중에서 TV도 인터넷도 게임기도 휴대전화도 없이, 평소 담쌓고 지내던 예절을 강요당하며 반듯하게 앉아 한문 공부를 해야 하니 아이들의 불만과 짜증은 최고조에 달했다. “우리가 청소기야? 아 짱 나. 지옥 같아.” 밥알 몇 톨 남겼다고 잔소리를 들은 두 여학생은 당장이라도 뛰쳐나갈 표정이다. 김 훈장의 아들 경민이(11)가 아버지에게 이런 분위기를 전한다. “아동학대라고, 예절이 밥 먹여주냐고, 탈출할 계획이 있다고 합니다.” 훈장 왈 “이놈들, 발광을 하는구나.” 그날 경민이는 산 위에서 “다시는 고자질을 하지 않겠습니다”라며 반성문을 외쳐야 했다. 하지만 경민이의 말대로 여학생 둘이 결국 탈출을 단행해 예절학교를 발칵 뒤집어놓았고 인근 경찰서에서 두 아이를 보호하고 있다는 연락이 왔다. 훈장 앞으로 불려간 두 여학생은 나뭇잎 두 장으로 눈을 가리고 앉았다. “무엇이 보이느냐?”라는 훈장의 물음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하며 흐느낀다. “하찮은 나뭇잎 하나가 눈을 가리니 태산이 보이지 않는구나(一葉蔽目不見泰山).” 깊은 뜻을 아는지 모르는지, 두 아이는 닭똥 같은 눈물만 흘렸다.



부생아신
2011년 새해를 예절학교에서 맞은 아이들은 뉘우침과 새로운 각오를 적으며 스스로 맞아야 할 매의 대수를 정했다. ‘동생을 때리고 욕을 했습니다. 100대.’ ‘부모님께 아무 이유 없이 투정을 부렸습니다. 140대.’ ‘친구와 싸워서 안경을 변기에 넣었습니다. 97대.’ 퇴교일을 앞두고 아이들은 ‘부모님전상서’를 쓰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울기 시작했다. 흐느낌이 격해져 어느새 대성통곡으로 바뀐다. 예절이 밥 먹여주냐며 입교 후 내내 냉소적이던 ‘머리 굵은’ 아이들도 마음을 열고 입을 연다. “아버지는 내 몸을 낳아주시고 어머니는 내 몸을 기르셨도다.” 부생아신(父生我身) 모국아신(母鞠我身) ‘사자소학’을 읊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낭랑하게 울려퍼진다.

법고창신
김봉곤 훈장은 지난겨울 주연·연출·편집 1인3역으로 ‘훈장과 악동들’이라는 교육영화를 찍었다. 겨울방학 때 2주간 예절학교에 입교한 50명의 아이들과 부모에게 허락을 구하고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찍은 영화다. 처음에 카메라 감독은 “콘티도 대본도 없이 어떻게 영화를 찍느냐”며 돌아가겠다고 했다. 김 훈장은 “대본은 내 머릿속에 다 있다. 기승전결이니 주인공이니 이런 틀에 박힌 생각은 버려라. 이것은 연기가 아니라 리얼 다큐멘터리다. 교육 프로그램 일정대로 촬영한다. 50명의 아이들이 모두 주인공이다. 촬영 때문에 교육이 방해받아선 안 된다. 조용히 찍자. 수업 중에는 수신호를 할 테니 지시대로 찍어달라. 조명 필요 없다. 자연광이면 충분하다”라고 설득해 촬영팀을 주저앉혔다. 카메라 2대에 보조 카메라 1대가 전부. 150시간 분량을 찍어 90분으로 편집하는 데 4개월 반이 걸렸다. 한 장면 한 장면 그가 직접 골랐다.
“2주 동안 제가 아이들과 접촉하는 횟수가 70번 정도 돼요. 어떤 녀석은 첫 번째 가르침에 딱 느끼고, 또 어떤 녀석은 마지막 70번째에 가서야 깨닫죠. 아이들마다 다 달라요. 한 방에 다 되면 누가 교육이 어렵다고 하겠습니까. 50명이 모두 주인공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죠.”
올여름 김 훈장은 ‘훈장과 악동들’ 시사회를 위해 20여 개 시도를 순회했다. 처음 영화를 찍겠다고 했을 때 “미쳤다”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던 이들도 막상 영화를 보고선 한결같이 웃다가 운다.
“제가 20년 가까이 대중강연이나 예절학교를 통해 가르친 사람이 1백만 명쯤 됩니다. 하지만 제 몸이 10개라도 강연은 한계가 있어요. 대신 90분짜리 영화에 담아 보여주면 그 자리에서 눈물을 쏙 빼거든요. 또 보는 이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이는 것도 흥미롭죠. 우리의 전통이 영상이라는 기술과 만나니 이처럼 엄청난 파급력이 있잖아요. 이게 바로 제가 생각하는 법고창신(法古創新: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입니다.”

회초리 든 김봉곤 훈장과 50명의 악동들 영화 찍고 울다

개울가에서 물놀이를 하는 김 훈장과 4남매.



● 김봉곤 훈장은…
지리산 ‘청학동 1세대’인 김봉곤 훈장은 4남1녀의 막내로 태어나 스물한 살까지 세상과 담을 쌓고 한학을 배웠다. 1989년 은희진 명창에게 판소리를 배웠으며, 90년대 초 서울로 와서 국립창극단 연수단원, 공연예술아카데미 연기반에서 소리와 연기를 익혔다. 93년 손석희·허수경이 진행하는 MBC ‘아침만들기’ 프로그램에 댕기 머리를 한 채 보조 MC로 등장해 화제를 모았고, KBS ‘도전! 지구탐험대’에 7차례나 출연했으며, 각종 예능과 시트콤에 고정 출연하는 등 활발한 방송 활동으로 인기를 모았다.
한편 전통문화 보급과 인성교육을 목표로 서울 서초구 양재동에서 서당을 열었고, 94년 어린이 대상 서당 체험 프로그램인 ‘청학동 예절캠프’를 개발하고 예절학교 ‘몽양당’을 세워 ‘청학동 붐’을 일으킨 주인공이기도 하다.
2005년 강원도 철원으로 옮겨와 지금의 한민족예절학교를 세웠다. 방학 기간에는 초등학생 대상으로 1주일 또는 2주일의 ‘선비체험’ 프로그램이 열리며, 평소 주말에는 1박2일로 ‘가족선비체험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 현재 김 훈장은 이곳에서 자한(13), 경민(11), 도현(6), 다현(3) 네 아이를 키우고 있다. 영화 ‘훈장과 악동들’에는 김 훈장네 4남매가 출연해 숨겨진 재능을 보여준다. 한민족예절학교(www.ichungha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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