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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딛는 걸음마다 왕의 애틋한 첫사랑이 함께했다

손미나의 우리 길 걷기 여행 강화 생태숲 나들길 14코스

editor 손미나

2018. 08. 27



히말라야를 동네 뒷산처럼 말하는 수잔은 강화산성길을 성큼성큼 걸어 금세 정상 남장대에 올랐다. ‘강화도령’ 철종이 강화에서 만난 첫사랑 봉이와 함께 무수히 걸었다고 전해지는 길이다.

히말라야를 동네 뒷산처럼 말하는 수잔은 강화산성길을 성큼성큼 걸어 금세 정상 남장대에 올랐다. ‘강화도령’ 철종이 강화에서 만난 첫사랑 봉이와 함께 무수히 걸었다고 전해지는 길이다.

기세등등하던 폭염이 북서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한걸음 물러난 날, 가을을 예감하며 우리는 훌쩍 강화도 생태숲으로 떠났다. 요즘 TV 프로그램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에서 특별한 감동을 안겨주고 있는 네팔 청년 수잔 사키야와 한국의 작은 길을 찾아 걷는 여행에 초대하기로 약속한 바였다. 강화도 생태숲을 가로지르는 나들길 14코스는 조선의 25대 왕 철종이 강화에서 머물던 시절, 즉 나무하고 농사짓는 ‘강화도령’으로 살았던 5년 동안의 이야기를 찾아 걷는 길이다. 왕실에서 태어났으나 역적의 자손이라는 낙인을 받고 쓸쓸한 유배 생활을 하다 ‘하루 아침에’ 궁궐로 돌아가 왕으로 즉위한 강화도령의 드라마틱한 사연을 수잔은 정말로 흥미로워 했다.
 
“기구한 왕의 로맨스을 따라가다니, 동화 속으로 들어가는 듯한 기분이 이렇겠죠?” 

한국에 온지 8년, 서울에서 대학도 나오고 취직도 한 수잔은 방송 활동을 하고 있는 외국인 중 우리말의 미묘한 감정까지 가장 잘 이해하고 표현할 줄 아는 사람으로 평이 나 있다. 역사가 굽이쳐 흐르고 이야깃 거리가 산처럼 쌓인 강화도의 길 위에서 이보다 더 좋은 동행을 만나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용흥궁, 초가집이 궁전으로 바뀐 사연

용흥궁은 ‘강화도령’ 철종이 19세까지 살던 곳이다. 철종은 정조의 이복동생 은언군의 손자. 은언군은 역모 사건에 연루돼 강화도로 유배됐고, 천주교 영세를 받았다는 이유까지 덧붙여져 죽임을 당했다. 그 자손인 철종도 이곳에서 농사를 지으며 빈농으로 살다가 1849년 정치적 상황이 바뀌면서 헌종의 뒤를 이어 왕으로 즉위한다.

용흥궁은 말이 궁이지, 아담한 기와집인데, 이마저도 원래는 초가집이었다고 한다. ‘강화도령’이 왕위에 오른 뒤 기와집으로 개축했다는 것. 나들길 14코스, 강화도령 첫사랑길의 시작점인 용흥궁을 보고 나면 누구나 거대한 역사 속에서 선 한 개인의 삶을 생각하게 된다.



강화 생태숲 나들길 14코스 중간쯤에 있는 호텔 에버리치 전망대에 서면 강화읍이 한눈에 들어온다. 덕분에 한숨을 돌린다.

강화 생태숲 나들길 14코스 중간쯤에 있는 호텔 에버리치 전망대에 서면 강화읍이 한눈에 들어온다. 덕분에 한숨을 돌린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힙한 공간, 조양방직

수잔의 눈에 경이로움이 가득하다. 1933년에 들어선 근대식 방직공장도 신기하거니와, 이 오래된 공간을 트렌디하게 바꿔놓은 강화도 ‘너무 멋지다’고 칭찬을 멈추지 않았다. 강화의 부호 홍재묵이 세운 조양방직은 대한민국 섬유산업을 주도한 공장이었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단무지공장, 젓갈공장을 거쳐 폐가로 전락했다. 그러다 올 7월 카페로 재단장하여 SNS의 핫플레이스가 되었다. 조양방직은 세월과 생채기의 가치를 일깨운다. 깨진 유리창을 간직한 영국제 문짝, 체코의 옛 기차에 달렸던 둥근 거울, 온 식구를 먹여 살렸을 절구에 우리의 눈길이 오래 머물렀다. 인사동에서 빈티지숍을 운영하던 주인장의 열정과 솜씨다. 어항이 된 염색탱크와 커피테이블로 바뀐 작업대에 젊은이들이 앉아 커피를 마시고 데이트를 한다.

방직공장의 작업대가 커피테이블이 되었다.

방직공장의 작업대가 커피테이블이 되었다.

강화 생태숲 나들길 14코스에는 왕을 배출한 용흥궁도 있고, 강화성당과 군사시설인 남장대도 있다. 이 다양한 장소가 모두 강화도의 역사를 이야기해준다. 용흥궁 뒤 소나무숲도 힘겹게 왕궁의 격조를 지켜온 듯하다.

강화 생태숲 나들길 14코스에는 왕을 배출한 용흥궁도 있고, 강화성당과 군사시설인 남장대도 있다. 이 다양한 장소가 모두 강화도의 역사를 이야기해준다. 용흥궁 뒤 소나무숲도 힘겹게 왕궁의 격조를 지켜온 듯하다.

백두산 소나무로 지은 강화성당

대한성공회 강화성당은 1900년에 지어졌는데 외양은 한옥이고, 내부는 바실리카 양식이다. 건물도, 내려다보이는 풍경도 아름답다. 수잔은 안내 책자를 꼼꼼히 챙겨 읽는 모범 여행가로, 책을 읽고 내게 “백두산에서 바다로 소나무를 가져왔대요”라고 가르쳐주었다.

강화 생태숲의 일부인 아이의 숲. 어린왕자 친구인 여우가 숨어 있을 것 같다.

강화 생태숲의 일부인 아이의 숲. 어린왕자 친구인 여우가 숨어 있을 것 같다.

남장대 가는 길. 1866년 병인양요 때 허물어졌지만 2010년 복원됐다.

남장대 가는 길. 1866년 병인양요 때 허물어졌지만 2010년 복원됐다.

일편단심, 무궁화의 꽃말이 왕의 로맨스가 된 곳

걷기 여행의 마지막 코스인 철종외가를 찾아가는 길. 골목에 무궁화가 하늘거려 딱 이집인가 싶은데, 사실 이곳도 철종의 ‘강화도령’ 시절 로맨스와 관계가 있다. 강화도령이 나무하고 농사지으며 살 때 집에서 10km가량이나 떨어진 이곳 외가까지 와서 나무를 해갔다고 한다. 

이 먼 곳까지 나무만 하러 왔을까? 강화도령의 첫사랑이 혹여 이 동네 어귀에 살지 않았을까? 무궁화의 꽃말은 일편단심이다. 

“이 길은 가을에 걷기 딱 좋네요! 단풍 들면 또 오기로 해요”

남장대는 조선시대 서해안 방어를 위해 지어진 군사시설로 강화읍은 물론 영종도까지 조망이 된다. 늦더위에 다들 힘들어하는데, 히말라야를 두 차례나 오른 수잔은 훌쩍 앞서가며 “매운 고추 먹고 산에 오르면 편하다”고 한다.

강화에서 얻은 건강한 맛

강화 인삼안심스테이크 

강화생태숲길에 5성급 호텔 에버리치가 있다. 라벤더 정원이 유명한 이곳 레스토랑은 강화농축산물을 사용한 강화 인삼안심스테이크 등 서양식 요리를 선보이니 새로운 맛을 찾을 때 들러보면 좋겠다.

젓국갈비 

뭐니뭐니해도 강화에 왔으면 젓국갈비를 맛봐야한다. 강화는 새우젓 주산지로 새우젓을 활용한 음식이 많다. 젓국갈비는 돼지갈비에 새우젓과 채소를 넣고 맑게 끓인 음식으로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맛이다. 고려시대 몽고의 침입을 피해 피난 온 왕에게 진상한 음식에서 유래했다.

수잔이 첫번째 한국 걷기길 여행을 기념해 강화성당에서 스탬프를 찍었다.

수잔이 첫번째 한국 걷기길 여행을 기념해 강화성당에서 스탬프를 찍었다.

여행작가 손미나가 추천하는 
강화 생태숲 나들길 14코스 강화도령 첫사랑길

총 11.7km, 3시간 30분 소요
용흥궁-대한성공회 강화성당-조양방직-청하동약수터-강화생태숲-남문-
남장대- 호텔에버리치-찬우물약수터-철종외가



손미나 작가와 수잔 사키야 씨는 강화나들길 14코스 강화도령 첫사랑길 걷기에 두루누비(durunubi.kr) 사이트를 활용했습니다.

기획 김민경 기자 취재 이혜민 기자 사진 김성남 조영철 기자 동영상 연출_김아라 PD 윤주민 디자인 김영화
제작지원 한국관광공사 매니지먼트 곽상호 스타일리스트 김기만 박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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