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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아이비리그 스토리

미 명문 하버드대 축구팀에서 활약 재미교포 2세 알렉스 최

“축구 하고 싶으면 더 열심히 공부하라”

글·구희언 기자 사진·이기욱 기자

2011. 07. 15

‘하버드대 학생’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안경 쓰고 도서관에서 높이 쌓인 책에 코를 파묻은 모범생을 연상한다면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얼마 전 하버드대 축구팀이 방한했다. 그중에는 한국계 미국인 알렉스 최 선수가 있었다.

미 명문 하버드대 축구팀에서 활약 재미교포 2세 알렉스 최


한국과 미국의 공부벌레들이 한판 붙었다. 강의실이나 실험실이 아닌 그라운드에서다. 5월 말, 고려대와 미국 하버드대와의 축구시합이 열린 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 녹지운동장. 고려대와 하버드대 축구팀이 운동장에서 몸을 풀고 있었다.
하버드대 축구팀은 2009년 미국대학체육협회(NCAA) 아이비리그에서 14승1무4패를 기록하며 우승했다. 1968년 이후 13차례나 우승했을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갖췄다. 고려대 축구팀도 만만치 않다. 대한축구협회(KFA) 2011 U리그에서 대학 중 유일하게 전승 행진 중이다.
한미 대학리그 1위 간의 대결. 친선경기였지만 학교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라 경기장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먼저 기선을 잡은 것은 고려대였다. 전반 16분경 고려대 선승우 선수가 왼발로 골을 차 넣으며 1:0으로 앞선 것.
곧바로 하버드대의 반격이 시작됐다. 하버드대는 후반 10분경 한 동양인 선수를 오른쪽 미드필더로 투입했다. 그의 이름은 알렉스 최(24). 하버드대 경제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인 재미교포 2세였다. 큰 신체조건의 백인과 흑인 선수 사이에서 그는 유독 눈에 띄었다.
후반 21분경 알렉스 최가 고려대 골문 앞에서 공을 차 넣어 1:1 동점을 만들었다. 골이 들어가자 벤치에 있던 선수들은 환호했다. 전세 역전. 경기 종료 직전 하버드대 선수가 중거리슛으로 역전에 성공했다. 결과는 2:1, 하버드대의 승리였다. 팀의 승리에 공헌한 알렉스 최는 “부모님의 모국인 한국에서 첫 골을 넣어 정말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축구는 학업성취도 높이는 데 도움

미 명문 하버드대 축구팀에서 활약 재미교포 2세 알렉스 최

하버드대 축구팀은 5월 말가진 서울대와의 축구경기에서 1:0으로 승리했다.



하버드대 축구팀은 이틀 뒤 열린 서울대와의 경기에서도 1:0으로 승리했다. 이날 경기에 출전하지 않고 벤치에 앉아 있던 알렉스 최와 아이비리그 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부모가 모두 한국인인 그는 고등학교 여름방학 때 한국에서 전 국가대표 하석주 코치가 운영한 축구 캠프에 참가하기도 했다. 한국에 머물며 학생에게 영어를 가르친 경험도 있어 한국어로 의사소통을 하는 데 무리가 없었다. 그에게 가장 궁금한 것은 공부와 운동에서 모두 두각을 나타내는 비결.
“한국 학생들은 공부나 축구 가운데 어느 하나만 선택해 집중적으로 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보다는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게 중요하죠.”
하버드대에서는 운동을 잘하는 학생이 공부도 잘하는 경우가 많으며, 모든 활동에 적극적인 자세가 학업성취도 면에서도 도움이 된다는 말이었다. 그는 텍사스 플라노웨스트고등학교 재학 시절 출중한 축구 실력으로 MVP로 뽑힌 전력이 있다. 축구팀 주장으로 뛰면서 그라운드에서 실력을 한껏 발휘했다. 하지만 축구만 잘한다고 하버드대에 입학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버드대는 원칙적으로 축구 특기생을 뽑지 않는다. 최소한의 학업 성적이 되고 거기에 ‘플러스 알파’가 있어야 하버드대에 들어갈 수 있다.
알렉스 최는 고등학교 시절 공부보다도 축구가 좋았던 학생이었다. 경쟁적인 분위기에서 고교 시절을 보낸 그는 학업에 소홀할 수 없어서 축구 연습이 없을 때는 집과 도서관을 오가며 공부를 했다. 오전 7시부터 9시까지는 고등학교 축구팀에서 연습하고, 학교 수업이 끝난 오후 4시부터 6시까지는 도서관이나 집에서 공부에 집중했다. 오후 7시부터 9시30분까지는 클럽 축구팀에서 경기를 하거나 연습에 참여했다.
고등학교 때 어떤 학생이었느냐고 묻자 곰곰이 생각하던 그는 “AP(Advanced Placement) 클래스를 많이 듣는 학생이었다”고 말했다. AP 클래스는 고등학생이 대학교 학사 과정을 미리 들어볼 수 있는 제도. 고등학교 때 AP 클래스를 듣고 좋은 성적을 받으면 대학교에 입학할 때 인센티브가 있다. 하지만 과정 자체도 어렵고 과제가 많아 AP 클래스를 마치기가 쉽지 않다. 명문대에서는 AP 클래스 수강과 시험 성적으로 지원자의 수학 능력과 도전의식을 평가하기도 한다. 그는 “수업 중 불확실한 내용을 명확하게 알려면 선생님에게 질문해 명확한 답을 듣는 것이 좋다”고 했다.



미 명문 하버드대 축구팀에서 활약 재미교포 2세 알렉스 최


그는 성적, 봉사활동 등 엄격한 자격 요건을 갖춰야 하는 미국 전국우수학생회(National Honor Society)에서 활동했다. 봉사활동에도 관심이 많아서 소외 지역에서 집 짓기 운동을 하는 해비타트에 참여하고 교회에서 봉사했다. 학교 과학경진대회 수상 경력도 그가 하버드대 입학 인터뷰에서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였다. 그는 “축구와 학업 사이에서 균형을 잘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다양한 분야에서 두루 뛰어난 모습을 보인 그는 2007년, 하버드대 경제학과에 입학했다.
고등학교 시절 갈고닦은 축구 실력은 하버드대 축구팀에서 빛을 발했다. 2007년부터 2010년까지 하버드대 축구팀에서 미드필더로 뛴 그는 팀에 합류한 첫해 3골을 넣으며 아이비리그의 루키로 주목받았다. 이후 축구팀의 주축으로 축구와 공부에서 모두 훌륭한 성적을 냈다. 경기를 앞뒀더라도 수업엔 절대 빠지지 않는다는 것이 하버드대 축구팀의 원칙. 그는 훈련에 참여하면서도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는 것은 물론 2007년과 2009년 ‘아이비리그 금주의 선수’에 선정되는 등 상을 네 번이나 받았다.
이런 그의 등번호는 10번. 등번호 10번은 축구선수에게는 일종의 ‘로망’이다. 각 팀의 에이스에게 주는 번호이기 때문이다. 축구 황제로 불린 펠레를 비롯해 마라도나, 지단, 호나우지뉴 등이 등번호 10번을 달았다. 한국에서는 축구 천재로 불리는 박주영이 등번호 10번을 달고 있다.

공부와 축구 병행하려 하루 5시간 수면
공부와 축구 훈련을 병행하려면 24시간도 부족하지 않을까. 그는 “많이 자지는 않는다”면서 “하루 평균 5시간 정도 잔다”고 했다. “다른 사람들과 비슷한 수준이다”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는 “시간 관리를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고등학교 시절 학교에 가는 날에는 시간별로 세분화해서 일정을 짰어요. 방과 후 오후 4시부터 6시까지는 공부하고, 축구 연습은 오전과 오후에 나눠서 하는 식이었죠.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자정이 되기 전까지 남은 일을 처리했어요. 그런데 학년이 올라갈수록 주어진 과제가 늘어나서 자정 전에 모든 일을 마치는 게 어렵더라고요. 시간 배분을 잘하는 것 못지않게 집중력도 중요해요. 집중해서 공부하는 2시간이 대충 하는 4시간보다 훨씬 효율적이거든요.”
공부하다 집중이 안 될 때는 잠깐 잠을 자거나 TV를 보며 쉰다. 집에서 축구하는 것을 싫어하지 않았느냐고 묻자 “부모님은 다양한 과외 활동에 참여하는 것을 허락했다”고 했다. 부모의 배려 덕에 그는 중·고등학교 시절 여러 악기를 배웠고 축구 외에도 농구와 탁구 등 스포츠를 즐길 수 있었다. 대신 부모는 “축구를 계속하고 싶다면, 학업 성적이 떨어지지 않도록 하라”고 강조했다. 알렉스는 축구를 하고 싶어서라도 스스로 책을 폈다.
늘 되새기는 삶의 지침이 있느냐고 묻자 그는 아버지의 말씀을 꺼냈다. “아버지께서는 언제나 ‘평범한 사람은 되지 말라’고 하셨죠. 처음에는 무슨 말씀인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어요. 하지만 고교 시절 그 말은 제 삶에 큰 영향을 끼쳤어요. 제 열정과 취미를 차별화하는 데에도 도움이 됐고요. 부모님께서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신 것에 지금도 감사해요. 저는 제가 가능성이 있다고 느낀 일에 하루 시간의 대부분을 썼어요. 이런 태도는 지금의 저를 있게 한 원동력이죠. 학교생활과 성적 유지에도 도움이 됐고요.”
곧 졸업을 앞둔 그에게 하버드대 축구팀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일까. 그는 “2010년 아이비리그 챔피언십에 나가서 우승했을 때”라고 말하며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는 “축구선수가 될 생각은 없다”며 “전공을 살려 경제와 관련된 분야에서 일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TV와 영화 감상을 즐기는 그는 영화 제작 분야에서 일하는 게 꿈이라고 한다.

하버드대 축구팀을 말하다!
축구팀 평균 성적은 ‘올 A’

하버드대 축구팀 칼 주노 감독은 혹시 축구팀 활동으로 학업에 지장이 있는 학생은 없느냐는 물음에 “하버드는 그런 일을 용납하지 않는다”라며 짧고 굵게 답했다. 그는 지난해 7월부터 하버드대 축구팀 감독을 맡고 있다. 주노 감독은 “하버드 축구팀원은 ‘선수’이기 전에 모두 ‘학생’이다. 미국대학체육협회 규정에 따라 한 주에 게임과 연습을 포함해 최대로 플레이할 수 있는 시간은 20시간을 넘길 수 없다”며 축구팀의 가장 큰 덕목은 “훌륭한 학생(Great Student)”이어야 함을 강조했다.
하버드대 축구팀은 1년 내내 축구만 하지는 않는다. 경기가 몰린 8월부터 12월까지가 집중 훈련 기간. 연초인 1월에서 3월까지는 선수들 대부분이 개인훈련을 하며 학업에 집중한다. 하버드대 축구팀에서 원하는 선수는 어떤 학생일까.
“때에 따라 키가 크고 체격 조건이 좋은 선수가 필요할 때도 있고, 발이 빠르거나 테크닉이 좋은 선수를 고르기도 합니다. 모두 다른 능력을 지닌 다양한 선수를 뽑음으로써 팀이 특별해질 수 있습니다.”
다양한 기준으로 선발하다 보니 선수들의 전공도 제각각이다. 하버드대 축구팀은 경영학, 경제학, 물리학, 생화학 등 각기 다른 전공의 학생으로 구성됐다. 체육 관련 전공자는 한 명도 없다. 서울대 축구팀이 한 명을 제외하곤 모두 체육학과 출신임을 생각하면 특이한 점이다.
미국 대학교 대부분은 학교 차원에서 스포츠 관련 장학금을 주지만 하버드대 축구팀은 예외다. 하지만 학생들은 장학금에 상관없이 순수하게 축구가 좋아서 공과 함께 그라운드에서 옷이 땀에 흠뻑 젖을 때까지 뛰어다닌다. 하버드대 축구팀은 방학 때에도 아프리카에서 축구와 함께 영어를 가르치는 봉사활동을 한다.
이들에게 축구는 좋아서 하는 취미생활일 뿐이다. 대부분 축구선수를 꿈꾸기보다는 전공을 살려 사회에 진출하기를 원한다. 물론 일부 선수는 미국 프로축구 메이저리그사커(MLS)에 진출하기도 한다. 하버드대에서는 매년 한두 명이 MLS에 진출한다.
칼 주노 감독은 입단부터 퇴출까지 축구 팀원에게 적용되는 기준도 알려줬다.
“축구팀에 들어오려면 고등학교 평균 성적이 A 이상이어야 합니다. 현재 하버드대 축구팀원의 미국대학수학능력시험(SAT) 평균 성적은 2천점 이상입니다(2천4백점 만점). 대학교에 들어와서도 C 학점 미만의 성적을 받으면 축구선수로 활동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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