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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반가운 얼굴

조인성의 ‘봄날’ 다시 왔다

미소와 환호 속 ‘제대하던 날 생긴 일’

글·이혜민 기자 사진·이기욱 기자

2011. 06. 16

그가 돌아왔다. ‘연기만 생각하는 배우’에서 ‘동료애를 아는 남자’로 거듭난 진짜 사나이가 되어.

조인성의 ‘봄날’ 다시 왔다

조인성이 제대하는 날 대만, 일본 등지에서 1백여 명의 팬들이 제대를 축하하기 위해 모였다.



조인성(30)이 돌아왔다. 2009년 4월 공군에 자원 입대한 그가 이제 민간인 신분으로 복귀한 것이다. 조인성은 그간 공군 작전사령부 군악대에 배치돼 군 행사에서 MC를 보면서 공군을 국민에게 알리는 일을 해왔다.
5월4일 경기도 오산 공군 작전사령부 앞. 이른 아침부터 그를 마중 나온 팬들과 취재진으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조인성의 이름이 적힌 풍선을 든 사람부터 조인성 얼굴이 그려진 모자를 쓴 사람들까지 팬들의 사랑법도 저마다 다양했다. 사령부 앞 주차장 공터에는 ‘공군병장 조인성, 대한민국 최고의 배우가 되길’이라고 적힌 플래카드가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안전한 진행을 위해 취재 라인이 만들어졌고, 군인들과 경찰들까지 배치됐다.
오전 10시. 군악대원들이 정렬을 마치자, 제대하는 군인들이 사령부 앞으로 걸어 나왔다. 여기저기서 웅성대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앞다퉈 플래시 세례가 터졌다. 곧이어 조인성이 플래카드 앞에 나타나 거수경례를 올렸다. 입대 전보다 다소 마른 듯했지만 맑고 선한 눈빛도, 우유 빛깔 피부도 예전 그대로였다. 하지만 마이크가 켜지지 않아 5분여 시간이 지나서야 비로소 그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됐다. 예전에 “상병이 되면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는 것보다 더 기쁠 것 같다”고 말하던 그가 미소 띤 얼굴로 제대 심경을 밝혔다.
“멀리까지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동안 많이 응원해주셔서 군 생활을 잘 끝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대한 지 얼마 안 돼 얼떨떨합니다. 집에 가서 부모님 얼굴을 뵈어야, 군대 게이트 밖으로 나가봐야 제대를 실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촬영 현장에서도 늘 상대방을 배려해 ‘예의 바른 배우’로 알려진 그는 이날도 취재진의 열띤 경쟁에 감사를 전하는 동시에 동료들에게 방해가 될까 염려했다. “혼자 제대하는 게 아니라 동기생 모두가 제대하는 날인데 홀로 화려하게 제대하는 것 같아 미안하다”며 동료들에 대해 얘기하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선임들, 후임들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뿐”
“어제 잠을 잘 못 잤습니다. 동기들이랑 후임들이 과자 파티를 해줘서 얘기를 많이 나눴는데, 지금은 군악대원들과 헤어지는 게 가장 아쉽습니다. 한 분 한 분 꼽을 수는 없지만 많이 보고 싶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현빈에게 고맙습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그 현빈이 아닙니다. 제 현빈도 있거든요(웃음). 후임병인데, 오늘 제가 입은 군복도 그 후임이 각을 잡아줬어요. 챙겨주지 못해서 항상 미안한 마음뿐이었는데… 사랑한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조인성은 전역을 앞두고 가진 공군 블로그 ‘공감’과의 인터뷰에서도 “(내가) 나이가 많아서 선임들은 부담스러운 면이 많았을 것이고, 동기들은 내 부족함을 채워주느라 더 많은 땀을 흘려야 했을 것이다. 후임들에게는 더 이해해주지 못했다”면서 동료들에 대한 미안함을 드러낸 바 있다. 특히 “나 역시 군악대의 일원일 뿐인데, 본의 아니게 공연 후 더 주목을 받게 돼 동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적이 많았다”면서 스스로를 부끄러워했다.
이런 그의 말만 들으면 그의 군 생활 태도를 오해할 수 있다. 하지만 조인성은 누구보다 군 복무를 충실히 이행한 듯하다. 그 공로로 5월2일 공군 참모총장으로부터 직접 표창장을 받았다. 공군 부사관 출신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공군에 대한 동경이 있었던 그는 군 복무를 하면서도 공군에 대한 사랑은 변하지 않았다고 한다.

조인성의 ‘봄날’ 다시 왔다


“공군 약복의 뿌듯함은 입어본 사람만이 알 것입니다. 정말로 입기를 잘했습니다. 입고 싶어 하는 사람이 정말 그 제복을 입었으면 합니다. 북한의 불법적인 연평도 포격이 발생했을 때 F-15K가 연평도 상공에 떠 있었습니다. 공군이 아니면 F-15K의 위력을 잘 모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공군이라면 누구나 알 것입니다. 그때 공군이 대한민국 영공에 있었다는 것, 그 자체가 제게는 안정감과 자부심을 안겨줬습니다. 공군이 있어 대한민국의 영공이 든든하다고 생각됩니다.”
전역식 현장에서도 조인성은 군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그는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중학교에 진학하듯이 군 입대도 자연스런 일이다. 아무래도 군 생활이 선택이 아닌 의무이기 때문에 힘든 부분이 많지만 이때가 아니라면 나라를 위해 뭔가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없다고 생각한다”면서 입대의 의미를 설명했다.
물론 그 역시도 군 복무가 힘들었다고 한다. 화생방 훈련을 하면서, 군사이론 평가를 준비하면서 제법 치열한 경쟁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덕분에 부족한 부분이 있다는 걸 깨닫고, 더 잘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다”면서 “얻은 점 또한 많다”고 했다. 군 생활을 하면서 번 돈을 허투루 쓰지 않은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월급이 10만원이 조금 넘습니다. 월급이 나라사랑카드에 바로 입금되기 때문에 통장 잔고가 얼마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입대 후 집에서 돈을 타 쓴 적은 없습니다. 순수하게 제 월급을 가지고 생활했죠. 뭔가를 자주 사먹지는 않았지만 무더위 속에서 연습한 뒤에는 동료들과 함께 아이스크림을 즐겨 먹었고, 겨울에는 따뜻한 커피를 마시면서 동료들과 소소한 추억을 만들었습니다(웃음).”



“좋은 사람이 돼야 좋은 배우 된다고 생각해”
조인성은 이 밖에도 기억에 남는 일이 많다고 한다. 특히 장병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 오지 공연을 다녀온 일은 잊지 못할 순간으로 남아 있다.
“군악대 공연 피날레 후 관객의 박수를 받을 때 그 희열을 잊을 수 없습니다. 아무래도 영화배우는 현장을 느끼기 힘듭니다. 간혹 영화 시사회 때는 관객들을 뵙지만, 결과물을 가지고 평가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공군 군악대에서는 라이브의 감동, 그 모든 과정들을 직접 다 몸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실제로 무대에 서서 직접 들어보지 않으면 그 감동을 말로 표현하기 어렵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리고 여러 곳을 돌아다니면서 아름다운 곳들을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황병산에서 바라본 야경은 영화에서도 보기 힘들 정도로 멋진 모습이었습니다.”
조인성은 10여 분의 인터뷰를 끝내고 팬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전에는 만나기 어렵던 팬들을 군에 있으면서 한 달에 한두 번씩 만나면서, 팬들의 소중함을 여실히 느꼈다고 했다. 하지만 조인성이 팬들을 향해 걸어가는 과정에서 현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팬들에게 꽃목걸이와 케이크를 선물 받고 인사를 나누는 사이 취재진과 팬들이 구름떼처럼 몰려온 것이다. 자칫하면 사고가 날 수도 있는 상황. 매니저가 조인성이 걸어갈 통로를 만들려고 했으나 상황이 여의치 않자 이마저도 중단됐다. 망설이던 조인성은 대기하고 있던 검은색 아우디 승용차를 타고 떠났고, 아쉽게도 전역식은 그것으로 종료됐다.
일반적으로 남자들은 군 복무를 하면 사회와 단절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조인성은 자신이 군 복무를 한다고 해도 쌓아온 것들이 물거품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98년 데뷔해 드라마 ‘학교’ ‘피아노’ ‘발리에서 생긴 일’ ‘봄날’, 영화 ‘비열한 거리’ ‘쌍화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기를 하며 조금씩 발전했기 때문이다. 제대하자마자 광고계 블루칩으로 떠오르고, 복귀작으로 영화 ‘권법’에 캐스팅된 조인성. 그가 앞으로도 뚝심 있게 나아가길 기대한다. 조인성 그 자신이 누구보다 자신의 바람을 지키고 싶을 것이다.
“좋은 사람이 되는 게 꿈입니다. 좋은 사람에게서 좋은 연기가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좋아합니다. 말로 표현하기는 힘들지만 연기가 매우 유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는 배우로서 소양을 키우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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