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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김명희 기자의 story of CEO

원조 ‘신데렐라 언니’ 막걸리 장인 배혜정

“부잣집 안방마님은 내게 맞지 않는 옷, 도전과 인내로 발효시킨 새콤달콤 인생”

글·김명희 기자 사진·장승윤 기자

2011. 06. 16

과거 재벌가의 딸들은 황태자로 불리며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아들과 달리 조용히 집안을 지키는 게 관례였다. 하지만 요즘은 경영에 뛰어들어 아들 못지않게 능력을 발휘하는 이들이 많다. 배상면 국순당 회장의 딸 배혜정씨는 결혼 후 평범한 전업주부로 지내다가 뒤늦게 사업을 시작, 우여곡절 끝에 막걸리 분야 1인자가 됐다. 술처럼 걸쭉한 배혜정의 인생 스토리.

원조 ‘신데렐라 언니’ 막걸리 장인 배혜정


“혜정아, 너희 집에서 술 좀 가져와봐.”
“아버지가 술도가에 들어가면 안 된다고 그랬는데….”
“뭐 어때. 맛만 조금 보는 건데, 어차피 티도 안 날 거야.”
양조장집 외동딸은 친구들의 성화에 못 이겨 몰래 술을 가져다 마셨다가, 네 살 된 동생이 기절하는 바람에 들통이 나 부모님께 호되게 야단을 맞았다. 배상면 국순당 회장의 2남1녀 중 둘째 딸, 배혜정씨(55·배혜정도가 대표) 이야기다.
그는 아장아장 걷기 시작할 무렵부터 집 바로 옆 양조장에 들락거리며 술 익는 향을 맡고 자랐다. 지금도 술 익는 냄새를 맡으면 고향에 돌아온 사람처럼 마음이 편안해진다. 지난해 인기리에 방영됐던 드라마 ‘신데렐라 언니’에서 주인공 은조(문근영)가 혼자 술독을 껴안고 울거나 잠드는 장면을 보며 마치 자신의 일인 것 같아 몰래 운 것도 그 때문이다.

돈보다 가치 있는 삶 찾아 막걸리 사업 시작
오빠(58·배중호 국순당 대표)와 동생(52·배영호 배상면주가 대표)이 가업을 잇기 위해 일찍부터 기틀을 닦은 것과 달리, 그는 결혼 후 일과는 거리를 두고 살았다. 건설회사에 다니는 남편과 아들 둘을 낳고, 외국 이곳저곳을 옮겨다니며 사는 동안 봉사활동을 하고, 외국어·인테리어 공부를 하는 등 한시도 쉬지 않았다.
그러던 그가 마흔을 넘긴 나이에 사업을 하겠다고 나선 것은 가치 있는 삶에 대한 동경 때문이었다. 주부이면서 동시에 개인으로서의 삶을 포기하지 않는 외국 여성들의 모습이 그의 자아실현 욕구를 자극했다. 그때 마침 아버지가 그에게 막걸리 사업을 권했다. 명품 막걸리를 한번 만들어보자는 생각에 사업에 뛰어든 지 10여년. 우여곡절 끝에 그의 회사는 최근 막걸리 붐을 타고 눈부신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칠전팔기의 주인공 배혜정 대표를 서울 개포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배혜정도가는 그가 소유한 혜정빌딩에 자리 잡고 있다.
▼ 회사 이름도 그렇고, 건물 이름도 혜정빌딩이다. 이름에 대한 자부심이 상당한 것 같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회사명에 배혜정이라는 이름을 넣은 건 아버지 덕을 보려고 그런 거다. 늦게 사업을 시작했는데 회사 이름까지 평범하다면 누가 알아주겠나. 주류 사업에 관한 한 배씨가 최고 아닌가. 사실 아버지는 처음에 ‘배상면도가’라는 이름을 추천해주셨지만 배상면주가쪽 입장도 있고 해서 바꾼 거다. 그리고 먹을거리 장사는 믿음이 중요하다. 내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술을 내놓겠다는 의지도 담겨 있다.”
▼ 이런 건물 하나 갖고 있으면 머리 아픈 사업 안 하고 편하게 살고 싶은 생각이 들 것 같은데, 그렇지 않나.
“(웃음) 사실 사업을 시작하기 전까지 돈 걱정을 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일을 시작한 뒤 돈 때문에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직원들 월급을 마련하지 못해 달력 보기가 겁이 났던 적도 있고, 빚더미에 올라앉아 회사를 처분하려고 했던 적도 있고, 스트레스로 온몸이 마비된 적도 있다. 한마디로 고생을 바가지로 했다.”
▼ 그러니까 왜 고생을 사서 하느냐는 말이다.
“돈 때문이었다면 애초 일을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어릴 때 아버지로부터 가치 있는 삶에 대해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다. 아버지 영향인지 모르겠지만, 주부로 살면서 항상 한군데가 텅 비어 있는 느낌이었고 ‘이렇게 살 거면 이 세상에 왜 태어났을까’라는 의문이 생겼다. 또 외국에 살면서 아내, 엄마 노릇에 충실한 것은 물론 한 사람의 개인으로서 자아실현을 하는 여성들을 보면서 ‘나도 뭔가 해야 하지 않겠나’라는 고민을 했다. 그러던 차 남편 직장 때문에 90년대 일본에 있으면서 우동·라면 같은 대수롭지 않은 것들을 명품으로 만들어내는 걸 보면서, 예전에 우리 집에서 빚었던 막걸리를 그렇게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한 것이다. 아버지가 구두를 만들었다면 그게 구두가 됐을 것이고, 가방을 만들었다면 가방이 됐을 수도 있다. 수익이 덜 나더라도 최고의 원료만 사용하는 것도 그런 철학 때문이다.”

▼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는 어떤 엄마이고 아내였나.

원조 ‘신데렐라 언니’ 막걸리 장인 배혜정

배혜정 대표는 1년에 한 두번 트레킹을 통해 쌓인 스트레스를 푼다. 최근에는 티베트 고산지대를 다녀왔다. 사진은 장체 쿰붐 사원.





“아들을 둘 두고 있는데 큰아들은 나와 함께 일하며 사업을 배우고 있고 둘째는 캐나다에서 만화를 공부하고 있다. 순전히 내 생각이지만, 엄마로도 아내로도 열심히 살았다(웃음). 그 당시 내 주변 사람들은 몰려다니며 수다 떨고 쇼핑하는 걸 좋아하는 것 같던데 나는 그런 데 취미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살림하는 시간 외에는 주로 공부를 했다. 일본에서는 일본어를 독학으로 배워 인테리어 공부를 했고, 교수 어시스턴트를 한 적도 있다. 한동안은 영어 공부에 심취했고, 파키스탄에 살 때는 자원봉사 활동을 했다.”

예술가보다 힘들었던 사업가의 길

중국에서는 딸이 태어나면 술을 빚었다가 결혼시킬 때 들려 보내는 풍습이 있다. 국순당의 대표 브랜드 백세주는 원래 배혜정씨의 결혼식(79년) 때 썼던 술을 발전시킨 것이라고 한다. 딸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된다. 배상면 회장은 딸에게 사업을 권하기는 했지만 직접적인 도움을 주지는 않았다. 술 사업을 하는 것까지는 좋으나 제 손으로 일으켜보라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그가 사업에서 고비를 겪을 때마다 힘이 돼줬다. 잘 만들었다고 자부한 프리미엄 막걸리가 팔리지 않아 이제는 정말 사업을 접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배상면 회장은 ‘예술은 8년, 장사는 10년’이라는 글을 써서 건네주며 용기를 불어넣어주었다.

원조 ‘신데렐라 언니’ 막걸리 장인 배혜정


▼ 아버지 후광이 있었다면 사업이 그렇게 힘들지 않았을 텐데.
“가장 힘들었던 건 도와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것이다. 형제들도 말리는 분위기였고 아버지조차도 주위에서 반대가 심하니까 대놓고 도와주시지 못했다. 아버지가 주류 사업을 하니 쉽게 이 자리까지 왔겠구나 싶지만, 다른 사람보다 몇 배 더 힘들었다.”
▼ 어떤 점이 그렇게 힘들었나.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 겁이 없었다. 마케팅·홍보는 생각지도 않았다. 술만 좋으면 되는 줄 알았다. 당시 막걸리는 대부분 값싼 수입쌀로 만들어 페트병에 담아 파는 식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비싼 100% 경기미로 만들어 유리병에 예쁘게 넣은 ‘부자16도’를 선보였는데 팔리지 않았다. 그때만 해도 막걸리의 유통기한이 길지 않아 애써 만들어놓은 술을 다 폐기해야 했다. 또 주류 사업은 남자들 위주여서 보수적이고 배타적인 부분이 있다. 경쟁 업체에서 막걸리 뚜껑 제조법을 알려주지 않아 나와 직원들이 직접 만들었다. 아무런 노하우가 없었으니 부실할 수밖에. 처음엔 괜찮았는데 막걸리가 숙성되면 부피가 증가한다. 그래도 그냥 서 있을 땐 괜찮은데 넘어지기라도 하면 술이 줄줄 샜다. 그러면 다 반품이 들어오고… 그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점점 손해만 쌓이고… 나중엔 ‘하늘도 무심하지, 그만큼 고생했으면 나도 이제 풀릴 때가 되지 않았나’라는 원망 섞인 생각까지 들었다.”
▼ 그러다가 어떻게 사업이 다시 일어선 건가.
“질긴 놈이 이기는 것 같다. 그렇게 고생을 하고 나니 슬슬 알아주는 데가 생겼다. 특히 한국에서는 대리점·마트·식당 등에서 만날 구박만 받고 다녔지만 일본에선 일찌감치 좋은 원료로 정성껏 빚는 우리 술을 인정해줬다. 2003년 일본 지바 현에서 열린 국제식품박람회에 출품한 걸 계기로 수출에 물꼬가 트였고, 당시 인연을 맺은 업체들과 지금까지 거래를 하고 있다. 술을 만들면서 가장 보람 있었던 순간 중 하나가 2009년 하토야마 일본 총리가 정상회담차 우리나라를 방문했을 때 우리 회사에서 만든 ‘자색 고구마 막걸리’가 만찬주로 지정됐을 때다. 그만큼 일본 사람들의 입맛에 우리 술이 잘 맞는 것 같다. 또 술 사업이라는 게 한순간에 확 좋아지는 게 있다. 사람들이 외면하다가도 한번 입맛에 맞으면 그것만 찾는 경향이 있다.”
▼ 지금은 막걸리 붐이지만, 신드롬이란 게 언젠가는 한순간에 사라질 위험도 있지 않나.
“맞다. 내가 가장 처음 막걸리를 고급화하겠다고 병에 넣어 만들었을 때 우리 아버지의 얼굴을 보고 찾아왔던 기자들이 ‘왜 하필 막걸리인가, 다른 술을 하면 안 되나’라고 물을 정도였다. 사업성이 없어 보였고, 심지어 막걸리 하면 창피하다는 인식까지 있었다. 그게 요즘 이렇게 인기를 끌고 있지만 언젠가는 외면당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더 좋은 막걸리를 만들기 위한 연구를 계속하는 한편, 다른 종류의 술 개발에도 눈을 돌리고 있다.”

사업에서 받은 스트레스, 트레킹으로 재충전
양조장집 딸이고 그 자신도 10년 이상 술 사업을 했으니 남자 못지않게 술 실력이 상당할 것 같지만 막걸리 두어 잔만 마시면 얼굴이 붉어져서 시음할 때를 제외하고는 좀처럼 술을 입에 대지 않는다. 대신 틈만 나면 산으로 달려가 스트레스를 푼다. 히말라야, 킬리만자로, 알프스 등 내로라하는 명산치고 그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산에서 마음을 비우고 오면 어느새 새로운 열정이 솟는다. 대자연이야 말로 그의 든든한 버팀목인 셈이다.
▼ 요즘 재계를 보면 아들보다 주목받는 딸들이 많다.
“세상이 변한 게 첫째 이유다. 이제는 법적으로도 재산을 아들에게만 물려줄 수 없다. 또 딸들이 공부도 많이 하고 능력도 있으니까 그렇지 않겠나.”
▼ 실제 사업을 해보니 여자가 남자보다 잘할 수 있는 부분이 있던가.
“아직 어떤 게 맞는지 모르겠지만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쓸데없는 짓은 덜 하는 편인 것 같다. 남자들은 사교다 뭐다 해서 골프 치고 어울려 다니는 걸 좋아하는데 물론 그렇게 해서 큰 건을 올릴 수는 있겠지만 성실하고 섬세한 면에서는 여성들을 못 따라오는 것 같다.”
▼ 여성 CEO의 경우 업무 능력 외에 패션이나 스타일 면에서도 주목을 많이 받는데, 그런 점도 신경 쓰일 것 같다.
“물론 능력만 갖고 얘기하면 좋겠지만 지금 세상이 그런 쪽으로 흘러가니까 좋다 나쁘다 할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다만 젊은 사람들이 유리한 것 같다(웃음).”
▼ 대표님도 동안이다.
“고생한 거에 비해선 그런 것 같다(웃음). 특별한 비결이 있는 건 아니고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 닥쳐도 어떻게든 잘 해결되겠지, 심플하게 생각한다.”
▼ 일과 가족 외에 사랑하는 게 있다면.
“산에 다니는 걸 좋아한다. 파키스탄에 산 적이 있는데 최근 오사마 빈 라덴이 은신해 있다가 사망한 곳 근처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이라는 말이 절로 떠오를 정도로 아름다운 곳인데 거기에 살면서 트레킹에 재미를 붙였다. 파키스탄 북부 산악지대는 차로 몇 시간을 달려도 사람 하나 만날 수 없는 곳이 많다. 그곳을 달리며 풍경을 감상하다 보면 ‘정말 이곳에서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그 감동을 잊지 못해 히말라야, 스위스 몽블랑, 티베트, 몽골, 케냐, 중국 등으로 트레킹을 다닌다. 가장 최근에는 티베트에 다녀왔는데 고산증 때문에 고생을 좀 했다. 여하튼 일할 때는 되도록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대신 1년에 한두 번은 꼭 이렇게 재충전의 시간을 갖는다.”
▼ 지금까지 걸어온 길도 중요하지만 앞으로도 중요할 것 같다. 앞으로 계획은.
“아버지가 가르쳐주신 걸 현실에 맞게 골고루 버무려 더 발전시키고 싶다. 내 아들은 물론 후손들까지 이 일을 계속해주면 좋겠다.”

★ 배혜정 대표 조언! 맛있는 막걸리 집에서 만드는 법
배혜정도가의 막걸리는 누룩에 열을 가하지 않고 생쌀발효법을 이용, 깨끗하고 감칠맛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배혜정 대표는 고유의 레시피를 공개하며 “쌀의 품질과 상태에 따라 술 맛이 좌우되므로 좋은 쌀을 써야 한다. 또한 막걸리를 담그는 물은 생수나 수돗물을 써서는 안 되며 반드시 정수된 물을 사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준비물 쌀 1kg(1단) + 2kg(2단) 합 3kg, 개량 누룩 60g, 효모 12.5g, 물 1.5ℓ(1단) + 3ℓ(2단) 합 4.5ℓ, 거즈, 저장용기(최소 4.5ℓ를 넣을 수 있는 용기), 전자저울(일반저울)

원조 ‘신데렐라 언니’ 막걸리 장인 배혜정


원조 ‘신데렐라 언니’ 막걸리 장인 배혜정


원조 ‘신데렐라 언니’ 막걸리 장인 배혜정


1 쌀 1kg을 준비한다.
2 준비된 쌀을 깨끗이 씻는다.
3 깨끗이 씻은 쌀을 2시간 정도 물에 담가 불린다.
4 물에 불린 쌀을 체에 밭쳐 1시간 정도 물을 뺀다.
5 개량 누룩 60g을 준비한다.
6 효모 12.5g을 준비한다.
7 준비해둔 물(1.5ℓ)에서 일정량(약 100㎖)을 덜어내 개량 누룩과 효모를 잘 풀어준다.
8 물빼기를 해뒀던 쌀을 준비한 물(1.4ℓ)과 혼합하고 믹서를 이용해 곱게 간다.
9 곱게 간 쌀을 준비해놓은 저장용기에 담는다.
10 물에 풀어뒀던 개량 누룩과 효모를, 거즈를 이용해 거른다.
11 걸러낸 개량 누룩과 효모를 갈아놓은 쌀이 담긴 용기에 넣는다.
12 저장용기에 들어간 재료들을 잘 섞는다.
13 저장용기의 입구를 비닐이나 천으로 막는다. 이때 발효를 원활히 하기 위해 숨구멍을 만든다.
14 담금이 끝난 술은 따듯한 실내(20℃ 정도)에서 보관하며, 하루에 한두 번 정도 국자로 젓는다.
15 1단 담금일로부터 이틀 뒤 같은 방법으로 준비해둔 물과 쌀을 섞은 다음 갈아서 저장용기에 넣는다.
담금이 완료된 술은 10~15일 정도가 지나면 층 분리가 일어나면서 발효가 완료된다. 발효가 잘되면 술이 부글부글 끓다가 노랗고 말간 물이 위로 뜨면서 그윽한 참외향이 난다. 사람에 따라 바나나 향, 사과 향으로 느끼기도 한다.
완성된 막걸리는 알코올 15~16도 정도의 원주로, 이 원주를 체에 밭쳐 거른 뒤 1~1.5배 정도의 물을 첨가하면 5~8도 정도의 막걸리가 된다. 이 술은 배혜정도가 생막걸리와 같은 술이다. 만들어진 막걸리는 기호에 따라 단맛이나 신맛을 첨가해 즐길 수 있다.

배혜정을 키운 내 인생의 멘토

원조 ‘신데렐라 언니’ 막걸리 장인 배혜정
배혜정 대표는 아버지 배상면 회장(87)을 인생 최고의 멘토로 꼽았다. 배상면 회장은 우리나라 전통주 분야의 입지전적 인물이다. 양조장에서 술 빚는 걸 배울 때 일에 빠져들어 술독에 빠져 죽을 뻔한 적도 있다. 전쟁에 징병됐을 때는 그동안 연구한 유산균이 죽는 것이 아까워 시험관에 균을 담아 갔다가 헌병대에 끌려가 조사를 받았던 웃지 못할 일도 있다. 평생을 전통주와 누룩 연구에 바친 그의 좌우명은 ‘부지런히 쉬지 않고 일한다’. 그는 자식들에게 ‘나는 전통주를 위해 살지, 너희들을 위해 살지는 않겠다’고 강조했지만 그런 열정과 고집이 오히려 배 대표에게는 좋은 본보기가 됐다. 배혜정 대표는 최근 아버지의 가르침과 자신의 사업 이야기를 담은 책 ‘막걸리 CEO 배혜정’(창해)을 펴냈다.

1. 기본에 충실해라 배상면 회장은 처음 술 빚는 법을 가르칠 때 세척, 물빼기 시간, 온도, pH 농도 등 기본을 지키는 걸 강조했다. 또 좋은 재료를 사용하고 항상 현미경을 가까이하고 분석하며 술·담배를 멀리해 혀의 상태를 최상으로 유지해야만 술 맛을 맞추고 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고 가르쳤다. 배 대표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이런 기본을 지켜야 좋은 술이 나오기 때문에 지금까지 이 원칙을 지키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한다.
2. 전전긍긍해라 전전긍긍(戰戰兢兢)은 몹시 두려워서 벌벌 떤다는 의미로, 보통은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지만 배상면 회장은 이 말을 ‘어떤 일이든 쉽게 생각하지 말고 항상 조심조심 최선을 다하라’는 의미로 해석했다. 특히 술에 관한 한 제조 과정부터 소비자에게 팔릴 때까지 마음을 놓지 말고 온 신경을 집중하라는 뜻.
3. 나는 나다 배상면 회장은 자녀들에게 ‘남이 지게 지고 나무 하러 간다고 나도 나무 하러 갈 수는 없다’는 말을 자주 했다. 배혜정 대표는 “다른 회사가 저렇게 해서 잘 되니까 우리도 비슷하게 만들어보자는 건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물론 자신만의 고집을 갖고 만든 술이 잘 안 팔린 적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 사람들이 서서히 그것을 인정해주는 걸 보며 아버지가 옳았다는 걸 다시금 깨닫고 있다.


참고서적·막걸리 CEO 배혜정(창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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